삼세인과 (三世因果) 육도윤회 (六道輪廻)
삼세인과 (三世因果)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영원히 유전(流轉)되는 인과 관계. 과거의 인(因)에 의하여 현재의 과(果)를 받고, 현재의 인에 의하여 미래의 과를 받는 것을 이른다.
육도윤회 (六道輪廻)
선악의 응보(應報)에 따라 육도(六道)를 윤회하는 일.
5취생사륜 [五趣生死輪, 육도윤회]
생사륜이라고도 함.
(산스크리트로 '윤회의 수레바퀴'라는 뜻)
불교에서 연기(緣起)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윤회의 끝없는 순환과정을 무상대귀(無常大鬼)라는 괴물이 붙잡고 있는 수레바퀴로 표현한 것.
수레바퀴의 중심부에는 3독(三毒), 곧 탐욕(貪) 과 성냄(嗔)과 어리석음(痴)의 3가지 근본적인 악이 각각 붉은 비둘기, 초록 뱀, 검은 돼지로 형상화되어 있다. 바퀴 중심과 테 사이의 공간은 바퀴살에 의하여 5개 부분(나중에는 6개 부분)으로 나누어졌으며 윤회의 영역으로 지옥·아귀·축생·아수라(6개 부분일 경우)·인간·천상의 세계가 묘사되어 있다. 수레바퀴의 바깥테에는 12지연기(十二支緣起)의 12개 고리, 곧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처(六處)·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 등이 우화적이고 상징적인 양식으로 형상화되어 있어 윤회의 인과적 순환과정을 보여준다.
윤회설 [輪廻說, reincarnation, 삼사라]
인간은 해탈하기 이전까지는 생사를 끊임없이 반복하는데, 이때 취하는 몸과 태어나는 세계는 자신의 행위에 따라 결정된다는 인도 특유의 관념에서 생겨나 특히 불교에서 발전된 이론.
윤회라는 말 자체는 중생이 미혹의 세계에서 삶과 죽음을 반복하기를 수레 바퀴처럼 멈추지 않고 유전함을 의미한다. 윤회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 'saṃsāra'는 '흐름'이라는 뜻으로 생명체가 생사를 반복함을 가리키며, '생사'(生死)라고도 번역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윤회전생(輪廻轉生)이라 한다. 또 인도에서 상사라는 '세계'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어, 생사·윤회·세계는 상응하는 개념이다. 이로부터 전개되는 윤회설은 인간의 행위를 의미하는 업(業 karma)과 필연적으로 결부되며, 또 윤회의 주체인 영혼의 문제가 주요쟁점이 된다.
사후세계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다양한 종교 의례 및 관습을 형성해왔다. 윤회 역시 그런 관심에서 유래하여 특히 인도에서 현저한 발전을 보였다. 이미 인도 최고(最古)의 문헌인 〈리그베다 Rigveda〉가 인간 사후의 운명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여기서의 관심이 이후 점차 윤회설로 발전해갔다. 윤회는, 불교를 제외해야겠지만 일반적으로 영혼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영혼은 인간 존재의 본질로서 영원불변의 실체이므로 인간이 죽더라도 멸하지 않는다. 한편 인간의 행위(업)는 육신이 멸하더라도 계속 영향을 미치는 잠재력인 업력을 남긴다. 더욱이 이 업력은 신체적 행위뿐만 아니라 말과 생각을 통해서도 형성된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신(身)·구(口)·의(意)의 3업을 인정한다. 업력은 영혼에 간직된다고 생각되며,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업의 선악에 따라 합당한 형태의 세계에 달리 태어난다. 그러나 그렇게 재생하더라도 거기서의 행위(業)는 반드시 다시 업력을 낳기 때문에, 영혼은 계속 업력의 지배를 받으며 죽음과 재생을 무한히 반복해간다. 처음에는 사후에 재생하는 저승의 세계란 기본적으로 안락한 천상의 세계와 고통스런 지옥의 2가지였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각종 동물로 태어난다고 하는 통속적 관념이 성립되었다. 즉 인간계와 축생계 등이 재생의 세계에 추가된다. 또 천상의 세계라 하여 윤회가 끝나는 것은 아니고, 거기서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 업이 다하면 다른 세계로 재생해야 하며 그 세계 역시 윤회의 세계이다. 업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필연성을 철칙으로 하여 발현된다. 업의 영향은 바로 자신에게 언젠가는 반드시 나타난다. 현세가 아니라면 내세 또는 그 이후에 나타난다. 따라서 현재 자신의 상황은 곧 과거에 지은 업의 결과이다.
그러나 윤회설은 이러한 기본 구조와 상충하는 다른 관념을 수용하면서 발전한다. 특히 사자(死者) 의례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사자의 업을 다른 사람이 쌓는 공덕에 의해 개선할 수 있다는 관념이다. 원래 사자의 세계는 생전의 업에 의해 결정되어 있으므로 타인의 공덕은 사자에게 무익하지만, 일반적인 사자의례는 유족이 사자의 보다 나은 후생을 기원하기 위해 행한다. 이는 업의 법칙과 공덕의 관념이 모순되면서도 공존하는 예이다. 이런 모순이 불교에서는 자신의 공덕을 남에게 돌린다는 회향사상(廻向思想)으로 발전한다. 이런 양상은 업·윤회설이 민간신앙이나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윤회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라는 인식은 변함이 없으므로, 고통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결국 종교적 불사(不死)를 얻어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해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3업
불교에서 인간의 행위를 3가지의 업(業)으로 나눈 것.
몸으로 짓는 신업(身業), 입으로 짓는 구업(口業, 또는 語業), 마음으로 짓는 의업(意業)을 합하여 말하는 것이다. 지은 업의 내용에 따라 선업(善業)과 악업(惡業), 선도 악도 아닌 무기업(無記業)으로 나누기도 한다.
업 [業, karma]
인도철학에서 과거 행위가 미래세, 즉 다음 생에 끼치는 영향.
업보설은 이생에서의 삶이 윤회(輪廻 saṃsāra)의 사슬 중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은 전생에서 행한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인도인들의 믿음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인도인들은 이것을 이론의 여지가 없는 자연법칙으로 받아들여서, 업은 몸[身]으로만 짓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입[口]과 뜻[意]으로도 짓게 되는 것으로 보아 신업·구업·의업이란 3업의 개념을 성립시켰고, 그것이 외부로 나타나는 경우를 표업(表業)이라 하고 외부로 나타나지 않아도 그대로 상속하게 되는 것을 무표업(無表業)이라 했다. 그리고 업은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특정행위가 산출한 도덕적 힘은 보존되어 다음 삶에서 그의 계급과 본성·기질·성격 등으로 나타난다. 후대의 아주 극단적인 몇몇 유신론자들 외에는 모두 이 과정을 신의 간섭마저 배제된 기계적인 것으로 본다. 그래서 업의 법칙으로 생명체 사이의 불평등을 설명한다.
윤회하는 동안 각자는 브라만의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정도까지 자신을 완성시켜나갈 수도 있고, 나쁜 길에 빠져 동물로 태어날 수도 있다. 과거의 행위는 다음 생의 조건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한 생을 마치고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 저승에 있는 기간 동안 행복할 것인가 불행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이 기간 동안 천상이나 지옥에서 일정 시간 있으면서 그가 지은 업은 거의 소멸하지만 남은 것이 다음 생을 시작하게 만든다. 불교와 자이나교는 모두 인도인의 정신적 유산의 일부인 업보설을 자신의 사상체계에 받아들였다. 불교도들은 이것을 도덕적인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개념으로 명확히 해석하며, 자이나교에서는 업을 하나의 과정이 아니라 윤회와 인과응보를 가져오는 미세하고 특수한 물질로 본다.
회향(回向)
자기가 닦은 일체의 선근 공덕을 남을 위해서 돌리는 것.
니중연화 (泥中蓮花) 처염상정 (處染常淨)
종자불실 (種子不失)
씨앗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연꽃의 씨앗은 500년, 1000년, 3000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보존되다가 조건이 주어지면 다시 싹이 튼다. 불생불멸(不生不滅) 삼세인과(三世因果)의 법칙을 생각하게 한다.
처염상정 (處染常淨)
더러운 물에서 피어나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연꽃은 물의 오염물질을 흡수하여 양분으로 삼고 산소를 내뿜어 물을 정화한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오염된 세상을 맑히고 향기로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라는 뜻이다.
화과동시 (花果同時)
꽃이 지면 열매가 맺지만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맺힌다. 그것은 깨달음을 얻고 나서 이웃들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심을 없애고 자비심을 키워서 모든 이웃을 위해 사는 일이 바로 깨달음의 삶이라는 것을 연꽃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