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 https://www.chosun.com/economy/2023/06/13/QSTM2WEOABCQJGNDIONHVINIVA/
[조선닷컴 독점 연재]
세이노 sayno@korea.com
입력 2023.06.13. 07:00업데이트 2023.06.13. 10:22
1️⃣가까운 사람일수록 멀리 하여라
나는 상가를 임대할 때 계약서에 인테리어 공사 관련 특약을 넣고 임차인에게 날인도 받는다. 특약은 MDF 같은 합성목이나 페인트 혹은 시트지를 쓸 때 발암 물질이 기준치 이상인 저가 제품을 사용하면 임대인인 내가 강제로 공사를 중지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오래전, 어느 대기업이 상가 임차인으로 들어와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의 일이다. 공사 현장에 들어가 보니 화공약품 냄새가 많이 나고 눈도 따가워서 불량 자재들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았다. 나는 즉시 공사를 1주일 중지시키고, 인부들도 강제 철수시켰다.
보통 임대인이 이런 조치를 취하면, 인테리어 하청 업체를 관리하는 본사 직원들이 당장 달려와 대안을 제시하면서 공사 중지 기간을 단축해 달라고 간청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 예상은 빗나갔다. 공사를 어서 재개하게 해 달라고 하기는커녕, 도리어 공사를 중지시켜 줘서 고맙다며 내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속사정은 이랬다. 여러 점포들의 인테리어 공사를 도맡아 하는 하청업체 사장이 본사 사장 친척이었다. 사장 친척은 도면과 자재 명세표도 무시한 채 자기들 멋대로 변경하곤 했다. 이런 사실을 윗선에 보고했지만 사장한테까지 전달도 안 되고, 오히려 ‘못 본 척하라’는 말만 듣기 일쑤였다고 한다.
애당초 임대료 면제 기간을 1개월 설정했으니 그 안에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고 영업을 시작하는 게 순리였다. 그런데 공사 기간이 늘어나 영업 개시일은 미뤄지고, 아무런 매출 없이 임대료와 관리비만 추가로 발생하면 사유를 담아 품의서를 올려야 한다. 덕분에 공사 중지 사유가 그제서야 사장에게 제대로 전달된 것이다.
이게 국내 대기업 순위 5위 안에 드는 곳의 자회사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약 3년 후 그 자회사는 사라졌다.
또 하나 오래된 일화가 있다. 상호저축은행 한 곳의 회장이자 실소유주, 그리고 저축은행 임원들과 회의를 한 적이 있다. 회의실에 들어가자마자 속으로 ‘여긴 무슨 양로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장 나이가 칠순에 가깝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임원들도 모두 비슷한 또래였기 때문이다.
회의를 마치고 나와 회장에 대해 물어보았다. 외국에서 큰 돈을 번 회장이 한국에 돌아와 저축은행을 인수했다는 사실과, 회장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여 임원들로 앉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 내가 했던 말. “무슨 이사회가 친목회 모임이냐. 이사들이 저러면 모두 눈치나 볼 것이고 조만간 너희 회사도 쪽박 차겠다.” 실제로 이곳은 몇 년 후 부실 저축은행이 되어 예금보험공사로 넘어갔다. 친척이나 친구를 사업에 끌어들이지 마라.
2️⃣골프 접대가 아니라 일에 미쳐야 한다
10여 년 전, 본사가 대구에 있는 주차 관제기 업체가 수도권에도 지사를 두고 있었기에 그 회사 제품을 내 건물 주차장에 설치했다. 비슷한 회사들이 많은 수도권에서 지사를 두고 경쟁 우위를 점하려면 본사에서 기술 개발에 좀 더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제품이 바코드 종이 티켓 방식이어서 별문제는 없었다.
이후 카메라 번호 인식 시스템이 새로 나왔고 다른 업체들이 널리 보급하기까지 기다렸다가(신기술을 빠르게 채택하면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교체했는데, 번호 인식 오류가 계속되는 것은 물론이고 차량 진입 차단기가 제때 작동하지 않는 등 짜증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서비스 기사들은 언제나 “역광 때문이다, 반사 번호판 때문이다, 차량감지 코일이 예민하다” 등 원인만 설명할 뿐, 본사조차 문제 해결 능력은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 와중에 주차 관제 전용 컴퓨터가 바이러스 때문에 작동 불능이 되었는데, 처음 발생한 일도 아니었다. 업체에서는 바이러스 감염을 차단하려면 VPN(네트워크 보안장비)을 유료로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내 지식으로 VPN은 업체 네트워크에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장비이고, 주차 관제 전용PC와는 관련이 없었다. 그래서 국내 제1의 해킹 전문가에게 프로그램 가동 상황을 직접 조사해 달라고 하였다.
검토 보고서는 내 예상대로였다. 또 바이러스 탐지 프로그램(알약, V3 등)에서 자기네 프로그램은 탐지가 안 되도록 설정하였음도 알게 되었다. 즉 프로그램 자체의 결함을 숨기고 고객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본사 사장에게 “당신 회사 제품의 화형식을 하고 싶고, 사장도 직접 만나 보고 싶다”고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랬더니 몇 주 후에 임원 한 사람이 나를 찾아 왔다. 하지만 그는 입만 살아 있었고, 사장 친척이라는 말에 더 이상 대화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고객이 내용증명까지 보냈는데 사장이라는 XX가 나타나지도 않는 것을 보면 정말 ‘뻔할 뻔’자 아닌가.
회사 홈페이지에는 ‘최고의 기술력, 최고의 IT 전문 기업’ 등 좋은 말들은 다 내세우고 있지만 허울 좋은 선전 문구에 불과했다. 사장은 각종 관공서에 기부금을 500만원, 1000만원씩 내면서 기관장과 기념 사진 찍으며 얼굴 알리는 데에만 열심인 사람이었다. 그런 인맥 덕분인지, 시와 업무 협약도 맺고 공공기관이나 지자체 혹은 공영 주차장 위주로 납품하는 듯 보였다.
구인구직 사이트를 보니 매년 15~20명의 직원이 퇴사와 입사를 반복하고 있었고, 퇴사 직원들의 재직 기간은 평균 2년 정도밖에 안 되었다. 결국 나는 이 회사 제품의 화형식을 공개적으로 해도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하고 몽땅 폐기 처분했다. 이후 다른 회사 제품으로 바꾸었고 모든 문제는 사라졌다.
기술력이 필요한 업종은 사장부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빠삭하게 알아야 하고 기술 개발에 목숨 걸어야 한다. 중소기업일수록 직원의 머리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
하지만 회사 직원에게 전해 듣기론, 사장은 접대 골프만 치러 다니기 바쁜 사람이었다. 중국 자동차 번호판도 인식 가능하다고 홈페이지에 나오는 것을 보면, 중국산 프로그램을 구매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기술 개발은 등한시하고 각종 접대에 열을 올려 매출을 늘리려는 이런 사장은 제발 되지 마라. 자기 회사의 경쟁력은 물론, 대한민국의 경쟁력까지 약화시키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3️⃣돈 갖고 장난치지 마라
한 번은 공정거래위원회 건설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에 불려간 적이 있다. 하청업체가 공사를 도면대로 수행하지 않아 재공사를 했는데, 추가 공사비를 놓고 논쟁이 붙으면서 나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정위에 막상 도착하니, 담당 조사관이 나를 따로 불러 이렇게 물었다. “하청업체가 제출한 계약서에 이런 문항이 있는데 무슨 의미입니까?”
그 문항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내가 현금으로 공사대금을 주면, 돈을 지급받은 업체 역시 자기 하도급 업체들에게 현금으로 주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업체의 담보물을 내가 뺏는다는 것이었다. 조사관은 이런 계약서 내용을 처음 본다면서 설명을 부탁했다.
건설 공사에서 발주자가 공사비를 늦게 주거나 약속어음 등으로 주게 되면 하청업체는 자신의 하도급업체에 돈을 주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하도급업체들은 가족 생활비는 물론, 함바집(건설현장 간이식당) 밥값 지불도 미루게 된다. 결국 내가 돈을 늦게 주면 모두 피해를 입게 된다. 그래서 나부터 현금으로 줄 테니 당신도 그 돈을 받으면 하도급업체에 즉시 현금으로 주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담보물을 빼앗아 버리겠다고 못 박은 것이다.
이게 사업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라고 믿었다. 정기적으로 함바집에 가서 식사하면서 식비는 잘 받고 있는지 물어보면 제대로 돈이 흘러갔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함바집 아주머니들은 “이렇게 밥값을 빨리 받는 곳이 없었다”면서 나를 환대했다.
조사관은 나를 고발한 하청업체와의 회의에서 하청업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입증하는 나의 자료들을 믿고 하청업체를 추궁했고, 하청업체는 순순히 추가 공사대금 청구를 포기하였다. 분쟁이 생각보다 금방 종결된 것은, 아마도 조사관이 ‘지급해야 할 돈 갖고서 장난치지 않는’ 나를 믿었기 때문 아니었을까?(그 후 나는 그 하청업체에 다른 공사 하나를 더 주었다)
4️⃣부도날 짓을 하지 마라
한국에 대형서점이 처음 생겼을 때 그 규모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책 판매대금은 현찰로 들어오는데 출판사에 수개월짜리 어음을 준다면 수개월치 매출액만큼은 계속 그 서점 계좌에 쌓이겠구나. 그 돈은 조만간 내줘야 할 현금이지만, 지불할 시점까지는 가용 자금이 되겠구나.”
지금은 그렇게 수개월짜리 어음을 주는 서점이 없다고 하지만, 구매대금 지급을 한 달만 늦춘다면 서점 계좌에는 그 돈이 한 달 동안 계속 남아 있게 된다. 그 돈이 매월 평균 10억원이고 당신이 그 서점의 무주택 사장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자를 안 줘도 되는 돈 10억원이 매달 통장에 가용자금으로 남아 있다면, 그 돈으로 집이나 사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그래서 집을 샀는데, 얼마 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매출이 반토막 났다면? 가용자금은 5억원으로 줄어들고 당신이 집을 사는 데 10억원을 사용하였으므로 5억원이 모자라는 상황이다. 대금 지급 기간을 기존 1개월에서 2개월로 늘리려고 안간힘을 써보겠지만 출판사들이 격렬히 반대하면서 추가 납품도 끊기고 외상값 독촉만 받게 될 것이다. 매출은 더더욱 떨어지게 되고, 조만간 당신의 서점이나 집도 압류당할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겉보기에는 잘나가는 듯싶었던 회사들이 부도가 나서 망하는 과정이다. 이른바 흑자도산 역시 이와 비슷하게 현금 흐름이 막히면서 발생한다.
내가 알던 사람은 매월 2억원 정도 되는 가용자금을 무려 6개월 치나 활용해 본인이 좋아하는 와인 수입업을 하다가 본업과 부업 양쪽 모두 부도가 나 망하였다.
내가 보았던 부도난 회사들 대다수는 이처럼 장부상에 남아있는 가용자금을 마치 자기 돈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제멋대로 가져다 쓰다가 발생했다.
더 큰 문제는 회사 하나가 부도를 내면 그 회사에 무엇인가 납품했던 모든 곳들이 피해를 보게 되고, 그로 인해 납품사 역시 연쇄 부도가 날 수 있고, 납품업체 사장이 개인 사업자인 경우엔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부도난 회사의 사장들에게 물어보면, 거래처가 부도나는 바람에 덩달아 부도가 났다고 한다.
모든 사업자는 이것을 기억해라. 물품대금 1억원을 못 받게 된다는 것은 상품 이익율이 5%인 경우 20억원의 매출을 초과 달성하여야 겨우 그 손해를 메꿀 수 있다는 의미다.
납품대금을 늦게 주는 회사와 거래할 때는 반드시 담보물이라도 잡아야 하고,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라. 나 역시 80년대에 거래처에서 받은 7000만원(당시 동부이촌동 25평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었는데, 그 아파트 2채 이상을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어음이 있었고, 그 거래처가 부도나면서 끝내 못 받은 적이 있었으니까.
5️⃣신용의 가치를 알아라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중동에 건설붐이 생겼을 때의 일이다. 중동에 시멘트를 처음 수출하게 된 한국 무역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는 선박을 직접 임대 운용하며 수송비를 줄였으나 막상 중동에 도착하여 보니 열악한 항만 사정 때문에 항만 접안 순서를 기다리며 계속 대기해야 했다. 납기일을 맞추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러자 회사는 크게 손해 볼 것을 각오하고 헬리콥터와 군사용 소형 상륙정까지 긴급히 빌려 군사 작전하듯 시멘트를 날랐고 납기일 약속도 지켰다. 그 결과 중동 바이어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게 되고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게 되는데, 이 회사가 바로 ‘율산그룹’이다.
전 율산그룹 회장이 20여년간 공을 들여 헬리콥터와 소형 상륙정까지 동원해 약속을 지켜낸 율산그룹 이야기는 내가 군대 졸병이었던 근 50여년 전부터 지금 이때까지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사업가의 약속은 그토록 무거운 것이다. 그토록 사활을 걸고 약속을 지키는 사업가라면 누구든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일반 PC 사업을 접고 중형급 컴퓨터 사업에 집중하던 30여 년 전 어느 날, 오후부터 몸이 안 좋더니 저녁 무렵부터 체온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냥 감기 같아서 해열제 몇 알 먹고 누웠는데, 체온은 계속 38도 위에 있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잤으나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였다. 밤새 얼음 물수건을 계속 내 머리에 얹어 주느라 고생을 한 아내는 “병원에 가야지 무슨 출근이냐”고 막아 섰다.
하지만 그날 오전 10시에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중형급 컴퓨터 세트 납품 상담을 할 회사 사장과 미팅이 잡혀 있었다. 이미 견적서를 보내둔 데다 첫 미팅이었다. “몸이 불덩어리인데 일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며 눈물을 흘리는 아내에게 사업가의 약속은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라고 하고 운전기사에게 공항으로 가자고 하였다.
해운대에 있는 건물에서 상대회사 사장을 만나자마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제 이마를 좀 짚어봐 주세요. 제가 사실은 어제 오후부터 몸에 열이 많이 나서 해열제를 먹었지만 여전히 열이 많이 나고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오늘은 제가 제정신도 아니므로 1주일 후로 미팅을 연기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리고자 왔습니다.”
사장은 내 이마를 짚어 보더니 병원부터 가라고 하면서 내 요청을 받아들였다. 서울에 돌아와 병원에 가니 급성 폐렴 진단을 받았고, 응급으로 그날 입원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병원 입원실에서 “1주일 후에 미팅할 필요 없고 바로 납품하라”는 상대회사 연락을 받았다.
직원들이 당시 상대회사 사장으로부터 들었던 말은 이랬다. “몸이 안 좋으면 전화로 약속을 연기해 달라고 부탁하면 되는데, 몸에 열이 펄펄 나면서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사장이 직접 내려와서 말한 것을 보면 믿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납품했을까? 천만에. 그 회사 사장에게 연락해 우선 내 직원을 두 달 동안 그 회사에 파견 근무부터 시키겠다고 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상대방이 ‘이렇게 만들어 달라’고 시안을 제시해도 그 시안을 믿으면 안 된다. 기획자나 PM(프로젝트 매니저)이 제시하는 내용조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 허점 투성이가 된다.
즉 납품 후 프로그램 수정에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투입되고 그 기간엔 욕만 먹게 된다. 요즘은 개발자라고 부르는 프로그래머가 일 전체를 파악해야만 멋진 작품이 나온다. 나는 일에 미쳐 있던 개발팀장을 파견하였다.
그 후 나는 부산에서 꽤 많은 회사들을 내 고객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핑계 대지 말고 약속을 지켜라. 그게 사업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몇 년 후 나는 컴퓨터 관련 사업 전체를 그 당시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넘겨주었다. 그동안 나를 돈 벌게 해 주었으니, 그것으로 족했다).
6️⃣세무조사에서 떳떳할 수 있게 하여라
본격적으로 내가 사업을 시작한 것은 전두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대기업인 국제그룹이 공중 분해되고 많은 탈세범들이 구속되는 것을 보았다. 그때 두 가지를 뼛속 깊이 가슴에 새겼다.
첫째, 은행 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대출 연장이 안 되면 누구라도 망한다는 것. 나는 사업 초기에는 지인들에게서 돈을 빌렸으나 그 빚을 다 갚은 후부터 지난 30여년 동안은 은행 대출 없이 내가 갖고 있는 돈 범위 내에서만 사업을 해 왔다.
금융권 대출은 약 35여 년 전 경매로 넘어가기 직전의 아파트를 사면서 상호신용금고(지금의 저축은행)에서 매매가의 50% 정도 대출받았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즉 레버리지(빚내서 투자)는 전혀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나는 매출이나 회사의 규모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직 내 호주머니에 얼마가 들어오는가에만 초점을 두고 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세법을 위반하면 언제라도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것.
나는 일찍부터 국세, 지방세, 관세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시생 수준으로 열심히 공부하게 된 계기가 생겼는데 약 30여 년 전 강도가 센 세무조사를 최초로 경험하면서였다.
조사를 빨리 종결짓기 위해 나는 내가 출장 다닌 것이 전부 개인 관광이었다고 거짓 자백까지 했다. 납부해야 할 세금도 얼마 안 되었다. 그런데 경리팀장과 담당 세무사는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돈봉투를 세무서 직원에게 주었는데, 나 자신이 얼마나 비굴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는지 지금까지 기억한다(책 <세이노의 가르침> 533쪽). 그 후 나는 세무사 이상의 전문 지식을 갖추고자 국세와 지방세에 대해 공부했고, 세무 공무원에게 밥 한 번 사 준 적 없다.
내가 경영하는 법인들이 7~8개 되었던 시절의 일이다. 세무사 4명이 내 일을 도와주었는데, 모두 예전에 국세청에서 나를 조사했다가 퇴직 후 세무사로 개업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사바사바 싫어하고 세법대로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내 입장에선 그들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편했다.
어느 날, 그 세무사 중 한 명이 나를 찾아왔다. 의사, 변호사 등 현금을 많이 갖고 있는 전문직 고객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 현금을 합법화시킬 수 있는지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말이다. 왜 그걸 나에게 묻느냐고 물었다.
“사장님은 세무조사도 많이 받으셨지만, 그 옛날 5억원(상세 설명은 아래)을 빼곤 단 한 번도 추징당한 게 없으시잖아요. 산전수전 다 겪으셨으니, 사업자들이 어떻게 현금을 감춰야 하는지 저희보다 더 잘 아시잖아요.”
그때 내가 한 말: “아니 어제까지는 탈세한 놈들을 뒤져서 세금 부과하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던 세무 공무원이 민간인 세무사로 직업이 바뀌었다고 그런 놈들 돈을 합법화시키는 법을 내게 알려달라고? 알아도 못 가르쳐 줘.”
⇒잠시 곁길로 가서 예전의 5억원이 무엇이었는지 설명한다. 1만톤급 벌크선을 거의 통채로 사용하는 규모로 수출입 사업을 하다 보면 서류에 찍힌 수량과 실제 수량이 다른 경우가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처음부터 수량이 부족한 경우도 있지만, 배에서 싣고 내리는 과정에서 작업자가 훔쳐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량이 엄청난 경우 배가 떠나고 나서야 수량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수량이 맞지 않다고 세관에 보고하게 되면, 배가 떠나지 못하게 붙잡아 두고 검수를 다시 하고 선장 서명까지 받아야 한다. 배는 다음 일정이 있어서 지체없이 바로 떠나야 하기 때문에 일단은 수량에 이상이 없다고 보고하고 다음 번 물량을 서류보다 더 받는 방식으로 처리하게 된다. 이를 업계 용어로는 ‘합수 처리’라고 불렀다.
그런데 한 번은 부족한 수량(마이너스)보다 더 많은 수량(플러스)이 밀려 들어왔고 관세법상 이 물건들은 ‘마이너스+플러스=제로’가 아니라 제로 이상으로 들어온 것이어서 밀수가 되므로 정말 처치 곤란했다. 수출자는 앞으로 보낼 물건 수량이 모자란 경우 대비해 미리 넉넉히 보냈다고 했고, 사실대로 정정 신고를 하면 수출입 행정처리 관련 업체들이 애꿎은 처벌을 받게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직원들과 의논하여 그 물건들을 여러 도매상에 넘겨 팔았고, 판매 대금으로 5억 정도가 내 통장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 돈을 100% 전액 직원들에게 보너스로 나눠 주었다. 세무조사에서는 5억원에 대해 대표이사 횡령 및 법인세 포탈로 보았으나, 내가 가져간 금액은 1원도 없었기에 나는 끝까지 횡령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보너스를 받은 직원들을 모두 찾아내서 소득세를 재계산하여 추징하겠다고 하더라. 명색이 내가 보스였는데 그건 정말 쪽팔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다 뒤집어 쓰겠다”고 했다. 결국 국세청에 법인과 나 개인이 10억원 가까이를 냈고 관세청에도 별도로 벌금을 납부했다. 그게 보스가 취하여야 할 행동이라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세무당국은 어려워진 경제 여건을 고려해 올해 세무조사 규모는 축소하지만, 탈세에 대해서는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지난달 불공정 탈세자 조사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하는 오호선 국세청 조사국장./뉴시스
✅두려운 세무조사, 이렇게 대응하라
세무조사는 정기 세무조사와 비정기 세무조사로 나뉜다. 정기 세무조사는 언제쯤 갈 테니 이러저러한 자료를 준비해 놓으라고 미리 통지를 보내준다. 대부분의 경우 2~3명의 조사원들이 사무실 한쪽에 자리잡고 앉아서 “이 서류 달라, 저 서류 달라” 하면서 조사한다. 물론 서류를 챙겨 가져간 뒤에 조사하면서 나중에 세무서로 부르는 경우도 많다.
관련 기사
“비교질부터 끊어라” 불행한 한국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 [세이노의 가르침]
북유럽은 천국이니 따라하자고? 당신 세금부터 다 까발려라 [세이노의 가르침]
비정기 세무조사는 탈루 혐의가 있을 때(어쩌면 권력자의 미움을 받았을 때도) 세무서 직원들이 갑자기 쳐들어와 서류 한 장 보여주고, 직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책상에서 멀리 떨어지라고 한 후 시작한다. 이게 이른바 ‘세무사찰’이다. 이런 경우에는 개인의 수첩이나 메모장은 물론 모든 서류들과 컴퓨터 등을 가져가서 조사한다. USB 메모리와 휴대폰은 현장에서 그 내용을 살펴보기도 한다. 이메일 역시 조사 대상이다.
기획조사도 있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업계 대표 주자들을 미리 추려 주된 행위자로 보고 종속된 자들까지 몰아서 습격 수준으로 조사하는 것이다. 습격 나온 세무 공무원들조차 기습해야 할 주소지를 그날 아침에 비로소 통보 받고 왜 조사하러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보안을 철저히 유지한다. 때로는 조사 대상자의 부모 및 장인, 장모까지 포함될 수 있다.
여담이지만 가택 조사에서 개인적 불륜이나 포르노 자료가 탄로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조사관들로부터 들었다. 미국 국세청 산하의 세금범죄 수사대는 방탄조끼와 철모를 착용하고 반자동 총기까지 소지한 채 체납자를 찾아간다. 체납자가 총기를 소지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곳은 러시아일 듯싶다. 러시아에선 법적으로 어떤 행위가 탈세로 확정되기 전이라도 먼저 처벌할 수 있다. 러시아 권력자가 최고 부자들을 갑자기 감옥으로 보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법 때문이다.
법인세 조사는 개인소득세 조사보다 훨씬 엄격하다. 법인세 조사를 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은 3가지다.
첫째, 가지급금이다. 법인 돈을 개인이 빼돌려 사용하면서 인정이자를 법인에 지불하는지가 초점이다. 둘째, 자녀 혹은 친족이 직원으로 등록되어 있고 월급도 나가지만 실제로 일을 하는 직원인지 조사한다. 셋째는 원가 부풀리기, 매출 축소하기, 폐기품 처리 내역 등인데 부가가치세(이것을 부과가치세 혹은 부과세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세금에 대해 맹문인 사람들이다) 관련 법규 위반을 찾아낸다. 세무조사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대략적으로라도 알고자 한다면 ‘조사사무처리규정’을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찾아보면 된다.
법인 돈을 사장이 빼먹으면 법인은 법인세 탈루가 되고 사장은 소득세 탈루가 되어 결국 빼먹은 돈의 2배 가까이 토해 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개인 사업자인 경우에도 숨긴 돈의 60% 정도는 더 토해 내야 한다.
물론 국세청의 세법 해석과 의견이 달라서 법정 싸움을 하는 경우도 많다(나는 수십 번의 소송 경험이 있는데 두 건을 제외하곤 모두 국세청을 위시한 정부 상대였다). 억울하다는 법적 근거가 있다면 반드시 싸워라.
사업가 중에는 부자도 많다. 사업에 성공해 부자가 된 것은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덕분이다. 그러므로 이 사회에 고마워하고 보답하는 마음으로 세금도 잘 내고 기부도 하며 살아가는 자세를 갖자. 다만 가난한 사람들도 부자들과 똑같은 사회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들인데 왜 그들은 자신이 가난한 것에 대해 이 사회를 원망하고 저주해야 하는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못 찾고 있다.
7️⃣창업 성공하려면 ‘넓은 문’은 피하라
이렇게 중소기업 사장을 위한 조언을 한다고 해서 직장인들에게 내가 창업만이 답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귀가 얇은 사람들은 스마트스토어나 해외직구 대행 등등의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하는 인터넷 강의나 컨설팅에 월급을 쏟아 붓는데 안타깝다(나는 해외직구할 때 배대지를 이용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도 대행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런 것을 하여 성공했다고 가정하자. 내가 성공하게 된 과정을 돈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준다면 경쟁자들을 대량으로 양산하는 것이고, 결국 수많은 경쟁자들이 내 영역으로 들어오도록 초대하는 것인데 그 의도는 무엇일까?
이미 경쟁자들로 인해 수입이 줄어들기 시작하므로 본업보다는 강의료를 받는 것이 더 짭짤하기 때문이다. 이 뻔한 덧셈·뺄셈을 왜들 그렇게 모를까?
게다가 비싼 돈 내고 방법을 전수받았다 할지라도 일이 제대로 안 풀려서 수입이 용돈 수준도 안 되는 경우, 그 책임은 당신에게 돌아간다. “열심히 안 해서 그래”,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해”, “고객 만족을 등한시해서 그래” 등등. 이것은 마치 종교에서 신자들에게 “당신의 믿음이 부족해서 그래”, “당신이 지금 시험을 받는 중이야”라고 하는 것처럼, 모든 책임을 당사자에게 돌리는 것과 거의 동일한 가스라이팅이다.
창업을 하려면,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은 ‘넓은 문’으로 가면 안 된다. 모든 창업은 창업자의 눈에 “어, 이게 왜 없지?”하는 것이 눈에 들어올 때 하는 것이고, “이런 게 있어”라는 말에 이끌려 하는 게 아님을 기억하여라. 실제로 단순한 직구대행이 아니라 본인이 “어, 이게 왜 없지?”하는 판단에 제품을 미리 국내에 사입하여 놓고 광고(과장된 것도 많다) 열심히 하며 인터넷 판매를 하는 곳들이 꽤 있는데 이게 진짜다(직구대행보다 많이 비싸다).
창업의 시기는 ‘일에서 재가 잡힐 정도가 되었을 때’라는 것도 잊지 말아라. 학교 교사들이 돈을 벌고자 학원을 하거나 학원 강사로 가고 싶다고 메일을 보낼 때마다 내가 묻는 질문이 있다. “도대체 네가 다른 교사들하고 비교할 때 가르치는 방식이 다른 점이 뭔데?”, “열심히 가르친다고? 그건 네 생각일 뿐이므로 그냥 학교에 남아 있어”라는 것이 내 답변이다.
최근 유명 입시 영어학원 대표와 식사 중에 내가 들었던 말.
“저는 영어신문이나 잡지를 읽다가 좋은 문단을 보면 가슴이 뜁니다. 학생들에게 빨리 그 문단에 나오는 문장을 가르쳐주고 싶어서요.”
내가 20대에 과외선생을 그만두고 압구정동에서 작은 학원을 하였을 때 나도 그랬다. 사이몬앤가펑클의 노래 ‘스카보로페어’의 1절 “Are you going to Scarborough fair?....Remember me to one who lives there. For she once was a true love of mine.”만 들려주어도 고교생에게 1시간 이상도 충분히 가르칠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에 가슴이 뛰었으니까. 직장인으로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그런 가슴 뜀이나 열정이 없다면 대부분(예외도 있다) 창업하지 않는 게 좋다.
⇒나는 그 학원을 시작하고 나서 1년 후에 비싸게 팔았다. 당시 다니던 대학이 1년 5학기 30학점제로 거의 모든 강의가 야간 수업이어서 학원 운영에 전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6개월 후 전두환 정권이 과외 금지 명령을 내렸고 모든 학원들이 망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운이 좋았음을 알았다. 맞다. 사업에는 운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점쟁이를 찾아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운의 절반은 당사자가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 연재를 마치며
23년 전인 2000년도에 동아일보에 여러 주제의 칼럼을 쓰기 시작한 이후, 나는 종종 “세이노의 글은 한 사람이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동일한 필명으로 쓰는 것”이란 말을 들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세이노라는 이름으로 쓰는 글은 모두 다 나 혼자 쓰는 글이다. 단 한 번도 독자 성향을 살펴 책을 팔아 먹고자 대필 작가나 편집기획팀을 둔 적이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학원계 유명인사의 자서전을 오래 전에 대필하였던 자가 내 글을 요리조리 비틀어 그 책을 썼음을 내게 고백한 적은 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는 모르겠다만, 조선일보 연재는 이번 칼럼을 마지막으로 안녕을 고한다. ‘운좋게도’ 독자들에게 율산그룹의 ‘반포 고속터미널 부지 계약 조항’ 같은 일들이 있게 되기를 빈다. Good Luck!
▶️추신
1. 나는 ‘세이노’라는 이름을 글을 쓸 때만 사용하며 회사 이름이나 다른 그 어떤 것에도 사용하지 않는다.
2. 밀리의 서재에서 나의 책 <세이노의 가르침>의 일부를 발췌해 오디오북을 제작하고 무료로 배포하는 것에 고마움을 표한다.
3. 내가 동아일보 이후 20여 년 만에 조선일보에 칼럼을 쓰게 된 것은 순전히 이경은 기자가 십몇 년 전부터 계속 졸랐기 때문이다. 그 덕에 조선일보 독자들과 만나게 된 것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