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부 즉(卽)과 이(離)의 논쟁- 집착과 허무에 관하여
제 1장 인간이 추구하는 욕구충족과 가치
한 세상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과정은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불꽃놀이와 같은 것이다. 한 없이 영롱하고 오묘한 빛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불꽃놀이는 인간 삶의 열정인 동시에 주검을 남기고 사라지는 끝매듭의 여정이다. 하여, 인간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는 자손 앞에서 웃으면서 죽는 자가 가장 행복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인간의 근본적 삶은 욕구충족의 만족에 있다. 간단히 오욕팔정(五慾八情)에 모든 뜻이 함축되어 있지만, 배고픈 자는 먹어야 한다. 섹스에 굶주린 자는 그 성욕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 사랑받고 싶은 자는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최근에 이슈가 된 키 작은 남자를 지칭하는 루저(Loser; 실패자, 패배자)는 키가 크고픈 신체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조직 속에서 무시를 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픈 자존의 욕구가 있다. 이러한 것을 갖추려는 행위 자체가 결핍욕구(deficiency needs)에서 비롯된다.
이 결핍욕구가 해결되고 나면 자신의 존재적 가치에 무게중심을 둔다.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 종교는 무엇인가.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가치 있는 삶의 해답은 무엇이고, 그 방식은 무엇인가.” 자신에게 던지는 이러한 모든 질문이 정도(正道)를 찾아가고자 하는 존재 욕구(being needs)이다. 인간은 이 존재욕구의 해결에서부터 정신적 분열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긍정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조직을 성장시킨다. 그러나 폐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부정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조직을 패배시킨다.
존재욕구는 성장욕구(growth needs)이기도 하다. 조직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는 자는 능력을 개발해서 조직에 이바지한다. 이것이 바로 자아실현의 욕구인 것이다. 배고픈 자는 먹으면 해결된다. 키 작은 자는 포기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나 성장의 욕구는 인간을 가장 추접스럽게 변모시키는 마력을 지닌 것이다. 이 마력이 하부조직을 향하여, 열정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성공의 열쇠를 쥐는 것이고, 허황되고 거짓을 꾸며내는 자는 조직을 후퇴시키거나 망하게 하는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성장욕구는 각 인간들이 추구하는 하나의 목표이고 지향점이다. 그러나 각자 추구하는 길은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정오의 태양빛은 밝음을 대지에 선사한다. 이 하나의 빛도 프리즘을 통과하면 일곱 가지 무지개 빛으로 변환된다. 삼원색의 혼합물의 결과만 놓고 보아도 결과가 어떠한가. 보이지 않는 이면에 잠재된 빛 하나도 이럴지언정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빛깔은 어떠하겠는가. 성장 속에 잠재된 인간 욕구의 결과물은 이렇듯 헤아릴 수 없이 무궁무진하다.
이 단체의 인적구성원의 특징을 살펴보려면 존재의 욕구에서 찾아보면 해답이 나온다.
단체에 속한 조직구성원은 세운의 흐름과 경제적 지식으로 무장된 자가 아니면 결코 성공 시키지 못한다. 막연한 희망만을 가지고 비전을 제시하는 간부는 한 마디로 사기꾼인 것이다. 이 사기꾼들의 말 한마디에 전국의 신자들이 신용불량자가 되고 가정이 해체되는 결과를 양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슬그머니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자신들이 속았노라고 하면서 조직을 뒤에서 열심히 비판한다.
사실 이러한 말을 일반 신자가 말한다면 동정의 여지라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앞장서서 획책했던 자들이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여간 입맛이 쓴 것이 아니다. 나는 이러한 자들에게 피해를 당한 최대 피해자이기도 하다. 내 20대의 청춘과 열정을 불살랐던 사업체가 교묘한 점조직 형태로 인적자원을 해체시키는 바람에 전부 공중분해가 된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는 보여 지는 이들의 꾀와 보여 지는 간악한 행위에 관하여서는 일체 관여하지도 본 척도 안했다. 어차피 미쳐 날뛰는 자들의 의식이란 것은 일정한 공식이 있는 것 아닌가. 그들은 스스로의 역사를 한번 만들어 보고자 했다. 그 역사를 만들기 위하여 망한 단체의 경제를 일으킨 조합의 모든 것을 짓 밝고 없애는 것이 예정된 이들의 공식 아닌가.
내가 피 눈물을 흘리면서 만든 사업체를 없애려면 무엇인가 구실이 있어야 했다. 그 구실을 만들어 나간 첫 번째 방법이 인력 빼내기이다. 인력을 빼 내는 방법은 다양하게 구사되었다. ① 곧 세상이 망하니 그 곳에 있으면 죽는다. ② 내가 문제가 많은 사람이니 빨리 나와라. ③ 잘못된 공사이다. ④ 여타, 갖은 음모론 조장
이후, 이들의 말에 속아서 나간 사업체의 덜 떨어진 최은우라는 애는 사업체에 남아 있는 사람에게 찾아와서 “세상 망하니 빨리 나와라.” 등 온갖 소리를 조장하면서 그들의 편에 서기도 했다. 이외에도 이들은 온갖 구실을 붙여가면서 각개전투 식으로 사람들을 빼 내어 나갔다. 유치원 수준이나 써 먹을 계략을 핀 자나, 넘어간 자나 나는 동정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이들의 결과는 어떠할까. 내 사업체를 분해한 놈들은 지금 거의 조직을 떠났다. 그 계략에 말려든 자들도 내가 아는 한 거의 남아 있는 자들이 없다. 인간사란 이런 것이다. 정의를 파괴하는 자들은 결국 획책한 자나, 그 계략에 당한 자나 똑같이 함몰 당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 현재 사업체에 근무했던 사람 은 다음의 3가지로 나뉘어 있다.
첫째, 현재도 변치 않고 나의 진심을 알고 온갖 미움과 견제를 받으면서 일하는 자.
둘째, 나의 진심은 알지만 결혼을 해서 고향으로 돌아간 자. 이들은 각 지역에서 눈치를 주기에 스스로 밥맛이 떨어져서 발길을 끊은 자들이다.
셋째, 계략에 말려, 사업체 식구를 빼 내갔거나, 나간 것을 변명코자 배신의 행위를 한 후, 한자리를 얻은 자들. 이 중 가장 속 보이는 행위를 한 자들이 세 번째의 유형들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을 알고 있기에 나는 다 이해하고 넘어간다. 어찌되었든 이들이 다 고생한 것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정신이 뭉쳐서 망한 단체를 살린 원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다. 모든 공은 이들에게 있다. 나는 단지 술만 마셨다.
결론적으로, 거짓을 하게 획책하고, 그 거짓을 넙죽 받아먹어서 동반 거짓의 행위를 하는 자는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은 것을 알기에 태반이 조직을 떠나는 것이다. 이들의 신앙관을 나는 3분 라면이라 칭한다. 인스탄트적 사고방식을 갖은 자들은 어차피 오래 있지 못한다. 이들은 어느 조직 속에 들어가도 성장 시킬 수 있는 제목이 결코 되지 못한다. 거짓 계획을 획책한 자나, 그것을 받아먹은 자들이나 결과는 다 한심한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제 2장 수행과 3변의 전개과정
제 1절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 주랴
호박에 두꺼비 성냥갑에서 꺼낸 성냥으로 말뚝을 박으면서 놀던 10살 남짓인 내가 “ 이 애비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 주랴.” 한 마디에 속아서 수행을 시작하였다. 나는 사실 이때 시키는 대로 하면 맛난 음식이 저절로 생겨나는 줄 알았다. 지금 자라나는 어린애들과 나를 비교해 보면 정신적 순결성이 순진무구 자체였을 것이다. 문명과 물질의 혜택을 얻지 못했던 만큼 영악함도 없었고, 자연을 벗 삼아 온 산을 놀이터로 삼아 하루 종일 뛰어놀던 시절이었다. 4계절에 맞추어서 산에서 나는 산딸기, 산 밤. 산머루, 산 버찌, 칡뿌리를 캐어 먹으면서 자랐다. 요즘의 개념으로 보자면, 몸에 좋은 특별음식 이련만,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은 산에서 나는 모든 것이 호구지책을 위한 구황작물인 시절이었다.
철없는 어린 자식에게 수행을 시키기 위하여 아버지가 나에게 던진 첫 화두가 “애비가 시키는 대로 따라하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생긴다.” 이다. 그렇게 시작한 수행의 화두는 “수행을 하다보면, 불빛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은 푸른빛이 보일수도 있고, 붉은 빛이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생각들이 들 것이다. 수행을 하다보면 그런 생각들이 차츰 줄어든다.” 이렇게 아버지의 교육은 진화해 나갔다. “산 같은데서 수행을 잘못하면 오히려 못된 신명이 붙어서 잘못되는 수가 많이 있다.” “부처님도 수행을 할 때 많은 신명들이 와서 유혹을 하였다. 수행의 과정은 그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모든 교육을 단 하나의 의구심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수행을 참 지극정성으로 하였다. 그러나 먹을 것이 생기기는 개뿔, 순진한 어린놈이 다리 꼬고 앉아서 새벽1-2시까지 해도 먹을 것은 지렁이 발톱이나 개미 눈물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수행 중 간혹 실눈을 뜨고 방바닥을 쳐다보았지만 식은 죽 한 사발이 생기지도 않았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내 수행이 부족하다 생각해서 무조건 믿고 따랐다. 하루는 아버지가 수행 중이던 나에게 먹을 것을 불쑥 내민다. 나는 이때 순진하게 교육받은 어린 마음 인지라 아버지를 아버지로 보지 않고 내 수행의 마귀가 실험하는 줄 알고 과자를 주는 아버지의 손을 내 손으로 툭 쳐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두 번을 정확히 쳐내고 거절하였다. 나중에 아버지인줄 알고 아! 받아먹을 것을 어린 마음에 억울해했다. 그러나 이후 아버지는 두 번 다시 수행하는 나에게 먹을 것을 권하지 않았다. 어린 자식 약 올리는 거지 뭐.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수행을 계속해 나갔다. 어린 내가 순진하게 미친 것이다. 학교를 다녀오면 가방을 집어 던지고 글자 그대로 면벽수행을 하였다. 그리고 수행을 하면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수행을 하다가 뒤로 쓰러져 잠이 들면 뒷머리가 부딪혀 쿵 소리가나는 소리를 들으면서 잠의 절벽 속으로 아스라이 빠져들었다. 그렇게 6년을 면벽수행 하였다. 빠르면 새벽 1-2시, 늦으면 새벽 4-5시까지는 우습게 수행을 하던 시절이었다.
어린 나이에 하던 수행 이였지만 내 아버지가 교육시킨 수행체험은 철저히 하였고, 그 이상도 해보았다. 어렸기에 표현이 서툴렀지만 내 정신은 다 기억하고 있다. 내 의식의 진화과정은 처음에는 먹을 것이 생기는 것으로 알고 수행을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내가 도술을 부려서 먹을 것을 만들어 내는 줄 알고 수행을 더욱 열심히 하였다. 물론 나중에는 이것도 어린 내 마음이 만들어낸 것임을 깨달았다.
이 수행과정의 결론은 무엇인가. 나는 아버지에게 낚였던 것이다. 내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정확히 낚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식이라고 애비 말을 다 듣는가. 그 많은 자식 중에 하필이면 왜 나를 선택해서 잠도 못 자는 고행을 하게 만들었는지. 물론 행복하다는 표현에 대한 역설적 설명하는 것이다. 내 막내 형을 꼬드길 때는 “이 책 한번 읽으면 만원 주마.” 내 막내 형이 “싫어”한다. 재차 아버지가 묻는다. “그럼 이 만원 주마.” 이런 식으로 결국 꼬드겨서 신앙 문에 들어서게 만든 분이다. 내가 옆에서 막내 형을 꼬드기는 장면을 지켜봤기에 잘 안다. 살살 웃으면서 말씀 하시는 내 아버지의 외유내강(外柔內剛)이 바로 이런데 있는 것이다.
수행을 하던 중 가장 슬펐던 것이 내 동생의 죽음이 떠올라서 소 새끼처럼 숨죽여 흐느끼기도 하였다. 일란성 쌍둥이였는데 기침을 참 많이 하였다. 한번 기침이 터지면 그 어린놈(3-4세)이 죽을 듯이 멈추지 않는 기침을 한 것이다. 요즘이야 의학이 발달해서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동생이었을 것이다. 기침하는 동생이 입었던 노란색 옷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느 날, 개울가 윗집 여자가 추천한 시내 병원에서 주사 한대를 맞고 와서 그 다음날 바로 죽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