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잘렸다. 잘린 것과 그만 둔 것의 경계가 모호한 난 대책이 없는 선택을 했다.
이제 세상 속에 들어가야 한다. 이력서를 쓰다가 십년이 훌쩍 넘는 세월 앞에서 머뭇거린다. 무어라 쓸까. 학교 졸업하고 군복무 마치고 해 본 일은 달랑 종교활동이 다인데 난감했다. 달리 쓸 말을 찾지 못해 말 그대로 두루뭉술하게 종교활동이라고만 적었다.
절의 스님도 아니었고, 교회의 목사님도 아니었고 성당의 신부님도 아니었던 내 종교활동의 이력은 한때 낭만으로 채색돼버린 수정불능의 문신 같은 것이다. 광고탑이니 성경보다 더 두꺼운 경전이니 케이블 테레비 방송국과 연구소의 존재 등에 대한 변명 닮은 설명은 비상식적 시간의 문신을 상식적 경력으로 바꿔놓지 못했다. 종교활동이란 말의 구체성을 요구하던 세상은 종교활동이라는 베일의 장막이 걷히자 나의 이런 부연 설명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나는 다만 사이비에 빠져 젊음을 탕진한 세상 물정 모르는 별난 사람일 뿐이었다.
어느 사장님은 종교활동이라 적은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보고 적잖이 고무되어 있었다. 얼른 면접을 보자고 했다. 내가 연락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사장님이 모사이트에서 내가 올려놓은 <자기 소개서>를 열람하고 먼저 연락을 해왔다. 그러나 종교활동의 실체를 알고 난 사장님은 입사를 허락했다가 이틀 만에 취소해버렸다. 그분은 교회 장로님이었다. 그분은 내가 쓴 소개서를 읽으며 기독교적 구도자의 감상에 젖었다가 면접을 통해 종교활동의 실체를 파악한 후 결정을 번복하였다.
어느 건설현장의 숙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요즘은 시골이 사라졌다할 만큼 케이블 방송이 일반화 되었다. 대한민국은 미디어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인양 건설현장 숙소에도 케이블을 통해 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다. 수십 개의 채널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지만 지상파나 지상파의 재방송이 아니면 채널 고정은 어렵다.
내가 있던 현장숙소 케이블에도 상생테레비 채널이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 채널을 선택해 보는 사람은 내가 그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던 약 2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누군가가 채널을 돌리다가 상생테레비에 멈췄다. 난 깜짝 놀랐다. 아! 보는 사람이 있구나. 그러나 그 화면을 잠시 들여다보던 그들이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저거 기독교 교회 방송이야!!"
한마디로 헐이었다. ‘테레비 채널을 따내지 못하면 우리는 공멸’이라 구호 아닌 구호를 외치며 케이블 송출사 영업사원 노릇도 마다지 않고 뛰어다니더니 결국 죽 써서 기독교에 보태준 꼴이라니!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채널로 옮겨가 버렸다. 상생테레비 채널이 선택된 것은 리모콘을 잡고 있던 사람의 손가락 꼬여 벌어진 실수였다. 누가 보랴, 다채널 시대에 방송사업이라는 게 임금의 성은을 기다리는 궁녀인 것을.
사이비 종교로 낙인찍힌 나를 세상이 싫어하지만은 않았다. 반겨 주는 곳도 있었다. 다단계 영업 업체에서는 쌍수를 들어 환영을 했다. 내가 쓴 종교활동의 이력이 그들 눈엔 한탕주의자로 비춰진 모양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인쇄물 홍수시대에 책 써서 승부를 보려하다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테레비 채널 난립시대에 방송국 개국으로 도세 만회를 꿈꾸다니 진정 허망한 노릇이다. 봉사를 하지 않는 종교를 세상은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의 전당이라 인정하지 않았다. 별스런 아름다운 말로 책을 쓰고 방송을 하고 광고를 하고 연구논문을 쏟아내도 세상은 사이비라는 꼬리표를 떼 주지 않았다. 봉사를 하지 않는 종교는 다만 신도들의 금품을 갈취해 호의호식하는 신흥 사이비종교일 뿐이었다.
딴전이는 종교적 심성이 일 프로라도 있는가? 답은 없다. 그에게 일 프로의 종교적 심성이 라도 있었더라면 이런 개떡 같은 도정운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관이라는 건물 하나에 정신이 홀려 스스로 천자의 길을 선택한 딴전이는 말 그대로 증산의 천지공사에 딴전보는 자일뿐이다.
딴전이! 고송암 사건을 기억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