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주장하는 대세란 진리의 대세가 아니라 그대가 벗어나기 두려운 그대의 양심을
묶어두는 대세를 말함이랴. 그대의 학자적 양심을 속이지 말지어다. 진정한 진리적 대세란 무엇인가!
대세에는 옳고 그름이 명백하고 그른 것에는 붓이 칼처럼 춤을 춰야하고 입이 비수가 되어서
만인을 올바른 길로 제도하는 것이 천도요 진리니라. 영혼이 없는 구관조 강의, 자아주체가 실종된 구관조 글
이 그릇되고 망령되고 실종된 양심을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것인가.
과거의 사부는 진리적으로 순수했느니라. 과거의 사부는 신도를 위했느니라.
그 사부도 인간이기에 실수했고 인간이기에 욕심을 부릴 수도 있었느니라.
사부는 97년 98년 이때까지만 해도 순수했고 진정 신도를 위하고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어가는 덕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로 단체가 사회적으로 성장할 여건이 되어가면서 그에 걸맞은 겸손을 보여주지못하고 이상하게 변질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비극의 진리판을 혁명하는 것은 그대 같은 맹종주의자 그대같은 구관조가 아니니라.
그대는 사부의 과거를 지우는 지우개 역할을 그만 멈추라.
흔적은 사부 스스로가 지워야하고 그가 칠판에 그린 모든 그림을 그 스스로 털어야 하느니라.
그대 상제님께 도전하지말라. 혁명은 상제님의 근엄한 천지의 명이니라.
오랜 신앙을 통해 상제님태모님 그리고 지도자의 은혜를 입은 관록의 윤교수님이 외환과 내환이 코앞에 닥쳐오는데도 구습을 버리지 못하고 아무런 개인적,학자적 양심없이 구관조마냥 알아듣지도 못하는 맹목적인 강훈을 함으로써 많은 분들의 온당한 질타를 받는 것 같습니다. 당연한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교수님이 받은 은혜는 그렇게 보은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감사의 은혜를 궁극적으로는 단체와 신도를 위해서 갚아야지, 오직 입으로만 상제님태모님태사부님사부님을 위해서 내한몸 다바치겠다는 말씀인데
그것은 대단히 위대한 어리석음의 극치이며 일말의 용기가 없어 자신의 주체성과 자기계발능력은 포기하여 상실하고 오직 교주의 바짓가랑이만 잡고 매달리겠다는 천하의 제일 큰 도둑심보로 가득찬 그런 우매한 영험함으로 자기착각 자기기만에 지나지않는 소인배중에서도 극히 더 소인배적인 사고와 행태입니다.
머슴신앙이라고 하는데 제대로 된 머슴은 배운 것 없어 아무리 무식해도 자신의 양심에서 일어나는 주체성은 행사할줄 압니다. 그냥 맹목적으로 머슴신앙이라는 낱말에 자신과 모든 신도를 집어넣으려하는 자체가 상제님진리를 땅바닥에 떨어뜨리는 과잉충성이며 자신의 양심포기라는걸 알아야합니다. 상제님의 도수해석도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접근해야지 도전책넘기며 이 공사는, 이 예화는 그런것같다라고 말할것같으면 아예 입을 닫아야 합니다.
교수님의 설교(강훈)를 보면 일부내용의 전개방식이 저 개신교목사들의 설교를 듣는것같아 착잡합니다.
윤교수님의 해박한 전공지식과 순정어린 신앙심 그리고 인격을 익히 들어왔지만
아무리 전반적인 능력과 인격이 갖추어져있어도 자타와 단체가 공멸의 위기에 처하고 누란의 위기에 처한 시대인식의 핵심을 간파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며 비정상적인 대세에 편승한다면 그것은 평소 자신이 쌓아온 모든 행적과 공덕의 기초와 대들보를 허물어버리는 우를 범하는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2천년전의 예수님은 좋아하지만 기독교목사들의 설교는 질색입니다.
그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내용,미사여구를 동원해 백만,천만명의 교인들을 구름처럼 모아놓고현혹시켜도 저는 질색하며 고개를 저을것입니다. 선천의 종교집단중에서 가장 악랄하게 한사람 한사람 개인의 양심과 주체성을 교리를 내세워 철저하게 말살시키고 집단세뇌로 유일신사상을 집어넣고 오로지 예수만 찾는 정신적 신체적 완전불구를 만들어버리는 종교가 단연코 기독교입니다.
그들은 오직 오직 예수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대리자인 목사를 위해서, 완전머슴 완전노예를 만들어놓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장엄하고 장대한 역사는 결코 교회의 규모나 첨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름없는곳에서 이름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것입니다.
개인의 주체성과 양심이 교리적으로 말살되는 상황에서도 한사람 한 개인의 주체적이고 양심적인 밀알같은 신도들의 조용한 자각과 희생과 봉사에서 이룩된것이지 결코 신의 대리자로 군림하는 성직자들의 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신을 빙자해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 온 선천종교의 거대하고 사악한 게임의 허상에 들러리를 설 필요가 없다는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질색의 목사설교냄새가 윤교수님의 강훈에도 묻어나는 것 같아 심히 안쓰럽고 의외의 충격입니다.
지금 또다시 생각해봐도 윤교수님의 강훈에는 단체와 대다수 신도를 위한 애정이 눈꼽만치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이 믿고 받드는 대상에 대한 지극히 맹목적인 충의만 보일뿐입니다.
아~ 이 교묘한 자기부정과 자기기만을 통해 소름돋도록 (상제님태모님과) 그리고 (모든 신도들)과의 관계에서 또다시 (윤교수님자신)이라는 삼각관계로 철저히 선을 그어버리는 그 이중성과 비정한 이기주의, 저절로 솟아나오는 샘물과도 같은 한치의 양심도 없이 나홀로 살겠다는 위대한 배포에 이몸은 다시한번 주체적인 삶의 태세를 가다듬으며 전율을 느끼는바입니다.
윤교수님의 모든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강훈내용의 전개방식에 비판을 하는것이오니 널리 해량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것인가 저런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 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송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