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 담론방 > 자유게시판


 
작성일 : 15-05-07 11:53
예수 사상의 핵심은 '사랑'인가
 글쓴이 : 게리
 
바이블이 증언하는 예수는 "사랑"이라는 것에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았습니다. 




몇몇 분들께서 마가 12:28-34와 누가 10:25-37을 인용하시며 예수의 '이웃 사랑'을 

언급하신 글을 읽었습니다. 예수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첫째 계명이라고 하신 모양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고등학교 윤리 

시험을 볼 때 '기독교 = 사랑의 종교'라고 쓰면 정답으로 인정받는 것이 상식인 

모양이죠.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사랑 

하라'는 말은 누가 한 것입니까? 마가는 이것이 예수의 말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누가는 반대입니다. 율법학자가 영생의 조건이 될 만한 계명을 묻자 예수는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되어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사랑 

하라'는 말은 율법학자의 대답이지 예수의 말이 아닙니다. 명백히 같은 사건에 

기원을 둔 전승이 이처럼 정반대의 형태로 나타나 있는 것은 복음서 문학의 

엄밀성 문제에 관한 편집사적 연구에서 취급할 만한 흥미로운 문제입니다만 

이 글에서는 그런 모순-버그?-을 지적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길게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요컨대 그것을 예수가 말했든 율법학자가 말했든 대국적인 줄거리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예수 아닌 다른 사람도 똑같이 

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는 점입니다.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되어 있는가'라고 

예수가 그랬으니 율법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은 대답을 했을 법한 

문제인 것입니다. 


사실은 이보다 조금 더 미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주해서를 뒤져 보면 예외 없이 

이 구절이 신명기 6:5와 레위기 19:18의 인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 

하는 학생이라면 틀림없이 구약을 뒤져 봅니다. 그리고 나서 '정말 그렇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예수 당시의 유대 사정을 조금이라도 공부하신 분이라면 이런 싸구려 주해서를 

그냥 믿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도 애국가 1절 가사 

정도는 알고 있듯이 당시의 유대인이라면 율법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기도(라기보다는 신앙 고백)로서 알고 있는 '쉐마'라는 기도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쉐마는 '들어라'라는 의미의 히브리어로서 신명기 6:4-9, 11:13-21, 

민수기 15:37-41의 연속된 송경으로 이루어집니다. 첫머리는 이렇게 생겼지요. 


'들어라, 너 이스라엘아. 우리의 하나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 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 

하여라...' 


율법학자도, 예수도, 또 주위의 구경꾼조차 이 구절을 신명기의 한 구절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쉐마의 한 구절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이 기도는 

지식인만의 것이 아닌 모든 유대인의 필수 교양에 속하는 '쉬운' 기도였기 때문 

입니다. (물론 전문적인 공부를 하신 분들이라면 유대교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 

정도는 갖추셨을 테니 제가 이렇게 구구하게 늘어놓지 않아도 이미 알고 계시겠죠. 

목회자이신 Symond님께서야 당연히 아실 테고 공부를 열심히 하시는 황혁기씨나 

홍병희씨도 당연히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발언은 예수의 공생애를 전후한 시기의 유대교 문학에서 

얼마든지 발견됩니다. 랍비 아키바는 (홍병희씨가 끔찍이도 싫어하시는 명상 

문학에 단골로 등장하는 유대교 랍비입니다. 기독교인은 아니죠.) '자기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라. 이것이야말로 율법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포괄적인 기본 

계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열 두 족장의 예언'이라는 문서에 

속하는 '잇사갈의 유언'에는 '아들들아, 하느님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 주와 

이웃을 사랑하라.'는 구절이 있고 '단의 유언'에도 '나는 마음을 다하여 주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여 왔다. 아들들아, 너희도 그와 같이 하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요컨대 '주를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은 예수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 당시 유대교 문화의 '상식'인 것입니다.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면 굳이 아니라고 할 필요는 없겠지만 사랑이 기독교만의 고유한 

것으로서 크게 거론되어야 할 만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거죠. 


여기까지는 또 괜찮다고 칩시다. 예수는 사랑의 전도사였습니까? 안타깝게도 

별로 그렇지 못합니다. 예수는 사랑, 사랑 읊어대면서 사랑이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할 만큼 단순 무식한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의 언동의 본질을 잘 추상하여 

포착해 보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수 자신은 '사랑' 

이라는 단어를 별로 많이 쓰지 않았습니다. 믿어지지 않으신다면 성경 검색용 

프로그램이라도 구해서 한 번 뒤져 보십시오. (편리한 세상이죠? staire가 

끙끙대며 성경을 뒤지던 시절에 비하면...) '좋아하다', '귀여워하다'라는 정도의 

가벼운 의미로 쓴 용례를 제외한다면 예수가 본격적으로 사랑을 언급하는 것은 

마태 5:43-44의 유명한 '원수를 사랑하라'는 구절과 앞에서 인용한 마가 12장, 

누가 10장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시피 한 것입니다. 더우기 마가와 누가의 '사랑' 

이야기는 예수의 말이라기보다는 당시 유대 사회의 누구나 암송하고 있는 쉐마의 

구절이라고 본다면 예수의 사랑론은 '원수를 사랑하라' 이외에는 이렇다할 것이 

없습니다. (여담이지만 마태 5:43의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는 말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5:44의 도입구 

로서는 그럴듯합니다만 구약의 어디에도 이런 말이 나오지 않으므로 호교론적 

신학자들이 꽤나 애를 먹는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마태의 의도적인 

가필이었을까요?)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분이 있을 것입니다. 누가의 그 뒷 부분을 잘 읽어 

보라는 '문맥론자'가 등장할 때가 된 거죠. 확실히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단순히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건조한 교설보다는 훨씬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 

예수는 '이웃의 범위를 전 인류로 확대하기 위해' 이런 예를 든 것일까요? 

그렇다고 생각할 만한 근거가 별로 없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사제'와 '레위 사람'에 대한 비판일 뿐입니다. (레위 사람이 어떤 계급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사마리아인은 팔레스타인에서 계속 차별을 받아 온 집단 

입니다. BC 128년 사마리아가 유대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그 차별은 구체적인 

색채를 띠게 됩니다. 헤롯 왕조가 들어선 뒤 사마리아시(원래는 도시 이름이지만 

이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이름으로 나중에 바뀌었습니다.)는 로마풍으로 

개조되어 이름도 로마 황제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세바스테로 바뀌고 사마리아시 

한가운데 로마 신전까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같은 헤롯이 만년에 예루살렘 

신전 입구에 금독수리상을 장식했을 때에는 폭동에 가까운 소요가 일어났습니다. 

'성도'가 모욕을 당했으니 소동이 일어난 것이기도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사마리아는 이미 타락한 곳이며 이방화한 곳이니 이같은 취급을 받아도 아무런 

말썽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는 얘깁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 취급을 받지도 

못할 정도로 차별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할 때에는 당연히 이러한 차별에 대한 반발의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차별의식을 뒤집어 놓은 컴플렉스의 수준을 

넘지 못합니다. '보라, 사마리아 사람들조차도 이같이 훌륭한 일을 하지 않느냐. 

하물며 너희들은...' 이런 사고방식은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차별의 연장에 불과한 

것입니다. 누가 17:11-19에 나오는 사마리아인 이야기 역시 이러한 전도된 차별 

의식의 수준과 동일선상에 있습니다. 사마리아인의 문제에 관한 한 예수의 발상은 

이런 정도의 선을 넘은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결국 사마리아인 아닌 자가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마리아인의 일을 생각할 때 품는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는 사마리아 지방에서는 활동하지 않았고 예수의 '제자' 또는 

지지자인 민중들 속에서도 사마리아인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마가 3:8의 기사가 

그 증거입니다. 


요약하겠습니다. 예수는 '사랑'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했다고 하더라도 

유대교 고유의 전통의 궤 안에서일 뿐이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입으로만 사랑을 외치는 사제 계급에 대한 성토는 될 수 있어도 사마리아인에 

대한 성심 깊은 애정에서 나온 발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인류 보편의 

가치입니다. 결코 기독교만이 사랑을 말할 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고 말하는 것에는 저도 이의를 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면 유교도, 불교도, 이슬람도, 그밖의 수많은 종교들도, 심지어는 

종교 아닌 다른 가치관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스칼라 15-05-07 13:49
 
네 마음을 다하고... 사랑
하라'는 말은 누가 한 것입니까? 마가는 이것이 예수의 말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누가는 반대입니다.
지고이바이젠 15-05-07 18:15
 
이것은 결국 사마리아인 아닌 자가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마리아인의 일을 생각할 때 품는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는 사마리아 지방에서는 활동하지 않았고 예수의 '제자' 또는
지지자인 민중들 속에서도 사마리아인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마가 3:8의 기사가
그 증거입니다.
빈병 15-05-07 19:45
 
한국인이라면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도 애국가 1절 가사
정도는 알고 있듯이 당시의 유대인이라면 율법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기도(라기보다는 신앙 고백)로서 알고 있는 '쉐마'라는 기도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빈병 15-05-07 19:46
 
첫머리는 이렇게 생겼지요.
'들어라, 너 이스라엘아. 우리의 하나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 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
하여라...'
겨울 15-05-07 20:19
 
어떤 목회자들은 여인들을 무지 사랑하는 줄 압니다.
멜론 15-05-07 20:20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입으로만 사랑을 외치는 사제 계급에 대한 성토는 될 수 있어도 사마리아인에
대한 성심 깊은 애정에서 나온 발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오리 15-05-07 22:09
 
바쁜 와중에도 여유를 가지려면 모름지기 먼저 여유 있을 때 의지할 근
거를 찾아 두어야 하고, 소란스런 와중에도 고요함을 유지하려면 모름
지기 먼저 고요할 때 중심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삶의
잣대가 환경에 따라 바뀌고 사정에 따라 흔들리게 된다.
된장찌개 15-05-08 21:28
 
요약하겠습니다. 예수는 '사랑'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했다고 하더라도

유대교 고유의 전통의 궤 안에서일 뿐이었습니다
 
 

Total 9,904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공지 1• 3 • 5 프로젝트 통장을 드디어 공개합니다. (70) 혁명위원회 09-12
공지 진법일기 70- 1.3.5 프로젝트가 의미하는것은 무엇인가? (61) 이순신 09-19
공지 혁명을 하면서~ <아테네의 지성! 아스파시아와 페리클레스> (12) 현포 07-31
공지 히틀러, 시진핑, 그리고 트럼프 (15) FirstStep 06-23
공지 <한 지경 넘어야 하리니> (21) 고미기 07-28
공지 트럼프, 폼페이오, 볼턴을 다루는 방법들 (32) 봉평메밀꽃 07-18
공지 판소리의 대표적 유파로 '동편제'와 '서편제'가 있습니다. (27) 흰두루미 06-20
공지 소가 나간다3 <결結> (24) 아사달 03-20
2380 화장실에서 보는 책 < 최불암과 방학숙제> (6) 객1 05-10
2379 한국을 망친 친일파 개이독(68) - 노천명 (11) 게리 05-10
2378 혼돈의 유대땅 (9) 게리 05-10
2377 [레고바이블] 솔로몬 궁전의 규모 (8) 게리 05-10
2376 인간과 동물의 교감 (8) 혁명밀알 05-10
2375 무라카미 하루키의《잡문집》 * '저쪽' 세계로 통하는 문 (7) 사오리 05-09
2374 5회, 복면가왕 가희 - 너에게로 또 다시 (3) 딴따라고사리 05-09
2373 똥단소 적두미의 천년묵은 여우 타령 (11) 각설탕 05-09
2372 한국을 망친 친일파 개이독(67) - 유광렬 (7) 게리 05-09
2371 성경 속에서의 우주관 (8) 게리 05-09
2370 [레고바이블] 바이블이 주장하는 결혼생활 (7) 게리 05-09
2369 다산정약용의 ‘백성(민)’ 주체론 또는 국민주권론(國民主權論) 2 (6) 선유도 05-09
2368 다산정약용의 ‘백성(민)’ 주체론 또는 국민주권론(國民主權論) (7) 선유도 05-09
2367 판밖성도의 천지도수 - 변산가는 길(모악산 암계룡의 비밀 전격 해부) (17) 칠현금 05-09
2366 고맙다 예쁜 학생 (8) 혁명밀알 05-09
2365 법정의《아름다운 마무리》 * 향기로운 여운 (7) 사오리 05-08
2364 어버이날- 감동 동영상 (6) 딴따라고사리 05-08
2363 다산정약용의 ‘民權 이론’의 내용 - 자율적 인간관 (10) 선유도 05-08
2362 한국을 망친 친일파 개이독(66) - 김소운 (8) 게리 05-08
2361 노아의 방주의 허구성 (2) (9) 게리 05-08
2360 노아의 방주의 허구성 (1) (7) 게리 05-08
2359 [레고바이블]노아의 방주- 전지구를 휩쓴 대홍수에도 살아남다 (7) 게리 05-08
2358 머리가 너무 길지 않나요? (8) 혁명밀알 05-08
2357 판밖성도의 천지도수 - 말수도수와 태을주 (14) 칠현금 05-08
2356 고도원의《혼이 담긴 시선으로》 * 탄력 있는 선수 (9) 사오리 05-07
2355 웃기면서 착한 몰카 (7) 딴따라고사리 05-07
2354 막둥이 프로그램~ 칠성은 낳고 기르는 상두쟁이 공사~~ (15) 향수 05-07
2353 똑딱벌레님의 댓글을 읽고 윤교수님께... (34) 현포 05-07
2352 구관조 보시게나 -똑딱벌레- (15) 현포 05-07
2351 한국을 망친 친일파 개이독(65) - 김상용 (6) 게리 05-07
2350 천지창조의 비 과학 (8) 게리 05-07
2349 [레고바이블] 차별주의자 예수 (7) 게리 05-07
2348    예수 사상의 핵심은 '사랑'인가 (8) 게리 05-07
   221  222  223  224  225  226  227  228  229  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