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정약용의 ‘민권 이론’의 선행연구 동향
다산사상을 민권 개념으로 설명한 것은 초기 다산 연구부터 있었다. 초기 다산 연구로는 윤용균尹瑢均의「정다산의 정전고井田考」가 있으나, 단일주제가 아닌 전반적 연구는 정인보(鄭寅普)․안재홍(安在鴻)이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를 발간하면서 ‘조선학’을 제창하고 ‘실학’을 중시하면서부터다. 정인보는 1934년 동아일보에 「唯一한 政法家 정다산 선생 서론敍論」을 발표했는데, 여기서는 민권이 거론되지 않았다. 다음해 1935년에 백남운(白南雲)이 다산사상을 “자유사상의 동경憧憬”이라고 하면서 도 “근세적 자유사상을 적극적으로 제창한 것도 아니다”고 한 바 있다. 역시 같은 해 다산 사상을 민권 이론에 접목시킨 연구는 안재홍(1891~1965)이다. 그는 1935년 「現代思想의 선구자先 驅者로서 茶山先生地位-국가적 사회민주주의」라는 논문에서, 「원목原牧」에 나타난 다산 사상 을 ‘사회민주주의’로 보았다.
하지만 그가 다산을 바라보는 시각은 “레닌주의와 유물주의 정치이론의 틀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또 안재홍과 동시의 연구로는 1955년 북한 에서 간행된 최익한(1897~?)의 <실학파와 정다산>이 있다. 이 책 하편인 ‘실학의 성자 정다산에 한 연구’는, 원저(原著)인 「여유당전서를 독讀함」을 저술할 당시 공산주의 활동가로서 의 사상이 그로 남아, 사회개혁을 주장한 다산을 민주주의자로 평가한다.
그러나 다산 사상을 유물론적 사회주의 사상에 연결시켜 해석하고 다산을 비판하기도 하여 북한 체제이론에 활용한 측면도 있다. 이들 1930년의 연구는 다산 사상에서 민권적 의의를 언급은 했으나, 민권 자체의 논리적 추론이기보다는 수난의 시기에 민족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적 이념 지향과 맞물려 다산 사상의 진보성을 강조하려는 담론이었다.
한편, 역시 북한 학자이면서 1974년에 <실학파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적 견해>를 내놓은 정성철은, 다산을 ‘실학적 고전학자’로 보고, 일면 민주주의적 특징을 인정하면서도 다산이 봉건체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원론을 펴고 있다.
1930년 이후 한동안 다산 연구의 공백기를 거치고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은 뒤에 나온 홍이섭(洪以燮)(1914~1974)의 <丁若鏞의 政治經濟 思想 硏究>는 본격적인 ‘다산학茶山學’이란 이름으로 경세학經世學을 주로 다루면서 문학 부분도 언급하여 이후 연구의 초석이 되었다. 그는 민권 주장을 하지는 않았으나, 다산의 經世(政法) 사상 이 유교주의적인 민본사상民本思想이면서도 가톨릭적인 사랑(愛)의 정신이 가미되어 근적 색채가 농후한 것으로 보았다.
1970년에 들어와서는, 한영우(韓永愚)가 「원목」․「탕론」을 들어 ‘주권 그 자체 가 중에 있는 主權在民’이라는 시각으로 보았다. 그 즈음, 처음으로 민권을 단일주제로 다룬 연구는 아마 조광(趙珖)이 아닐까 한다. 그는 1930년 연구와는 달리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여 정한 추론을 시도했다. 조광의 「丁若鏞의 民權意識 연구」는 광범한 자료를 근거로 국민주권론國民主權論(국민참정권國民參政權, 공직담임권公職擔任權)과 민중저항권(民衆抵抗權)이라는 서구 민권적인 개념을 다산의 사상에 그로 적용시켰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서학과의 관련성이 없다고 하면서도 다산의 민권사상을 적극 주장하다. 조광 이후에는 다산 서세(逝世) 150주기를 앞두고 전개된 연구에서 민권을 다룬 것으로 김한식(金漢植)의 「茶山의 民權思想)이 보인다. 그는 君民관계가 서로 불평등한 원인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각자 독자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면서 ‘주권재민’의 논리까지 주장하고 있다. 윤사순(尹絲淳)도 다산의 ‘자율적 인간관’ 측면에 주목하여 민권을 긍정하다. 또 임형택(林熒澤)은 「원목」과 「탕론」만을 가지고 “왕권신수설과 치한 下而上의 선거제적 방식”으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러한 다산 사상의 기발함이 나온 연원을 추적하다.
그 외 에 민권을 주제로 하지 않더라도 내용상 민권과 관련되는 많은 연구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성을(趙 誠乙)은 신분제 개혁을 논하면서 다산의 평등적 인간관, 양반신분의 부정 등을 주장하고, 이상익은 왜 민권으로 봐야 하는지를 통치 권력의 기원․임무․수단 등의 세 가지 논리로 주장 하다. 그 외에도 석사학위논문을 포함하여 민권을 언급한 연구는 다수 있으나 이미 앞에서 언급한 이론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선행연구들을 살펴보면서 알 수 있는 것은 다산 사상을 민권 개념으로 파악한 연구가 오래전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반면 민권 이론에 비판적인 연구는 극히 드물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이미 언급한데로 민권사상으로 보면서도 그 ‘근성’을 비판한 남상락의 경우, 민권 이론의 주 된 근거인 「원목」․「탕론」과 평등관 등의 민권적 견해에 비판적인 함규진의 연구, 민권 이론 비판은 아니지만 다산의 경학을 위주로 그 사상을 '수사학(洙泗學)’의 복고적 사상으로 본 李乙 浩의 연구, 다산 사상을 요순(堯舜)을 이상으로하는 왕도정치 사상으로 본 배병삼의 연구 정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