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15년5월7일.
난법의 기류가 익어서 터져 나온지금, 윤교수의 일탈행위를 지적질을
하지 않을 수없습니다.
오랫동안 윤교수는 구도자의 길과 최풍헌의 고사에 울겨먹을 대로 울겨먹고
이제는 자신이 교주라고 노구라를 통해서 은근히 사부죽이기를 천명하였습니다.
사부는 사부교를 만들었고, 윤교수는 사부를 죽이기 위한 풍헌교를 만들었습니다.
최풍헌 고사의 설정에는 이상한 점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최풍헌이 죽고난후 유언에는 상여를 메고 지리산 아무 골짜기로 오라는 것인데,
유훈장의 막내아들과 둘이서 상여를 멘다는 점과 풍헌이 능력자라면 겨우 두사람만
살린다는 설정입니다.
윤교수의 말에 따르면, 최풍헌이가 사부이고 유훈장이 윤교수라면 사부가 윤교수랑
자식 한사람 살리는 능력자로 봐야 하고, 상제님의 뜻과는 전혀 맞지 않은 고사입니다.
사부가 죽고난후 증산도는 지리멸렬 망하게 되고, 이때 혼란기에 알곡과
죽정이를 골라낸다는 것인데 사부가 부활해서 결국 두사람만 살아나니까
다른분들은 미안하지만 머슴인생으로 돈만 벌어주고 다음엔 죽어주셔야
겠다는 것이 윤교수가 20년전에 깨달았다는 내용입니다.
사부와 윤교수랑 그의 자식중 한명, 꼴랑 3명 살리는 것이 상제님의 천지공사라면
지나가던 개도 웃겠지요.
구도자의 길에서도 물위에 뻗은 나뭇가지위로 올라가서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뒤지던 말던 결국 풍헌고사에서 다른 사람들은 전부 뒈진다는 암시로
상생의 정신은 어디로 가고 상극의 정신으로만 무장된 윤교수의 심법을 볼수 있습니다.
“최풍헌이라는 인간은 저건 믿을 사람이 못되는구나. 아, 죽어도 사람이 곱게
어떻게 돌아가셨으면 좀 믿을만한데 구정물통에 머리를 박고 돌아가셨다고
여기 돼 있어요. 그것도 믿음을 테스트 하는거예요 그것도 믿음을.
그래서 유훈장은 찾아가서 그래도 믿잖아요. 유훈장이. 정말로 말이예요.
이런 것을 그냥 소설로 보지 말고 상제님 말씀으로 보지 말고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런 일을 당했을 때 내가 과연 그 믿음을 통과할 수 있느냐.
굉장히 어려운 얘기죠. 그렇지만 유훈장은 최풍헌을 크게 믿었기 때문에
그 고흥에 지래산에 장사를 지내니까 거기서 보니까 최풍헌이 부활을 해가지고
말이예요. 아주 양식을 집을 지어놓고 양식을 잘 저장하고 피난할 준비를 다해놨더라.
그런데 동네를 보니까 일본군이 침입해가지고 불을 질러가지고 불타고 있더라.
이것은 뭐에요? 북한에서 상씨름이 나고 그리고 개벽이 났는데 그 믿은 사람은
구원을 받았지만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런 개벽을 당했다는 뭐 그런 얘기를 지금
함축을 하고 있어요.”
결국 윤교수의 이야기는 믿는 사람만 살려준다는 것인데,
지금 사부믿는 신앙인이 몇 명이나 되는가요?
현실과는 너무 괴리된 이야기이고 지금이 어느시대인데 호랑이 담배 빨던 시절의
순진한 얘기를 믿어주십사 하고 하는지 그의 정신구조는 꿈속을 헤메는 맹구 같습니다.
“신앙이라는게 살기 위해서 신앙하는거 아닙니까? 살기 위해서 신앙하는데
주인께서 뭐라고 그랬어요? 목숨을 바쳐라 이거예요. 목숨을 바쳐라.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예요. 그렇지만 저는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주인의 말에 마지막 그 순간까지 순종해야 된다는 겁니다. 주인은 누굽니까?
태사부님 사부님이시죠. 여기서는 상제님 태모님이 아니죠. 여기서는.
이제 태사부님께서 선화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도성덕립이 되는 그날까지
사부님의 명에 우리는 절대 순종을 해야지 사부님을 의심한다거나 끝나는 거예요
그건 사실은. 도의 세계라는 것은 뭐 사부님이 그런 말씀하셨어요.
야, 0.1%의 의심만 가져도 그 사람은 주인에 대해서 0.1%의 의심만 가져도
그 주인의 기운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1%만 의심을 해도요 떨어져 낙엽이 되고 마는거예요.
그러니까 결국 이 구도자의 길에 마지막 결론이라는 것은 주인의 말을
마지막까지 들어야 되고 주인의 말을 내 목숨을 기꺼이 바치면서 까지라도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지도자에 대해서 이러한 확고한 믿음이 없다면 못간다는 거예요.
낙엽이 된다는 거예요.”
주인이 도대체 누구인가요? 상제님을 신앙한다면 성사재인의 주체력으로 하는것이지
자신을 버리고 사부를 주인으로 정해서 상제님을 신앙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요?
사부는 상제님이 아닙니다. 윤교수는 사부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사부신앙의 풍헌교주 맞지요.
태모님께서도 너자신을 먼저 믿어 주체정신을 확립하고 그다음에 상제님을 믿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지금 윤교주는 노예신앙을 가르치고 있는것입니다.
맹신을 요구 하고 있는 것을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에 쇠뇌된 분들도 주체력상실로 그게 맞는것인지 틀린것인지도 한번 생각해봐야
하는데 그냥 맹신으로 맹구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사부신앙에서 벗어 나야 합니다. 우리는 성사재인의 명을 내리신 상제님을
신앙해야 하는 것입니다. 윤교주는 지금 정말 잘못된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상제님이 명하신 광구창생의 내용과는 전혀 얼토당토않는 풍헌고사로
인류죽이기와 사부죽이기에 열올리고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야, 상제님 진리가 너무나 멋있다. 상제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게 뭡니까?
믿음이죠. 사실은 뭐. 아니 상제님께서 우리한테 뭘 원한거예요? 돈이요? 돈이라는 것은
믿음이 있으면 내는거예요. 믿음에 종속되는 것이지, 돈이 결코 주체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믿음을 줘야 나의 믿음을 받으리라. 나는 오직 마음만 볼뿐이니라.”
상제님이 주인인가? 사부가 주인인가?
윤교주는 신앙의 대상이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두루뭉술 상제님과 사부는 동격이니까
주인둘을 믿어라고 하는것입니다. 하기야 오랫동안 그렇게 배워오고 마취되어서
자신이 무슨 얘기하는 것인지 잘모르고 있고, 그것이 맞는 얘기 인양 열심히 떠들고 있는데,
이 노예신앙을 요구하는 윤교주는 정신을 차릴수 있도록 정신과에 보내져야 합니다.
상제님께서는 나를 믿으려면 삭신이 노골노골해지도록 믿어라고 했는데,
사부를 노골노골해지도록 믿어라는 것은 없습니다.
태사부님도 “나도 일개 상제님의 신도일뿐이다”라고 항상 말씀해 주신 것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사부의 교만은 도를 넘었고, 추종하는 윤교주도 정신이상자 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지금 증산도는 증산도를 대표하는 사부의 잘못된 행위로 인해서 사이비화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윤교주는 정말 똑바로알아야 하는 것이 태사부와 사부를
믿는다면서 태사부님은 믿지 않고 사부만 믿는 돌출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태사부님의 말씀에 의하면 태사부와 사부도 상제님의 신도입니다.
그런데 윤교주는 사부신앙을 하고 있고, 사부의 죽음과 부활을 꿈꾸고 있는
허령들린 자입니다. 이런 미친자를 신앙의 선배라고 우리는 착각하고 그의
노예신앙과 머슴신앙에 길들여져 왔습니다.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겠습니다.
맹구교수와 영구 노구라는 열심히 도수? 고사풀이? 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둘이 뭔짓거리를 하고 있는가요? 둘다 사부죽이기에 심취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좆성이가 원하는 혁명가 죽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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