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루산>
시루는 떡을 찌는 솥이다. 좀 더 의미를 확장하면 만물을 쪄서 익힌다는 뜻이다. 이것을 인문적으로 제한해 보면 미성숙의 인류문화를 성숙의 질서로 인도한다는 얘기가 된다. 참 좋은 말이다. 그러나 너무 환상적이고 추상적이다.
이 환상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 <대시태조출세>라는 왕후장상 놀음의 개벽문화 속에서 나온 것이다. 겉으로는 미성숙의 인류문화를 성숙으로 인도한다고 외치면서 속으로는 자기 아집을 만들고 폭력을 조장했다. 더 나아가 천륜을 해하였다.
때문에 필자는 시루의 의미를 좀 더 현실적으로 해석해 보려고 한다.
시루는 물과 불을 조화시키는 그릇이라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물과 불은 상반되는 <두 가지 기운>인데 이 두 가지 기운을 조화해서 떡을 만드는 것이 시루의 효용성이다. 이 떡은 무엇이라 해야 하는가?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사람의 녹이다.
사람의 녹은 노동을 통해서만 획득해야 하는 것으로 돈을 버는 일이다. 그런데 돈을 잘 버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자본주의는 돈 잘 버는 사람의 기를 너무 살려서 큰 빈부격차를 만든 반면, 사회주의는 돈 잘 버는 사람의 기를 너무 꺾어 경제적으로 낙후되었다. 이것은 지난 100여년의 세계역사가 말해주는 사실이다.
이제 세상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돈을 잘 버는 사람의 기운을 꺾지도 않고, 돈을 못 버는 사람을 그냥 버려두지도 않는 시루의 조화정신을 체득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에서는 사회주의의 좋은 점을 배우고 사회주의에서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인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 학교 교과 내용을 회고해보면, 북한의 탁아소를 안 좋은 시각으로 설명해 놓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 크지도 않은 어린아이를 공동생활에 보낸다는 것을 비인도적인 행위로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를 돌아보면 탁아소와 같은 형태의 어린이집이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루라도 이 어린이집 운영을 멈추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다.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다.
그런데 상제님 존호 증산甑山은 전북 고부의 신기마을에 있는 작은 산이다. 도전挑戰하는 몇몇에게만 오름을 허락하는 크고 높은 산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크신 분이 존호로 삼은 이 산은 왜 이 토록 작은 동산인가?
여기에는 상제님 <만인사상>이 스며있다. 상제님 진리는 특정한 몇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래서 상제님의 시루산은 남녀노소 누구나 다 오를 수 있는 작은 동산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상제님을 찾는 것은 이 시루 안에 사람의 녹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시루의 떡이 다 익으면 사람들은 상제님 앞으로 모여든다. 그래서 시루산은 꼭 작은 동산이여만 했으리라.
그렇다면 상제님 시루의 떡은 어디서 나오는가? 정치적인가 경제적인가?
바야흐로 정치는 삼천 국으로 벌어지고 경제는 단일 시스템화 되고 있는 것이다. 지구촌이 경제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 정치적 통일을 꿈꾸며 먼 길 떠난 사람들은 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대시태조는 상제님 신앙인들이 극복해야 할 큰 산이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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