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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6-25 02:44
영화 Fury 배경은 -1950년 6.25
 글쓴이 : 공시생기출문제
 


 

♨영화 '퓨리'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사진♨


미군 셔먼 전차1대가 독일군의 엄청난 보병과 홀로 버티며

 전과를 올리는게 나오는데

사실 이 장면은 2차대전이 아니라 북한에 의해 자행된  1950년 

6.25 남침인 한국전쟁의 실화를 따온 장면이다. 

 


 

낙동강 방어선으로 유엔군이 몰려있는 상황.

1950년 8월31일 대구 북방 왜관 방면에 배치된

미 72기갑여단 소속 전차장 어니스트 코우마 중사.

 


 

 어니스트 코우마 중사는 

북한군의 압도적 병력이 낙동강을 건너오자

보병들의 2선 후퇴 시간을 벌기 위해

홀로 남는다.

 


 

 당시 코우마 중사가 지휘하던 M-26퍼싱 전차

코우마 중사는 500여명의 북한군 보병을 상대로

전차포와 기관총 탄약이 다 떨어질때까지

혈전을 치루다 북한군들이 전차 위로 기어 올라오자

전차 헤치를 열고 나와 기관총을 난사하고

포탑을 회전시켜 북한군들을 떨어뜨리며

영화 퓨리의 장면을 실제 연출 했다.

이때 사살한 북한군은 250여명에 이른다.

 


 

파괴된 북한의 T-34전차 옆을 지나가는 M-26퍼싱 전차

 

 

코우마 중사는 무려 9시간동안 북한군의 보병을 막아내며

미 보병들의 퇴로를 지켰으며

영화 퓨리에선  죽은 것으로 나왔지만 사실은 

이때 코우마 중사는 부상은 입었지만 생존하여 

미국 최고의 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는다.


코오마 중사에 대한 기사 보도에 의하면.

NCO-History-Sept.jpg 

weapons-german-front.jpg 

칠곡군 왜관읍 아곡리, 이곳은 한국전쟁의 용자 어네스트 코우마 중사(Ernest Kouma)가 혼자서 괴뢰군 250명을 사살한 전설적인 용맹을 떨친 곳이기도 하다.


코우마는 1919년 네브라스카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에는 대학을 포기하고 가업인 농장일을 잇기 위해 육체노동을 했는데 1940년에 미군에 징집되었다.

당시 미국은 기갑병력을 확대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었고 코우마는 탱크병으로 훈련받았다. 그리고 1944년 코우마는 노르망디 상률 작전에 참여하게 된다.


독일군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았던 미군 제9기갑사단 소속으로 코우마는 혹독한 실전 경험을 쌓았다. 그 중에서도 코우마의 비범한 전투 능력은 독일군 최후의 공세인 벌지전투()에서 길러지게 된다. 발터 모델 원수가 이끄는 독일기갑사단은 벨기에에서 프랑스로 가는 요충지 바스토뉴를 포위했는데 미군 제9사단은 지원군이 올 시간을 벌기 위해 바스토뉴 외곽에서 결사항전을 각오했다.


단숨에 벨기에를 가로질러 프랑스로 쳐들어가리라던 히틀러의 구상과 달리 바스토뉴에서 독일군은 귀중한 시간과 연료를 허비했고 게다가 히틀러가 '무슨 일이 있어도 바스토뉴를 함락시키라'고 무모한 명령을 내린 덕분에 벌지전투는 독일군의 실패로 끝날 수 있었다.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되살아난 제9기갑사단은 독일 본토 침공에도 참가했다. 히틀러는 자살했고 유럽에서의 전쟁은 끝났다. 만일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코우마는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고향에서의 따분한 생활보다 군의 역동적인 생활에 더 끌렸던 코우마는 군에 남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중사 계급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미군정이 다스리던 한국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곳이 그의 인연이 땅이 될 줄은 몰랐다. 




9th_Infantry_Regiment_tank_desant.jpg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운용하던 탱크 M26 퍼싱. 독일의 티거나 소련의 T-28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미군의 중전차)


코우마 중사는 미군 제2보병사단 소속 제72탱크연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신병 훈련에 힘을 쏟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종전을 축하하는 분위기가 강했고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의 안보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워싱턴의 정치인끼리 동아시아에서 전쟁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지리한 논쟁으로 시간을 소모하던 중에 결국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이 전면전을 개시하자 미국은 이 침략을 저지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뭉쳤다. 그러나 축하 분위기에 들뜬 미군은 바로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장 일본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출동했지만 그들은 북한군의 전력을 얕보고 있었다. 


북한의 침공이 단순한 무력도발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미정부는 본토에서 군대를 보내기로 했다. 한국땅에 급히 파견된 부대가 바로 제2보병사단이었다. 이렇게 하여 코우마 중사는 1950년 8월, 다시 한국땅에 발을 디뎠다.


파죽지세로 서울을 점령하고 전라도를 석권한 북한군은 낙동강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부산 외곽을 방어하던 군대는 월튼 워커 장군이 이끄는 미8군이었다. 미8군의 방어가 거세자 북한군은 다른 루트로 침략하는 길을 찾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침략 루트로 지목된 곳이 바로 칠곡군 왜관읍 쪽이었다. 제2보병사단은 이곳에 배치되어 북한군의 도강을 막게 되었다.


제2보병사단 소속의 코우마 중사도 칠곡군으로 이동했다. 그는 1950년 9월1일, 칠곡군에서도 요충지였던 아곡리로 배치되었다. 북한군과 미군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그의 임무는 북한군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정찰대 지휘관이었다. 






9월1일 밤8시, 코우마 중사는 M26 퍼싱 탱크에 탑승하고 다른 퍼싱 탱크 1대, 장갑차 2대를 이끌고 아곡리 일대를 순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강 주변은 안개가 자욱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밤 10시가 되자 갑자기 강 건너의 북한군이 포격을 시작했다. 미군도 맞대응하여 포격을 한창 하고 있는 와중에 코우마의 부하가 포격 소리 속에 섞여서 물소리가 난다고 보고했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코우마는 재빨리 순찰대를 강기슭으로 이동시켰다.


3717694133_YEQjFg6d_1.jpg 




10시반, 포격이 좀 잦아드는가 싶더니 마침 안개도 걷혔다. 그때 강기슭으로 나간 코우마의 순찰대가 발견한 것은 북한군이 그새 설치한 부교와 뗏목을 타고 도강하려는 북한군의 모습이었다. 코우마는 망설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포격을 명했다. M26 퍼싱의 주포인 90mm M3포가 부교를 향해 불을 뿜었다. 코우마 중사도 직접 M2브라우닝 기관총을 잡고 새까맣게 몰려오는 북한군을 향해 미친듯이 쏴댔다. 낙동강변의 미군도 다시 응사를 시작했다.


코우마의 정찰팀에게 행운이 었었다면 북한군은 도강을 하기 위해 중화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밤 11시가 되자 강 건너편에서 북한군의 포격은 다시 거세지고 있었다. 코우마도 탱크가 90mm포를 발사할 때 튀어나온 탄피에 맞아 발목에 부상을 입었다. 코우마는 철수를 명령하려고 했다. 그때 무전기를 통해 북한군에 맞서 출동해있던 부대의 빠른 후퇴를 명령하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우마는 이대로 전원 후퇴하다가는 북한군에게 엄청난 인명 손실을 입게 될 것이고 최악의 경우, 북한군이 아곡리를 점령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코우마는 정찰대원들에게 자기들이 끝까지 전우들의 뒤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M2를 쥔 용감한 영웅 

코우마의 정찰대 - 2대의 퍼싱 탱크와 2대의 장갑차 - 는 후퇴를 거부하고 끝까지 남아 복한군의 도강을 막기로 했다. 포격이 잦아들자 다시 북한군이 도강을 시작했다. 코우마의 정찰대는 다시 사격을 개시했다. 북한군이 쏘아대는 총탄이 날아드는데도 코우마 중사는 탱크 위에서 고개를 내밀고 M2브라우닝으로 계속 북한군을 살륙했다. 북한군의 도강 시도도 잠시 멎었다. 시간은 이미 12시가 넘어있었지만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코우마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모든 신경을 동원하여 적의 움직임을 찾으려고 했다.


이때 미군 군복을 입은 부대가 다가왔다. 코우마는 자기들을 도우러 온 미군인 줄 알았는데 영어를 못하고 대답이 없는 게 수상했다. 알고 보니 미군 군복을 입은 북한군이었다. 북한군은 소총을 난사했고 이때 총알이 코우마의 어깨를 맞추었다. 게다가 코우마가 탄 것이 아닌 퍼싱 탱크가 파손되어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이때를 놓칠세라 북한군은 다시 도강을 시도했다. 코우마는 장갑차들에게 후퇴를 명령했다. 그리고 코우마가 기관총을 잡고 있는 그 퍼싱 탱크는 끝까지 북한군을 상대했다.



코우마 중사는 미친듯이 M2를 난사하고 재장전하고 또 난사했다. 워낙 자기들끼리 밀집되어 있어서 수류탄을 쓸 수 없었던 공산군은 탱크에 달라붙어서 코우마를 사살하려고 했다. 수많은 병사들이 탱크 한대를 둘러싸고 구멍이라는 구멍에 총을 밀어넣고 쏘는 광경은 광기 그 자체였다.


그러나 악에 받힌 퍼싱은 미친듯이 이동하면서 북한군을 깔아죽이기도 하고 상대의 표정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M2를 난사하면서 날뛰었다. 

워낙 무지막지하게 날뛰니까 북한군도 다시 후퇴했다. 코우마는 끝까지 후퇴하지 않고 강기슭에서 버티고 있었다. 지원군이 오지도 않는 상태에서 후퇴했다가는 다시 도강 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총알에는 한계가 있는 법. 3시간 이상 사격을 하다보니 M2의 총알이 다 떨어졌다. 만일 또 한번 북한군이 몰려오던 정말로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죽음을 각오한 코우마 중사는 권총과 수류탄을 점검했다.


미친 퍼싱은 아침 7시반까지 위치를 지켰다. 실로 다행히도 북한군은 몰려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코우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숴었다. 그리고 밤새 공병들이 건설한 아곡리의 새 방어선으로 후퇴했다.


코우마의 퍼싱이 물러나자 다시 북한군이 공격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전열을 가다듬은 미군 부대가 맞상대를 했다. 그런데 총 소리를 듣자 부상을 입은 상태였던 코우마는 다시 탱크에 올라타 M2를 쥐고 출동하려고 했다. 치료를 받으라는 상관의 명령을 받고서야 그는 탱크에서 내려와 의무실로 향했다. 밤 11시에서 아침 7시반까지 그가 사살한 북한군은 250명에 달했다. 


메달 오브 아너

코우마 중사는 치료를 받고 불과 3일만에 다시 낙동강 전선으로 복귀했다. 그는 중사에서 상사로 특진했다. 미군에서는 본래 그에게 수훈십자훈장(Distinguished Service Cross)을 수여할 예정이었으나 코우마의 용맹을 높이 기려 미국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하기로 했다. 


코우마 상사는 한국에서 계속 싸우기를 원했으나 미군은 아곡리의 용맹한 전영우를 '훈장 수여식에 참여하라'는 명목으로 미국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는 같은 제2보병사단의 전우들인 칼 더드(Carl Dodd), 존 핏먼(John Pittman)과 함께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명예훈장을 수여받았다. 코우마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요청했지만 펜타곤은 '자네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며 그를 한국에 보내지 않고 탱크병 육성 교관으로 임명했다. 코우마는 두번 다시 한국에 되돌아가지 못했다. 대신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교관으로 활동하며 군에 남았다. 



아곡리의 영웅 아네스트 코우마(맨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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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마는 1971년 군에서 퇴역하였다. 무려 31년을 군에서 보냈다. 은퇴 후에는 켄터키주의 농장으로 돌아가 조용한 전원생활을 즐겼다. 그는 1993년, 자신의 농장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퇴역 후,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었다. 그가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나라 한국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보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149537933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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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생기출문제 19-06-25 02:47
 
훗~
겨울 19-06-25 08:44
 
어니스트 코우마 중사는
북한군의 압도적 병력이 낙동강을 건너오자
보병들의 2선 후퇴 시간을 벌기 위해
홀로 남는다.
겨울 19-06-25 08:45
 
영화 퓨리에선  죽은 것으로 나왔지만 사실은
이때 코우마 중사는 부상은 입었지만 생존하여
미국 최고의 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는다.
겨울 19-06-25 08:49
 
북한군과 미군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그의 임무는 북한군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정찰대 지휘관이었다.
하얀민들레 19-06-25 15:28
 
칠곡군 왜관읍 아곡리, 이곳은 한국전쟁의 용자 어네스트 코우마 중사(Ernest Kouma)가 혼자서 괴뢰군 250명을 사살한 전설적인 용맹을 떨친 곳이기도 하다.
하얀민들레 19-06-25 15:31
 
코우마는 자기들을 도우러 온 미군인 줄 알았는데 영어를 못하고 대답이 없는 게 수상했다. 알고 보니 미군 군복을 입은 북한군이었다.
하얀민들레 19-06-25 15:32
 
코우마는 이대로 전원 후퇴하다가는 북한군에게 엄청난 인명 손실을 입게 될 것이고 최악의 경우, 북한군이 아곡리를 점령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코우마는 정찰대원들에게 자기들이 끝까지 전우들의 뒤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하얀민들레 19-06-25 15:33
 
코우마 중사는 치료를 받고 불과 3일만에 다시 낙동강 전선으로 복귀했다. 그는 중사에서 상사로 특진했다. 미군에서는 본래 그에게 수훈십자훈장(Distinguished Service Cross)을 수여할 예정이었으나 코우마의 용맹을 높이 기려 미국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하기로 했다.
하얀민들레 19-06-25 15:34
 
무려 31년을 군에서 보냈다. 은퇴 후에는 켄터키주의 농장으로 돌아가 조용한 전원생활을 즐겼다. 그는 1993년, 자신의 농장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퇴역 후,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었다. 그가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나라 한국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보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산백초 19-06-25 17:05
 
1950년 8월31일 대구 북방 왜관 방면에 배치된
미 72기갑여단 소속 전차장 어니스트 코우마 중사.
산백초 19-06-25 17:06
 
칠곡군 왜관읍 아곡리, 이곳은 한국전쟁의 용자 어네스트 코우마 중사(Ernest Kouma)가
혼자서 괴뢰군 250명을 사살한 전설적인 용맹을 떨친 곳이기도 하다.
산백초 19-06-25 17:16
 
미군에서는 본래 그에게 수훈십자훈장(Distinguished Service Cross)을 수여할 예정이었으나
코우마의 용맹을 높이 기려 미국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하기로 했다.
도도한너구리 19-06-25 17:52
 
낙동강 방어선으로 유엔군이 몰려있는 상황. 1950년 8월31일 대구 북방 왜관 방면에 배치된  미 72기갑여단 소속 전차장 어니스트 코우마 중사.
도도한너구리 19-06-25 17:54
 
코우마 중사도 직접 M2브라우닝 기관총을 잡고 새까맣게 몰려오는 북한군을 향해 미친듯이 쏴댔다. 낙동강변의 미군도 다시 응사를 시작했다.
도도한너구리 19-06-25 17:54
 
코우마 상사는 한국에서 계속 싸우기를 원했으나 미군은 아곡리의 용맹한 전영우를 '훈장 수여식에 참여하라'는 명목으로 미국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는 같은 제2보병사단의 전우들인 칼 더드(Carl Dodd), 존 핏먼(John Pittman)과 함께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명예훈장을 수여받았다.
빨간벽돌 19-06-25 17:55
 
영화 퓨리에선  죽은 것으로 나왔지만 사실은 이때 코우마 중사는 부상은 입었지만 생존하여
 미국 최고의 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는다.
빨간벽돌 19-06-25 17:56
 
칠곡군 왜관읍 아곡리, 이곳은 한국전쟁의 용자 어네스트 코우마 중사(Ernest Kouma)가 혼자서 괴뢰군 250명을 사살한 전설적인 용맹을 떨친 곳이기도 하다.
도도한너구리 19-06-25 17:57
 
코우마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요청했지만 펜타곤은 '자네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며 그를 한국에 보내지 않고 탱크병 육성 교관으로 임명했다. 코우마는 두번 다시 한국에 되돌아가지 못했다. 대신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교관으로 활동하며 군에 남았다.
도도한너구리 19-06-25 17:57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었다. 그가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나라 한국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보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빨간벽돌 19-06-25 17:59
 
코우마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요청했지만 펜타곤은 '자네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며 그를 한국에 보내지 않고 탱크병 육성 교관으로 임명했다. 코우마는 두번 다시 한국에 되돌아가지 못했다. 대신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교관으로 활동하며 군에 남았다
빨간벽돌 19-06-25 17:59
 
코우마는 정찰대원들에게 자기들이 끝까지 전우들의 뒤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빨간벽돌 19-06-25 18:00
 
악에 받힌 퍼싱은 미친듯이 이동하면서 북한군을 깔아죽이기도 하고 상대의 표정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M2를 난사하면서 날뛰었다.

워낙 무지막지하게 날뛰니까 북한군도 다시 후퇴했다. 코우마는 끝까지 후퇴하지 않고 강기슭에서 버티고 있었다. 지원군이 오지도 않는 상태에서 후퇴했다가는 다시 도강 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빨간벽돌 19-06-25 18:01
 
코우마 중사 -  그의 임무는 북한군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정찰대 지휘관이었다.
도도한너구리 19-06-25 18:02
 
코우마는 다시 탱크에 올라타 M2를 쥐고 출동하려고 했다. 치료를 받으라는 상관의 명령을 받고서야 그는 탱크에서 내려와 의무실로 향했다. 밤 11시에서 아침 7시반까지 그가 사살한 북한군은 250명에 달했다.
늘배움 19-06-26 09:43
 
혈전을 치루다 북한군들이 전차 위로 기어 올라오자
전차 헤치를 열고 나와 기관총을 난사하고
포탑을 회전시켜 북한군들을 떨어뜨리며
영화 퓨리의 장면을 실제 연출 했다.
늘배움 19-06-26 09:44
 
독일군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았던 미군 제9기갑사단 소속으로 코우마는 혹독한 실전 경험을 쌓았다.
그 중에서도 코우마의 비범한 전투 능력은 독일군 최후의 공세인 벌지전투()에서 길러지게 된다.
늘배움 19-06-26 09:44
 
코우마 상사는 한국에서 계속 싸우기를 원했으나 미군은 아곡리의
용맹한 전영우를 '훈장 수여식에 참여하라'는 명목으로 미국으로 보냈다.
호반도시 19-06-29 01:47
 
영화 퓨리에선  죽은 것으로 나왔지만 사실은

이때 코우마 중사는 부상은 입었지만 생존하여

미국 최고의 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는다.
게리 19-07-06 15:41
 
어니스트 코우마 중사는

북한군의 압도적 병력이 낙동강을 건너오자

보병들의 2선 후퇴 시간을 벌기 위해

홀로 남는다.;;;
게리 19-07-06 15:44
 
코우마가 기관총을 잡고 있는 그 퍼싱 탱크는 끝까지 북한군을 상대했다.;;;
현포 19-07-07 22:51
 
밤 11시에서 아침 7시반까지 그가 사살한 북한군은 250명에 달했다.
현포 19-07-07 22:52
 
퇴역 후,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었다. 그가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나라
한국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보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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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26 BTS덕분에 한국어가 독일에도 울려 퍼지다-전하지 못한 진심(The Truth Untold)을 부른 에블린!! (6) 슐러거매니아 06-12
9625 3.1운동 100주년 기념 매헌 윤봉길 - 농촌계몽운동가 (19) 곰소젓갈 06-10
9624 달콤한 덫 * 강상구의《내 나이 마흔 이솝우화에서 길을 찾다》 (18) 사오리 06-10
9623 미중 무역전쟁 전망, 중국 붕괴 이유 (20) 현포 06-07
9622 카이론 스키너씨, 문명에 먹칠하는 일 이제 그만하시죠. (19) 현포 06-07
9621    밀알님들을 위한 fact check - 지혜를 가지고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13) 혁명가 06-10
9620 구글의 결정이 우려스러운 이유 (19) 블루베리농장 06-06
9619 좌선 강의 - 1> 선의 개요. 2> 선의 중요성 (28) 호반도시 06-06
9618 War And Peace -철딱서니 총각 지도자 말을 믿느니 ...후후훗 (20) 공시생기출문제 06-03
9617 어른들도 맞히기 힘든 초등학교 1학년 한글 맞춤법 퀴즈 10문제 한번 풀어보세요 (6) 바람과구름 06-01
9616 치매의 원인은 수면부족이다. (15) 바람과구름 06-01
9615 학문을 하려면 악습(惡習)부터 고쳐야/ 자포자기만 안하면 반드시 재기한다/“‘다산’은 안 되고 ‘정약용’은 된다”를 읽고 (22) 선유도 05-29
9614 농사꾼에게 청주와 이밥을 못 먹게 한단 말을 듣고 (18) 루나 05-29
9613 Andreas Martin - Mehr als Sehnsucht (11) 슐러거매니아 05-24
9612 광대 집안 출신이 아닌 양반 집안 출신의 광대 (17) 흰두루미 05-20
9611 개벽에 대한 우리들의 관점을 어떻게 정립해야 할까? 2 (24) 현포 05-17
9610 개벽에 대한 우리들의 관점을 어떻게 정립해야 할까? 1 (29) 현포 05-17
9609 가짜 연금술사 (19) 블루베리농장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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