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과 편견>
안경을 새로 했다. 돋보기다. 언제부턴가 가까운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서 쓰기 시작했는데, 이제 노안이 더 진행된 모양이다. 도수를 조금 올렸다. 이제 책을 좀 더 오래 볼 수 있게 되었다.
안경이 이 처럼 보이지 않는 글씨와 사물을 반듯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물건이지만, 사물의 인식이라는 측면에서는 <편견>이라는 대명사로 쓰인다.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그 색대로 보인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안경을 벗으라는 것은 편견을 버리라는 뜻으로 통한다.
1년 전 어느 신문에서 읽은 기사 한편은 대단히 나의 흥미를 자극했다. 편견을 안경에 빗댄 재미있는 글이었는데, 미술을 감상하는 눈에도 역사적인 편견이 있었다는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있다. 미술사도 그렇다. 처음 미술관에 다닐 땐 잘 몰랐다. 런던, 파리, 피렌체 등 주요 미술관 소장품의 열에 아홉이 남성 화가 작품인 점, 여성 누드화가 셀 수 없이 많은 점이 그냥 자연스러운 건 줄 알았다. 하얀 피부, 풍만한 몸매, 유혹하는 자태를 보며 '저런 게 아름다움이구나' 감탄했다. 비루한 내 몸뚱이를 부끄러이 여겼을 뿐 '보는 남자—전시되는 여자' 구도를 기이하게 여기지 않았다. 내 눈에 어떤 '안경'이 씌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아름답지 않은지를 우리는 배운다는 의식 없이 배운다. 인류 역사 대대로 화가에게 그림을 주문하고, 평가하고, 수집할 힘과 돈을 가진 건 권력층 남성이었다. 그들 구미에 맞는 작품은 성당이나 박물관 등에 전시돼 권위가 더해졌고, 수백 년간 아름다움의 정론이 됐다. /처음으로 이 '안경'을 벗겨준 예술가는 미국 화가 실비아 슬레이다. 그녀는 사람들이 누구나 알 법한 유명 누드화를 골라 여성 모델이 있던 자리에 남성 모델을 배치했다. 명화 속 여성들이 보여주는 익숙한 포즈를 남성 모델이 취한다. 체모 하나 없이 매끈하게 편집된 몸이 아닌 현실 그대로의 몸이다. 유혹하던 여성의 자리에 거뭇한 남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실비아 슬레이 작품은 낯설다. 역으로 질문이 성립한다. 그동안 무엇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슬레이의 그림이 불편할까.(조선일보, 일사일언-여자누두가 많은 이유, 최혜진>>
도전에도 이런 <안경>이 등장한다. 상제님께서 <천자부해상도수>를 보시면서 안경을 번개 치는 곳으로 던져버리라 하시는 장면이다.
상제님이 던져 버리신 이 안경은 어떤 의미의 안경일까? 글자나 사물을 바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안경일까?
상제님께서는 사람 생활에 유리한 물건을 다 쓸 수 있도록 허용하셨다. 과학문명이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가 있었지만, 인간생활을 편리하게 함으로 걷어버리지 않고 그대로 두셨다는 것은 도전에 기록된 주지의 사실이다.
상제님께서 던져버리신 이 안경은 인류역사의 편견이다. 남성중심의 세계관과 하늘에는 상제가 있고 땅에는 꼭 황제가 있어야한다는 인류의 지독한 편견 즉 색안경을 벗겨내어 저 일렁이는 바다의 파도 속으로 수장시킨 것이다.
상제님께서 그 색안경을 벗겨내신 후 보라! 지구촌은 급격히 민중의 시대로 개편되었다. 또한 남녀동권의 세상이 되었다. 이것이 이 세상 현실이다. 그러므로 천자문화에로의 복고를 꿈꾸는 곳에는 이제 지구촌 민중들은 호응하지 않는다.
세상은 이처럼 다 변했는데 오직 상제님을 신앙하는 사람들만 아직도 천자노래를 부르고 있다. 특히 서나동! 이런 곳에 천자문화의 색안경을 벗은 성성히 깨어난 민중이 모이겠는가? 어불성설이다.
민중의 호응을 얻으려면 어찌 할 것인가? 상제님 도를 세상에 널리 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본적이어야 하고 현대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천자적이 아니라 만인적이어야 한다. 이것이 혁명이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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