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 제도의 탄생 조짐
유럽에서는 처음에 시민citizen,burgher,bourgeos이라는 단어는 단지 도
시 거주자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점차 부르주아 계급이나 국가,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우리말에서도
시민市民은 원래 도시 거주자를 일컫지만 때로는 자본주의와 함
께 성장한 부르주아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한 나라의
주권을 가진 근대적 주체' 또는 '근대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의
미로 널리 사용된다.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이 같은 의미를 나타
낼 때에는 공민公民이라는 말을 대신 사용한다. 이는 시민의 의미
가 역사적 맥락에서 변화하고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서 잠시 공민의 뜻을 알아보자.
공민이란.
정치 공동체(국가)의 일원으로서 그 나라 헌법에 근거
해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자유민으로 시민과 동
의어로 쓰인다. 특히 중국이나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
에서 도시 거주자를 의미하는 시민과 구별해서 공적
의무와 권리의 주체라는 점을 강조할 때 주로 쓰인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시민의 지위는 정치 공동체인 폴리스
나 레스 푸블리카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근대 시민권citizen right,
citizenship은 도시city에서 생겨난 말이다. 이것은 근대 시민권이 자
본주의 경제의 중심이 되었던 근대 도시의 발전 및 자본가 계급
의 등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근대 시민권은 위계
적 사회 구조가 붕괴하고 수평적인 인간관계가 출현하면서 활동
주의와 보편주의가 뿌리내린 것을 전제로 발전했는데, 이런 새
로운 경향은 시장이 발달하고 교환 관계가 확대되어 사람들에
대한 특수주의 규정이 약화되면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
었다.
자본주의와 함께 성장한 부유하고 교양 있는 도시민 부르주아는
이전에는 봉건 계급 질서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됐던, 신 앞에 모
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아브라함의 보편주의 사상과 신을 중심으
로 사람들을 결속시킨 보편성 및 계약에 근거한 근대 인권 사상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근대 인권 사상의 정점에는 홉스, 로크,
루소 등이 있었다. 비록 이 사상은 처음에 책과 몇몇 사람들의 머
릿속에서만 존재했지만 미국의 독립 전쟁과 프랑스 혁명을 통해 현
실에서 시민권의 형태로 나타났다. 특히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시민들의 지위와 특성으로 시민권이 고려되었을 뿐이지만 근대 사회
에서 시민권은 자유와 권리의 문제, 그리고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계약의 내용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인권 사상의 발전에 힘입
어 나타난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