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修己)․치인(治人)은 다산경학의 구성내용이면서 동시에 다산의 경학과 경세론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과제이다. 다산 자신이 육경사서(六經四書)의 경학과 일표이서(一表二書)의 경세론으로 본(本)․말(末)을 갖추었다고 하였듯이 경학과 경세론은 다산의 학문체계에서 본(本)․말(末)의 유기적 연관 구조를 이루고 있다.
다산의 경학적 이론체계는 그 자신의 사회개혁사상과 연결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특히 <주례>에 깊은 관심을 지녀, 삼대(三代)의 다스림을 진정 회복하고자 한다면, 이 <주례>가 아니고는 착수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하여, 비록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주례>를 주석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다산은 '예경'을 비롯한 경학연구에서 <주례>를 증거로 폭넓게 인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세론의 구상에서도 <주례>의 기본구조를 이상적 제도의 모형으로 수용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곧 <경세유표(經世遺表)>의 개혁의식도 사백 년 기강해이(紀綱解弛), 서사부진(庶事不振)의 정체적인 국가를 주례적(周禮的) 봉건제(封建制)에 의한 규격화-간소화하자는 것이라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주례>가 그의 경세론적 저술의 기초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다산의 <대학강의>와 그의 경세론 저술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목민심서>가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이 지적되기도 한다.
<논어>(爲政)에서 덕치(德治)를 북극성이 그 자리에 있는데 모든 별이 받드는 것(北辰, 居其所而衆星共之)으로 비유하였는데, 이에 대해 주자는 덕으로 다스리는 것은 무위(無爲)하지만 천하가 귀속한다.(爲政以德, 則無爲而天下歸之)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다산은 청정무위(淸淨無爲)란 한유(漢儒)의 황로학(黃老學)이나 위진시대의 청담(淸談)이요 성인(聖人)의 가르침이 아니라 하고, 무위이치(無爲而治)란 모두 이단사설(異端邪說)이라 규정한다. 따라서 그는 일함이 없으면 정치도 없다.(無爲則無政)고 선언하며,임금이 바르게 자리하여 덕(德)으로써 다스리면 모든 관리와 백성이 따르게 되어 임금과 화합하지 않음이 없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것은 정치를 치자(治者)가 자신을 바르게 하고 덕으로 이끌어가서 전체가 따르게 하는 적극적 실천행위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분발하여 사업을 일으키고 천하의 사람을 동원하여 근면하게 실천하였던 정치의 모범으로 요(堯)․순(舜)을 들고 있으며, 이러한 입장은 <경세유표>(經世遺表)의 서문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이처럼 다산의 경학은 정치를 무위(無爲)를 내세워 안일과 부패에 빠진 데서부터 근면한 사업을 수행하고 실용에 맞게 개혁을 추구하는 과제로 전환시키기 위한 경세론적 방법을 재해석해내고 있는 것이다.
다산은 공인(工人)에게 규구(規矩)나 악사(樂師)에게 율려(律呂)가 법도를 이루는 것처럼 인정(仁政)의 법도는 정전법(井田法)에 있음을 제시한다. 따라서 그는 맹자의 일생동안 경세제민(經世濟民)함이 토지의 경계(經界)에 있었다 하고, 방원(方圓)을 그릴 때 규구(規矩)에 의존하듯이 왕정(王政)은 정전법(井田法)에 의존하는 것이라 하여, 전정(田政)이 바르게 된 다음에라야 예(禮)․악(樂)과 병(兵)․형(刑)의 모든 일이 조리를 갖추게 되는 것이라 한다.
여기서 그는 당시에 정전법(井田法)을 시행할 수 없지만 균전법(均田法)은 임금이 결단을 내리면 행할 수 있을 것이라 제시한다. 이처럼 다산의 경세론은 그의 경학 속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으며 경학에서 확장되어 나오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다산은 <서경>에서 전(典)은 법도를 내려준 것(垂法)이요, 모(謨)는 계책을 돕는 것(贊猷)이요, 고(誥)는 백성을 이끌어주는 것(牖民)으로서, 이들이 모두 경계하는 말씀으로 인심을 맑게 하고 세상의 다스림을 편안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하며, <시경>의 경우도 찬미하는 송(頌)은 <서경>의 전(典)에 견주어질 수 있고, 은미한 말로 비유하는 풍(風)과 바른 말인 아(雅)는 사람의 착한 마음을 감동하여 분발하게 하고 사람의 나태한 의지를 징계하는 역할을 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만큼 <시경>과 <서경>이 지닌 치도(治道)로서 교화(敎化)기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