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전의 시민권
서구에서는 5세기 중반에 로마 제국이 붕괴한 이후 시민들이 참
여해서 운영하는 정치 공동체가 사라졌다. 따라서 시민권 제도
역시 12~13세기에 이탈리아에서 공화정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중세 시대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민의
지위를 확보하고 시민권을 행사하는 대신에 종교 활동을 통해
개인의 구원을 얻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Aurelius Augustinus는 <신국론>에서 사람들이 세속적 삶보다는 자아
성찰과 기도 같은 내적인 것으로 관심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그 시대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 결
과 교회가 정치 공동체를 대신했고 시민권 제도와 시민권이라는
가치 또는 이상마저 현실에서 사라져 버렸다.
중세 말기에 시민권 제도는 피렌체나 베네치아 같은 몇몇 이
탈리아 도시 공화국에서만 나타났다. 이런 도시들은 고대 그리
스나 로마의 공화주의적 시민권 제도에서 영감을 얻어 이 시기
에 봉건 또는 전제 정치 공동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유, 권리,
참여를 중시하는 시민권 제도를 형성했다.
막스베버에 따르면 이 도시들은 근대적 시민권 제도가 등장하는
토대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베버는 이 도시들을 "성곽
과 시장의 융합"이라고 정의했는데, 이 같은 정의는 근대적 시민
권 제도가 등장한 조건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18세기와 19세기에 근대 국가의 시민권 제도가 그랬듯이 화폐
경제가 성장하고 산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12세기 중세 도시에
서는 시민권 제도가 발전했다. 상업과 산업이 발전하여 과세를
기반으로 시민권을 보장하는 재정을 마련한 도시들이 시민권 공
동체를 건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도시들은 아주 드문 경우였
고, 16~17세기까지 군주 중심의 계층적인 봉건 체제가 대부분
이었다. 또한 도시의 시민권 제도는 특수하고 차등적인 것이었
다. 대부분이 시민권에서 배제되었고,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의
권리도 재산 소유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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