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식 14-07-03 19:12
전오식(前五識)이 우리의 오관을 통하여 객관계의 대상을 인식하는 각각 독립된 정신영역이라면 6식(六識)은 앞의 5식(五識)을 종합적으로 다시 확인하고 판단하게 하는 정신영역이다. 전5식(前五識)에 의해 순간적으로 포착된 대상계에 대한 인식은 6식(六識)에 의해 더욱 명료해지고 분명해 지는 것이다. 6식(六識)을 유식학에서 요별경계식이라고 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요별경계식인 6식(六識)에는 무엇이 따라 붙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헤아리고 탐냄·성냄·어리석음을 지으면서 온갖 번뇌를 야기시키는 마음인 것이다.
이것을 제7말나식(末那識)이라고 하는데 말나는 마나스(manas)의 음역으로 사량식이라고 번역하며 항상 그릇되게 인식한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중생들이 자기와 남을 나누어 놓고 사랑과 미움을 일으키며 갖가지로 업을 짓는 것은 모두 이 말나식인 사량심에 의해서이다. 번뇌식으로써의 말나식(末那識)은 다시 어떤 마음을 모체로 하여 일어난다는데 특징이 있다.제7말나식이 앞의 5식과 6식을 되받아서 번뇌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 근거는 좀더 근원적인 마음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제7식의 근거가 되는 식을 제8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한다.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알라야 비야나(alaya-vijnana)의 음역으로 장식(藏識), 무몰식(無沒識)이라고 번역하며 일체를 포함하는 마음, 없어지지 않고 모든 것을 유지시키는 마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여러가지 심식설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이면서 광대한 뜻을 가진 것이 이 아뢰야식이다.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앞의 말나식(末那識)에 의해서 받아들여진 일체의 세계를 그대로 저장하고 있는 과보의 마음임과 동시에 그 저장된 세계를 다시 말나식을 통해 나가게 하는 종자의 마음이다. 유식론에 의하면 자신과 산하대지는 물론 인식되는 일체 세계는 아뢰야식(阿賴耶識)에서 나타난 그림자이다. 그뿐아니다. 아뢰야식(阿賴耶識)은 모든 생명의 원동력으로 윤회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전생(前生) 업(業)의 주체이고 금생(今生)과 내생(來生) 업(業)의 종자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은 7식(七識)과 함께 강력한 애착력이 있어 삶과 죽음을 되풀이 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곳에는 전생의 크고 작은 번뇌들이 가득히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연이 도래하면 제7 말나식(末那識)을 다시 충돌질하여 번뇌를 짓고 업(業)을 짓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유식론에 의하면 아뢰야식(阿賴耶識)은 7식(七識)에 의하여 오염되기는 하지만 그 참된 성품은 아주 참되고 청정하다는 것이다. 다만 중생들이 어리석어서 7식(七識)에 의해서 만들어진 집착의 요소를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요소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7식(七識) 말나식(末那識) 기준으로 앞의 6식과 뒤의 8식을 정화해야만 한다. 아뢰야식(阿賴耶識) 속에는 7식(七識)에 의해서 만들어진 중생의 크고 작은 갖가지 법이 들어 있을 뿐 아니라 오염되지 않고 변하지 않는 청정한 법도 들어있다. 이렇게 자신과 세계, 범부와 성현을 모두 갈무리하고 있는 이 아뢰야식(阿賴耶識)은 모든 것의 근원처이며 발생처이며 보관처로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볼때 중생이라고 하여도 마냥 중생은 아닌 것이 중생의 아뢰야식속에 있는 7식(七識)의 번뇌를 제거 하기만 하면 그대로 부처님과 같이 변화 될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비유로써 이야기한다면, 전오식(前五識)은 곡식을 나르는 다섯명의 일꾼에 해당되고 6식(六識)은 곡식 창고를 지키는 문지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7식(七識)은 그 창고를 소유하고 있는 곡식의 주인에 해당되고 8식(八識)은 창고와 곡식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창고와 곡식의 주인이다. 곡식의 주인은 더러운 욕심으로 쌓아둔 창고의 곡식을 영원히 자기 것인양 착각하고 있다. 본래 창고 속에 들어 있는 곡식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 곡식은 모든 배고픈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이다. 어서어서 창고 주인이 죽기 전에 회심하고 그 곡식이 내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심고 거두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 것은 창고 주인이 창고 속의 곡식들이 내것이 아니라는 자각(自覺)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중생들의 근본인 제8아뢰야식(阿賴耶識) 속의 온갖 법들도 이와 같아서 제7식(七識)의 분별의식이 나, 내것, 내소유라는 집착을 끊어 줄 때 그 아뢰야식(阿賴耶識)은 비로소 공덕과 지혜의 창고로 변화될 것이다.
전오식(前五識)이 우리의 오관을 통하여 객관계의 대상을 인식하는 각각 독립된 정신영역이라면 6식(六識)은 앞의 5식(五識)을 종합적으로 다시 확인하고 판단하게 하는 정신영역이다. 전5식(前五識)에 의해 순간적으로 포착된 대상계에 대한 인식은 6식(六識)에 의해 더욱 명료해지고 분명해 지는 것이다. 6식(六識)을 유식학에서 요별경계식이라고 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요별경계식인 6식(六識)에는 무엇이 따라 붙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헤아리고 탐냄·성냄·어리석음을 지으면서 온갖 번뇌를 야기시키는 마음인 것이다.
이것을 제7말나식(末那識)이라고 하는데 말나는 마나스(manas)의 음역으로 사량식이라고 번역하며 항상 그릇되게 인식한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중생들이 자기와 남을 나누어 놓고 사랑과 미움을 일으키며 갖가지로 업을 짓는 것은 모두 이 말나식인 사량심에 의해서이다. 번뇌식으로써의 말나식(末那識)은 다시 어떤 마음을 모체로 하여 일어난다는데 특징이 있다.제7말나식이 앞의 5식과 6식을 되받아서 번뇌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 근거는 좀더 근원적인 마음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제7식의 근거가 되는 식을 제8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한다.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알라야 비야나(alaya-vijnana)의 음역으로 장식(藏識), 무몰식(無沒識)이라고 번역하며 일체를 포함하는 마음, 없어지지 않고 모든 것을 유지시키는 마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여러가지 심식설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이면서 광대한 뜻을 가진 것이 이 아뢰야식이다.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앞의 말나식(末那識)에 의해서 받아들여진 일체의 세계를 그대로 저장하고 있는 과보의 마음임과 동시에 그 저장된 세계를 다시 말나식을 통해 나가게 하는 종자의 마음이다. 유식론에 의하면 자신과 산하대지는 물론 인식되는 일체 세계는 아뢰야식(阿賴耶識)에서 나타난 그림자이다. 그뿐아니다. 아뢰야식(阿賴耶識)은 모든 생명의 원동력으로 윤회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전생(前生) 업(業)의 주체이고 금생(今生)과 내생(來生) 업(業)의 종자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은 7식(七識)과 함께 강력한 애착력이 있어 삶과 죽음을 되풀이 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곳에는 전생의 크고 작은 번뇌들이 가득히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연이 도래하면 제7 말나식(末那識)을 다시 충돌질하여 번뇌를 짓고 업(業)을 짓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유식론에 의하면 아뢰야식(阿賴耶識)은 7식(七識)에 의하여 오염되기는 하지만 그 참된 성품은 아주 참되고 청정하다는 것이다. 다만 중생들이 어리석어서 7식(七識)에 의해서 만들어진 집착의 요소를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요소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7식(七識) 말나식(末那識) 기준으로 앞의 6식과 뒤의 8식을 정화해야만 한다. 아뢰야식(阿賴耶識) 속에는 7식(七識)에 의해서 만들어진 중생의 크고 작은 갖가지 법이 들어 있을 뿐 아니라 오염되지 않고 변하지 않는 청정한 법도 들어있다. 이렇게 자신과 세계, 범부와 성현을 모두 갈무리하고 있는 이 아뢰야식(阿賴耶識)은 모든 것의 근원처이며 발생처이며 보관처로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볼때 중생이라고 하여도 마냥 중생은 아닌 것이 중생의 아뢰야식속에 있는 7식(七識)의 번뇌를 제거 하기만 하면 그대로 부처님과 같이 변화 될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비유로써 이야기한다면, 전오식(前五識)은 곡식을 나르는 다섯명의 일꾼에 해당되고 6식(六識)은 곡식 창고를 지키는 문지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7식(七識)은 그 창고를 소유하고 있는 곡식의 주인에 해당되고 8식(八識)은 창고와 곡식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창고와 곡식의 주인이다. 곡식의 주인은 더러운 욕심으로 쌓아둔 창고의 곡식을 영원히 자기 것인양 착각하고 있다. 본래 창고 속에 들어 있는 곡식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 곡식은 모든 배고픈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이다. 어서어서 창고 주인이 죽기 전에 회심하고 그 곡식이 내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심고 거두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 것은 창고 주인이 창고 속의 곡식들이 내것이 아니라는 자각(自覺)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중생들의 근본인 제8아뢰야식(阿賴耶識) 속의 온갖 법들도 이와 같아서 제7식(七識)의 분별의식이 나, 내것, 내소유라는 집착을 끊어 줄 때 그 아뢰야식(阿賴耶識)은 비로소 공덕과 지혜의 창고로 변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