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第六章) 자금(自禁)의 자재률(自在律) 파기
白巢氏之諸人聞而大驚乃禁止守察此又破不禁自禁之自在律者也此時食實之習禁祭之法始麻姑閉門撤冪已矣
백소씨지제인문이대경내금지수찰차우파부금자금지자재율자야차시식실지습금제지법시마고폐문철멱이의
食實成慣者皆生齒唾如蛇毒 此强呑他生故也 設禁守察者皆眼明視似梟目 此私瞧公律故也
식실성관자개생치타여사독 차강탄타생고야 설금수찰자개안명시사효목 차사초공율고야
以故諸人之血肉濁化心氣酷變遂失凡天之性耳之烏金化作兎沙終爲天聲足重地固步不能跳胎精不純多生獸相
이고제인지혈육탁화심기혹변수실범천지성이지오금화작토사종위천성족중지고보부능도태정부순다생수상
命期早熟其終不能遷化而腐 此生命之數嗟(좌변에 口대신에 실사변, 얽힐 차)惑痳縮故也
명기조숙기종부능천화이부 차생명지수차 혹림축고야
解譯 :
백소씨(白巢氏)의 사람들이 이를 알고(聞) 크게 놀라 곧 수찰하여 금지하였나니, 이는 금하지 않아도 스스로 금하는 자금(自禁)의 자재률을 파기한 것이었느니라. 이때에 열매를 먹는 습관과 수찰을 금지하는 법이 시작되고 마고가 성문을 닫고 장막(冪)을 거두어버렸느니라.
열매를 먹는 것이 습성에 배인 사람들은 모두 이(齒)가 생기고 침(唾)은 뱀의 독(毒)과 같아졌으니, 이는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어 버린 때문이었느니라. 수찰을 금지한 사람들은 모두 눈이 밝아져서 흡사 올빼미가 보는 것과 같이 보니, 이는 사사로이 공률(公律)을 몰래 훔쳐본 까닭이었느니라.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피와 살이 탁(濁)해지고 심기(心氣)가 혹독하여져서 무릇 천성을 잃게 되었느니라. 귀에 있는 오금(烏金)이 토사(兎沙)로 변하니 마침내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느니라.
발이 무거워지고 땅이 굳어서 걸을 수 있으되 뛸 수 없게 되고, 만물을 생성하는 원정(胎精)이 불순하여져서 많이 낳으나 짐승의 상(相)이요, 수명(命期)이 조숙(早熟)하여지매 그 끝(죽음)이 선화(遷化)하지 못하고 부패하게 되니, 이는 생명의 수(數)가 얽혀 미혹(迷惑)에 얽히고 단축되었기 때문이었느니라.
* 해설
백소씨족이 이 사실을 알고 자재율이라는 ‘스스로 하지 않는 행위’로 인지되어 있고 설정되어 있는 규율을 인위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에 대한 규율을 정하는 사회로 변화한다. 인간이 인간 스스로가 정하는 규율을 따르는, 신이 내린 신의 도(道)가 아닌 인간 스스로가 정한 법을 따르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마고가 분노한 것도 지소가 잘못한 것도 아닌 어쩔 수 없는 우주적 존재의 필연성이란 운명이 가져온 도도한 역사의 흐름일 뿐이다.
‘아무리 천지가 넒고 크도 나의 솟구치는 힘은 천지를 능가하는데, 이것이 도의 힘이냐 포도의 힘이냐’라는 지소씨의 노래는 지유가 아닌 오미를 맛본 최초의 인간의 노래이자 새로운 시대를 향한 한 모험가의 외침이다. 지유 외엔 먹을 것이 없고 먹는 줄을 모르는데 갑자기 포도가 등장한, 그것도 공교롭게 지소씨의 집 난간에 포도넝쿨이 타고 올라가서 포도가 그 때 먹음직스럽게 익어있어서 지소씨가 따 먹게 되었느냐는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설정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실달대성이라는 마고의 보살핌이라는 장막 안에서 생명의 연회만을 즐기는 것이 아닌 인간이 인간 스스로의 무대로 나서는 결정적 계기의 한 획이 되는 사건을 묘사한 것일 따름이다.
그래서 부도지는 오미의 독이 인간의 본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경고를 하면서 오미의 조화를 찾아서 생명의 본성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메시지를 명확히 던져주고 있다. 겉으로는 사람이지만 짐승이나 다를 바 없는 인간의 군상들과 하늘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명확한 과제인 ‘구도’적 존재로의 길을 갈 것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부도지가 우리에게 엄청 고귀한 보물 같은 존재라고 하더라도 창세기의 신화학적 해석에도 못 미치는 어린이 동화 같은 해석에만 매여 있어서는 부도지의 가치는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신화가 되었든 종교가 되었든 무슨 경전이든 우리는 인문학적 시각을 더 넓혀서 접근하는 관점을 견지하여야 하며, 글자 그대로의 틀에 박힌 해석학적 규율에 갇혀 있을 때 인간정신은 황폐해지고 부패해지고 구속적 존재로서 타율적 감각만이 지배하는 짐승의 지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는 시천주(侍天主)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이 직접 한울님을 모시고 한울님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데 동물적 감감의 수준으로 지능이 맞춰져 있다면 그게 어디 한울님 세상이겠는가? 한울님만큼 자율적이고 창조적이고 한울님을 바로 알 수 있는 인문적 소양을 계발해서 한울님 세상의 주체가 되어야지. 양치기 소년의 우화처럼 ‘늑대가 왔어요’라고 외치거나 인간이 만든 기계를 시험 테스트하듯이 한울님은 인간을 겁주거나 시험하지 않는다. 천지 법도는 연습 삼아서 또는 시험 삼아서 만물을 다스리지 않는다. 천지에는 시험버전이란 것이 없다. 이 번 우주는 한울님이 시험 삼아 연습 삼아 만든 것이라는 가정은 한울님 법에는 없다는 것이다. 매순간 시시각각이 지극한 정성으로 돌아가는 치열한 현실이다.
* 천지의 법은 때가 되면 나타나 보이고 때가 지나면 철저히 흔적을 지워 없앤다. 마고성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지상에서 마고성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이유인 것이며, 단지 추정하고 유추할 뿐이고, 어떤 유적으로서의 근거는 찾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