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심요결
*<영보국정정편(靈寶局靜定篇)>은 삼덕교(三德敎)의 수련교서로 삼덕교의 <생화정경(生化正經)>부편에 실려 있는데,이 책은 그 母本이 송말원초의 정소남(1241-1318년)의 태극제련내법을 발췌하여 구성된 것이며, 남송의 靈寶파 수련법이 구한말에 유입되었다. 이 옥포(李玉圃, 부안사람으로 선천 음양학술에 정통하였다고 한다)는 鍊度에 관련된 부문을 대폭 축약하고 중용의 지성(至誠)을 서두에 내세워(夫定靜之法) 솔성명덕(率性明德)하는 새로운 수련법문으로 개편하여 영보국정정편으로 명명하였으며 이 옥포(李玉圃)는 그의 문하에 이 치복과 김 형국이 있었는데 두 제자에게 당부하였다. "그대들이 사사(事師)할 선생은 장차 출세할 강성인(姜聖人)이요 나는 그대들의 지로자(指路者)에 불과하다"하고, 옥포는 두 사람에게 증산을 찾아가 배우라고 하고 그가 지은 책을 주며 정성껏 수련하라고 일렀다(생화정경2쪽).
옥포는 증산이 31세때 대원사에서 도통을 하던 1901년 무렵에 생존해 있었다.1914년 이치복과 김형국은 보성 득량 사람 허 욱을 지도하였다. 허 욱이 수련한지 7일 만에 통령하자 김형국이 찬탄하여 말하기를 "우리들 3 년 공부를 그대는 7일 만에 닦아서 득도하니 도 공부를 하는데 조만(早晩)이 없도다"하였다. 영보국정정편이 삼덕교의 수련교서가 된 것은 교주 허 욱이 그로 인해 통령했기 때문이다.이 옥포가 재편성한 "영보국정정편"이 증산께 전하여졌을 것으로 예측된다. 삼덕교는 나중에 단군 정신선양회(檀君精神宣揚會)로 명칭이 바뀌었다
정심요결(定心要訣): 정산(鼎山:송 규)가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 중빈을 만나기 전 18세(1917년)때에 정읍 덕천면 신월리 두승산 시루봉 아래의 손바래기 마을에 있는 증산(甑山) 상제님의 본가에서 따님이신 강순임(당시16세경)으로부터 입수한 책이다. 정정요론(定靜要論:수심정경)은 비전(秘傳)의 선서(仙書)인 정심요결(定心要訣)을 해석한 책이다. 1927년 5월 발간된 <수양연구요론>에 상, 하로 나누어 수록된 1장과 2장이 정정요론(定靜要論:수심정경)이며 <수양연구요론>은 정정요론(定靜要論:수심정경)을 해석한 책으로 원불교 이 공주(李共株)의 후원으로 출간되었고, 이 책의 발간을 위해 소태산 박 중빈(1891-1943년)이 직접 상경하여 친감(親鑑)할 정도로 정성을 드렸다 한다.
“정정요론”의 저본은 정산(송규)의 외사촌인 훈산 이 춘풍이 순 한문으로 된 <정심요결>을 번역한 <정심요결번역>본이다. <정심요결(定心要訣)>은 <영보국정정편>과 <도설(道說)상 중 하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도설(道說)은 정통도장(正統道藏)의 내단수련서(內丹修練書) <정관경(定觀經)>,<상청정경(上淸定經)>,<통고경(通古經)>,<대통경(大通經)>등 여러 경서(經書)를 합편한 것이다.
正心要訣
정심요결은 원불교 정산(鼎山)종사께서 대종사를 만나기 전 18세(1917년) 때에 정읍 덕천면 신월리 두승산 시루봉 아래의 손바래기 마을에 있는 증산(甑山)의 본가(本家)에서 증산의 무남독녀 외딸인������강순임������(당시 16세경)으로부터 입수한 책이다. 그리고 원불교의 정정요론은 비전(秘傳)의 선서(仙書)인 정심요결(正心要訣)을 해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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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요결의 전래경위>
수심정경은 원래 영보국정정편→정심요결→정정요론→수심정경으로 해서 전해져왔다.
"원래 이 책은 증산 선생께서 집에 가지고 계시다가 외동따님인 강순임을 통하여 원불교 2대 종법사이신 정산 종법사님께 전달되었다. 증산 선생께서 따님에게 누가 찾아오면 주라고 비밀히 감춘 것을 딸 순임이가 정산종사에게 전달한 것이다.
이후 정산 종사는 대원사에 이 책을 가지고 들어가 여러 가지 책을 읽은 후 견성하게 되고 원불교를 크게 부흥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원불교에서는 이 책 이름을 수심정경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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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요결 입수과정에 관한 기사(원불교 신문)
송도군은 스승을 찾아 각처로 편력하였지만 모두 기대함만 같지 못하였다. 다만 손바래기에서 증산 유일의 혈손인 강순임으로부터 秘書(비서)를 입수한 것이 큰 소득이었다.
『정심요결』 入手
시루봉 손바래기에 있을 때 선돌댁과 강순임이 도군에 대한 敬愛(경애)가 대단하여, 선돌댁은 그를 「조카」라 불렀고 네 살 아래인 순임은 「오빠」라 불렀다.
집안이 매우 조용한 어느 날, 순임이 다가와 정답게 말을 걸었다.
『오빠, 내가 좋은 것 하나 일러 줄까』
『무슨 일인데. 이야기 해 봐라』
『옛날 선친께서 서재같이 쓰신 별실이 있는데 그리 가 보아요』 하고 별실로 인도하여, 묵은 종이로 땜질하듯 봉해놓은 천정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선친께서 저기에 책 한 권을 넣고 봉하시면서 뒷날 여기를 열고 찾아갈 사람이 있을 터이니 주인이 올 때까지는 입밖에 말을 내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하시었으니 오빠가 뜯어보면 좋겠소』(이상 정산종사의 시자로 있었던 범산님의 이야기).
일구월심 도 구하기에만 전념하는 때, 증산이 후일 어떤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책을 숨겨 두었다면 이는 필시 보통 비서가 아닐 것이라는 기대 속에, 도군은 순임의 등을 밟고 올라서서 천정을 뜯었다(이 부분은 항타원님 이야기임).
빛바랜 백지에 보통 정도 필체(붓글씨)의 순 한문책인데 표지에 「正心要訣」이라 제목하였다. 정심요결 필자는 확실치 않다. 책의 말미에 「道門小子玉圃는 敢發天師之秘하야 記述定靜一部하노니」(도문 소자 옥포는 삼가 천사의 비서를 발하야 정정 한 책을 지어 기록할 것이니)라고 한 구절로 미루어 「옥포」라는 호를 가진 도학자가 기술한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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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군, 증산의 무남독녀 강순임으로부터 비서 『정심요결』 입수하고 바로 대원사에 들어가
5종 仙書 번역하여 최초 교서 『수양연구요론』 간행,
정산종사 『수심정경』으로 수정 보완해
주인을 기다리던 서책을 입수한 송도군은 그 내용을 살펴보고 어찌나 황홀하고 즐거운지 그 기쁨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소중한 비서인지라 말이 아니 나야 하겠으므로 도군은 순임에게 단단히 당부하였다.
『내가 여기 뜯어 본 것을 사람들이 알아도 안 되고, 또 이 책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도 남이 알아서도 아니 되니 우리 이 일을 절대 발설하지 말자』
굳게 약속을 하고 품속에 간직하고 다니면서 혼자서 잠자기 전이나 일찍 잠에서 깨었을 적에 읽어보곤 하였다.
「영보국정정편」(정심요결)이 수록된 삼덕교의 『생화정경』 정심요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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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요결』의 出處와 流行
『정심요결』이란 서명은 1970년 9월, 정화사(사무장 이공전)에서 『원불교 교고총간』 4권-초기교서편을 발간할 때 『修心正經(수심정경)』의 底本(저본)임을 밝히게 되면서 비로소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학인들 사이에 『수심정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이를 수양교재로 혹은 연구 대상으로 삼는 일이 늘어났다.
〈원광대 중앙도서관 원불교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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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定靜大旨
정정요론(수심정경)에 대한 이해
정정요론(定靜要論)은 원기 12년 5월에 발간된 수양연구요론에 상,하로 나뉘어 1장과 2장으로 수록된 내용이다. 수양연구요론은 원기 12년 3월에 불법연구회 규약이라는 최초의 교서가 나온 지 두 달 만에 발간된 것으로 소태산(少太山) 술(述)로 발간된 교단 최초의 활자본 교서이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그 서문에������본서는 가장 간명히 수양의 본원을 알리기 위하여 정정요론을 말하고, 연구의 방편을 밝히기 위하여 삼강령 팔조목과 각 문목순서 등을 설명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수양연구요론은 이공주(李共株)종사의 후원으로 출간되었는데, 이 책의 발간을 위해 대종사께서 직접 상경하여 친감(親鑑)하실 정도로 정성을 드렸으며, 교단 최초로 소태산 대종사의 30대 중반 삭발한 흰색 두루마리 차림의 모습을 사진으로 싣는 등,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불법연구회 규약>과는 성격이 다른 실질적으로 최초의 교서이기 때문이다. 편집 겸 발행인 이경길(李瓊吉)은 이공주 종사의 호적명이다. 이름 가운데 경(瓊)은 옥, 또는 옥의 아름다운 빛깔이란 의미로, 법명의 구슬 주(珠) 자(字)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수양연구요론은 약 5년 동안 기본 교서역할을 하다가, 원기 17년(1932) 4월에 드디어 국한문 혼용체의 『보경 육대요령(寶經 六大要領)』이 발간되고, 한 달 뒤에 한글 전용 판이 나왔다.『보경 육대요령(寶經 六大要領)』이 발간 된지 2년 8개월 뒤인 원기 19년(1934) 12월에 이를 간추린『보경 삼대요령』이 발간되어, 두 교서는 대종사 열반 때까지 교단의 중추적인 교리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수양연구요론에 술(述)이라는 단어는������짓다������,������글로 표현하다������,������말하다������,������설명하다������,������해석하다������ 등의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경우처럼 술(述)을������지음������이라는 개념으로만 파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정정요론은 비전(秘傳)의 선서(仙書)인 정심요결(正心要訣)을 해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심요결은 정산(鼎山)종사께서 대종사를 만나기 전 18세(1917년) 때에 정읍 덕천면 신월리 두승산 시루봉 아래의 손바래기 마을에 있는 증산(甑山)의 본가(本家)에서 증산의 무남독녀 외딸인������강순임������(당시 16세경)으로부터 입수한 책이다.
원래의 책명은『영보국 정정편(靈寶局定靜篇)』으로, 나중에 정산이 봉래산에서 대종사께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며, 증산교파의 하나인 삼덕교(三德敎)의 수련교서이다.『영보국 정정편(靈寶局定靜篇)』은 삼덕교의『생화정경(生化正經)』 부편에 실려 있는데, 이 책은 증산에 의해 이옥포(李玉圃)에게 전해졌고, 다시 이치복과 김형국에게 전해져서 보성 득량의 허욱(許昱)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이옥포는 부안 사람으로 선천 음양학술에 정통하였다고 한다. 허욱은 이 책을 읽고 7일 만에 통령(通靈)하여 삼덕교를 창설했다. 삼덕교는 나중에 단군정신선양회(檀君情神宣揚會)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미루어 보면, 일설(一說)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서(秘書)를 증산이 딸에게 비밀히 전하면서,������이 책은 나중에 주인이 나타날 것이니, 잘 보관하였다가 그 사람이 나타나면 내어 주라,������고 하여, 딸 순임이가 이를 깊숙이 보관하였다가, 정산이 18세 무렵에 찾아와 머무르는 동안 오빠처럼 따르며 살펴보니,������바로 이 분이 아버님이 말씀하신 그 분������이라는 확신을 얻어 정산에게 주었다는 설은 신빙성이 떨어져 보인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 전하여 졌고, 삼덕교에서 이를 수련교서로 삼았기 때문이다.
『정정요론』의 저본은 정산종사의 외사촌인 훈산 이춘풍이 순 한문으로 된『정심요결』을 번역한『정심요결 번역』본이다.『정심요결』은『영보국 정정편』과『도설(道說) 상,중,하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도설(道說)은 정통도장(正統道藏)의 내단수련서(內丹修練書)『정관경(定觀經)』,『상청정경(上淸定經)』,『통고경(通古經)』,『대통경(大通經)』 등 여러 경서(經書)를 합편한 것이다.
이러한 정정요론은 대종사 봉래산 수양 시부터 제자들에게 회람되면서 보급되다가, 원기 12년에 <수양연구요론>에 번역본이 보입(補入)되면서 정식으로 교서로 자리매김하였다. 수심정경(修心正經)은 바로 정정요론을 정산종사가 보완 증편한 것으로, 중앙선원에서 원기 39년(1954) 동선(冬禪) 때에 순 한문으로 발간하여 교무들과 선학원생들의 교재로 활용했다. 본래는 편장(篇章)의 구분이 없던 것을 정산종사가 이를 부분적으로 가감 보완하면서 7장으로 정리하였고, 마지막 제8장 총명강요(總明綱要)는 정산종사가 새로 지어 붙인 것이다.
제8장 총명강요는 앞의 7장까지의 내용에 대한 총체적인 결론 부분으로 이해하면 되며, 구체적인 수행의 방법을 강령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정정요론을 완결한 의의를 갖는다. 제8장 총명강요의 내용은『정산종사법어』제6 경의편(經義篇) 65장과 66장에 부분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대략 수심정경의 강령으로써 외수양(外修養)과 내수양(內修養)을 밝히고, 외수양(外修養) 공부법으로 ①피경(避境)공부 ②사사(捨事)공부 ③의법(依法)공부 ④다문(多聞)공부 네 가지를 밝혔고, 내수양(內修養) 공부법으로 ①집심(執心)공부 ②관심(觀心)공부 ③무심(無心)공부 이 세 가지를 밝혔다.(경의편 65장)
또한 외정정(外定靜)과 내정정(內定靜)을 밝히고, 외정정(外定靜) 공부법으로 ①큰 원(願)을 발함. ②큰 신심을 발함. ③큰 분심(忿心)을 발함. 이 세 가지를 밝히고, 내정정(內定靜) 공부법으로 또한 세 가지 방법을 자상히 밝혔다.(경의편 66장)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은 엄밀히 말하면 정정요론과 수심정경을 합본한 것이다.
정정요론은 이렇게 초기 교단의 교리 형성에 영향을 미쳐, 삼학 수행은 물론, 신,분,의,성과 불신,탐욕,나,우 등 팔조(八條)와, 좌선법, 그리고 일부 내용은 참회문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이 인용되었다.
<참고문헌>
『원불교 초기교서』, 원불교 자료실편, 원광대학교 중앙도서관, 총장 송천은 발행 同원불교 자료실 박용덕지음, 원광대학교 출판국, 1997.
『원불교 전서』정산종사법어, 원불교 정화사 편찬, 원불교 출판사, 1977.
『원불교 교고총간』(영인본) 초기교서편, 원불교 출판사, 1994.
제1장 명정정대지(明定靜大旨)
무릇 수양을 하는 사람은 그 망념을 닦고 그 진성을 기르는 것이니, 성품을 기르는 공부는 정정으로써 본을 삼아야 하리라. 정정(定靜)의 공부법은 지극히 넓고 지극히 큰 서원을 품음으로서, 지극한 정성과 지극한 믿음을 발하여 생각과 생각을 잊어버리지 아니한즉 정하고 고요함을 가히 얻으리라.
정(定)이란 것은 하나로 이에 정하여 모든 다른 도리가 나의 짓는 바에 더함이 없고, 저 허다한 법술(法術)이 세상을 의혹케 하는 데에 빠지지 아니할 뿐이다. 정(靜)이란 것은 하나로 정(定)한데 돌아와서 다시 다른 데로 움직이지 아니하여, 부귀영화도 능히 마음을 달래어 가지 못하고 금옥 보패도 가히 뜻을 뺏어가지 못할지니, 한 뜻이 정하는 데에 서 있음에 다섯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한 즉 맹자(孟子)의������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한 것������과, 노자(老子)의������근본에 돌아와 고요하다������함이 다 이 정정(定靜)을 이름이니라.
위로 색지경(色至境)이 없고 아래로 욕심 바다가 없어서, 한 생각으로 일만 년이 가면 귀와 눈이 한가지로 맑고, 몸과 마음이 한가지로 잊어버리고, 정신과 기운이 한가지로 서늘하고, 안과 밖이 한가지로 공(空)하여〔적적(寂寂)하고 고요한데 깊이 빠져 정(定)하고 담연(湛然)함이 하나에 이르러서, 먼저 나의 한 마음 하늘을 온전히 한 뒤에〕정신 기운이 냉랭(冷冷)하여 맑고, 정신 빛이 형형(炯炯)하게 밝아서 비치지 아니한 땅이 없고 통하지 아니한 이치가 없느니라. 그러나 만약 시끄럽게 움직인즉 정신 기운이 몽몽(??)하게 어둡고 정신 빛이 암암하게 어둡나니, 어찌 생각하고 생각 두는 바에 유익이 있으리오.
정정(定靜)함이 오직 면면하고 밀밀해서 생각이 잊어버리지 아니한즉 한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고 일백 맥이 근원에 돌아와서 자연히 불은 내리고 물은 오르며 기운이 정(定)하고 정신이 맑아져서 드디어 큰 광명이 나타남에, 위로 하늘 지경을 통하고 아래로 땅 지경을 달하여 공공(空空)하고 통통(洞洞)함에 광명이 갓이 없고 동하여도 사이가 없어서, 귀신의 지경을 통하여 보고 하늘 문을 사무쳐 여느니라.
제2장 명금기(明禁忌)
그러나 공부하는 데에 다섯 가지 꺼리는 것이 있으니,
첫째는 무슨 일이든지 무슨 말이든지 이루기로 하는 곳에 믿지 아니함이요,(不信正法)
둘째는, 정당한 법과 상당(相當)한 일을 만홀(漫忽)히 하여 존중하지 아니함이요,(不謹嚴)
셋째는, 시비를 알지 못하고 자의로만 집착함이요,(執着自意, 不知是非固執自意)
넷째는, 가볍고 흔들려져서 과히 기뻐하고 과히 즐겨하는데 끌림이요,(輕發喜惡)
다섯째는, 먼저하고 뒤에 할 바를 알지 못하고 속히 하고자 하는 마음이니,(生欲速心) 이것이 다 큰 병이라 반드시 사도에 떨어지나니, 공경하고 삼가라.
만약 처음으로 배우는 사람이 고요히 앉음에 반드시 나의 마음이 안정하지 못한 데에 괴로워서 번거하고 잡된 생각을 금하기로 한즉 도리어 잡된 생각이 더 나나니, 오직 너그럽고 부드러움을 주장하여 자연한데 돌아가고 보면 정하고 고요함을 스스로 얻으리라.
비하건대, 탁한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림에 급히 맑히고자하여 자주 상고하고 자주 살핀 즉 흙물이 더욱 일어나는지라, 그러므로『정관경(定觀經)』에 이르기를, 마음 묶기를 가장 급히 하므로 먼저 웃 경계를 하였느니라. 만약 혹 정하지 못하여 악한 경계가 나타나면 마음 돌리기를 민민(泯泯)하게 하고 뜻 구하기를 한한(閒閒)하게 하며, 선생의 가르침과 자기의 원하는 바를 밀밀(密密)하게 생각하면 자연히 정하고 고요하리라.
무릇 공부를 할 즈음에 일만 형상이 삼연(森然)하게 벌이나니, 가히 게을리 하지도 못하며 급히 하지도 못할 것이요 분운한 번화(繁華) 머리가 다 마음 머리를 좇아 나가나니, 일체 이 기이하고, 현수(現殊)하게 드러나고, 승(勝)하고자 하고, 좋아하고, 원망하고, 응(應)하고, 변(變)하는 일이 다 자기 마음 나는 대로 베풀며 자기 마음 구하는 대로 나타나느니라.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 가운데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이 있어서 도심이 인심으로 하여금 끌리고 잡혀서 사사(邪私)한 데에 떨어지게 되면, 바른 마음은 물러가고 간사한 마음이 차차 나나니 어찌 삼가지 아니 하리오. 또 유명(幽冥)한 경계는 다만 나의 한번 생각을 궁굴려 옮기는 곳에 있나니, 번화 머리 베푼 바에 삼가 마음을 부리지 말라. 만약 혹 보이는 것을 보아도 보지 아니한 것과 같이 하여 조금도 마음과 뜻에 걸지 아니 하고, 반드시 한 점 참마음으로써 도리어 현묘한 데에 돌아와서 정성이 지극히 한결같으면 철석이라도 가히 열리고 뼈와 살이 얼굴을 나눈지라.
마음은 일만(一萬) 신령의 주장이 되고 몸은 음양 조화의 집이 되나니, 음부경(陰符經)에 이르기를,������다섯 도적이 없으면 우주가 손에 있고, 일만(一萬) 화(化)가 몸에 난다.������는 것은 이것을 이름이니라. 근래 세상에 수련하는 사람이 왕왕이 외구화식(外具華飾)으로써 생각만 베풀고 주문을 읽으면서 욕심을 품고 공부한다고 일컬으나, 공연히 세월만 헛되이 지내나니 어찌 참 지경에 이르리오. 대개 지극한 도(道)가 깊고 깊으나 그 다른 데에 있지 아니 하느니라.
사람이 능히 도를 넓히면 도가 사람에게 멀지 아니 하나니, 주자(朱子)는 이르기를,������도(道)란 자는 가히 잠깐도 몸에 버리지 못할 것.������이라 하셨고, 자사(子思)는 이르기를,������성품 거느리는 것을 일러 도(道)������라 하셨고, 증자(曾子)는 이르기를,������그칠 바를 안 뒤에 정(定)함이 있으니, 정한 뒤에 능히 고요하고, 고요한 뒤에 능히 편안하고, 편안한 뒤에 능히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 능히 얻는다.������고 하셨으니, 이것은 다 스스로 그 밝은 덕(德)을 밝히는 일이니라. 내게 이미 밝은 덕이 있으니 어찌 수련하여 밝히지 아니 하리오. 이 일단사(一段事)는 스스로 밝은 덕을 밝히는 법이니라.
제3장 명련기방법(明鍊氣方法)
무릇 수도를 하는 사람이 만약 수화(水火)의 현묘한 이치와 오행(五行)의 나고 화하는 도를 알지 못하면 한갓 단장하고 꾸미는 아이의 희롱(戱弄)이니라.
대저(大抵) 정정(定靜)하고 수련하는 법은 이에 나의 몸 조화하는 도를 단련하여 진실로 힘써 행하면 마음 불이 아래로 내리고 신경(腎經) 물이 위로 오르나니, 진일(眞一)한 물이 입에 가득하여 달고 윤활하고 향기 나고 맛난 것은 곧 신경(腎經) 가운데 진수(眞水)가 위로 오르는 기별이니라.
감(坎)과 이(?)가 사귀어 통하고, 물과 불이 이미 건넨 뒤에 조화가 다 위로 니환(泥丸)에 조회(朝會)하나니, 나의 한 점 신령한 빛을 운전한즉 화하여 남창상궁(南昌上宮)에 불방울이 되어 위로 니환현궁(泥丸玄宮)을 뚫어서 이마 문(門)이 미미하게 움직이나니, 인(因)하여 정성으로 행한즉 이마 문이 활연하여 처음에는 일만(一萬) 개미가 모이고 모이는 형상과 같아서 심히 가렵고 가려워지나니, 삼가 긁고 만지지 말고 정신과 정신을 이마 위에 모인즉 홀연히 맑은 우뢰(雨雷) 한 소리에 이마 문이 큰 돌이 벌어진 것과 같아서, 한 몸에 일만 신령(神靈)이 다 이 문으로 출입하면 형모(形貌)의 광명이 보름달과 같고 삼계 천진(三界天眞)이 구름같이 니환(泥丸)에 모여, 기뻐하고 즐거워함이 한 몸 지친(至親)과 같나니, 이것은 이에 묵묵히 상제(上帝)님께 조회(朝會)하는 법으로 실상(實相)한 이치이니라.
이 법을 행하는 자는 마땅히 먼저 뜻을 아래 단전(丹田)에 머무르고 담연(湛然)히 오래 앉으매 물과 불이 사귀어 통하여 옥지(玉池)에 물이 나서 입안 가득히 삼켜 내리면 정령(精靈)이 이에 올라서 위로 니환 이마 문에 조회하느니라. 만약 옥지의 물을 삼켜 내리지 아니 하면 다만 불이 올라와서 육신과 정신을 태우느니라. 그러므로 행하고 수련하는 사람이 매일 밤 반(半) 맑은 새벽에 항상 안으로 수련함을 행하여 마음에 불은 내리고 물은 오르는 형상을 생각하고 뜻에 감(坎)과 이(?)가 사귀어 통함을 두면 자연히 물과 불이 서로 순환하여 생각을 오래 궁굴려 온전히 읽히면 정신이 니환에 모이고 불방울이 이마 문에 발하나니, 이것이 도전(道傳)하는 비밀(秘密)함이요, 도(道) 닦는 요긴함이요, 도 깨닫는 참 비결이니라.
먼저 정(定)하고 고요한 법을 행함이 대개 이 일에 말미암을 따름이니, 정하고 고요함이 아니면 물과 불이 오르고 내리지 아니 하므로 이것을 얻는 자는 가히 날을 한정하고 성공하리라.
제4장 명입문요법(明入門要法)
선요(禪要)에 이르기를������큰 요긴함이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크게 믿음이요, 둘은 뜻을 크게 분(忿) 내는 것이요, 셋은 크게 의심(疑心) 내는 것이니, 의심이란 것은 신(信)으로써 체가 되나니, 신이 십 분(十分)이 있으면 의심이 십 분이 있고 깨달음이 십 분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곧 정하고 고요한 빠른 법을 말함이니라. 어찌하여 그러한가? 큰 원(願)이 없으면 지극한 정성이 나지 아니 하고, 큰 의심이 없으면 죽기로써 하는 분이 나지 아니 하고, 큰 신이 없으면 참 의심이 나지 아니 하느니라.
여쭙기를,������어찌하여 원하는 가운데에서 신이 나고 분이 나고 의심이 나고 정성이 나는 것입니까?������ 답하여 가로되,������한 하늘 아래에 지극히 묘하고 지극히 보패(寶貝)되고 지극히 착하고 지극히 높은 법은 오직 한 영보진국(靈寶眞局)이라, 영보국(靈寶局)은 사람사람이 각각 몸 안에 품부(稟賦)하여 있나니, 곧 하늘이 명하신 나의 본래성품(本來性品)������이라고 말씀하셨다.
성품을 거느려서 도를 닦고 덕을 밝혀 빛을 발하면 가히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平)하며, 가히 억조(億兆)의 군(君)과 스승이 되며, 가히 한량없이 수(壽)하는 신선(神仙)이 되느니라. 어찌하여 그러한가? 가로되,������하늘이 명하신 덕이 품부(稟賦)가, 사람 될 처음에 머리는 위에 삼청진궁(三淸眞宮)의 기운으로 화하고, 배는 아래 산림천택(山林川澤)의 얼굴을 받고, 가슴은 일월성신(日月星辰)과 풍운우뢰(風雲雨雷)와 음양조화의 부락을 품었나니, 이는 바로 나의 몸에 천진제군(天眞帝君)과 구령삼정(九靈三精)과 오신진군(五神眞君)과 내외장군(內外將軍)과 좌우관속(左右官屬)과 제부공조(諸府工曹)와 및 팔만사천원군(八萬四千元君)이 각각 부락을 의지하여 나뉘었으니, 이것이 이에 영보도국(靈寶道局)이니라.
닦아서 밝은 자는 신선이 되고 성현이 되며, 그 마음을 놓아 버린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느니라. 닦아서 밝히고자 하는 자는 큰 원이 아니고 보면 무엇을 하리오. 또 사람사람이 각각 이 영보국이 있으니, 어떠한 사람은 얻으며 어떠한 사람은 얻지 못하는 것인가? 라고 큰 분이 나게 되면������일만 이치가 나에게 갖추고 일만 법이 여기에 갖추었나니, 오직 하나 뿐이거늘 도가 어찌 문이 많으며 오직 하나 뿐이거늘 법이 어찌 길이 많으며, 오직 하나 뿐이거늘 사람이 어찌 많이 구하며 오직 하나 뿐이거늘 내가 어찌 다시 의심하리오.������하고 생각하면 의심이 없어지고 바란 즉 의심이 있나니, 의심이 가고 의심이 옴에 의심할 바가 없거늘 공연히 무엇을 의심하리오. 홀연히 마음 생각을 태워 밝히면 이것이 이에 참 의심이니라. 이 의심 아래에 일만 의심이 고요하고 적적하여 주야를 분간 못하여 꿈도 같고 참도 같아서 텅 비고 적적한 천지에 오직 한 의심뿐이거늘 이것이 큰 의심이 아니고 무엇이리오.
대개 의심 의(疑)자의 공부가 가장 알아 얻기가 어려우니, 만약 크게 믿는 마음이 없으면 참 의심이 나지 아니하므로 선요(禪要)에 이르기를,������신(信)이 십 분이 있으면 의심이 십 분이 있고 깨달음이 십 분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을 가르쳐 이름이니라. 신(信)함을 가히 신할 것이요 정성함을 가히 정성할 것이니, 신으로써 정(定)하고 고요하며 신으로써 분 내고 의심 내나니, 크게 믿음이 아니면 신이 어찌 장구(長久)하리오. 한 번 정함이 변하지 아니하여 시(始)와 종(終)이 한결같으면 이것을 일러 정성이라 하느니라.
옥경(玉經)에 이르기를,������정성으로써 도에 들어가며, 묵묵함으로써 도를 지키며, 부드러움으로써 도를 쓴 즉, 자타가 한 가지로 잊어버리고 밝은 빛이 이에 나며 성인의 지혜가 스스로 온전하다.������하였고, 또 음부경(陰符經)은 전부 영보(靈寶)의 시와 종을 발하여 가르침이라, 그러므로 이 영보를 수련하는 사람이 음부(陰符)로써 정정(定靜)의 원경(元經)을 삼아서 밖으로 외우고 생각하며, 안으로 정하고 고요하면 이것이 영보의 시와 종이 다 음부 三편에 있으므로 옛 법을 영보에 전함이니라.
본래 문자(文字)가 없고 다만 구결(口訣)로만 음부를 줄 뿐이라, 그러므로 영보의 참 도를 아는 자가 드문지라, 이제 이미 문자가 있고 또 가령(仮令)을 기록하였으니 어찌 화창하게 밝히지 아니하리오. 다시 선현의 수련하는 지도(指導) 문자(文字)에 더하여 앞으로 오는 학도(學徒)의 도 배우는 마음을 열리게 하나니, 또한 가히 이르되 수련하는 공부에 일조가 되니 마음을 씻고 새로이 읽을 것이니라.
옛적에 서봉도사(西峰道師)가 학도에게 이르시기를,������천하에 주인 없는 한 집이 있으니 이것이 영보국이라, 그 가운데 천하 무궁한 묘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