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第七章) 수증(修證)하여 복본(復本)하라
於時人世怨咎 支巢氏大耻顔赤率眷出城遠出而隱 且氣慣食萄實者設禁守察者亦皆出城去各地
어시인세원구 지소씨대치안적율권출성원출이은 차기관식도실자설금수제자역개출성거각지
黃弓氏哀憫彼等之情狀乃告別曰 諸人之惑量甚大性相變異故不得同居於城中
황궁씨애민피등지정상내고별왈 제인지혹량심대성상변이고부득동거어성중
然自勉修證 淸濟惑量而無餘則 自然復本勉之勉之是時氣土相値 時節之光偏生冷暗
연자면수증 청제혹량이무여칙 자연복본면지면지시시기토상치 시절지광편생냉암
水火失調血氣之類皆懷猜忌 此冪光卷撤不爲反照 城門閉隔不得聽聞故也
수화실조혈기지류개회시기 차멱광권철부위반조 성문폐격부득청문고야
解譯 :
이에 인간세상(人世)이 서로 원망하고 질타하니 지소씨가 크게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져 권속(眷屬)을 이끌고 성에서 멀리 나가 숨어 버렸느니라. 또한 포도의 열매를 먹은 자와 수찰을 하지 아니한 자도 역시 모두 성을 나가 각지로 흩어지니, 황궁(黃穹)씨가 그들의 정상을 불쌍히 여기어 별도로 고하여 말하기를, ‘여러분의 미혹(迷惑)함이 심대(甚大)하여 성상(性相)이 다르게 변화(變異)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수 없이 성중(城中)에서 같이 살 수가 없게 되었으나 스스로 열심히 수증(修證)하여 미혹함이 남김이 없도록 깨끗이 씻도록 할지라. 그러면 저절로 복본(復本) 할 것이니 힘쓰고 또 힘써 노력하라’ 하였느니라.
이 때에 기(氣)와 토(土)가 서로 마주치니, 시절(時節)을 만드는 빛(光)이 한 쪽에만 생기어 차고 어두움(冷暗)이 생기니라. 수와 화가 조화를 잃어(水火失調) 혈기있는 무리들이 모두 시기하는 마음을 품었더라. 이는 빛을 거둬들여서 비추어 주지 아니하고 성문이 닫혀 있어 들을 수가 없었던 때문이었느니라.
* 해설
신화는 메타포(metaphor)일 수밖에 없다. 창세기의 금단의 열매라는 선악과가 ‘사과’라는 과일이고 그 과일을 먹게 됨으로 인하여 사람은 선악을 느낀다고 믿는다면 넌센스이다. 마찬가지로 부도지의 ‘포도’는 메타포라는 암묵적인 은유의 표현으로 오미(五味)라는 인간의 오욕의 상징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포도’를 먹는다고 힘이 갑자기 세어져서 천지보다 더 굉장한 힘이 솟구치지는 않는 것이다. 인간이 오욕을 발휘하면서 온갖 유혹에 빠지게 되고 생명의 본성인 도(道)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부도지는 이를 지소씨를 통하여 인간이 원죄를 지었다던가, 타락했다던가 하는 어떤 경우에라도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지소씨가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져서 권속을 이끌고 성에서 멀리 나가 숨어버렸다는 것이나, 창세기에서 아담 하와가 나뭇잎으로 몸을 가렸다는 것이나 비교신화학적 관점에서는 동일한 메타포이다. 신이 분노하여 꾸짖고 심판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부치심을 알고 스스로의 갈 길을 가는 것을 인간이 세상이 살아가는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선과 악의 문제나 본질적으로 죄를 지었다거나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닌 인간이 살아가는 당연한 현실의 문제일 뿐이다. 신은 분노하거나 현실에 사사건건 복잡하게 관여하고 지시하고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대승적으로 어떻게 되어도 신의 권위의 세계라는 영역 안에 인간이 살아가고 있을 뿐인 것이다.
부도지의 황궁씨에 의하여 선포되는 수증복본(修證復本)의 메시지는 인간이 신에게로 복귀하는 길인, 인간의 오욕에 의한 탐욕스런 삶이 신의 권위의 세계로 복귀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신적인 인간, 신령스런 인간, 신과 하나 되는 인간, 신선 세계의 건설을 위한 인간의 길을 황궁씨는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포도’를 먹기 이전에는 태생적으로 부여된 신의 섭리 속의 삶이 있었는데, 타생(他生)을 식생 하면서 오욕이 신성을 가리게 되어 근본이라는 신성과 오욕과의 갈등이 인간에게 내재하게 되어 있다는 것인데, 근본으로 돌아가기 위한 내면적 노력(修證)이라는 자아와의 투쟁, 자아를 위한 투쟁이라는 자기혁명을 하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한계를 정의하고 있다. 복본(復本)에서 본질은 당연히 마고이다. 마고라는 상제를 자신 속에서 찾는 것을 복본이라 하는데, 이를 위하여 인간은 자기 혁명이라는 수증(修證)을 해야 하는 운명적 존재이다. 물론 여기서의 운명은 자율적이고 자동적인 운명이다. 타율에 의하여 규제되고 감시받고 통제되는 운명이 아니다.
또한 이 메타포의 의미는 부도(符都)의 구성 주체, 부도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과 마고 본성으로의 복귀라는 2단계적인 암시를 주고 있다. ‘스스로 수증(修證) 하기를 열심히 하여 미혹함을 깨끗이 씻어 남김이 없으면, 스스로 열심히 수증(修證)하여 미혹함이 남김이 없도록 깨끗이 씻도록 할지라. 그러면 저절로 복본(復本) 할 것이니 힘쓰고 또 힘써 노력하라’라는 것은 미혹함에서의 탈출, 미혹함을 혁명해야 하는 과제를 황궁씨를 통하여 엄숙히 선언하고 있다.
부도지에서 말하는 부도성의 구성주체로서의 인간은 자아혁명을 하는 인간을 말하는 것이며, 이러한 인간의 혁명적 노력이 인류구원의 가장 중요한 길임을 말하고 있다. 수메르 신화에는 신들이 자신의 동산을 관리하여 필요한 것을 지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인간을 창조한다. 이 이야기는 지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의 울림이라는 목소리가 신들의 자양분이고 신들의 향연의 음률인 것이다. 음률이라는 소리로 인간의 삶과 이 지상의 모든 것이 신과 연결되어 있으며 신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소리와 최초의 빛이라는 생명의 근본이 신이라는 신성의 영역이며 신의 작용이며 인간은 이로부터 태어났고 따라서 인간은 원초적으로 신인데, 오욕에 구속되어 인간의 본성을 인간이 모르고 지낼 수 있는데, 이것을 깨닫는 것이 인간의 자아혁명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甑山이라고 하지만 이를 풀이하여 쓰면 시루산이고 고어로는 시루달이다. 알파벳 언어로 번역하면 Siru/SyR/Syrus/Sirus/Suri/Suli 등등으로 다양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시르 상제, 시루 상제가 실달대성의 상제, 마고대성이 지상에 구현된 실달대성의 상제가 아닌가. 그래서 마고는 상제의 그 때의 명칭이었던 것이다. 실달대성의 문이 굳게 닫히면서 인간은 스스로 어른스러움으로 변화해가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갓 태어난 어린 아기는 모체의 보살핌 속에서 어둠도 빛도 없는 요람의 삶을 살지만 좀 더 자라면 투정도 부리고 응석받이가 된다. 아주 단순하고 사소한 것으로 다투기도 한다. 이때는 미운 존재는 다 적이다. 밉다고 정의된 존재, 악마로 정의된 존재는 다 적이다. 애기판 싸움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좀 더 철이 들고 장성하면 혈기로 싸운다. 앞뒤 안 가리고 죽기로 싸운다. 이것은 총각판의 싸움이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온갖 최상의 무기를 동원하여 적을 죽인다. 핵무기까지 등장한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싸움 이후도 생각해야 하고 밉다고 다 적이 아닌 것도 알게 되고, 적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다 악마라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가도 알게 된다. 힘의 균형과 조절을 통하여 유혈적 싸움을 피하는 지혜도 알게 된다. 이것이 어른싸움인 상씨름이다. 모든 곳에 빛이 한꺼번에 비추지 않고 차고 어두운 곳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인류사적으로 이러한 자제력을 발휘하기까지 걸린 지난한 시간은 인간의 성숙이라는 어른다운 역사주체로서의 인간성으로의 도약은 자연이 주는 경고와 자연과의 공생이라는 차원의 문제가 대두하게 됨에 따라 자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적 상황이 부여한 것일 수도 있다.
개별적 삶의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아혁명을 통하여 실달대성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며, 집단으로서의 인간은 집단 그 자체가 실달대성에 부합하는 마고(상제)라는 근본 그 자체여야 한다. 그래서 개별적 존재로서의 혁명과 집단적 존재로서의 주체성의 혁명은 실달대성으로의 복귀를 위한 수증복본의 길이다.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란 상제님을 직접 모시고 조화세상을 정한다는 말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