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사상 - 변법론의 탄생2
인간 뿐아니라 모든 동식물 또한 천天이 부여해준 각기의 ‘성’을 지니는 독자적 존재이다.그래서 인·물 각기가 ‘성을 다한다’ 는 것은 곧 각기 ‘천으로부터 받은 본분’을 다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인간은 ‘지선’이라는 도덕적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동식물은 각자 무성한 생육을 실현하는 것이 그 ‘본분’을 다하는 일이다. 또 여기 ‘지선’에 도달하거나 무성한 생육을 이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인·물’ 각자가 스스로 성취하는 ‘본분’의 일인 것임을 주의해야 한다. 더구나 그 본분을 다하게 되는 길 또한, 성인인 나의 ‘성’이 ‘지선’의경지에 도달하였기 때문에 거기 동화되어 ‘인간과 동식물’이 각기의 ‘본분’을 다하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기 ‘인간과 동식물’이 각자의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은, 곧 ‘산림천택의 정사[山林川澤之政]’라고 하는 ‘나’의 ‘정치’행위를 통해서, 그 지반을 조성하고 ‘횡란’을 제거해주는 관리의 기능을 다하는 일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보면 세상의 동식물을 길러 그 각기의 생육을 다하도록 하는 ‘공적’ 또한 바로 그 생육의 ‘정치’행위를 실행한 후에야 실현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즉 다산의 ‘정치’ 또한 어디까지나 ‘행사行事’를 통해서야 그 결실이 나타나는 구도, 즉 ‘행사’주의로 일관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그런데 여기서, 나와 인간과 동식물에 부여된 성性이 각기 독자적인 것임을 인식하고 그 각기의 ‘성’을 다하여 ‘천으로부터 받은 본분’을 수행하도록 하는 ‘정사’ 즉 구체적 ‘정치’행위를 수행하는 주체는 무엇인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곧 ‘天천과 직통’하는 나의 영명한 심心이다. 즉 인간은 ‘천’으로부터 품부한 ‘심·성’을 통해 ‘정치’행위를 실행함으로써야 비로소 왕정도 실현할 수가 있다. 그리고 ‘천과 직결’되는 인간의 심·성을 통해 왕정이라는 궁극적 ‘정치’행위로 이행하고자 하는법제 장치가 곧 '경세유표'라는 변법적 경세론으로 구체화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데 원래 새로운 왕조를 열게 된 옛 성왕들은 반드시 새 시대를 구현할 ‘제 1등의 도리’를 강구해서 새로운 통치법제를 정립한다는 것이 다산의 역사 해법이다. 성왕聖王이 천하를 얻었을 때에는 오직 제 1등 도리를 강구해서 오래토록 시행하여도 폐단이 없을 것들을 법으로 정립하였다. 다산은 ‘선왕先王의 대도大道를 좇아 만세토록 준행할 큰 경법經法을 세운다’고 하는 자신의 '경세유표'를 두고서도 비슷한 취지를 밝혀 두었다. “관직제도, 군현제도, 토지제도, 부역제도, 상업·무역제도, 환곡제도, 군사제도, 과거科擧제도, 해세海稅, 마정馬政, 선박船舶제도, 국도國都의 영건제도 등에 대해서 현재의 운용에 구애됨이 없이 기본 골격을 세우고 요목을 베풀어, 이를 가지고 우리 구방舊邦을 새롭게 하겠다 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 ‘구방을 새롭게 한다’고 함은 주지하듯, 오랜 연원을 가진 중국주周나라가 문왕에 이르러 그 국명國命을 유신하고 왕정을 구현하는 길 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역사적 전통에서 그 뜻을 취해 온 것이다. 문 왕, 무왕을 거쳐 주공周公이 '주례'를 저작하고 이를 통해 왕정을 구현 할 수 있었다는 전통을 따라, 그는 '주례'를 준거삼아 ‘방례’를 초한 것이 곧 '경세유표'이다.
그런데 '주례'를 준거삼는다 하더라도, 무릇 역사상으로는 그 보다도 수천 년이 지나간 후에, 문명 교류상으로는 이미 서학西學까지도 일부 접하게 된 19세기 초 조선왕국의 현실 풍토에서 다산은 '경세유표'를 초하였다. 그러니 여기 ‘폐법과 학정’의 인습으로 누적된 현실태를 과감히 개혁하여 새로운 ‘왕정’의 법제를 정립하고자 하는 그로서는 새로운 ‘제1등 도리’를 독자적으로 강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산이 새로운 통치법제를 초하면서 의거한 이념은 물론 ‘옛 성인들의 경전의 원리’이다. 그 원리를 탐구해내는 과정에서 그는 ‘신명神明이 묵묵히 깨우쳐 주시는’ 도움을 크게 받았다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그는묘지명에서도 자신의 경세론을 두고, “모두 성인의 경전에 근본을 두고 현재의 실정에 부합하도록 힘썼으니, 없어져버리지 않는다면 혹 이를 취 택할 자가 있으리라” 라고 스스로 자신하였다.
가령 다산이 변법론적 ‘정치’사업 가운데의 큰 항목의 하나로서, 전국 만민을 9직이라는 전업적專業的 전문 직사로 배치한다는 고안을 여기서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9직론은 '주례'에 보이는 것이지만, 다산은 이를 변용시켜 추구한다. 그가 새로 설정한 9직 가운데의 사士의 경우, 중앙의 재상으로부터 말단의 이서吏胥·복예僕隸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치민治民의 직사를 담당하는 것으로 재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 모두가 응분의 교육을 이수하도록 하고, 동시에 응분의 사회경제적 처우를 받도록 제도화한다. 그는 이 ‘사’라는 치민의 직사를 통해서, 새로운 산업을 개발하고 왕정을 추진하는 과업 뿐아니라 오랜 질곡으로 인습해오는 사회신분제 문제라든가 유식遊食 양반의 해소 방안 등 여러 사회경제적 현안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다산은, 만민이 “9직으로 나뉘어짐은 천天의 이치이다.
위에서 비록 시키지 않더라도 백성이 스스로 나뉘어질 것이다”라고 다산은 말한다. 앞서 살폈듯, 영명한 심·성을 구비한 그의 ‘인간’이 이미 주체성을 지닌 존재로 진화하고 있느니 만큼, 전국 만민이 결국은 전업적 전문 직종으로 각기 분화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소신껏 피력하는 것이다. 만민이 전업적 전문 직종으로 분화 배치되어야만, ‘조종의 법제’로 인해 질곡상태로 얽매여 있는 중세 말기의 지리멸렬한 폐쇄적 억압관계를 해소하고, 새로운 주체적 인간 관계를 꾸려나갈 수가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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