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다양합니다. 세상은 획일적이지 않아서 돌아가고,
각자 하고싶은 것이 달라서 생산을 유발하는 직업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직업에는 좋은직업이 있고 나쁜직업이 있습니다. 좋은 직업은 두말할것없이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선망의 대상이 되고 나쁜직업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직업일 것입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직업은 남을 속이고 자신도 속여서 결국 망하게 되는
수순을 밟게 되는데 자신만을 위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남을 등쳐야 되고
거짓으로 삶을 살게 됩니다.
특히 우리사회에 만연해있는 다단계업을 하는 사람들의 정신구조가 이런것에
속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것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합니다.
그러나 실속은 몇사람만 차리고 나머지는 알거지가 되는 것이고
결국 타인에 의지하기 때문에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투자를 받는 사람이나 투자를 하는 사람이나 똑같으니까 나중에 잘못되었을 때
남을 원망하게 되고 결국엔 파산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것입니다.
동업은 절대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며 봉사하는 정신이라면 동업이 가능할것입니다.
봉사하는 일을 하려면 많이 생산하는 사람이 되어야 많은 봉사를 할수 있습니다.
게으르고 남탓만 하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봉사할수 없습니다.
봉사의 희생정신을 앞세우려면 먼저 수신의 정신으로 나가야 하며
절대적 생산의 직업을 가진자만이 할수 있는 것입니다. 상생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녹을 만들어가야 상생을 실천할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단체나 현실적인 생산력이 있어야만 상제님의 이상향을 이루어 나갈수
있습니다. 막연한 기회주의나 기다림주의나 어떻게 되겠지하는 운명론자들은
절대로 상생을 실천할 수 없고 희망이 없습니다.
현재 우리들이 어떠한 자세로 서있느냐에 따라서 문명건설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사재인의 상제님 말씀이 실현되는 것임을 스스로가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혁명의 마인드를 가진사람은 반드시 주체주의의 마인드로 가야하며, 타인을 속이거나 의
지한다거나 막연한 도수풀이로 자만하는 자는 반드시 패할것이며 상제님의 일꾼이 아닐것입니다.
지금 본인스스로가 진단해보면 간단하게 답이 나올것입니다.
도수주의에 빠져있는자들은 직업에 대한 의식이 불투명하며 직업을 갖는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직업을 가진다는 것을 천박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든다면 본인이
도수주의에 빠져있다고 진단해야 합니다.
교만하다거나, 자신이 하고있는 일에 자부심이 없다거나, 자꾸 공짜를 바라는
생각을 한다거나, 자신의 것인지 남의것 인지에 대한 경계가 없는 도둑놈의 심보를
가졌다면 정말 위험한 정신구조를 가진것입니다.
잘못된 종교인들의 특징은 무조건 성금으로 이화할려고 하고 물건을 살때도
기증을 원하는 심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심보는 깡패와 똑같은 심보입니다.
깡패의 정신구조가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빼앗으려는 양아치적인 행패를 보입니다.
인간도 다같은 인간이 아니듯 교육이 잘못되어 비틀어진 인간들은 사회에서 쓸모없는
인간인것입니다. 태사부님의 말씀에 人자 여섯을 놓고 “사람이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다.” 라고 매번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 종교판에 모여든 짐승같은 인간들에게 준엄하게 경고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간부들을 모아놓고 태사부님은 “여기 모인 너희들중에 인간같은 인간은
십프로를본다” 라고 여러번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90프로의 짐승같은 인간들이 증산도를 좌지우지 한다고 봐야 할것입니다.
혁명하러온 인간들 중에도 썩어빠져 냄새나는 인간들이 수두룩합니다.
뭐가 잘났다고 도수가 어떠니 혁명이 어떠니 하고 떠들고 다닙니다. 본인 수신이 먼저인
상황인데 썩은입에서 썩은 냄새만 풍기고 있습니다.
자신들 스스로를 살펴보고 반성해야 할때입니다.
일신하고 우일신하라는 태사부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썩은
난법정신에서 진법정신으로 바뀌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것입니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자만하며 까불고 건방을 떨면 반드시 거지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처절하게 느낄것입니다.
혁명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져서 부단히 자신을 닦아야 합니다.
상제님 천명을 받드는 성사재인의 인간으로 태어나려고 일신 우일신을 주문으로
삼고 살아야 할것입니다.
짬에서 우쭐거리는 병든자들은 집으로 가시라!
안판에서 기득권을 지키려고 설쳐대는 자도 집으로 가시라!
집에가서 조용히 소나 키우길 바랍니다!
혁명정신은 대나무 정신인 것입니다.
못난 사람은 대나무의 정신을 모릅니다. 가르쳐줘도 모르고 입에 물려줘도 모름니다.
스스로가 알아야 하는 것인데 주체가 없으면 타인에 의지하기 때문에 질문만 해댑니다.
질문해대는 자는 영원히 유치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질문만 해대다가 답을 타인에게서 찾으려고 하니 항상 원망만 하게되고, 불만으로
두눈에는 독기만 쌓여져 갑니다. 이런자들은 벌써 욕단소에서 살림차리고 있습니다.
자신이 없는자들중에 하나의 특징이 의통이나 마패나 신들린 사람들을 찾아 다닌다는
것입니다. 주체가 없는자는 자신감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면에서 답을 찾지 않고
항상 밖으로 돌아다닙니다. 집잃은 개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차에 치여 죽는
운명같이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맙니다.
이제 더 이상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직업을 찾아서 녹을 만드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것입니다. 허구한 시간을 멍때리지 말고 해원판에 휩쓸려 불귀의 객이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상제님의 해원판은 상극의 죽음의 판입니다. 현재의 증산도는 해원의 죽음의 판입니다.
그속에 있다가는 모두가 멸망하는 것이여서 대피해야 합니다.
짬단소에 대피한자도 죽음의 판에 들어간 것입니다. 난법판에 있으면 병이드는데
병명은 가슴답답증입니다. 답도없이 사지가 묶여있는 갑갑하고 답답한 그런 심정이면
병이 깊이 들어 있다고 진단해야 합니다. 그곳도 혁명을 가장한 상극의 해원판입니다.
종말에 묶여서 있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대피하는 것은 올바른 수신의 철학을 가져야 할것입니다.
죽음의 판을 막는 것이 성사재인의 주체주의의 판입니다.
이제 쳐다보지 말고 돌아서서 자기가 갈길을 닦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