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위로 왕이 된 크레온에게 파수병이 안티고네가 시신을 묻어 줬다는 것을 밀고하는 장면
파수병 아, 범인이 잡혀야 할 텐데! 그러나 잡히든 안 잡히든 간에 모두 운명에 달려 있 는 일이다. 어쨌든 왕께서는 다시는 이 땅에서 나를 만나 보지 못하실 거야. 지금은 천만 뜻밖에도 목숨을 구했으니 신들께 크게 감사해야겠구나. (퇴장)
코러스 경이로운 것이 허다하지만.
인간보다 경이로운 것은 없구나.
강한 남풍에 밀리며
삼켜 버릴 듯 사나운 물결을 헤치고
흰 빛 바다를 건너가는 그 힘.
해마다 쟁기를 이리저리 돌리며
말을 부려 땅을 파헤치니
최고의 신, 불멸을 지칠 줄 모르는 대지의 신조차
인간에게는 지쳐 버린다.
경쾌한 조류, 사나운 야수, 심해의 어류조차
인간은 손수 짠 그물로 잡아
노획물을 끌고 간다.
인간의 지혜의 탁월함이여,
또한 숲 속 동굴에서 살며
언덕을 헤매는 야수도
인간은 그 기술로 지배한다.
인간은 사나운 갈기를 가진 말도 길들여
목에 멍에를 씌우고,
지칠 줄 모르는 들소도 길들인다.
그 언어, 재빠른 사고, 나라를 이룩하는 온갖 방법도 인간은 스스로 터득한다.
또한 막은 하늘 아래 노숙할 때도
서리 와 퍼붓는 빗줄기를 피할 줄 안다.
그렇다, 인간은 온갖 재주를 다 부리고 있다.
이 재주 없이는 인간은 내일에 대처하지 못한다.
오직 죽음의 신에 대해서만은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구나.
그러나 인간은 이상한 병조차 이겨낼 줄 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교활하고 풍부한 재주 때문에
인간은 방금 선인이었다 가도 곧 악인이 되누나.
나라의 법을 준수하고 신께 맹세한 정의를 지켜 나가면
나라의 기틀을 튼튼하고 자랑스럽다.
그러나 경솔히 죄를 지은 자에게는
나라가 없구나.
이런 것을 하는 인간이
내 마음을 차지하고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일이 없기를!
파수병, 안티고네를 데리고 왼쪽에서 등장.
이것은 무슨 뜻을 가진 신의 예시인가?
놀랍기만 하구나
나는 저 아가씨를 알고 있다. 저 아가씨는 안티고네라는 걸 어찌 부정하랴? 오, 가엾은 아가씨여, 가엾은 아버지 오이디푸스의 따님이여! 무슨 일이 있었을까? 죄인으로 끌려오다니. 왕의 법을 어기고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을까?
파수병 이 아가씨가 그 일을 저지른 장본인입니다. 아가씨는 그 놈의 장례를 치르다가 저 희들에게 잡혔습니다. 그런데 크레온 왕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코러스 보라, 때마침 궁에서 나와 다시 이곳으로 오신다.
크레온 등장.
크레온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마침 잘 왔다고 하느냐?
파수병 오, 왕이시여, 사람은 무슨 일에 대해서든 함부로 맹세할 것은 못 됩니다. 나중 생각이 처음의 결심을 뒤집어 놓기 때문입니다. 저는 채찍질하는 듯한 왕의 위협이 무서 워서 다시는 쉽사리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즐거움보다도 더 즐거운, 뜻밖의 기쁨을 안고 비록 맹세를 어기는 일이긴 하지만 이 아가씨를 데리고 왔습 니다. 이 아가씨는 시체에 자비를 베풀다가 붙잡혔습니다. 이번에는 제비를 뽑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행운은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라 제것입니다. 왕이시여, 이 아가씨를 데려가셔서 심문하십시오. 그러니 저는 이제 걱정을 하지 않고 마음을 놓아도 되겠지요?
크레온 이 죄인을 어디서 어떻게 잡았느냐?
파수병 아가씨는 그 놈을 묻어주고 있었습니다. 정말입니다.
크레온 정말이냐? 그 말이 틀림이 없느냐?
파수병 왕께서 매장해서는 안 된다고 하신 시체를 그 아가씨가 묻고 있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이젠 믿으시겠지요?
크레온 그런데 어떻게 들켰느냐? 어떻게 현장을 잡았느냐?
파수병 말씀드리지요. 저희들은 왕의 엄한 꾸중을 들었기 때문에 시체 있는 곳으로 가서 시체를 덮을 흙을 밀어내고 축축한 시체를 노출시켰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체에서 나는 악취를 피해 바람이 불지 않는 언덕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모두들 눈을 크게 뜨고 지켜 보았습니다. 한눈 파는 자가 있으면 옆 사람이 욕을 퍼부었지요.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 태양의 밝은 불덩어리가 중천에 이르러 찌는 듯한 더위가 닥쳐왔습 니다. 그러나 갑자기 땅에서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더니 흙먼지가 솟구쳐 하늘을 덮고 들판 에 가득 찼으며 숲 속의 나뭇잎조차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온 천지가 나뭇잎으로 가득 찬 듯했습니다. 저희들은 눈을 감고 신들께서 내리신 이 재앙을 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참 지나서 바람이 지나가자, 한 아가씨가 보였습니다. 아가씨는 마치 새끼를 빼앗긴 새가 빈 둥우리 속에서 쓰라림을 못 이겨 애달프게 울 듯 목놓아 통곡하고 있었습 니다. 아가씨는 시체가 드러난 것을 보자, 더욱 큰 소리로 통곡하며 시체에 손을 댄 자들 에게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아가씨는 곧 마른 흙을 손으로 날라 오고 아름다운 청 동 항아리를 높이 쳐들어 시체의 머리 위에 세 번 물을 뿌렸습니다. 이것을 본 저희들은 곧 뛰어 내려가서 당장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아가씨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어요. 저희들 이 지난 일과 이번 일에 관해 문초를 하자 아가씨는 조금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 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괴로웠습니다. 내가 화를 면한 것은 크게 기뻐할 일이지만, 친구들에게 화가 미치게 한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안전해졌다는 걸 생각 하면 친구나 화를 입는 것쯤은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