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유학의 영원한 논제, 주재(主宰)
주자에게서 영원의 절대인 이(理)는 자신의 뜻으로 하여 우주와 생명을 있게 했으되, 자신의 활동력으로 그들을 창조하는 물질 세계의 실질적 주체는 아니었다. 이것은 이(理)와 기(氣) 둘 다가 주체임을 인정한 <애매한> 논법이다. 조선 유학은 이 모호하고 까다로운 설정을 견디지 못하고 사태를 <분명히>하고자 했다. 조선 유학의 기나긴 논쟁의 중심에 바로 이 주재(主宰)의 문제가 있다.
주자는 이(理)를 모종의 신호 혹은 명령으로 보고, 그 신호를 인지하고 명령을 수행하는 실질적 동력을 기(氣)의 몫으로 돌렸다. 이는 결국 이(理)가 기(氣)의 활동을 온전히 지배하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귀결된다.(氣强理弱, 理管他不得, <주자어류> 이 경우 이(理)는 제후들의 발호에 둘러싸인 춘추전국시대의 허울뿐인 왕처럼 무기력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 귀결이 못마땅한 사람들은 이(理)가 세상에 실질적으로 역사(役事)하고 지배하는 진정한 의미의 주재(主宰)임을 확인하고자 했다. 이(理)는 명목(名目)뿐인 절대, 성리학의 언설로 하자면 사물(死物)로 환원될 수 없다. 이(理)는 과시 주자학의 주춧돌이다.그 이(理)가 세상에 역사하는 <의지>가 아니라 기(氣)에 피동적으로 제한되는 <의미>라면 노불(老佛)에 어떻게 맞서 어떻게 유가의 인문적 가치를 설득하고, 사회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반발은 주자가 즐겨 인용한 주돈이의 태극동이생양(太極動而生陽), 즉 태극(太極)이 움직여 양(陽)을 낳는다를 액면 그대로 읽고 싶어한다. 태극(太極), 즉 이(理)는 기(氣)의 <밖>에 조물주 혹은 제일 원인으로 존재하면서 세계를 질서지우고, 조정하며 제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 같은 사유를 따라간 학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제발 이 구절을 액면 그대로가 아니라 <은유>로 활간(活看)하라는 율곡의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과연 세계를 움직이는 진정한 주체(主宰)는 누구인가. 이 물음은 그 이후 전개된 철학적 논의의 관건이었다. 주희와 육구연의 갈래, 주자학과 양명학, 그리고 청대 실학에까지, 그리고 주자학 독존이었던 조선의 사단칠정논과 인물성동이론을 거쳐 한말에까지 이르는 조선 유학논쟁의 근본 남상(濫觴) 또한 여기이다.
그러므로 보수적인 유학자들이 들으면 놀라겠지만 주자학의 중심 논제는 근본적으로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것이었다. 조선 유학 또한 마찬가지이다. 퇴계와 율곡은 이(理), 즉 <영원의 비인격적 의지이자 존재의 의미의 근원>이 과연 <실재>하느냐를 두고 의견이 갈렸던 것이 아니다. 둘 다 그것이 우주에 편만함을 확인했다. 둘의 차이는 그 위상과 성격, 특히 그것의 직접적 권능에 관한 것이었다.
진정 이(理)가 <영원의 의지>로서 우주를 움직이고 생명을 빚어내는 권능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영원의 의미>로서 인간의 생리를 통해 구현되기를 기다리는 숨은 신이냐 하는 것이었다. 퇴계는 의지의 직접적인 역사(役事)를 믿었고 율곡은 의미가 직접 행사하지는 않는다고 믿었다. 이 차이에서 이른바 주리(主理)와 주기(主氣)가 갈라졌다.
우선 화담의 도덕적 낙관론에서 촉발된 퇴계와 율곡 사이의 철학적 이견을 개관할 필요가 있다.
조선 유학의 철학적 논쟁을 격발시킨 화담은 기(氣)의 자체 분화와 운동에 철두철미하면서 이(理)의 주재를 자연론적 흐름 안에 설정했다. 즉 이(理)가 자체 분화와 운동 과정에서 조리와 단서(條緖), 즉 일정한 패턴과 룰을 벗어나지 않는 그곳에 의미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 귀결로 화담은 기의 자연성 안에 인문성과 도덕성을 설정했다. 가령,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과 같은 자연적 표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도덕을 풍류로 안 사람이다. 그래서 절세 미인 황진이의 살냄새를 한바탕 웃음으로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퇴계는 이 같은 교설에서 방임과 방종의 낌새를 맡았다. 그는 신체의 생리적 기(氣)를 위험하고 위태롭게 보았다. 그리하여 맹목의 기(氣)를 지배하고 제어하는 또 다른 실질적 힘을 요청했고 이것이 이발(理發)을 주장하게 했다. 인간에게 있어 사단(四端)과 도심(道心)은 기(氣)라는 대지적(大地的) 요소의 산물이 아니라, 신적 초월적 공능이며, 그것은 칠정(七情)과 인심(人心)으로 대표되는 생리적 구각을 뚫고 돌출하는 영원의 의지라는 것이다. 이것은 주자의 이기(理氣) 구상의 <독창적 일탈>이다. 그는 이 점을 실존적으로 확신했기에 기대승의 정연한 조리에 맞서 끝까지 자신의 구도를 지킬 수 있었다.
고봉 기대승의 예봉은 퇴계의 종교적 실천적 진지함에 굴복, 경의를 표함으로써 더 이상 확대되진 않았다. 그러나 율곡은 달랐다. 율곡은 주자학의 원론적 구상에 입각하여 태극동이생양(太極動而生陽)을 은유로 인식하고, 천지간의 운동을 기의 자발적 분화와 교섭으로 돌렸다. 그에게서 이(理)는 기자이(機自爾)의 소이(所以) 혹은 의미로 획정되었다. 이(理)는 정의(情意)도 의도도 없는 정결공활(淨潔空闊)한 무위(無爲)의 세계이다. 율곡은 이(理)가 실질적 동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면서 이발(理發)을 부정했다.이(理)의 주재(主宰)란 기(氣)의 동정(動靜)이 그 다양한 분화와 착종에도 불구하고 종내 조서(條緖)와 조리(條理)를 잃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기(氣)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면서 이(理)의 질서와 의미를 증현하고 있다.
이 점을 유의해 보아야 한다. 기(氣)는 이(理)를 증현하지만, 그것은 대체로 <비자각적으로>, 그리고 앞에서 보았듯이 <불완전하게> 일어난다. 이 우주적 질서의 의미를 자각하고 그것을 완전히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천지간(天地間) 가장 맑은 기(氣)를 타고난 인간에게만 가능하다. 그것도 가장 맑고 순수한 기(氣)를 타고난 성인(聖人)의 몫이다. 그렇지 않은 범인(凡人)은 자각적 주체적 수련을 통해 자신의 기(氣)를 정화하고 교정함으로써 이 경지에 다가설 수 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에게 다가오거나 손을 내밀지 않는다. 다만 우리만이 주체적으로 그분에게 다가갈 수 있다. 그분은 <그냥 거기 계신> 무언(無言)이고 무위(無爲)의 주재(主宰)이기 때문이다.
율곡의 생각은 곧 회의와 반발에 부닥쳤다. 이(理)의 주재(主宰)가 가려져 있다면, 그리고 인간을 향해 적극적으로 발언하지 않는다면, 그 주재는 결국 있으나 마나한 것이 아니냐. 따르든 거스르던 아무런 응답도 없고, 상도 벌도 없는 그런 임재(臨在)를 누가 두려워하겠는가. 절대의 뜻이 심신(氣質)의 자의적 선택과 활동에 맡겨져 있다면, 이기적 욕망을 무슨 힘으로 억제할 것이며, 사회적 혼란을 어떤 규범으로 수습해 나갈 것인가.
과연 신 혹은 절대는 침묵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율곡의 주기론적(主氣論的) 체계는 이들로부터 간헐적이고 지속적으로 반발과 비판, 그리고 회의의 표적이 되었다. 이 경향을 <주기(主氣)에 대한 주리(主理)의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포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흐름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