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정신은 주체정신으로부터 나옵니다.
주체정신은 밝음이며 어두움에서의 탈출입니다.
어두움은 난법의 정신이고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나오는 것이 상생의 주체정신입니다.
우리는 밝음으로 이제 나와서 옷단장하고 면도하여 새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어두움에서 헤메이던 마음도 양지로 나와서 햇살을 받아야 하고,
어두움의 상제님에서 밝음의 상제님을 찾아야 합니다.
나와 그리고 많은 동료들이 이제는 밝은 광명의 주체정신으로 거듭나서
서로가 확인하고 몰랐던 부분의 갈등을 말끔하게 씻어야 합니다.
각자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의 뒷모습을 털어버리고 정직하게 진실한
사람이 될수 있도록 자신있게 자신을 드러내 보여야 합니다.
혁명은 자신으로부터의 시작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보지말고 내자신을
바라보면서 자꾸 바꿀려고 노력해야합니다. 우리 각자가 이렇게 노력함으로써
주체주의자들의 조직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마음만 열면 충분히 시작할수 있습니다. 어디에 있던지 내부로부터의
혁명이 시작되면 밝은 광명의 주체정신이 나와서 이심전심으로
자연스럽게 조직화 될것입니다.
주체주의자로서의 조직화는 엄청난 태양과같은 힘을 발휘할것이며,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동화될것입니다.
상생의 파워는 내부로부터의 혁명, 어둠에서 밝음으로,
주체주의자들의 조직화로 발휘하게 됩니다. 증산주의가 바로 주체주의이고
성사재인의 원동력이 됩니다.
이제 진법의 문화는 밖에서 찾을것이 아니고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내안에 모든 것이 존재합니다. 등지지말고 정면으로 바라보면 해답을 얻을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비밀은 없습니다. 찾을려고 하면 다 알수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진리의 장애자 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모르고 지내 왔을 뿐입니다.
상제님 진리의 장애자아닌 장애자로 살아 왔습니다.
지금도 완벽한 완성된 진리라고 볼수는없지만 잘못맞춰진 퍼즐진리를 바르게
맞추어 극복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회로 다시 복귀해야 합니다.
세상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수 있는 상생의 완벽한 진리가 들어남으로
해서 만인이 추앙할수 있는 세계적 증산도로 발전 할수 있는 것입니다.
발전의 여정이 바로 우리의 손과 발로 이루어져야 하는 성사재인의 주체주의입니다.
포교는 진리가 올바로 선다음에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의 포교는 악인을 생산해내는 시스템이라 전면 중지 되어져야 합니다.
막연한 도수주의는 우리에게 주어진 성사재인의 시간을 감옥에 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도수주의에 목을 매는 것은 말그대로 자살행위입니다.
도수주의는 사주팔자를 보는것과 같습니다. 잘못 풀이하는 도수주의와
사주팔자는 혹세무민의 원동력이 되어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나만 망치는 것이 아니고 주의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됩니다.
도수주의나 사주팔자주의는 모두가 객체적 사고방식주의입니다.
성사재인의 주체주의와는 정반대의 것입니다.
도수주의 사주팔자주의는 난법을 생산하는 근원이 되고,
성사재인의 주체주의는 진법을 생산하게 됩니다.
진법을 체로하고 난법을 용으로해야 일이 크게 이루어지는
원동력이 되는데, 현재는 거꾸로 난법을 체로하고 진법을 용으로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꼬이고 헝클어져서 힘들게 되는 것입니다.
잘못해석하는 리더는 거꾸로 너희들이 일심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다그칩니다.
이것이 장애자를 생산하게 되는 원초이고, 원초 장애자를 속된말로 바보라고 합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가 순리라면 역리는 ‘불고가사’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불고가사를 먼저하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한다고
소리치는 형국입니다.
상제님은 난법이 만들어지게 하는 가장 애매하고 희안한 해석을 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정신이 바르지 못한자는 여기에 걸려서 난법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해석의 쇠말뚝이 정신적 장애인을 생산하는 원초가 됩니다.
상제님 공사가 잘못되어진 것이 아니고 해석을 잘못하는 것입니다.
난법진리의 장애가 바로 이런것이고, 이런 쇠말뚝을 뽑아야 정신적 장애인에서
정상인으로 거듭나서 성사재인의 주체자가 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하신말씀중에 ‘지소선후면 즉근도의리라’처럼 먼저할일과
나중할일을 알면 그것이 바른 이치라는 말씀입니다.
수신은 주체주의를 말함입니다. 불고가사는 다른말로 ‘바쁘다 바뻐’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천하사는 부지런해야 한다’라고
해석을 해야 올바른 것입니다.
지금 잘못풀이하는 도수로 인해서 증산도의 미래, 개개인의 미래가
저당잡혀 오고가지를 못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자신도 모르면서 확신하는 듯 하는
혹세무민의 이야기는 없어져야 할것입니다.
성사재인의 주체주의는 각론이 필요합니다. 이제까지 잘못된 총론위주의 공부는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세부적인 각론이 일의 가장 중요한 설계도가 될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축정립보다도 더 시급한 것이 자신의 정립에 있습니다. 물론 진리의 재정립도
급하겠지만 내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할것인가에 촛점을 맞추어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수신의 화두가 진법과 난법의 교차로에서 ‘나는 어떻게 할것인가?’에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성사재인의 숙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진법문화를 여는 수신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수신으로부터 출발하는 화두는 평천하를 끝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성사재인의 도수는 수신으로부터 제가,치국, 평천하 까지 계속될것입니다.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