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정약용의 사유(상제)와 서구적 사유의 차이점
중세와 근대 전체에 걸쳐 우리는 연속과 불연속 사이의 끝없는 긴장과 투쟁을 본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 사이의 연속성을 수립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결코 과거와 같은 식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근대성을 전반적으로 볼 때 연속성은 불연속성에 의해 계속 무너져 내리곤 했다. 르네상스적 연속성은 데카르트에 의해 논박 당했고, 라이프니츠의 연속성은 칸트에 의해 논박 당했고, 베르그송의 연속성은 바슐라르에 의해 논박 당했다.(이것은 연속성의 사유가 대개 형이상학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주자와 다산의 관계에서도 확인한다. 연속/불연속 문제는 근대성의 확립에 있어 건너뛸 수 없는 또 하나의 철학소이다.
연속성은 상대적이다. 거리의 가로수들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 일정하게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연속적이다. 본격적인 불연속은 이 일정함 자체가 무너질 때 탄생한다. 신과 피조물 사이의 결코 넘볼 수 없는 거리에도 불구하고 최성기(最盛期)의 중세를 지배한 세계의 연속성과 위계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뿌리두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적 사물들은 종(種)의 누층적 위계에 따라 질서지워져 있다는 아퀴나스의 자연 이해에서 전형적인 위계적 사유를 발견한다.
무한소 미분에 입각한 라이프니츠의 절대적 연속주의, '지질학적 발견들에 토대를 둔 자연에는 비약이 없다'(라이엘)고 했던 근대 과학자들의 신념 속에서 우리는 중세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연속주의의 전형을 본다. 이런 연속주의에서 우리는 경험을 초월하는 총체적 앎에의 신념, 세계의 완벽한 합리적 질서,그리고 무엇보다 위계적인 가치-존재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오랜 세월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다듬어져 온 연속주의들에서 우리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합리적(合理的) 믿음을 본다.
그러므로 주희에게서 기본적으로 매우 유사한 사유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해서 놀랄 필요가 있을까. 주희에게서 객체의 동일성과 주체의 동일성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즉, 하늘과 사람은 어떻게 이어지는가?주자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을 성즉리(性卽理)로 해석함으로써 단번에 객체와 주체 사이에 끊어질 수 없는 끈을 수립한다. 리는 논리적으로 초월적이다[未有天地之先 畢竟也只是理]. 그러나 그 리가 개개의 개체에 부여됨으로써 현실적인 내재성을 띠게 된다. 초월과 내재, 하늘과 사람은 이어진다.
그 이어짐의 양태는 리와 기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 리와 기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처럼 누층적 위계를 형성한다. 마치 모래와 금이 다양한 그러나 일정한 비율로 섞이듯이 리와 기는 일정하게 분배되는 비율에 따라 결합한다. 물론 움직이는 것은 기이다. 리는 절대적 기준으로 존재하고 기가 달리 배합됨으로써 누층적 위계가 형성된다. 마치 거울은 그대로이되 그에 끼인 때는 얇을 수도 있고 두꺼울 수도 있듯이. 이일분수(理一分殊)(程伊川)의 생각(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나무)은 주희 사유의 뼈대를 온전히 드러낸다.
존재론과 인성론의 연속성은 다시 도덕으로 확장되어 이어진다. 리는 물리(物理)이자 도리(道理)이며,자연(自然)이자 당연(當然)이다. 「계사전」의 일음일양지위도 계지자선야 성지자성야(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에 이미 존재론, 인성론, 도덕의 연속성이 잘 표현되어 있거니와, 주희는 이에 관련해 성자진실무망지위 천리지본연야(誠者眞實無妄之謂 天理之本然也)(<中庸章句>)라 한다.
도덕적 행위는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본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적연부동(寂然不動)의 경지에 다가서는 것이다. 인간에게 도덕은 명덕(明德)으로서 처음부터 주어져 있다. 다만 인욕이 그것을 가릴 뿐이다(明德者 人之所得乎天, 而虛靈不昧 以具衆理 而應萬事者也. 但爲氣稟所拘 人慾所蔽 則有時而昏, 然其本體之明 則有未嘗息者, <大學章句>) 결국 주희에게서 존재론, 인성론, 도덕은 단적으로 연결되며, 그 연결을 흐리는 기, 정, 인욕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학문의 관건이 된다.
나아가 개인과 사회 사이에도 연속성이 놓인다. 주희에게서 개인으로부터 시작해 인류, 우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들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과 갈등은 부차적인 것이다.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개인은 축소된 사회이고 사회는 확장된 개인이다. 개인의 인식과 수양은 그대로 이어져 집안과 나라로 나아가고 결국에는 천하에로 나아간다. 위로는 왕으로부터 아래로는 평민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연속성이 놓인다. 그리고 그 연속성에 또한 일정한 방향성이 부여된다. 주희의 학문은 물격(物格)에서 시작해 의성(意誠), 심정(心正)을 거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 이르는 연속적, 일방향적 사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