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정약용의 상제관 신앙의 재조명
다산이 자신의 경학체계를 통하여 제시한 세계관은 이 시대 정통이념인 주자학의 세계관을 전면적으로 탈피하는 것으로서, 사상적 혁명의 성격을 띠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주자경학(朱子經學)이 노(老)․불(佛)의 영향을 받았지만 경전(經傳)의 정신을 재정립함으로써 당시를 풍미했던 노(老)․불(佛)의 세계관을 극복하고 사상사의 혁명적 전환을 이루었던 사실과 상응되는 것이라 하겠다.
다산이 주자학적 세계관을 탈피하여 수사(洙泗)의 경전을 새로운 빛으로 조명할 수 있었던 사상적 원천으로는 고증학(考證學)-한학(漢學)을 비롯하여 왕양명(王陽明)에서 윤휴(尹鑴)에 이르는 다양한 반주자적(反朱子的) 경학(經學)이 활용되고 있지만, 그의 세계관을 혁신적으로 전환하게 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은 서학(서양과학과 천주교)이라 할 수 있다.
그는 23세 때 봄 이벽(李檗)을 통해 서학의 신앙에 빠져들었지만, 이에 앞서 16세 때부터 성호 이익(李瀷)의 저술을 접하면서 서양과학에 관련된 서학지식의 이해가 축적되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다산은 주로 마테오 릿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를 비롯한 예수회선교사들의 보유론적(補儒論的) 교리서의 영향을 깊이 받았으며, 서학의 보유론은 성리학의 세계관을 거부하고 유교경전과의 공통성을 확인하는데 주력하였던 입장이다.
다산은 36세 때(1797) 자신을 천주교도라 비난하는데 대해 그 스스로 해명하는 상소문으로 「변방사동부승지소」(辨謗辭同副承旨疏)를 올렸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약관(弱冠; 20세 무렵)의 초기에 서학서(西學書)를 읽고 마음으로 기뻐하여 사모하였으나, 태학에 들어간 뒤로 과거시험을 위한 준비에 몰두하였으며, 28세에 벼슬에 나온 뒤로는 방외(方外; 異端)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하여, 일찍이 천주교를 버렸음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다산의 주장대로 늦어도 벼슬길에 나온 뒤로 서학의 신앙을 버렸던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20대의 청년기에 그가 몇 해 동안 심취하였던 서학의 새로운 세계관은 쉽게 지워질 수 있는 한낱 단순한 신앙적 열정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산에게 서학의 문제는 주자학 정통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이를 벗어날 수 있는 정연한 논리의 사유체계를 제공하였던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산경학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기본구조는 태학생 시절인 23세 때 정조(正祖)의 70조에 걸친 질문에 조목별로 대답한 <중용강의>를 통하여 이미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곧 다산경학의 기본적 세계관은 <중용강의>를 통해 제기되고 있으며, 따라서 이 저술은 실학사상의 철학적 기반을 정립한 다산경학의 출발점이요 기본설계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다산은 <중용강의>를 작성할 때 친우 이벽(李檗)과 정밀하게 토론하였으며, 바로 그 직전에 이벽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듣고 <천주실의>등 서학서적을 읽으면서 천주교의 세계관에 깊이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던 만큼, 이 <중용강의>에는 천주교 교리의 영향이 다각적으로 수용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그는 <중용>의 주석에서 천(天)․상제(上帝)에 대한 새로운 각성과 인간의 심성(心性)에 대한 새로운 해석, 및 사물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천(天)․지(地)․인(人)의 세계구조에 대한 주자학적 인식을 전면적으로 변혁하면서 자신의 시야를 열어 가는 이론적 배경으로서 천주교 교리서의 세계관으로부터 상당히 깊은 영향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당시 다산은 천주교 교리의 이론을 공개적으로 인용하거나 드러낼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산의 수사학적(洙泗學的) 경학을 구성하는 해석체계에서 천주교 교리서가 비쳐준 빛을 제거한다면 현재와는 엄청나게 다른 양상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곧 다산이 천(天)․상제관(上帝觀)에서 사천(事天)의 신앙적 인식이나 명덕(明德) 개념을 효(孝)․제(弟)․자(慈)로 파악하고 있는 점은 윤휴(尹鑴)와 상통하고, 성(性)을 3품(品)으로 제시하는 이론에서 순자(荀子)와 흡사하기도 하며, 오행설을 부정하는 자연관에서 홍대용(洪大容)과 일치하는 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 유사성을 찾아가는 것으로 다산경학이 추구하는 세계관의 전반적 구조와 논리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 전반적 이론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사상적 원천은 서학의 교리서와 가장 깊은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다산은 주자학의 목적이 성인을 이루는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인을 성취할 수 없는 이유로서 ①천(天)을 이(理)라 하고, ②인(仁)을 만물을 살리는(生物) 이(理)라 하고, ③ 중용(中庸)의 용(庸)을 평상(平常)이라 하는 세 가지로 지적하면서, 이에 대응하여 성인이 되기 위한 그 자신의 방법으로 ①신독(愼獨)하여 하늘을 섬기고, ②서(恕)에 힘써서 인(仁)을 구하며, ③항구(恒久)하여 중단함이 없을 것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주자학적 세계관이 기초하는 성리설의 기반이 원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한계를 선언하는 것이요, 이와 반대로 그 자신이 지향하는 새로운 세계관의 기본방향은 이(理)의 본체를 찾아가는 사변적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신독사천(愼獨事天)․강서구인(强恕求仁)․항구불식(恒久不息)의 적극적 실천의 현실적 세계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