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의 공부론을 통해서 본 다산의 '행사(行事)' 개념
다산의 학문이 행위와 실천을 중시하고 있음은 이미 공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뒤에서 자세히 논의될 것이나 그의 덕의 개념은 행사와 실천의 개념과 맞물려 있다. 그의 미발설에 대한 비판도 기실 이 실천의 문제와 함께 하고 있다. 우선 다산의 말을 들어 보자.
<중용(中庸)>의 '희노애락의 미발(未發)'도 다만 '희로애락의 미발'이라고 말했을 뿐인데 이에 가로되 '사려지각(思慮知覺)의 미발(未發)'이라고 말했다. <맹자(孟子)>의 측은․수오․사양․시비 등은 마음속에서 동(動)했으나 행위에는 미치지 못하므로 다만 인․의․예․지의 단서가 될 뿐이며, 인․의․예․지가 바로 '행사(行事)'에 나타나 인(仁)으로 되고 의(義)로 되고 예(禮)로 되며 지(智)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인․의․예․지를 내부에 있는 성(性)이라고 인식하고 반대로 측은․수오․사양․시비를 인․의․예․지에서 발현하는 것이라고 하니 이는 모두 심성을 너무 중요하게 본 데서 비롯된 것으로 공자가 인(仁)의 뜻을 질문한 안연(顔淵)에게 사물(四勿)로 답변하는 뜻과는 동일하지 않다.
위의 글에서 다산은 미발의 상태란 정(情)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 뿐, 사려지각(思慮知覺)은 활동하는 상태임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주자의 경우에는 미발의 상태란 지각은 살아 있으나 사려가 아직 일어나기 이전의 상태를 의미한다. 주자는 '심(心)에 지각(知)이 있는 것은 귀에 듣는 능력(聞)이 있고, 눈에 보는 능력(見)이 있는 것과 같이 마찬가지의 (미발의) 때가 되니 비록 미발이라도 그것들이 없지 않다. 마음에 사려(思)가 있는 것은 귀에 듣는 바(聽)가 있고 눈에 보는 바(視)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발이 되니, 하나라도 있으면 미발일 수 없다'라고 하여 미발이란 대상 세계에 대한 판단과 의지가 개입되기 이전의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산이 미발에 대하여 희로애락의 미발을 의미할 뿐 결코 '사려지각'의 미발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미발에 대한 본체론적 해석을 적극적으로 걷어 내고자 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즉 미발을 심의 체(體)의 상태로 둠으로 인해, 그 운동성이 급격하게 약화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다산이 볼 때, 미발을 성(性)으로 혹은 체(體)로 규정하는 것은 유학의 존립이유인 실천적인 가치 실현을 방해하는 것으로 인식한 것이다. 다산이, '옛날의 학문은 실천적인 행위(行事)에 힘을 쓰고 행사로서 마음을 다스렸으나, 오늘날의 학문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 마음을 써서, 이 마음 다스리는 일로 인하여 일을 폐하게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앞이 인용문에서 이야기하는 바와 같이 인의란 모두 구체적인 실천행위(行事) 이후에야 비로소 성립되는 것이라는 주장들은 모두 미발에 대한 다산의 적극적인 해석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다산의 견해가 성리학적 해석과 가장 극명하게 충돌되고 있는 것이 문산(文山) 이재의(李載毅)와의 인성 논쟁이다. 다산은 문산과 주고받은 서신을 통해 '행사(行事)'로서만 드러나는 덕(德)의 의미를 분명하게 강조한다. 이 문제는 다음 장에서 좀 더 자세하게 분석될 것이나, 문산은 인의예지의 '이름'은 밖에서 이루어지지만, 인의예지의 '이치'는 안에 갖추어져 있다고 본다. 반면 다산은 인의예지의'이름'은 밖에서 이루어지고, 인의예지가 '될 수 있는 이치'만이 안에 갖추어져 있다고 하였다. 즉 다산은 덕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마음 속에 있다고 본 것이지, 이미 정해진 '이치'가 안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덕이 과연 행사를 통해서만 들어 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성리론자들은 의문을 표한다. 그들은 '행사(日用行事)'로 지칭되는 이 <일상적인 세계의 삶과 행위>에 대하여 좀 더 본질적인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을 주장한다. 다산의 행사의 개념은 성리학의 맥락에서는 형이하자의 영역이다. 이 형이하자의 영역을 어떻게 형이상자의 세계와 연결할 것인가의 문제가 공부론의 중심을 이루었다. 다산에 있어서의 행사의 개념은 하학(下學)의 개념과 사실상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성리학자들의 눈으로 보면 현상적인 개개의 행사에 집착하는 것은 자칫 세계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에 장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퇴계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우려하고 있다.
이른바 널리 행해지는 일상생활의 일이란 그 범위가 천 가닥 만 갈래여서 진실로 끝이 없습니다. 어버이를 섬기는 일로부터 만사 만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단(多端)하니 이렇게 끝없는 곳의 다단한 것을 낱낱이 만족하게 하려면 궁리(窮理)와 거경(居敬)의 지극한 경력이 없으면 끝내 이룩하기 어렵습니다.
퇴계에 따르면 일상의 일이란 진실로 끝이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의 구체적인 행사와 실천이 유의미함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것이 종국적으로는 이일(理一)의 세계와 만나야 하는 것이다. 퇴계가 소학을 중시한 이유는, 소학의 체계는 이 일상의 마디마디를 서로 이어주고 연결해 주는 이음새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퇴계에 따르면, 소학의 가르침을 잠시라도 잊지 않는다면,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이에 천리(天理)가 유행해서, 마디마디 부분 부분이 서로 일치해서 들어맞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당부하고 있다. 소학은 끝없이 계속되는 막막한 일상 속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 가를 알려 주는 하나의 지표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언제나 경(敬)의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 경(敬)은 '마음에 아무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心中不容一物)'는 것을 의미한다. 퇴계는 이를 정문(程門)의 지결(旨訣)이라고 단정한다. 심지어는 선한 행위까지도 털끝만큼도 집착해서는 안될 것임을 주장한다. 연평(延平)에 따르자면, '만약에 항상 가슴속에 남겨 둔다면 이것이 도로 쌓여 한 덩이의 사사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도를 행하고자 한다던가, 격물을 하고자 한다는 생각까지 가슴속에서 다 버려야 한다. 다만 경의 상태가 불교의 무념무상의 상태와 구별되는 것은 '마음이 사물에 대해서, 오기 전에는 맞이하지 않고, 바야흐로 오게 되면 다 조응(照應)하고, 이미 조응하고는 남아 있지 않아, 그 본체의 맑음이 밝은 거울이나 고요한 물과 같아서 비록 매일 같이 일을 응접하더라도 마음속에는 한 물건도 남아 있지 않는' '물래이순응(物來而順應)'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상 속에서 행해지는 경(敬) 공부의 요체이다.
그러면 다산의 경우에는 이 다단하게 벌어지는 '행사'의 세계를 과연 어떻게 체계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는가? 다음에 보이는 다산의 발언은 그가 비록 퇴계와 동일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해법에는 상당한 편차를 지니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 답의 일단은 '물(物)'에 대한 다산의 인식에서 나타난다.
천하의 물은 많고 많아서 교력도 그 수를 다 헤아리지 못할 것이고, 박물도 그 이치에 다 통하지 못할 것이요, 비록 요순 같은 성인에게 팽전의 수명을 갖도록 해 준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까닭을 알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다산의 이러한 주장은, 만약 앎의 이룸이 셀 수 없는 많은 물에 대해 낱낱의 이(理)를 탐구한 이후에 가능하다고 한다면, 궁리는 반드시 무한한 이(理)의 심연에 빠져 이의 전체적인 파악을 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성리학의 궁리론에 대한 다산의 이러한 비판은 그의 독특한 격물설의 내용과 함께 맞물려 있다. 그는 격을 '量度'으로 정의하여 격물이란 '물에 본말이 있음을 헤아리고 재는 것' 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따라 앎을 이룬다(致知)는 것은 '먼저하고 뒤에 할 바를 지극히 아는 것'이 된다. 다산의 격물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그의 '행사'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