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의 미발 공부와 하학처의 문제 2
주자의 이러한 견해는 지금까지 어둠 속에 묻어 두었던 미발에 대한 존양공부를 다시 회복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주자는 장남헌과의 토론과정에서 미발시기 존양공부를 쇄소응대진퇴의 소학공부로 보면서 동정(動靜)에 각각 공부를 두어야 한다는 입장을 개진한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놀라운 해석상의 차이를 드러낸다. 이제 미발은 평범한 현실 일상의 세계로 내려온다. 즉 구설 시기에는 미발과 이발을 형이상하의 구분과 동일시하였고, 따라서 형이하의 이발의 상태에서 공부함으로써 형이상의 경지를 아우를 수 있는 방법으로 불교의 고원한 추상성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반면 신설시기에는 미발과 이발을 모두 형이하의 세계로 보고 양자가 맡은 공부의 영역에 차이를 두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이제 공부 방법에 있어서도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그는 미발시 일용공부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앞서의 강론과 사색은 오로지 마음을 이발로 간주하고 이에 따라 일용공부도 다만 찰식단예(察識端倪)를 최초의 공부할 곳으로 여겼다. 이로 인해서 평일에 함양하는 일단의 공부를 놓쳤다. 그리하여 마음이 언제나 산만하고 어지러워 깊이 침잠하고 순일(純一)한 맛이 없게 되니 드러나는 말과 행동이 또한 언제나 급박하고 들떠서 다시는 온후하고 심후한 모습이 없게 되었다.
위에서 '찰식단예'의 공부법은 호상학의 공부법이다. 즉 마음이 외물과 접촉할 때 고요하게 그 단서의 선악 여부를 스스로 반성하여 존양하는 이른바 '선찰식후존양(先察識後存養)'의 공부법이다. 주자는 이러한 공부법이 오히려 마음을 병들게 하고, 공부가 일상적인 삶과 분리된다는 사실을 통절하게 느끼게 되었다. 여기에서부터 그는 미발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시도한다. 이제 미발은 특별한 일이 없고 사려할 필요가 없는 한가한 때('日用間空閑時') 정도를 가르킨다. 그래서 미발은 이발의 '임사시(臨事時)'와 상대적인 차이 밖에 없는 '무사시(無事時)' 혹은 '평시'나 '평일'과 상호교환이 가능한 말이 된다.
그러면 이제 다시 미발설에 대한 다산의 비판으로 눈을 되돌려 보자. 미발이 좌선입정의 상태와 구별이 되지 않고, 공부론이 없다는 다산의 비판은 중화구설 시기의 주자설에 대해서는 성립될 수 있다. 미발의 상태를 이렇게 인간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순수 본연의 상태, 즉 성(性)의 상태로 파악하고, 미발시의 공부란 가능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고 하는 것이 중화구설에서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기 구설의 성립배경도 종래의 미발설이 지닌 불교적 요소에 대한 극복에 있었음을 감안 할 때, 다산의 비판은 상당히 급진적인 부분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미발을 형이하학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중화신설에 대해서는 다산의 비판이 상당 부분 혼선을 보여 주고 있다. 다산은 미발설에 대한 정조와의 문답에서 '주자는 사람은 반드시 미발시에 공부를 해야 한다'라고 하니 신이 따르는 설은 그것입니다. 라고 하여 주자 공부론의 정론인 중화신설에 대해서 이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조와의 문답과정에서 이렇게 주자의 정론에 대한 이해를 드러낸 다산도, 다른 대목에서는 성리학의 공부론이 지닌 불교적 요소만을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예로 그는, '주자는 미발을 성이라 보기도 하고, 또 체라고도 하고 미발을 언급할 때마다 혼연이니 담연(湛然)이니 말하여 명경지수와 같다고 주장한다.'라고 하여 그 선학적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미발이란 희로애락의 정이 발하지 않았음을 의미할 뿐이지 심이 마침내 아무런 사려도 없게 되어 마치 선가(禪家)에서 입정한 것처럼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희로애락은 비록 발하지 않았더라도 계신공구 할 수도 있고 궁리할 수도 있을 것이며, 의를 생각하고 천하의 사변을 생각할 수도 있으니, 미발시에 공부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라고 하여 마치 성리학에서 미발시에 공부가 없다는 것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주자가 미발시의 공부를 강조한 것은 결코 본체와 현상. 정과 동. 내와 외를 엄격히 구분하자는 이원론적 태도로부터 연유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부의 이러한 이원론적 구분을 극복하고, 양자를 통합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주자가 소학으로 지칭되는 하학의 영역을 미발의 세계와 연결시키고자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논의들을 감안해 볼 때, 미발 공부에 대한 다산의 주장에는 다소간의 혼란이 드러난다. 미발이란 결코 다산의 주장처럼 좌선과 같은 적연부동의 상태로 되어 일용행사의 공부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다산의 개념적 혼란에서 연유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성리학과 다산의 공부론 사이에 놓여 있는 근본적인 차이에서 연유된 것으로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다산은 미발을 성리학적 본체론적 관점이 아닌 전혀 새로운 의미로 해석함으로써, 그의 철학의 한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다시금 처음 제기했던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자. 성리학자나 다산이나 모두 함께 일용행사와 일상적인 삶을 중시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인진데, 그렇다면 양자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들의 공부론에서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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