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과 무질서의 아사리판 세상
1945년 8월 15일 해방은 온 국민에게는 환희를 의미했지만 국민들이 원하는데로 한국 사회는 순탄하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해방정국은 그야말로 아사리판을 걷는 격동의 시대로 남북이 두개로 국가가 나뉘어 세워졌고, 1950년 6.25전쟁이 곧 바로 터집니다.
해방정국에서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것이 친일파 청산있는데 그 작업이 정부수립 이후로 미루어졌던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헌의회는 반민족행위자처벌법(반민법)을 제정했고 반민특위를 구성해서 친일행위를 한 자들을 구속 시켜 나갔지만 반민특위는 1년이 못되어서 활동을 중지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이승만정부의 도덕적 정당성에 큰 오점을 남겼고 결국 사회적으로도 크나큰 불씨를 남긴 것입니다. 친일파 미청산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한국인들에게 부정적인 유산을 남겼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내 혈육을, 내 가족을, 내 친척을, 내 동리 사람을 체포, 구금, 투옥시켜서 잔인한 고문을 하고, 단도로 목을 베고, 처참하게 구덩이에 묻어버린, 천인공노할 친일파 동족이 해방과 더불어 또 다시 금권과 권력을 장악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내 곁에서 미소 짓고 있다면 이 보다 더큰 지옥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도덕이라는 것은 쓰레기 더미 속 에나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도덕을 부르짓는 자들이, 양심을 부르짓는 자들이, 과거 동족을 말살했던 자들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양털을 쓰고 도덕주의자 흉내를 낸다면 국민들의 심정은 참담할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시류와 영합하는 기회주의자들이 활개를 치고, 국민을 폭압했던 자들이 재차 완장을 차고 있다면 국민들은 가치관에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시대를 적나라하게 이영희는 <역정>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속된 말로 아사리판이었다. 속이면 돈 벌고, 아첨하면 일제가 남기
고 간 적산(敵産) 건물 가로채고, 영어 몇 마디 하면 미국 군정청의 통역관
되어 한 자리 차지앉고, 남의 눈총 따위 무시하면 국방경비대나 경찰에 들
어가고 일본 경찰이 남기고 간 일본도를 차고, 미군정이 채워주는 권총 차
고, 그후 틀림없이 입신영달의 길을 달렸을 것이다. 그것이 당시의 세태였
던 것이다. 일체의 윤리와 행동 규범이 무시되고, 간교와 뻔뻔스러움과 탐
욕과 냉혈이 그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이러한 혼란과 혼돈의 상황에서 6.25전쟁이 터졌고, 국민은 피난길에 굶어죽고, 얼어죽고, 포탄에 찢기어 죽어나갔고, 수 많은 이산가족이 생겨나는 현실에서 이승만은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부산정치파동으로 직선제 개헌을 통과 시키는 아사리판 정국이었습니다.
수십만 사람들을 굶어 죽게 만든 국민방위군사건은 또한 어떻했습니까.
지배자들이 부패하고 탐욕 스러울 때 국민들이 어떠한 고통을 겪게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국민 방위군 사건의 전모를 보면 국민의 불신이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951년 3월 29일 당시 국회는 전쟁통이라 부산에 있었다. 국민 방위군
사건은 대규모 부정사건이었다. 한국 전쟁 중 제2국민병을 국민방위군에
편입해 남하시키는 과정에서 50만 국민방위군의 식량과 부식비 등 50억
원 상당을 국민방위군 간부가 횡령, 수많은 젊은 장병들이 굶거나 얼어
죽은 것이다. 횡령금액 중 상당액이 정치자금으로 전용된 것으로 알려진
이 사건의 진상규명이 한 때 권력에 의해 방해받자 이시영 부통령이 반발
하며 사표를 제출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 사건은 김윤근 국민방위
군 사령관, 윤익헌 부사령관, 박기환 보급과장 등 3명이 군사재판에서 사형
을 선고받고 8월 13일 처형되어 일단락 되었지만, 국민은 불신했고 분노했다.
이시영 부통령이 사표를 낼 정도면 방해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짐작이 가는 대목입니다.
이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사회에 새 새벽을 열어준 것은 다름아니라 국민들 스스로가 느낀 새로운 변화의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는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을 외면하면서 군인, 경찰, 깡패를 동원해서 철저하게 국민과 학생을 짓밟아 나갔습니다. 오직 정치적으로 독재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을 뿐 그들은 잘못을 인정하거나 최소한 고쳐나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패된 지도자, 부패된 정권은 결국 국민들의 심판으로 파국을 향해 달려 나가고 말았습니다. 이승만 정권이 패망하고 결국 종말을 고한 것은 변화하는 사회, 변화되는 국민의 새로운 변화요구를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독재자는 변화에 순응하지 않고 국민들을 억압하면 반드시 그 응보의 댓가를 받습니다. 역사는 그것을 우리들에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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