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공부론- 회복에서 발전
퇴계의 주리와 다산의 신학이 선명히 갈라지는 지점은 어디일까. 그것은 바로 두 진영의 수양론적 도덕론적 차이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자학이 회복의 모델(recovery model)이라면 다산학은 발전의 모델(development model)이다. 이 점에서 그의 사유는 실학 혹은 근대와 이어져 있다. 그렇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다산의 발전 모델이 도덕적 신성의 발전이지, 근대나 실학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실용적 합리성의 발전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학의 관점에서 그는 <과도적 위상>을 갖는다. 그는 그의 과학적 사고와 사회정치적 개혁을 어느 편이냐 하면 자신의 신학과 <분리시켜> 논의했다. 그는 경학에서는 유학이었지만, 경세학은 법가적 사유를 원용했던 것이다.
우선 주자학의 <회복> 모델을 개략해 보자.
이(理)는 자연 세계뿐만 아니라 인문적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理)는 자연의 <질서>로서,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의 열매가 익으면 가을의 걷이와 조락을 예비하듯, 또한 인문 세계의 <규범>으로서 개인적 정서와 선택, 사회적 관행과 제도의 준거(準則)로 존재한다. 우주 안의 모든 길(道)은 이 보편적 <질서-규범> 속에 있다. 그래서 이일분수(理一分殊)이다. 이것은 영어의 로(law)가 <물리적 법칙>과 <인륜적 규율>을 포괄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이것이 젊은 시절 왕양명(王陽明)으로 하여금 대나무를 몇 날 며칠 뚫어지게 쳐다보게 했다.
우주적 <질서-규범>은 우주적 화해와 조화의 전망에 있다. 그것은 사적 이기심을 위한 적나라한 투쟁의 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자학의 사유는 동물적이 아니고 식물적이다. 모든 비유가 초목과 산수로 되어 있는 것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인간은 동물적 습성을 자제하고 식물적 품성을 키워야 한다. 그리하여 자기 욕망의 억제와 타인에의 배려, 즉 인의(仁義)가 우주적 규범이면서 질서를 보장하는 덕목이 되었다. 주자학으로 하여 본래 인문적 덕목이었던 인의(仁義)가 우주적 질서의 위상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인의(仁義)는 이(理)의 실 내용으로서 절대적 지위를 얻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신학적 사고의 일종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理)는 <절대>로서
1) 사물을 생성 변전시키고(元亨利貞),
2) 사물들간의 질서를 관장하며(道, 性),
3) 각개 사물의 궁극적 의미를 현시해 준다(仁義禮智).
1)은 신학이고, 2)는 자연학이고, 3)은 도덕학이다. 근대적 인식은 이 셋을 통합하는 주자의 사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주자의 구상은 일반적 신학이나 전통적 형이상학에서는 아주 자연스런 것이다. 그 안에서 존재와 당위, 사실과 가치, 과학과 도덕, 논리와 윤리는 통합적 지평을 갖고 있다. 학자들은 과학이 아니고, 그렇다고 신학이라 부르기엔 뭣한 이 독특한 사유에 도덕형이상학(moral metaphysics)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것은 일상적 규범을 우주론적 형이상학적 토대 위에 정초해 놓았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理)의 규범이 이처럼 <영원의 근원>을 갖기에 주자학에서 자연과 자유는 일치한다. 영원의 규범이 인간의 본질로 주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은 그 명령을 자의적 판단과 상황적 필요에 따라 거부하거나 수정, 변용할 수 없다. 주자는 말했다. '길(道)이 인간으로 하여 비로소 존재한다고 오해하지 않도록 하라(道非因人方有).'
주자는 이(理)가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와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의 두 얼굴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구절은 주자학을 말하는 사람의 입에 언제나 회자(膾炙)되면서 그 정확한 함의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비판적 연구자들은 전자를 <사실>, 후자를 <당위>로 구분하고 주자가 이 둘의 일치를 아무런 논리적 매개 없이 일치시켰다고 불평한다. 이는 문자를 정밀하게 읽지 않은 독법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늘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을 통해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에 이르러야 한다고 일렀다.
여기서 소당연지칙이란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준칙(則), 즉 규범을 가리키며, 소이연지고는 바로 그 준칙의 존재 근거를 가리킨다. 전자가 규범의 현실적 측면(用)이라면 후자는 그 형이상학적 존재론적 측면(體)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둘은 이원화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體用一原). 그리고 이 발상이 가능한 이유는 그것이 앞에서 말한 신학적 지평을 원론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 준거의 문제는 서양 철학이 상대주의와 객관주의라는 이름 하에 오랜 논의를 거쳐온 아포리아이기도 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기(理氣)의 사유는 상대주의와 객관주의의 논리적 딜레마에 그다지 깊이 주의하지 않았다. 그들이 관심을 둔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그 보편적 규범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이냐 이었지, 그 존재 여부를 정당화하는 데 정력을 소모하지 않았다. 그래서 형이상학적 독단이란 이름을 얻기도 한다. 이는 하느님이 우주와 인간을 창조했다는 신학적 독단과 이웃하고 있다. 유학과 서학은 근대의 입장에서 보면 공히 독단간의 싸움으로 비칠 수 있다.
퇴계의 주리 또한 전형적으로 <회복>의 모델이다. 그는 늘 '기(氣)의 자연발현(自然發現)이 이(理)의 주체(本體)'라는 화담의 자연적 낙관론을 비판하면서, 이(理)의 본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주시와 자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천지만물(天地萬物)이 이(理)와 더불어 하나'라는, 얼핏 자연적 낙관으로 오해되기 쉬운 주자학의 언설을 그는 실존적 자기 수련을 통한 우주적 합일의 언명으로 읽었다.
인(仁)이라는 것이 비록 만물과 더불어 일체라고는 하나, 그렇지만 (그것은 미리 확보된 것이 아니라) 반드시 나(自己)를 본원(原本)으로 주재(主宰)에로 (다가가야) 한다. 그래야만 물아(物我)가 일리(一理)로 얽혀(相關) 있다는 것이 절실(親切)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가슴에 가득 찬 동정심(compassion 惻隱之心)과 함께 어디든 막힘 없이 뚫고 들어가는 것, 이것이 다음 아닌 인(仁)의 정체(實體)이다. 만일 이 이치(理)를 모르고서, <천지만물이 인(仁) 안에서 한 몸>이라고 반성 없이 단정해 버리면 이른바 인(仁)이란 구체성을 찾을 수 없는 바, 그것이 나의 (실존적) 몸과 마음에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퇴계집(退溪集)』, 7:49-50)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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