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섬나라 통가의 10대 청소년 6명이 1966년 통가의 작은 무인도 아타에서 발견됐다. 이때는 이들이 실종된 지 1년3개월이 지난 후였다. 이들은 통가의 수도 누쿠알로파의 항구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160km를 항해했다. 위험한 항해인지 미처 알지 못한 채로. 항해 중 폭풍에 휩쓸리면서 8일간 물과 음식도 없이 바다 위에서 표류해야 했다. 그러다가 결국 아타 해안으로 휩쓸려 갔다. 그곳에서 오두막을 짓고 불을 지펴 살았다. 1년 넘게 바다에서 생선을 잡아먹고 바나나와 파파야를 따 먹으면서 지냈다.
이 이야기는 당시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호주 사진작가 존 카르네몰라는 이때 이들과 함께 섬으로 돌아가서 이들이 그곳에서 어떻게 먹고 자고 생활했는지를 카메라에 사진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하고 수십 년이 지나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영 잊히는 듯했다.
VICE가 최근 당시 19세 청년에서 올해 74세가 된 시오네 필리프 토타우(마노)의 이야기를 들었다.
저는 통가의 작은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지리를 공부할 때 피지와 뉴질랜드, 호주를 지도에서 봤는데 살던 곳보다 훨씬 크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항상 ‘어떻게 하면 이 작은 곳을 벗어나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을까’를 궁리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 친구 한 명이 “피지로 여행을 갈 건데 너도 가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낚싯배를 훔쳐 간다는 계획을 말해줬습니다. 그래서 “같이 가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방과 후에 바닷가를 걷다가 배를 발견했습니다. 그 배는 한 남성이 오후 6~7시에 항상 같은 곳에 세워두던 배였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그 배를 타고 출항했습니다. 모두 15~19세의 소년 6명이 배에 올랐습니다. 그중 한 명이 운전하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선원이었는데 똑같은 배를 보유해 만져본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돛을 올리고 바람을 가르며 항해했습니다. 항구의 불빛이 안 보일 때쯤에는 이미 캄캄해졌습니다. 바람과 파도도 거칠어졌습니다. 폭풍이 왔을 때 돛을 내리지 못해 돛도 찢어졌습니다.
다음 날 약한 비가 내리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돛도 없이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물과 음식을 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희망을 품으려고 노력했지만 어려웠습니다. 모두가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8일째가 됐을 때 아타섬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날 오전 9시쯤이 됐을 때 바람이 불면서 섬과 조금씩 가까워졌습니다.
캄캄한 자정쯤이 돼서야 섬에 다다랐습니다. 아타섬은 높은 산이 있는 화산섬이었습니다. 일단 아이들에게 “섬이 파악이 될 때까지 배에서 나오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저는 배에서 내려 헤엄쳐 섬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 섬이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건 섬이 아니고 저였습니다. 머리가 핑핑 돌면서 어지러웠습니다. 8일간 음식을 못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에게 소리를 쳤습니다. 그리고 모두 살아서 섬에 도착했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붙잡고 울었습니다.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고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처음 한 일은 섬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젖은 나무 조각을 밟으며 산을 탔습니다. 나무 조각을 집어 들고 나오는 물을 입으로 핥았습니다. 이게 8일 만에 처음 마신 물이었습니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주변의 절벽을 내려봤습니다. 그때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불을 피우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약해져 불을 붙이기 어려웠습니다. 바다로 내려가 조개 등 음식을 구했습니다. 파파야와 코코넛 등 과일을 발견했습니다. 그동안 불을 붙일 수 있을 만큼 회복했습니다. 매일 불을 붙이다가 결국 성공했습니다. 불을 피울 때까지 3개월이 걸렸습니다.
다음 단계는 작은 집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전 코코넛 잎을 엮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잎을 엮어 집 벽을 만들었습니다. 잎을 모두 엮는데 2주 정도가 걸렸습니다. 집안 중간에 불을 붙이는 공간을 만들었고 침대를 만들려고 바나나잎을 잘랐습니다. 그런 다음 기도와 불, 바나나 나무 관리 이런 식으로 당번을 나눴습니다. 생존하기 위해 모두가 오랫동안 섬에 살았었던 것처럼 함께 일을 분담했습니다.
전 아타섬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가족이 보고 싶었습니다. 이게 한 달 후 섬을 탈출하려고 뗏목을 만들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큰 나무를 구한 뒤 불로 가지를 잘랐습니다. 그렇게 뗏목을 완성해 바다에 띄워봤지만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그때는 절대 탈출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희망을 품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곳에 얼마나 있었는지 생각 안 하려고 했습니다. 또 예상치 못한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1년3개월이나 있었다고 못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섬에 다가오는 배를 봤습니다. 6명 중에 스티븐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배를 처음 목격했습니다. 그러고서는 바다로 뛰어들어 배 방향으로 헤엄치면서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선장이 나중에 구조가 되고서야 들려준 이야기지만 그는 처음에는 스티븐의 목소리가 새소리인줄 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곧이어 바다에서 스티븐을 발견했고 섬을 둘러봤을 때 바닷가에 알몸으로 서 있는 긴머리 소년 다섯 명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그때 기분은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세상 만물이 기뻐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고 통가에 있는 가족을 다시 보러 갈 수 있었습니다.
통가로 돌아와 집과 교회, 섬에서 3일간 무사 귀환을 축하하는 축제를 열었습니다.
섬에서 지냈던 당시 시간을 돌아보면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느낍니다. 학교에서보다 많은 것을 섬에서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큰 난관을 맞닥뜨리면서 살아남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