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대사전의 기초가 마련된 것은 16세기다. 16세기에 출판이 본격화되면서 필사본들에 대한 엄밀한 고증과 비교 작업이 요청되었는데, 이때 편집자들은 크게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하나는 전승 과정 중 잘못 표기된 단어들의 처리이다. 잘못 베낀 단어 중에는 유일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표현(hapax legomena)도 많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이 단어들은 틀렸다고 함부로 지우거나 교정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다른 하나는 단어들이 올바르게 표기되어 전해져 왔다 해도, 의미 변화로 인해 텍스트 이해가 안 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원래는 일상어였는데 학술전문어로 사용된 경우와 사회 문화의 변동으로 생겨난 의미 변화 경우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텍스트를 고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당시의 서양고전문헌학자들은 한 단어가 형태적으로 시대와 지역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가는지 그리고 그 단어의 의미 변화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사전을 꿈꾸어 왔다. 이 꿈이 구체화되어 나온 것이 바로 ‘Thesaurus linguae Latinae’ 사전이었다.
이 대사전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개별 단어에 나타나는 문법적, 혹은 언어학적 특이 사항들을 모두 기술해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개별 단어의 일생사(fatum verbi)를 기술하는 것이다. 한 개인의 전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전의 개별 항목은 한 단어가 어떻게 태어나서,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형태와 의미가 변하고, 시대와 공간의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떤 다른 단어로 대체되었는지, 혹은 축소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에 대한 기술을 담고 있다.
이러한 사전이 세상에 등장한 해는 1531년이고, 이 사전을 편찬한 사람은 사전학의 시조인 로베르트 스테파누스(R. Stephanus)였다. 그러나 서양고전문헌학이 더욱 엄밀해지고 체계화됨에 따라, 스테파누스의 사전은 더 이상 학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많이 부족한 저술이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자신들의 학문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전 프로젝트를 기획하는데, 이 기획의 최초 제안자가 볼프(F. Wolf)였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그는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지를 돌아다니며 서양고전문헌학자들을 설득하고 규합하는 동시에 기존 자료 수집, 개별 단어 항목 기술, 용례 사용 등에 대한 이론 준비도 함께했다.
이러는 중에 사전 기술 방법론과 관련해서 쾰러(G. Koeler)가 중요한 제안을 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모든 개별 단어는 크게 세 분야, 즉 형태, 의미, 통사적 관점으로 나누어 기술하자는 것이다. 개별 항목 서술은 먼저 형태에 관하여 서술하고, 여기에서 해당 단어의 원형, 글자체, 문법적 특이 현상들, 곡용, 활용, 시대 표기를 동반한 변이형들 그리고 음절 장단을 표기하고, 의미 기술은 일반(보편)적인 것이 특수(개별)적인 것보다, 고유한 의미가 비유적인 의미보다, 구체적이고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추상적이고 지적인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의 앞에 기술하자는 것이다.
한 평생을 라틴어 대사전의 ‘P’편 기술에 바친 피터 플레리를
기리는 신문기사.
아울러 그는 개별 항목의 의미 분야를 서술함에 있어서 지켜야 할 세 가지 규칙을 제시하는데, 첫째, 어원은 반드시 서술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 용례 사용은 시간순으로 해 주어서 단어 사용의 빈번도와 의미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의미를 나누고 분류할 때 통사적 특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용례 사용과 관련이 있는 통사 부분에 대한 쾰러의 제안은, 한 단어의 생태적 통사 환경을 기술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한 단어가 어떤 단어와 동반 사용되는지와 문장의 어떤 태로 나타나는지를 기술하자는 제안인 셈이다.
예를 들어 명사 혹은 실사(substantivum)와 동반하는 형용사, 동사 혹은 술어(praedicatum)와 함께 사용되는 부사나 전치사를 같이 표기해 주고, 술어와 목적어 관계도 반드시 기술해 주자는 것이다.
정반대로 드물게 나타나는 경우도 반드시 서술해 주자고 한다. 예를 들면 신탁이나 속담, 혹은 격언들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생략된 용례(elleipsis)와 문체적 효과를 노리고 반복되나 문장에서 제거해도 문장 이해에 해를 끼치지 않는 부분을 지니고 있는 용례(pleonasmos)들, 그리고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용법도 표기하자고 제안한다.
이러한 논의 중에 1858년에 라틴어 대사전과 관련해서 중요한 학회가 빈에서 열린다. 이 회의에서 함(K. Halm)은 작업 범위를 기원 후 6세기 중반까지로 한정하고, 중점적으로 기원 후 2세기까지의 문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루자는 의견을 제안한다. 아울러 한 단어의 운명을 기술하는 데 필요로 하는 산스크리트어, 그리스어, 라틴어를 모어로 하는, 고이탈리어 등 로망스 제어에 대한 언급을 표제어 기술에 포함시키자고 제안해 큰 호응을 얻는다.
이는 어떻게 해서 라틴어가 변해가고, 혹은 사어로 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빈 회의 이후 라틴어대사전 프로젝트는 여러 문헌학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추진되었지만 누구보다도 뵐핀(E. Woelfin)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몸젠(Th. Mommsen)의 주도하에 베를린, 괴팅엔, 라이프치히, 뮌헨, 빈에 소재하는 5개의 학술원이 참여하는 라틴어대사전 위원회가 1893년 10월21일에 구성된다. 이렇게 구성된 위원회는 1858년 빈 회의의 내용을 기초로 프로젝트 계획을 세분하고 구체화하는데, 예를 들면 자료 수집 및 정리, 출판 기획, 집필에 참여할 편집자 모집 등의 학술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행정적인 업무, 예를 들면 재정 문제 등에 대한 규칙과 내규를 확정하고, 전쟁, 자연 재해, 어떤 예외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천명한다.
이 천명은 독일의 토이브너(Teubner)출판사와 맺은 출판 계약에 잘 나타나 있다. 어떤 내외의 상황 변화에도 출판 계약은 유효하다고 되어 있다. 이는 어떠한 상황 변화에도 라틴어대사전 프로젝트는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 의지는 실제로 양차 대전으로 치른 현대사의 역경, 나치즘, 파시즘, 좌우 이념 투쟁에 의한 정치적 요동, 사회 체제의 성격 변화에 따른 혼란을 극복하고 라틴어 대사전 프로젝트를 오늘날까지 밀고 나온 힘이었다.
이 원칙은 1949년 국제 위원회로 확장될 때 부분적으로 수정되지만, 본질적인 부분, 즉 개별 항목 기술 방식에 대한 합의는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이러한 합의에 기초해 라틴어대사전 프로젝트는 본격화되었고, 사전이 편찬되면서 새로이 밝혀진 사실이 많은데, 재미있는 몇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프랑스어로 귀를 뜻하는 ‘oreille’라는 단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라틴어대사전 집필 중에 밝혀진다. 이 단어는 원래 라틴어 귀의 애칭 ‘auriculae’에서 온 것인데, 이를 프랑스에 퍼뜨린 것은 엠피리쿠스의 의학서다.
그러니까 이 의학서가 널리 전파되는 중에 ‘auriculae’라는 단어가 골족의 ‘귀’에 해당하는 말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예이다. 라틴어대사전에는 이런 종류의 로망스 제어와 관련된 사실들을 다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로망스 연구에 자료로서 결정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더 보자. 영어 ‘city’는 원래 라틴어 ‘civitas’에 기원한다. ‘city’에 해당하는 라틴어는 ‘urbs’ 혹은 ‘oppidum’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알프스 산맥 넘어 서부 유럽지역에선 ‘urbs’라는 말 대신 국가, 정부를 뜻하는 ‘civitas’라는 말이 도시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는 다음과 같이 해명된다. 이미 로마 초기부터 ‘civitas’라는 단어가 ‘urbs’의미로 사용되었고 구어에서는 그 시절에 ‘urbs’라는 단어와 경쟁 관계에 있었다(Plautus Merc. 635). 그리고 이탈리아 북부 지역과 스페인에서는 ‘urbs’ 대신에 ‘civitas’가 주요어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그러다가 프랑스에서는 도시 근교를 뜻하는 ‘villae’라는 단어에 대비되고, 고읍 혹은 읍내를 뜻하는 의미로 축소 전락한다(예, La cite de Paris, the city of London). 이는 의미사적 관점에서 본 한 접근 방식이다.
또한 라틴어로 구원자라는 말은 ‘servator’ 혹은 ‘conservator’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성경이 등장하면서 구원자의 의미로 새로이 ‘salvator’라는 단어가 들어온다. 이 단어는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부여되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성경을 집필했던 사람들의 의식을 엿볼 수가 있다.
그들은 이런 단어 선택 전략을 통해 성과 속의 세계를 분리했다. 이것도 라틴어대사전 덕분에 밝혀진 것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라틴어대사전은 사전학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종교학, 문명발전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전거로 간주되고 있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사례가 있다. 이런 크고 작은 새로운 발견들은 우리가 현대 로망스어 혹은 영어를 통해 알고 있는 인구어 단어의 의미에 대한 잘못된 모습과 오해를 교정하고 바로잡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 발견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단어는 개별의 고유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모든 개별 단어들을 독자적 단위로 인정하고, 자율체로서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단어들의 의미 변화를 꿰뚫어 설명해 주는 보편적 규칙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것도 라틴어 대사전의 기여다.
이를 델츠(Josef Delz)는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한다. “마치 나뭇잎들처럼, 그렇게 단어들도 변한다(호라티우스, ‘시학’ 60~61행).” 이상의 사례 분석을 통해서 우리는 라틴어 대사전이 서구인의 과거와 현재를 저장하고 그것을 비추어주는 거울(speculum)임을 확인한다. 한 단어의 개별 역사는 이 단어에 의해 표상되는 실제 세계의 역사이기에.
각설하고, 라틴어 대사전을 소개하면서 내게 찾아들었던 부러움과 희망으로 이 글을 갈무리하자. 우리도 이런 종류의 사전을 가질 수 있기를 말이다.
낱말 하나만 보더라도 거기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온전히 드러나는 그런 거울을 말이다. 소위 ‘한국어 대사전’(Thesaurus linguae Coreanae)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