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탕카멘의 수수께끼, 이곳에 모이다 - 이집션 박물관
이집트, 미라 하면 당연히 떠오르는 투탕카멘. 투탕카멘의 발굴은 그 자체로 전설이다. 이집트의 제18왕조의 파라오였던 투탕카멘의 무덤은 1922년에 처음 발견되었는데, 당시 굉장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무덤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존재감조차 희박하던 이 파라오는 도굴이 안 된 온전한 무덤에서 수많은 보물과 함께 발견되면서 이집트의 왕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떠올랐다.
아홉 살의 나이로 파라오의 자리에 올랐다가 열아홉에 죽은 연약한 왕. 요절의 원인은 오랫동안 미스터리였으나 오랜 연구 끝에 뼈 질환과 말라리아 등 합병증으로 일어난 한쪽 다리의 부상으로 밝혀졌다. 발이 안쪽으로 휘는 병인 내반족, 입천정이 갈라져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기형인 구개파열을 앓고 있던 것도 함께 드러났다.
투탕카멘은 또한 기이한 저주로도 유명하다. 발굴에 관련된 사람들이 비정상적으로 죽었다는 게 그 소문의 내용인데, 발굴을 기획하고 자본을 댔던 카나본 경이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 그 5개월 뒤 카나본 경의 동생이 돌연사한 사건, 발굴을 지휘했던 하워드 카터가 기르던 카나리아가 무덤을 열던 날 코브라에 잡아먹힌 사건 등이 저주의 목록을 채우고 있다. 하지만 막상 무덤을 열었던 하워드 카터의 평범한 죽음은 그 모든 저주설을 무색하게 한다. 사실, 발굴에 관련된 사람 58명 중 12년 안에 죽은 건 오직 8명뿐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은 저주설이 소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히는 분명한 증거다.
투탕카멘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은 손타지 않고 고스란히 발견된 수많은 보물이다. 그중에서도 청금석으로 장식된 골드마스크는 유명하다. 투탕카멘의 보물들을 현재 카이로에 있는 이집션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이집션 박물관은 16만여 점의 문화재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말 그대로 보물창고다. 장소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유물들은 건물을 포화상태로 만들고 있는데, 2011년 개관을 목표로 대 이집트 박물관이 한창 지어지고 있는 중이라 하니 수많은 나라에 빼앗기고도 넘치게 남아있는 그 풍성한 유산들은 제 가치에 걸맞은 대우를 곧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묻고, 죽이다 - 대 스핑크스(Great Sphinx)
사막 속의 스핑크스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스핑크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괴물이다. 여자의 머리와 가슴,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를 지닌 이 괴물은 티폰과 에키드나 사이에 태어난 딸이라고 한다. 헤라는 그녀를 테베 시민들을 징벌하기 위해 파견했다. 테베의 왕 라이오스의 죄를 묻기 위해서였다.
테베에 있는 피키온 산 부근에 자리 잡은 스핑크스는 지나가는 이에게 그 유명한 질문을 던진다. “아침에는 네 다리, 낮에는 두 다리,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 그리고 정답을 내놓지 못하는 자를 가차없이 잡아먹었다.
정답인 “사람”을 내놓아 스핑크스가 자살하게 만든 것은 유명한 오이디푸스다. “인생의 아침인 어린 시절에는 네 발로 기어 다니다가 낮이라 할 수 있는 장년에는 두 발로 걸어다니고 인생의 밤인 노년이 되면 지팡이를 짚고 세 발로 기어다닌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신화 속에서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에게 지고 난 뒤 사라졌지만, 현실 속에서는 길이 57미터, 높이 20미터의 장대한 몸집을 자랑하며 살아남아 이집트에 굉장한 관광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하나의 바윗덩어리를 깎아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큰 석조조각으로 인정받는 이 대 스핑크스는 코도 떨어져 나가고 풍파에 시달려 정교한 맛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수많은 이들에게 경외감을 안겨주고 있다.
카프레가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스핑크스는 오랫동안 모래에 파묻혀 있었는데, 훗날 젊은 왕자였던 이집트의 투트모세 4세의 꿈에 나타나 “내 몸을 덮고 있는 모래를 다 걷어 주면 너를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고 비로소 지상으로 나왔다고 한다. 현재 이 전설을 새긴 붉은 화강암으로 만든 ‘꿈의 비석‘을 앞다리 사이에 끼고 있다.
스핑크스의 이름은 많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라오의 살아 있는 모습”이라는 뜻의 “쉐세프 앙크(Shesep ankh)”라고 불렀고, 아랍인들은 “공포의 아버지”라는 뜻을 지닌 “아엘 홀(Abu al-Haul)”이라고 불렀다.
이슬람에 대해 묻다 - 알 아즈하르 모스크(Al-Azhar Mosque)
알 아즈하르 모스크의 전경.
이슬람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다면, 어디에 물어보면 좋을까? 이집트 국내에서는 물론이요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슬람 연구의 본산 알 아즈하르 모스크가 정답이다. 서기 972년에 모스크가 세워진 뒤, 989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활동을 시작하며 대학을 세운 이곳은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대학 중에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곳이다.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교육기관으로 인정받는 이곳은 이슬람의 ‘하버드’로, 이곳 출신의 이슬람 학자들은 무조건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현재 알 아즈하르 모스크는 이슬람의 다수 종파인 수니파의 본산이다. 처음 설립되었을 당시에는 이슬람의 소수 종파인 시아파의 교육 기관 및 모스크였다고 한다. 시아파의 지류인 이스마일파를 따랐던 파티마 왕조의 통치자 알 무잇즈가 세운 이곳에서는 첫 신학 세미나에서 시아파 율법 요지를 낭독하며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대학이 세워진 이후에도 35명의 교수는 시아파 내 이스마일파의 신앙을 가르쳤다.
알 아즈하르의 입장이 바뀐 것은 파티마 왕조의 몰락 이후이다. 새로운 왕조인 아윱 술탄들은 시아파 교육을 이집트에서 금지했다. 알 아즈하르 모스크가 수니파의 사원으로 거듭난 것은 맘룩 술탄시대에 이르러서이다. 오스만 제국 통치기에는 무슬림 세계의 중심 신학 대학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일반 대학과 마찬가지로 모든 학문을 가르치고 있다.
여자들의 호기심이 비밀의 방을 만들다 - 게이어 앤더슨 박물관(Gayer AndersonMuseum)
영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촬영장으로 쓰였다.
카이로에 살던 무슬림 여자들은 눈도 막고 귀도 막은 채 갇혀 살기만 했을까? 그러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녀들은 훔쳐보기의 달인이었다. 그녀들이 손님들을 훔쳐보고 잘 생긴 남자들을 품평하던 비밀의 방은 옛 저택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1935년 카이로에 머물던 영국인 장교인 존 게이어 앤더슨이 17세기에 지어진 두 채의 집을 구입해 연결하고 터키 양식, 파라오 양식, 중국 양식 등으로 꾸며 완성한 집은 현재 게이어 앤더슨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그 속살을 보여주고 있다. 그곳에는 얼핏 벽장같아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좁고 긴 비밀의 방이 있다. 연회를 열면 손님들이 모여들 거실의 천정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이 방은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작은 창문이나 작은 나뭇조각을 이어 만든 장식인 마샤라베야로 가려져 있다. 여자들은 이곳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호기심을 채웠다.
두 채의 집 중 하나는 게이어 앤더슨이 구입하기 전, ‘크레타 여인의 집’이라 불렸다. 한때 크레타 섬에서 온 부유한 무슬림 여인의 소유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게이아 앤더슨은 이 집에 얽힌 전설들을 수집했는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 집이 바로 노아의 방주가 홍수 뒤에 머물렀다는 산에서 나온 재료로 지었다는 것이다. 또한, 모세가 신의 말을 들은 것이 바로 이 지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븐 툴룬 사원의 부속건물로, 이곳 테라스에 서면 이븐 툴룬 사원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의 리셉션 홀과 옥상 테라스에서 영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가 촬영되었다.
성궤가 있는 곳을 묻다 - 칸 엘 칼릴리 Khan al-Khalili 시장
카이로의 시장이 나오는 영화 [레이더스].
카이로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라 해도, 카이로의 시장통에 대한 분명한 이미지는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영화 [레이더스]의 유명한 한 장면 때문이다.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로 가득 찬 시장 한복판에서 인디아나 존스는 길을 가로막는 건장한 체구의 남자를 만난다. 그는 위협적인 칼을 현란하게 휘두르며 인디아나 존스에게 다가가는데, 우리의 주인공, 고개를 갸웃하더니 바로 총으로 쏘아버린다. 야단법석을 떠는 코믹한 현지인들과 인디아나존스의 쿨한 태도가 대비되어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다. 대학에서 고고학을 가르치는 인디아나 존스 박사는 정부의 명령으로 성궤를 찾는 모험을 떠난다. 그가 찾는 성궤는 모세가 호렙산에서 가져왔다가 깨뜨린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 두 조각이 들어있는, 일명 ‘언약의 궤’. 어느 날 사라진 이 성궤를 찾는 것은 인디아나존스만은 아니다. 그 신비한 힘 때문에 나치 또한 눈에 불을 켜고 성궤를 찾고 있었던 것.
영화 속의 그 시장의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면, 카이로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인 칸 엘 칼릴리 Khan al-Khalili 시장에 찾아가 보는 것도 좋겠다. 1382년 맘루크 왕주의 술탄 바르쿠크의 아들 알 칼릴리 왕자가 세운 유서깊은 이 시장은 이집트에서도 가장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아랍권에서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고. 6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장답게 1,500개가 넘는 점포와 미로 같은 좁은 골목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아쉽게도, 카이로의 한 시장이라고 하지만 막상 영화를 촬영한 곳은 튀니지의 다른 시장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영화 속의 그곳을 찾기는 어렵겠다.
나일 강물아, 어디까지 왔니? - 나일로미터[Nilometer]
나일로미터의 설계는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던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가 맡았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말했다. ‘이집트는 나일의 선물’이라고. 그들의 농사짓는 법은 독특하다. 애써서 밭을 갈고 잡초를 뽑지 않는다. 그들은 상류의 에티오피아 고산지대에서 범람한 강물이 밭에 흘러들어왔다 물러가기를 기다린 뒤, 비옥하고 촉촉해진 땅 위에 씨앗을 뿌리고 돼지로 하여금 땅을 밟게 한다. 돼지는 수확 때도 이용된다. 그렇게 한 해 농사가 끝나면, 다음번 나일강의 범람을 기다린다.
그러하니, 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나일강의 수위’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강물이 적어도 안 되고 지나쳐도 곤란했다. 적당하면 그해는 풍년이었다. 강물의 높이를 재는 단위는 큐빗(cubit), 약54센티미터였는데, 풍년을 보장하는 높이는 약 16큐빗이었다. 그보다 모자라도 재난이었고, 그보다 높아지면 농사를 망치는 것은 물론이요, 역병이 돌았다.
1902년 나일강 상류에 영국이 1,900미터 길이에 54미터 높이의 아스완댐을 만든 이후 수위를 인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나일강의 범람은 이제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나일강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한 건축물인 나일로미터는 아직도 제자리에 남아, 당시 이집트 농부들의 관심과 열망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카이로 남부 로다 섬에 있는 나일로미터는 AD 861년에 지어졌다. 압바스 조 칼리프인 알 무타와킬이 지었는데, 설계는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던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가 맡았다. 강 바닥부터 가파른 계단같은 수위측정계를 설치하여 강물의 범람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하였다. 중앙에는 물높이를 재는 팔각형의 가는 돌기둥이 우뚝 서 있다. 카이로의 나일로미터는 이집트 내에서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가장 오랜 이슬람 시대 건축물이다.
궁금증이 뭉글뭉글 - 쿠푸 왕의 피라미드
기자의 피라미드는 규모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세계7대 불가사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들어왔던 이 목록의 첫 번째 줄에는 늘 피라미드가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카이로 남서쪽 기자에 있는 쿠푸 왕의 피라미드이다. 대피라미드, 혹은 제1 피라미드라는 별칭이 무색하지 않게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규모가 압도적이다. 높이 146.5m(현재는 137m만 남아 있다), 바닥변 약 230m, 사면각도 약 51도. 평균 2.5톤의 돌을 230만 개 쌓아올려 만든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석조건물이다.
이집트 제4왕조의 제2대 왕인 쿠푸 왕의 무덤인 이 피라미드는 4,500년 전의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놀라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놀라운 것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는 각 변의 오차가 아주 미세하다는 것. 두 번째는 피라미드가 세워진 시기가 철이 발견되기도 전임에도 불구하고, 230만 개의 돌을 필요한 크기대로 자르고 다듬는데 이용된 도구가 겨우 돌과 구리로 만든 연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세 번째로는 그 돌을 쌓기 위해 발휘된 뛰어난 건축술이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참여했던 수학자 몽즈는 대피라미드의 체적을 계산하여 프랑스의 국경을 3m의 높이에 0.3m의 폭을 가진 담으로 둘러 쌀 수 있는 양이라 환산했다 하는데, 그토록 큰 규모의 건물을 변변한 도구 없이 지어올렸다는 것은 신비에 가까운 일이다. 네 번째는 높이 20cm, 폭 22cm의 천체창이다. 이 창의 진정 놀라운 점은 기원전 2600년에서 기원전 2400년 경의 오리온자리 세 별에 정확히 맞춰져 있다는 사실. 당시의 천문학의 발달수준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