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 /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선사시대 우리 조상은 고래를 오랜 시간 관찰했다. 먼 바다에 나가 흔들리는 배 위에서 고래를 쫓으며 물을 내뿜는 모습을 기록하고, 종마다 특징적인 무늬와 지느러미 형태를 보며 그 모습을 바위에 새겼다. 울산 대곡리 기암절벽에 새겨진 그림 속엔 복부에 다섯 개의 짧은 줄이 그려진 귀신고래, 세로줄 무늬가 길게 표현된 혹등고래 등의 고래 그림이 자세히 그려져 있으며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의 눈으로는 바닷속에 사는 야생 동물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없다. 아마도 고래가 얼마나 깊이 오랫동안 잠수하며, 얼마나 멀리 헤엄치는 지에 대해선 몰랐을 것이다. 그저 먼발치에서 귀신처럼 머리를 드러냈다가 순식간에 사리지는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귀신고래’ 같은 이름을 붙여줄 뿐이었다.
인간의 눈으로 관찰하는 한계를 넘어서게 해준 기술이 바로 ‘바이오로깅(Bio-logging)’이다. 바이오로깅은 동물의 몸에 기록 장치를 부착하고 거기에서 얻어진 정보를 해석해서 동물의 행동을 추측하는 방법이다.
연구자들은 바이오로깅의 시작을 1964년으로 꼽는다. 미국의 제리 쿠이먼(Gerry Kooyman)이라는 생리학자가 처음 웨델물범의 잠수를 기록한 해다. 그는 당시 애리조나 대학에서 생리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었는데, 동물의 생리학적 한계치를 측정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사실 그보다 앞서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숄랜더(Per Scholander)는 1939년에 동물의 잠수를 기록하기 위해 작은 모세관에 최대 깊이가 표시되는 방법으로 포획한 고래(Harpooned fin whale)의 잠수를 측정한 적이 있었다. 이후 한동안 학계에서 잊혀졌지만, 쿠이먼은 숄랜더의 잠수측정 실험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했던 것처럼 억지로 가둔 채 실험하고 싶진 않았다. 대신 살아있는 동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자연 그대로 보고 싶었다.
쿠이먼은 1961년 겨울을 남극 기지에서 보내며 웨델물범을 관찰했다. 웨델물범은 미국에 있는 다른 야생동물처럼 사람을 겁내지 않았다. 남극엔 육상 포식자가 없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곧장 잠수 측정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웨델물범에게 기록 장치를 부착하는 일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기록계를 부착한 뒤엔 회수해야하는 일이 남아 있다. 장치를 달고 물속으로 들어간 녀석이 다시 같은 장소에 나타날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미국 기지 앞엔 작은 얼음 구멍이 생겨서, 웨델물범이 숨을 쉬러 항상 이곳으로 나와야했다. 얼음 구멍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기계를 붙여둔 녀석을 찾아 다시 포획하는 일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애리조나에 있는 공학자를 찾아다녔지만, 대학원생이 원하는 작고 저렴한 기계 장치를 만드는데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시계 수리공을 찾아가보라고 소개해줬다. 그는 수리공에게 수압측정계와 부엌에서 쓰는 키친 타이머를 들고 찾아갔다. 타이머가 조금씩 풀리면서 수압을 표시하게 장치를 만들었다. 준비한 기계를 들고 다시 남극으로 날아가 웨델물범에게 부착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총 381번의 잠수를 측정했으며, 최대 깊이는 600미터에 최장 잠수 시간은 43분 20초가 기록됐다. 이로 인해 남극에 사는 물범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잠수 실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웨델물범의 잠수를 측정하는데 성공한 뒤, 그는 자연스레 다른 동물에 눈을 돌렸다. 이번엔 포유류뿐만 아니라 조류인 펭귄의 잠수행동을 측정해보고 싶었다. 미국 기지 앞엔 다행히 황제펭귄이 있었다. 그는 단순히 깊이를 측정한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른 수심의 변화를 순차적으로 기록하는데 성공했다.(황제펭귄은 물속 500미터까지 잠수했다!)
1980년대에 케이프타운 대학에서 아프리카펭귄의 행동을 연구하던 로리 윌슨(Rory Wilson) 역시 기록 장치를 개발했다. 그는 수영 속도와 깊이를 측정하는 센서를 엑스레이 필름에 기록하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쿠이먼이 만들었던 장치보다 크기가 작았기 때문에, 아프리카펭귄과 같은 소형 펭귄에게 부착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1990년대에 남극으로 무대를 옮긴 윌슨은 수영 속도와 방향을 측정하는 다양한 기계를 개발했다. 다양한 기계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방수테이프를 펭귄 등 쪽 깃털에 엉겨 붙이는 방법을 개발했는데, 장기간 모니터링하기에 매우 유용한 기술이었다. 바이오로깅 초기엔 어깨끈이나 안전벨트 같은 형태로 허리를 감쌌는데 이런 방법은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줬으며 도중에 떨어지기가 쉬웠다. 그 다음으로는 에폭시 접착제를 이용해 몸에 접착하는 방식을 썼는데 이 역시 접착력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방수테이프를 이용하면 동물에게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강한 접착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윌슨이 젠투펭귄에게 테스트한 결과, 몇 주간 바닷물에 노출되어도 기계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 방법은 지금까지도 가장 널리 쓰이는 방식이다.
1981년엔 일본 극지연구소 야수히코 나이토(Yasuhiko Naito)는 3개월 이상 기록할 수 있는 기록계를 만들었다. 번식을 마친 물범이 바다로 나가서 활동을 하다가 털갈이를 위해 육지에 돌아오는 기간 전체를 모니터링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83년엔 물범 뿐 아니라 바다거북에게 수심기록계를 부착하는데 성공했다. 1992년엔 디지털 방식으로 저장되는 방식을 처음 도입했다. 단순히 기록 시간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기록계 크기도 작아졌다. 따라서 포유류뿐만 아니라 거북이나 새한테 부착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1980년대 미국에선 수심기록과 함께 동물의 생리적인 변화를 연구하려는 학자들이 생겨났다. 하버드 대학의 로저 힐(Roger Hill)은 혈액 샘플과 함께 심장 박동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다. 잠수 깊이에 따라 심박수가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생리적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1985년 미국 해양대기청(NOAA)의 존 벵스턴(John Bengston)은 로저 힐과 함께 위성신호를 이용한 위치 추적을 시작했다. 지구 주위를 도는 인공위성을 이용해 위치를 기록할 수 있는 Platform Transmitter Terminals(PTT)였다. 이제 지구 어디에서라도 동물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동성 동물에게 모두 적용할 수 있는 혁명적인 장치였다.
동물의 물속 생활과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이제 실제 동물의 눈으로 본 세상이 궁금해졌다. 그렉 마샬(Greg Marshall)은 1987년에 수족관에 있는 바다거북의 등에 비디오카메라를 달고 촬영하는데 성공했으며, 1992년엔 야생에 사는 물개에게 붙이는 데 성공했다. 일명 ‘크리터캠(crittercam)’으로 불리는 촬영은 다큐멘터리 촬영에도 응용되었다.
일본 와타나베 유키(Watanabe Yuuki)와 아키노리 다카하시(Akinori Takahashi)는 2010년 남극 후쿠로 만 근처에서 번식하는 아델리펭귄에게 가속도계와 비디오카메라를 함께 달았다. 크릴이나 물고기를 잡기 위해 순간적으로 머리를 빠르게 움직인다는 점을 이용해서, 가속도계에 찍힌 신호만 확인하면 어떤 먹이를 몇 마리나 먹었는지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바이오로깅 기술
2014년 겨울, 나는 남극 세종기지 인근에 있는 펭귄에게 바이오로깅 기술을 적용했다. 그때 들고 간 장비는 수심기록계, 비디오카메라, 가속도계, GPS추적 장치였다. 수심기록계는 1992년 일본 나이토가 만들었던 디지털 수심기록계의 후속 모델이었으며, 비디오카메라는 유키가 사용했던 것과 거의 같은 제품이었다. GPS는 남극에서 위성신호를 잘 수신할 수 있으며, 위치와 함께 수심과 가속도를 함께 기록할 수 있는 신제품이었다. 약 서른 마리에게 장치를 부착하고 회수한 결과를 통해 젠투펭귄이 먼 바다에 나가서 큰 그룹을 형성하며, 다른 펭귄들과 함께 소리를 내며 의사소통을 하는 듯한 모습을 처음으로 포착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연구자들은 중력자기장을 이용한 3차원적 움직임을 측정하거나, 뇌파에 연결된 신호를 통해 조류의 장기간 비행중 수면 행동을 연구하기도 한다. 바이오로깅 연구에선 새로운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측정이 가능해진 순간, 생물학적 질문은 무궁무진하게 넓어진다. 앞으로 또 어떤 기술로 펭귄의 사생활을 밝힐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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