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면 원하는 소원이 다 이루어질까! -틱낫한
나는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도뿐만 아니라 가톨릭, 또는 기독교 신자를 만났을 때도 ‘기도하십시오’라고 애기한다. 물론 그 말은 ‘당신이 믿는 하나님, 예수님께 기도하십시오’라는 뜻이다. 그런데 가끔씩 이렇게 반문하는 이들이 있다. ‘저는 기도해도 응답이 전혀 없던데요’ 아니면 ‘기도를 하면 효과가 있긴 있는 겁니까?’
돌이켜보면 그런 말에는 그저 미소로 답했을 뿐, 그들이 궁금해하는 문제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못 주었던 것 같다.
10녀 년 전 어느 날이었다. 나는 플럼빌리지에서 수행하는 비구니 제자 두 사람을 프랑스 다른 지역에 있는 가톨릭 수녀원에 방문하게 했다. 진정한 수행자에게 다른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과 공부는 매우 중요한 수련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녀원에 다녀온 후 내게 이렇게 말했다.
“태이, 수녀님들은 모든 일을 예수님께 의지하는 것 같았어요. 그들은 예수님을 완전히 믿고 모든 것을 의탁했어요. 저희에게는 큰 충격이었어요. 그에 비해 우리 불교도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니까요. 우리는 참선을 해야 하고, 또 호흡을 관찰해야 합니다. 우리 불교도는 모든 것을 자력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가끔은 그것이 너무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우리도 어딘가에 모두 의탁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10여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 말은 아직도 내게 생생하다.
나는 이 책에서 그때 미처 하지 못했던 대답을 담으려고 한다. ‘기도에 대한 응답이 있느냐’는 질문, 그리고 ‘기도가 효과가 있긴 있느냐’는 질문. 그리고 제자들이 수녀원에 다녀와서 한 질문. ‘불교도는 정말 자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걸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기도에 대한 많은 고정관념들이 깨졌으면 한다. 그래서 단지 불교도만을 위해 이 책을 쓰지 않았다. 나는 종교나 종파에 상관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기도’라는 행위에 관심을 갖길 바라고 있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기도하길 바란다. 그래서 당신 자신이 우주 안의 모든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체험하길 바란다.
-틱낫한
소년의 이야기
작고 하얀 쥐를 기르는 여섯 살짜리 소년이 있었다. 소년에게 쥐는 단지 애완용이 아니었다. 쥐는 소년의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
어느 날, 이 쥐가 사라졌다. 소년을 따라 정원으로 놀러나간 쥐가 땅 속의 작은 구멍으로 달려들더니 다시 나오지 않은 것이다.
소년은 슬펐다. 그 작은 쥐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소년은 즉시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의 온 마음을 담아, 할 수 있는 한 간절히.
힘들 때마다 하나님을 찾던 엄마를 떠올리며, 소년은 무릎을 꿇은 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께서 제게 그 하얀 쥐를 다시 돌려보내실 거라고 믿습니다.”
소년의 기도는 몇 시간이고 이어졌다. 하지만 그 작고 하얀 쥐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소년은 그냥 집 안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소년은 견딜 수 없이 슬펐다.
어린 시절 내내 소년은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열심히 기도했지만, 그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소년이 자라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그는 더 이상 기도를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십대가 된 소년은 가톨릭 고등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들었다. 담당 교사는 연로한 탓에 건강이 좋지 않았고, 늘 떨리는 목소리로 애기했다. 그의 수업은 매번 기도로 시작되었다. 15분씩 이뤄지는 이 기도를 학생들은 모두 환영하지 않았다. 혈기왕성한 아이들에게 매번 반복되는 기도는 고문이었다. 기도하기 전,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늘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 중에 누구, 기도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
누가 무엇을 말하든 그는 그것을 적고, 모두를 대표해서 기도했다. 종종 그는 아주 단순한 일에 대해서도 기도했다.
“내일 우리가 소풍을 갑니다. 부디 우리에게 비 오지 않는 화창한 날씨를 허락해주옵소서.”
소년에게 이 15분간의 기도는 지겨움, 그 자체였다. 소년에게는 더 이상 기도에 대한 일말의 믿음도, 기대도 남아 있지 않았다. 소년의 사정을 알 턱이 없는 선생님은 매번 신실한 기도로 수업을 시작했다.
어느 날, 한 여학생이 슬프게 울면서 교실로 들어왔다. 어머니가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어머니를 다시는 못 보게 될까봐 두렵다며 울먹였다. 이 말을 들은 선생님이 벌떡 일어나더니 교실을 둘러보며 이렇게 애기했다.
“우린 지금 이 학생의 어머니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이 가운데 기도하길 원치 않는 사람 있나요? 있다면 지금 밖으로 나가 복도에 있길 바랍니다. 기도가 끝나면 들어오라고 신호를 보낼 테니.”
기도를 믿지 않는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그를 의자에 고정시켰다. 선생님은 모든 학생에게 머리를 숙여 기도하라고 했다. 평소와 달리 그의 목소리에서는 힘이 넘쳤다.
“이 학생의 어머니를 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전부였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났다. 교실에 온 여학생은 어머니의 병세가 크게 호전되었다고 기뻐했다.
기적을 경험한 소년은 기도의 힘을 다시 믿게 되었다. 그는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음악 선생님의 건강을 빌며 온 정성을 다해 기도했다.
이 소년의 바람은 이뤄졌을까?
당신도 나도, 우리는
과거나 현재나 종교가 있는 사람은 모두 기도를 해왔다.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기도를 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기도는 침묵 안에서 이뤄지기도 하고
혹은 명상수행의 형태로 표현되기도 한다.
염송이나 찬송가 같은 노래,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그 뜻은 어떤 위대한 힘에 연결되려는 열망과
무언가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는 점이다.
행복에 대한 깊은 소망에서 비롯된다.
우리 밖에 있는 존재라면 우리가 속한 공동체 전체나 조상,
위대한 힘이란 우리 밖에 있는 어떤 위해한 존재이거나
우리 내면 깊이 존재하는 영적인 힘이다.
또는 하나님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진실한 기도가 된다.
우리 안에 있는 존재라면 기도를 하는 ‘나’와
분리되지 않은 내면의 신성이 된다.
이 위대한 힘에 우리가 사랑과 자비를 보내는 순간,
자신의 허물을 뉘우쳐라.
사람이 지옥한 악행을 지었어도
허물을 뉘우치면 차츰 엷어지나니
나날이 뉘우치길 쉬지 않으면
죄의 뿌리는 영원히 뽑히리라.
(증일아함경)
뉘우치면 곧 선(善)이 된다.
실수로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능히 뉘우치면 곧 선이 되나니
마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의 해가
세간을 밝게 비춤과 같다.
(법구경)
보시의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부처님 말씀을 보시하면
큰 지혜를 얻게 되고,
의약을 보시하면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며,
등불을 보시하면
항상 눈이 밝아지게 되며,
음악을 보시하면
목소리가 아름다워진다.
잠자리를 보시하면
편안한 생활을 하게 되고,
먹거리를 보시하게 되면
항상 창고가 가득 차게 된다.
(육취윤회경)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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