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 담론방 > 자유게시판


 
작성일 : 21-05-27 11:48
후크고지의 영웅들
 글쓴이 : 하얀민들레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읽었다. 책 제목만 보고 ‘수퍼 히어로’들의 ‘영웅담’을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실망할 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몸에 총탄을 맞고도 적군 수십명을 기관총으로 쓸어버리는 식의 영웅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어느 날 갑자기 영장을 받고 징집된 10대 후반의 젊은이들,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와 이제 겨우 안정된 삶을 누리기 시작하려던 예비군 아저씨들이다. 젊은이들은 그래도 나름 로망을 품고, 예비군 아저씨들은 속된 말로 ‘× 밟았네’하는 심정으로 병영으로 들어선다.


그들의 일상은 뻔하다. 땅 파고, 사역하고, 점호 때는 복장불량으로 주번사관의 지적질을 당하고, 부사관의 눈을 피해 땡땡이를 치려다가 들통나고, 병영 내에서 몰래 술을 마시려 하고, 상관에게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두고두고 갈굼을 당하고, 기회가 있으면 장교를 골탕 먹이려 들고, 시간나면 축구하고, 황당한 안전사고로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나오고, 휴가 때면 술과 여자를 찾아다니고, 그러다가 제대할 때가 되면 선임 하사가 찾아와서 “너는 군인 체질”이라며 말뚝 박으라고 꼬시고 ...

아마 대한민국의 많은 남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슬그머니 미소를 지을 것이다. ‘군대는 어디나 다 똑 같네.ㅎㅎ’

하지만 대한민국의 군필자들과 다른 점들도 있다. 이들은 한국인이 아니라 70년 전 영국의 젊은이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렇고 그런’ 군대 생활 와중에 실제로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는 점에서....



이들이 치러야 했던 전투는 후크고지 전투. 후크고지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판부리 사미천 좌측 군사분계선을 끼고 있는 해발 200미터 남짓한 고지다. 이 고지를 둘러싸고 1952년 10월부터 이듬해 7월 휴전협정시까지 영연방군-미군과 중공군 사이에 4차례나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듀크 오브 웰링턴 연대 소속 장병들은 바로 이 후크고지를 지켜낸 이들이다. 이들은 쏟아지는 포탄 사이를 뚫고 달려야 했고, 참호까지 쳐들어온 중공군과 육박전을 벌여야 했으며, ‘재수 없게’ 정찰대로 선발되면 적진에 침투해서 가슴 졸이는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때로는 고향 친구나 입대 동기들이 바로 옆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들은 대개 영국 워킹 클래스 출신이었다. 존 코프시 이병의 말처럼 ‘고작 열여덟살 아니면 열아홉 먹은 소년들이었고 태어난 이래로 집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가 본 적도 없었고’. 에드윈 워커의 말처럼 ‘한국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대해서는 북쪽 군대가 남쪽을 침략했다는 것 외에는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들뿐이 아니었다. 많은 영국인들이 자기 나라 군대가 코리아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몰랐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대단한 ‘수퍼 히어로’들이 아니라, 영장 한 장으로 징집되어 군대라는 낯선 세계로 ‘끌려간’ 한 때의 나 자신, 그리고 오늘날 우리 아들이나 조카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그들이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영국군은 5만6000여명이 파병되어 5000여명의 전사상자, 실종자, 포로를 냈다. 1953년 11월 12일 영국군이 철수할 때, 부산 유엔묘지에서 번즈 신부는 그곳에 묻힌 장병들을 이렇게 추도했다.



“우리는 비록 한국을 떠나지만, 그대들은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대들은 이미 이곳의 흙이고 공기이며 자유의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전쟁을 치른 것은 이역만리 한국의 전쟁터로 투입된 병사들만은 아니었다. 그들을 보낸 아내, 어머니는 이웃들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전쟁터에 나가 있는 남편, 아들 때문에 속을 태우면서 그들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 책 말미에는 남편을 전쟁터에 보냈던 오드리 러시워스라는 여성의 수기가 실려 있다. 제2차세계대전의 상흔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던 궁핍한 시절, 예비군으로 소집되어 나간 남편의 빈자리는 컸다. 그녀와 그녀의 아기들은 어떤 날은 코코아 한 잔으로 끼니를 때워야 할 만큼 가난에 시달리면서, 전선에 나갔다가 중공군의 포로가 된 가장을 기다려야 했다.


영국은, 그리고 다른 참전국들은 남을 도울 여력이 있어서 군대를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들도 어려웠지만 군대를 보낸 것이었다. 그것이 자유세계의 일원으로서 자기들의 의무라고 생각했고, 그래야 국제사회에서 자기들이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와 대한민국이 참전용사들에게 보내는 감사에 대해 참전용사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고마워한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책을 편집한 참전용사 케네스 켈드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60년이나 흐른 뒤에 한국에 다시 와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떠나왔던, 전쟁으로 분단된 국가가 아닌, 자신들의 나라에 자신들이 쌓아올린 업적들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시민들의 나라 대한민국. 절망과 죽음의 시간에 도움을 주었던 모든 국가에 항상 감사함을 표하는 아름다운 나라, 대한민국으로 말이다.”

대한민국이 참전용사들의 이 자부심과 감사를 배신한다면, 참전용사들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 밀알가입은 hmwiwon@gmail.com (개인신상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 군자금계좌: 농협 356-0719-4623-83안정주
※ 통합경전계좌 : 국민은행 901-6767-9263노영균sjm5505@hanmail.net
※ 투자금 계좌: 하나은행 654-910335-99107 안정주

하얀민들레 21-05-27 11:49
 
아마 대한민국의 많은 남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슬그머니 미소를 지을 것이다. ‘군대는 어디나 다 똑 같네.ㅎㅎ’
하지만 대한민국의 군필자들과 다른 점들도 있다. 이들은 한국인이 아니라 70년 전 영국의 젊은이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렇고 그런’ 군대 생활 와중에 실제로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는 점에서
하얀민들레 21-05-27 11:49
 
후크고지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판부리 사미천 좌측 군사분계선을 끼고 있는 해발 200미터 남짓한 고지다. 이 고지를 둘러싸고 1952년 10월부터 이듬해 7월 휴전협정시까지 영연방군-미군과 중공군 사이에 4차례나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었다.
하얀민들레 21-05-27 11:50
 
이 책의 주인공인 듀크 오브 웰링턴 연대 소속 장병들은 바로 이 후크고지를 지켜낸 이들이다. 이들은 쏟아지는 포탄 사이를 뚫고 달려야 했고, 참호까지 쳐들어온 중공군과 육박전을 벌여야 했으며, ‘재수 없게’ 정찰대로 선발되면 적진에 침투해서 가슴 졸이는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때로는 고향 친구나 입대 동기들이 바로 옆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하얀민들레 21-05-27 11:51
 
전쟁을 치른 것은 이역만리 한국의 전쟁터로 투입된 병사들만은 아니었다. 그들을 보낸 아내, 어머니는 이웃들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전쟁터에 나가 있는 남편, 아들 때문에 속을 태우면서 그들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하얀민들레 21-05-27 11:52
 
대한민국이 참전용사들의 이 자부심과 감사를 배신한다면, 참전용사들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산백초 21-05-27 16:44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읽었다. 책 제목만 보고 ‘수퍼 히어로’들의 ‘영웅담’을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실망할 지도 모른다.
산백초 21-05-27 16:45
 
그들의 일상은 뻔하다. 땅 파고, 사역하고, 점호 때는 복장불량으로 주번사관의 지적질을 당하고, 부사관의 눈을 피해 땡땡이를
치려다가 들통나고,
산백초 21-05-27 16:49
 
하지만 대한민국의 군필자들과 다른 점들도 있다. 이들은 한국인이 아니라 70년 전 영국의 젊은이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렇고 그런’ 군대 생활 와중에 실제로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는 점에서....
산백초 21-05-27 16:51
 
영국군은 5만6000여명이 파병되어 5000여명의 전사상자, 실종자, 포로를 냈다.
산백초 21-05-27 16:52
 
영국은, 그리고 다른 참전국들은 남을 도울 여력이 있어서 군대를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들도 어려웠지만 군대를 보낸 것이었다.
늘배움 21-05-31 08:44
 
젊은이들은 그래도 나름 로망을 품고, 예비군 아저씨들은 속된 말로 ‘× 밟았네’하는 심정으로 병영으로 들어선다.
늘배움 21-05-31 08:44
 
이들이 치러야 했던 전투는 후크고지 전투. 후크고지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판부리 사미천 좌측 군사분계선을 끼고 있는
해발 200미터 남짓한 고지다.
늘배움 21-05-31 08:45
 
그리고 때로는 고향 친구나 입대 동기들이 바로 옆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늘배움 21-05-31 08:46
 
많은 영국인들이 자기 나라 군대가 코리아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몰랐다.
늘배움 21-05-31 08:47
 
“우리는 비록 한국을 떠나지만, 그대들은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대들은 이미 이곳의 흙이고 공기이며 자유의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겨울 21-05-31 13:39
 
이 책의 주인공인 듀크 오브 웰링턴 연대 소속 장병들은 바로 이 후크고지를 지켜낸 이들이다.
겨울 21-05-31 13:40
 
그들은 대개 영국 워킹 클래스 출신이었다.
겨울 21-05-31 13:41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대단한 ‘수퍼 히어로’들이 아니라, 영장 한 장으로 징집되어 군대라는 낯선 세계로 ‘끌려간’ 한 때의 나 자신,
그리고 오늘날 우리 아들이나 조카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겨울 21-05-31 13:41
 
이 책 말미에는 남편을 전쟁터에 보냈던 오드리 러시워스라는 여성의 수기가 실려 있다. 제2차세계대전의 상흔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던 궁핍한 시절, 예비군으로 소집되어 나간 남편의 빈자리는 컸다.
겨울 21-05-31 13:42
 
내가 떠나왔던, 전쟁으로 분단된 국가가 아닌, 자신들의 나라에 자신들이 쌓아올린 업적들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시민들의 나라
대한민국. 절망과 죽음의 시간에 도움을 주었던 모든 국가에 항상 감사함을 표하는 아름다운 나라, 대한민국으로 말이다.
 
 

Total 9,907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공지 1• 3 • 5 프로젝트 통장을 드디어 공개합니다. (70) 혁명위원회 09-12
공지 진법일기 70- 1.3.5 프로젝트가 의미하는것은 무엇인가? (61) 이순신 09-19
공지 혁명을 하면서~ <아테네의 지성! 아스파시아와 페리클레스> (12) 현포 07-31
공지 히틀러, 시진핑, 그리고 트럼프 (15) FirstStep 06-23
공지 <한 지경 넘어야 하리니> (21) 고미기 07-28
공지 트럼프, 폼페이오, 볼턴을 다루는 방법들 (32) 봉평메밀꽃 07-18
공지 판소리의 대표적 유파로 '동편제'와 '서편제'가 있습니다. (27) 흰두루미 06-20
공지 소가 나간다3 <결結> (24) 아사달 03-20
9808 임계장 이야기 (20) 하얀민들레 07-09
9807 무인도에서 1년 3개월 (19) 빨간벽돌 07-06
9806 이름없이 빛도없이(미국 선교사들이 이 땅에 남긴 것) (18) 하얀민들레 07-01
9805 세계미래보고서2021 (19) 하얀민들레 07-01
9804 미어켓 (12) 정수리헬기장 06-28
9803 승리에 우연이란 없다. (12) 빨간벽돌 06-25
9802 공정하다는 착각 (22) 하얀민들레 06-17
9801 법복은 유니폼이 아니다. (21) 하얀민들레 06-09
9800 왜 서민을 위한 개혁은 서민을 더 힘들게 만드나 (19) 빨간벽돌 06-08
9799 식물성 플랑크톤 (9) 정수리헬기장 06-08
9798 공작거미 (9) 정수리헬기장 06-08
9797 마텔과 머로 판사 (20) 빨간벽돌 06-04
9796 한국에 삼성전자 같은 회사가 3개만 더 있었으면… [Dr.J’s China Insight] (22) 빨간벽돌 06-04
9795 위험한 동물 하마 (9) 정수리헬기장 06-03
9794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 (20) 하얀민들레 06-01
9793 후크고지의 영웅들 (20) 하얀민들레 05-27
9792 메르켈 - 대체 불가능한 리더십 (21) 곰소젓갈 05-20
9791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나요? (17) 블루베리농장 05-18
9790 혼자웃다 (獨笑) (11) 빨간벽돌 05-18
9789 도멘 조르주 루미에르 샹볼 뮈지니 프리미에 크뤼 레 자무뢰즈 2001' (13) 빨간벽돌 05-18
9788 혜암 평전 (20) 하얀민들레 05-12
9787 영화 속 인공지능, 현실이 되는 시대 마음도 저장이 되나요? (22) 블루베리농장 05-08
9786 1년후 내가 이세상에 없다면 (21) 하얀민들레 05-06
9785 노마드랜드(Nomadland) (17) 하얀민들레 05-06
9784 중국인들이 진짜 놓치고 있는 것 (16) 흰두루미 05-01
9783 문화막시즘이 드러낸 사회주의의 반(反) 기독교적 본질 (19) 하얀민들레 04-29
9782 마음 속 응어리를 풀어주는 대화의 힘 (24) 흰두루미 04-28
9781 큰뿔양 (9) 정수리헬기장 04-27
9780 테슬라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20) 블루베리농장 04-22
9779 타이어에 있는 빨간 점, 노란 점은뭘까? (11) 하얀민들레 04-22
9778 레고의 부활 (11) 버들강아지 04-20
9777 4년 뒤 하늘 날아다니는 택시 나온다 (20) 블루베리농장 04-20
9776 중국이라는 거짓말 (15) 버들강아지 04-14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