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 이성에 따라 일어나는 일은 결코 나쁜 일일 리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121년 ~ 180년
파도가 밀려와서 부딛쳐 깨어지고 또 깨어져도 꼼짝도 않고 버티어 서서,
주변의 분노한 바닷물을 다스리는 육지에 뿌리박은 바위처럼 되어라.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났으니 나는 불행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비록 이러한 일이 나에게 일어나기는 했더라도 나는 현재에 짓눌리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항상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살아가니 , 나는 오히려 행복하다.
이런 일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겠지만 ,그럴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고통으로부터 계속 해방되어 살아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행운이 아니라 왜 불운이 된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대는 인간의 본질로부터 어긋나지 않는, 무엇을 모든 경우에 불행한 일이라고 말하려는가?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뜻하는 바와 무엇이 어긋나지 않을때, 그대가 보기에는 그것이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빗나가는 일이라고 여겨지는가?
그렇다, 그대는 자연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안다.
그렇다면 그대에게 벌어진 이 상황이, 그대가 정당하고, 너그럽고 ,온화하고, 신중한 인간이 되게 하거나 ,
또는, 경솔한 견해와 거짓 앞에서 그대가 안전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며, 인간의 본성이 완숙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겸손함과 자유, 그리고 다른 모든 요소를 그대가 갖추지 못하도록 방해라도 하는가?
그대가 앞으로 나쁜 마음이 들때마다, 기억해야 할 법칙이 여기 하나 있다.
이것은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대신에 이것을 훌륭하게 견디어 내야 한다는것이다.
아우렐리우스명상록 4권 49절
"마음을 비우는 여정"
최민수 아내 강주은, 최민수 징역 1년 구형에 심경 고백
배우 최민수가 보복운전을 한 혐의로 징역 1년을 구형받은 가운데 아내 강주은이
씩씩하게 남편을 응원(?)했다.
최민수의 부인이자 방송인 강주은은 1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며칠 전에 부모님과 함께 힐링 할수 있는 귀한 시간을 아주 짧게 보내고 왔네"라는 글과 함께 여러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이어 "아주아주 뜻깊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낸 캐나다에서 돌아온 뒤, 또 귀한 우리 민수는 여전히 겨우 챙긴 기운을 하루안에 싹! 또 챙겨가네"라며 남편의 법정 출두에 동행하는 씁쓸한 심경을 전했다.
또 그는 "역시 배신하지 않는 우리 민수! 오자마자 재판받으러 갑니다! OMG(오 마이 갓)!"이라며 "어느 인생에도 늘 이런 극과 극의 비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들을 준다.
인생은 끝없이 우리를 훈련시키는 과정들이네"라고 전했다.
끝으로 강주은은 "먼 길 가서 부모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사과 streudel 을 만들어줄수있었네. 우리 모두에게 어느 순간속에서도 힐링을 느낄수있는 사람들이 되길.
어느날 (설마) 우리 민수가 나의 가장 대표적인 힐링의 존재가 되는건가? 헐~~.
모든 경험을 통해 우리가 성숙해가는 기회라고 생각해. 마음을 비우는 여정, 항상 감사하자"라는 태그를 남겼다.
한편 최민수는 지난해 9월 보복운전을 하고 상대 차량 운전자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한 혐의로 재판에 섰다. 지난 9일 결심공판에서 검찰 측은 최민수가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징역 1년을 구형했고, 최민수는 보복운전을 하지 않았으며 욕설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 끝 -
로마법이 중요하면 다른 법도 중요하다.
계속되는 전쟁과 자연재해로 로마의 재정 상태는 점점 어려워져만 갔다. 아우렐리우스황제는 부족한 재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거나 침략을 통해 약탈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자선 바자회라 할 만한 것을 열었다. 황제가 가지고 있던 보석부터 일상에서 쓰던 가구까지 모두 거리에 내놓고 팔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위기에 부딪혔을 때 국가 지도자가 제일 먼저 앞장선다는 점을 보이기 위한 상징적인 행위였겠지만, 로마 시민을 감동시키고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데는 크게 효과가 있었던 듯하다. 로마의 원로원은 그에게 ‘국가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선사했다.
사실 그의 관대함은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에서 나왔다.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모든 사람에게는 이성이 있다. 이 이성은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우주적 이성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을 지닌 사람은 피부가 하얀 백인이건, 흑인이건, 라틴어를 쓰건, 게르만어를 쓰건 간에 모두 존중해야 할 소중한 존재이다. 내가 이성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으로서 존엄하다면, 이성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이 존엄하다는 사실도 당연하다.
로마가 내세웠던 세계 시민주의는 바로 이 같은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의 이성이 모두 우주적 이성에 따른다면, 다른 민족이 만든 법도 로마법과 마찬가지로 소중하다.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본래 있는 법칙이 민족과 문화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타난 것일 뿐이다. 이는 우리가 말하는 자연법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다른 민족의 문화나 풍습도 우주적 이성에 따르는 것인 만큼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정복이 곧 약탈과 파괴로 이어졌던 고대 문화 속에서도, 로마만큼은 오히려 정복당한 민족의 문화나 관습을 존중하고, 역시 나와 같은 이성을 가진 동포로 보고, 보호하고 존중하려 했다. 로마의 대제국은 이러한 스토아 철학의 포용과 관용 위에서 가능했다.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제국의 이념에 지극히 충실한 사람이었다.
스토아 철학은 기원전 4세기 말, 그리스 철학자 제논에 의해 출발한 사상이다. 원래 스토아 철학은 혼란한 사회에서 벗어나 스스로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고 한 은자(隱者)의 사상이었다. 그러나 명상과 깨달음을 강조한 불교가 역사상 많은 국가들의 통치 이념이 되었고, 참회와 사랑,봉사를 강조한 기독교가 서양 중세를 지배한 이념이 되었듯, 스토아 철학도 개인의 깨달음을 넘어선 로마제국의 통치 이상으로 발전해 나갔다. 개인을 훌륭하게 만드는 철학은 사회도 훌륭하게 만들 수 있음을 역사가 증명해 준 셈이다.
아우렐리우스의 삶은 철학적 반성을 거듭하는 성숙한 개인이 훌륭한 사회 지도자도 될 수 있음을 잘 보여 준다. 항상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도록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는 자세를 갖도록 하라고 강조하는 아우렐리우스의 생애는 좋은 생활과 지도자의 품성을 어떻게 일궈야 할지 일러주는 삶의 멘토라 할 만하다.
그대는 이 거대한 국가─세계─의 시민으로서 살았다. 그 기간이 5년이든, 100년이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세상의 법은 그대뿐 아니라 그 누구도 공정하게 대한다. 그렇다면 그대는 무엇 때문에 불만을 품는가?
그대를 이 세계에서 몰아내는 자는 폭군도, 부정한 재판관도 아니다. 그대를 세상에 보낸 자연이다.
자연은 배우를 썼다가 다시 무대 밖으로 나가게 하는 연출자와 다르지 않다.
“저는 5막짜리 연극에서 3막까지만 출연했습니다.” 그대는 이렇게 하소연하고 싶은가?
인생은 3막만으로도 완전한 드라마가 될 수 있다.
연극을 언제 끝낼지를 결정하는 분은 당신을 처음에 고용했고, 지금은 당신을 내모는 자연이다.
따라서 이런 결정은 그대가 상관할 것이 아니다. 만족하는 마음으로 물러서라.
그대를 떠나보내는 자연도 그대에게 미소를 보낼 것이다. 《명상록》 제12권 중에서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저자.안광복 철학박사, 현 중동고 철학교사. 에서 발췌.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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