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한다는 것은 노를 젓는 것이 아니다.
잠시 노를 내려놓고 밤하늘의 북극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전주를 떠나며
- 12월 19일에 무고를 입고 해직되어 전주를 떠나며 쓰노라*
일찍부터 물러나려 하면서도
그냥 머물러 머뭇거리며
벼슬아치의 부끄러움을 잊었더니
기어이 이 몸을 욕되게 하였어라.
아무런 잘못도 없건만
밝힐 길 아예 없으니
하늘만 쳐다보며 웃을 뿐
다시는 말하기도 싫구나.
나를 무고한 사람은 눈앞에 있으니
누가 그를 범에게 던져 주랴
우리의 밝은 길은 걷기 어려우니
부질없이 울기만 하였어라.
내가 생겨나기 이전에
그 무슨 빚이나 질머졌던가
슬퍼할 것도 아니며
상심할 것도 아니어라.
*이규보가 33세 때인 1200년의 일이다.
*‘시경’에 무고하는 사람은 범에게 던져 잡아먹히게 한다는 말이 있다.
광주에 들러서 진 서기에게
내 우연히 강남에 벼슬아치로 갔으나
고을을 다스릴 힘이 모자랐으니 어찌하리오
남의 말 듣지 않음을 책망하나
추호도 범한 죄는 없거니 무엇이 부끄러우리오.
전주에서 취했던 꿈이 막 깨었는데
광주 읍 즐거운 놀이에 또 다시 취하려네
여기 광주에서 현명한 서기 그대를 만나니
한 등불 밑에서 서글프던 사연 다 말하였어라.
스스로 비웃다
메마른 이 몸에도 뜻은 있어
병든 머리카락은 성기구나
누가 나를 이렇게 고지식하게 하여
세파에 휩쓸리지 못했던고
범 나왔다는 거짓말도 세 번이면 믿는다는데
나는 지나친 청렴 때문에 파직 당하였어라
인제 나는 다만 소박한 농부가 되어
보습 걸머지고 밭으로 돌아가리라.

이규보
1168 ~ 1241년까지 일흔네 해를 살았다.고려 오백년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이다.호탕하고 생기있는 시 작품으로 당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명문장가이며, 몽고가 침입했을 때 예순이 넘은 나이에 전쟁터로 나설 만큼 기개가 높았다. 자유분방하고 독창적인 시풍으로, 당시의 닫힌 세계관에서 벗어나 참신한 작품으로 새로운 문학의 길을 열었다.8천여 수의 시를 지었는데, 그 가운데 2천여 수가 남아 있다.시 평론 ‘백운소설’을 썼으며, 가전체 작품 ‘국선생전’, 기행 산문 ‘남행월일기등도 남겼다. 작품은 <동국이상국집>에 잘 갈무리되어 있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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