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중국 인민해방군이 운영하는 해방군보(解放軍報)에 놀라운 기사가 올라왔다. 중국 해군 기동함대가 날짜변경선을 통과해 동진 중이며, 이곳에서 해상차단과 검문검색, 실탄 사격 등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했다는 내용이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중국 함대가 미국의 앞마당에서 군사력을 과시하고 있다고 대서특필했다.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 시나닷컴은 연일 이 함대의 활동상을 소개하며 중국 함대가 미국 앞마당에서 무력시위를 하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환구시보와 시나닷컴 등은 중국 함대가 왜 날짜변경선을 넘어 하와이로 향하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중국이 내세운 논리는 황당하게도 ‘항행의 자유’였다.
시나닷컴은 지난달 20일 인민해방군을 인용한 보도에서 “미국은 지난 수년간 항행의 자유라는 개념을 표명해 왔고, 그 미명하에 세계 곳곳에서 타국의 바다를 침범했지만, 미국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의 화력과 크기의 절대 우위에 겁먹은 나라들은 미국에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며 “그들의 군함이 전 세계 어느 바다에서든지 자유롭게 항해할 권리가 있다는 미국의 주장대로 우리의 전함 역시 그들의 연안에서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중국의 논리는 이것이다.
너희가 우리 영해에 이지스함을 보냈으니,
우리도 너희 영해에 이지스함을 밀어 넣겠다
‘눈에는 눈’ 논리는 얼핏 보면 반박의 여지가 없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말한 ‘우리 영해’는 남중국해다. 국제법적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분쟁이 있는 곳으로 ‘중국의 영해’라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중국은 작심하고 함대를 꾸렸다. 남중국해를 관할하는 남해함대에서 4척의 군함이 차출됐다. 이 특별임무함대의 기함은 ‘중국판 이지스함’인 052D형 방공구축함 후허하오터(呼和浩特, DDG-161)였고, 여기에 다목적 호위함 054A형 셴닝(咸寧, FFG-500), 815A형 정보수집함 톈추안싱(天權星), 901형 함대보급함 차간허(査干湖) 등이 합류했다.
이들은 지난달 18일, 날짜변경선을 넘어 해상차단·검문검색 훈련을 실탄사격까지 해가며 강도 높게 실시하며 관련 사진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 해역은 미국을 오가는 배들이 주로 이용하는 교통로였다. 이들이 실시한 훈련은 사실상 미국에 대한 해상 차단 훈련이었다. 미국이 지난해 해군과 해안경비대 함정을 이용해 서해에서 해상차단·검문검색 훈련을 실시한 것에 대한 보복 성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해(公海)는 말 그대로 누구의 바다도 아니기 때문에 중국이 태평양 한복판에서 허공에 포를 쏘며 섀도복싱(Shadow boxing)을 하든 말든 다른 나라가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 미국이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별 관심이 없자 중국 매체들은 20일 이후부터 이 함대가 하와이에 가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할 것이라고 선전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함대가 하와이 인근에 나타났다. 항모 보급함이 나타나 관심을 받고 있다(中国舰队抵近夏威夷海域 航母补给舰出现引关注)”, "미스터리한 함대가 미국 앞마당에 나타났다. 이 강력한 라인업은 러시아 함대가 아니다!(美国家门口冒出一支神秘舰队,阵容强大不是俄罗斯派来的)”, “전대미문! 우리 함대가 미국 앞마당에 갑자기 나타났고, 그 강력한 라인업에 세계가 주목했다!(前所未有!我们舰队突然出现在美国家门口,强大阵容让世界瞩目!)” 등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특히 시나닷컴 등 대형 포털사이트들은 “미국의 해상 패권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전문가들은 중국·러시아가 곧 미국의 해상 패권을 종결지을 것이라고 말한다(美国海上霸权还能维持多久?俄专家给出实话:中俄很快将其完结)”, “우리 해군 함대가 서반구에 진출하는 목적은 간단하다 : 미국의 패권 사상을 깨는 것이다(我海军舰艇编队挺进西半球,目的很简单:打破美国霸权思想)” 등의 기사를 내며 이번 함대 기동이 미국에 대한 도전임을 분명히 했다.
인류 역사상 미국에 도전장을 내며 하와이 앞바다에 함대를 보냈던 나라는 딱 하나였고, 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중국이 하와이에 함대를 보냈다는 주장에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은 중국 함대의 실제 위치 추적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하와이에 함대를 보냈다”라는 중국의 주장에 한 번 놀랐고, 중국 함대의 실제 위치를 확인한 뒤 또 한 번 놀랐다. 첫 번째 놀라움은 중국의 무모함에 대한 놀라움이었고, 두 번째 놀라움은 중국의 뻔뻔함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하와이에 간다던 중국 함대는
하와이 근처에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날짜변경선을 넘었다는 주장도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 해군이 밝힌 함대의 날짜변경선 통과 시점은 2월 18일이었다. 그런데 이 함대의 기함 후허하오터함은 2월 17일, 날짜변경선에서 약 4,370km 떨어진 괌 인근 해역에서 미 해군 P-8A 해상초계기에 발견됐다. 후허하오터함의 제원상 최대 속도인 55㎞/h의 속도로 이틀간 전속 항해하더라도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2600㎞를 조금 넘는다. 즉, SF 영화에 나오는 ‘워프’를 하지 않는 이상, 중국 함대는 죽었다 깨어나도 2월 18일에 날짜변경선을 통과할 수 없다.
2월 17일 괌 서쪽 670㎞ 해역에 있었던 함대가 열흘 뒤인 2월 26일 하와이 인근에서 뱃머리를 돌린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052D급의 추진방식은 CODOG(COmbined Diesel Or Gas turbine) 즉, 디젤과 가스 터빈의 혼용 방식이다. 30노트급 고속 항해가 필요할 때는 연비가 나쁜 가스 터빈을 쓰지만 순항 때는 디젤엔진을 쓰기 때문에 항해 속도는 빨라야 18노트, 즉 33㎞/h 수준이다.
그러나 이 함대에는 속도가 느린 함대보급함과 군수지원함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12노트, 약 22㎞/h의 속도로 평균 순항 속도였을 것이다. 22㎞/h의 속도로 10일간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5280㎞로 하와이에 1800㎞나 미치지 못한다.
해방군보나 시나닷컴 역시 27일 보도를 통해 중국 함대가 하와이에서 1000해리, 즉 1800㎞ 이상 떨어졌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즉, 하와이 근처에는 가지도 못한 함대가 ‘하와이 군도 항행의 자유 작전’을 하겠다며 큰소리쳤다는 것이다. 사실상 실패로 드러난 이번 ‘쇼’를 벌이기 전, 중국은 적어도 3가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첫째, 중국이 주장한 ‘항행의 자유’는
중국 이외의 나라를 설득할 근거가 전혀 없다.
미국이 항행의 자유 작전을 수행한 남중국해 해역은 중국이 국제법과 해양협약을 모두 무시하고 일방적·불법적으로 선포한 영해다. 따라서 이 해역에서의 ‘항행의 자유’ 작전은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지지와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중국이 ‘항행의 자유’ 작전을 하겠다고 선포한 하와이 해역은 국제법적으로 온전한 미국의 영해다. 여기에 중국 군함이 미국 승인 없이 진입하면 미사일 세례를 맞아도 할 말이 없다.
둘째, 중국이 ‘전 세계가 주목한 강력한 함대 라인업’이라고 주장한 그 함대 전력은 하와이 주둔 미군 전력이 손가락만 튕겨도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미미한 전력이다. 중국은 미국이 항행의 자유를 주장하며 이지스함으로 자국 영해를 침범한데 대한 보복으로 ‘중국판 이지스함’을 보내 미국 영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외치겠다고 밝혔지만, 그 ‘중국판 이지스함’은 불과 수년전 하와이 림팩(RIMPAC)에서 사격 명중률 30% 이하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인 망신을 샀던 ‘Made in China’다. 이것으로 ‘등가성’이나 ‘미국 패권 파괴’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는 것이다.
셋째, 중국 당국의 주장처럼 당국이 “우리 하와이 근처 갔다”라고 주장하면 모두가 믿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필자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OSINT(Open Source INTelligence) 취급 전문가들은 지난 1월 중국 함대가 출항하던 그 시점부터 임무 종료를 선언하고 돌아가던 대부분의 과정을 거의 일일 단위로 추적해 왔다. 정보가 발달한 오늘날은 첩보위성이나 정찰기가 없더라도 정보 네트워크만 갖춰져 있으면 각국 비행장과 항구에서 출항하는 거의 모든 선박과 항공기를 확인할 수 있으며,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군함의 동선과 동태 파악도 가능하다.
민간인들도 중국 함대가 하와이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며칠이면 알아낼 수 있는 시대에 “중국 함대가 하와이 근처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치는 중이다”라는 식으로 선전하면 얼마 못 가 망신만 당하기 십상이다.
중국이 이런 무리수를 둔 것은
코로나19로 흉흉해진
민심을 다잡기 위한 측면이 크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실패한 정권들은 외부에 적을 만들고 애국심과 단결을 유도하기 위한 여론전을 펴 정권에 향한 민심의 화살을 피하곤 했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 여러 매체를 동원해 반미 감정과 ‘국뽕’ 선전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독일의 히틀러, 아르헨티나의 갈티에리가 그랬듯이 이러한 선전전의 끝에는 전쟁이 있다. 며칠 전 인민해방군 전군무기장비구매정보망(全军武器装备采购信息网)에 인민해방군 창군 이래 최대 규모인 140억 위안 규모의 방탄복 140만 벌 조달 공고가 떴다. 유효 수명이 길어야 5년인 방탄복을 이렇게 대규모로 구매하는 경우는 대규모 전쟁을 앞두지 않고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도대체 중국공산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글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