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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12 13:45
비운의 장군 맥아더와 6.25전쟁!
 글쓴이 : 현포
 



글쓴이 - 권영근 -

맥아더만큼 한국인들에게 신화적인 인물도 드믈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은 물론이고 본인의 연설을 통해 맥아더는 한국인들, 특히 6.25전쟁을 경험한 세대에게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필자가 국민학교 다닐 당시다. 필자보다 10여살 많은 형 친구가 나를 매우 예뻐했다. 바둑을 잘 둔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다. 어느 날 이 형이 감격어린 목소리로 "전쟁에서 승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어로 중얼거렸다. 10여 년 지나 어느 정도 영어 실력이 되고 맥아더 연설을 외우면서 확인한 것이지만 당시 동네 형이 감격어린 목소리로 외쳤던 문구는 "In War, There is no substitute for victory"란 문장이었다. 나 또한 생도 시절 맥아더의 영어 연설을 외우면서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


아마도 2003년으로 기억된다. 당시 나는 미 공군사관학교 생도 1학년 교재인 Fundamentals of Military란 제목의 책을 번역하고 있었다. 이 책은 교리, 전략, 리더십 등  전쟁에 관한 저명 논문 50개 정도를 모아놓은 것이었다. 이들 논문 가운데 "국가에 봉사하는 군대"란 제목의 예비역 영국군 중장 존 하켓이 1967년 당시 미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존 하켓은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이전 이미 유명한 역사학자였다. 전쟁에 참전하여 중장으로 예편한 인물이다. 글의 내용 가운데 많은 부분이 맥아더를 거론하고 있었다. 군인이 정치의 영역을 탐한 인물로 언급하고 있었다. 맥아더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트루먼의 명령에 거역하면서 38선 북진은 물론이고, 2차례에 걸친 압록강 진격의 비극을 초래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었다. 이 같은 내용을 미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교육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무언가 못볼 것을 보았다는 느낌이었다.


한편 The Coldest Winter란 제목의 6.25전쟁 관련 2006년 발간된 책에서 미국의 유명언론인 Halberstam은 '에치슨'의 회고록을 인용하며 38선 북진 그리고 2차례에 걸친 유엔군의 압록강 진격과 중공군의 반격의 책임을 맥아더에게 돌리고 있었다. 에치슨은 본인의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맥아더가 이 같은 악몽과 같은 일을 연출할 당시 우리는 전신이 마비된 토끼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We sat around like paralyzed rabbits while MacArthur carried out this nightmare.)”라고 표현했다.

유엔군의 압록강 진격에 대한 중공군의 반격을 거론하며 브레들리 합참의장 또한 이 같은 상황과 관련하여 맥아더를 비난했다. 1950년 10월 15일 웨이크 섬에서 맥아더를 만났던 트루먼, 브레들리 등 모든 고위급 인사는 중공군의 참전이 없을 것이란 맥아더의 말을 듣고서 압록강 진격을 결정했다는 뉴앙스의 발언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950년 12월 2차례에 걸친 압록강 진격과 관련하여 기자가 트루먼에게 질문하자,  트루먼은 맥아더의 압록강 진격이 본인의 명령에 반해서 행해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한편 1950년 10월 24일의 1차 압록강 진격 당시 트루먼은 압록강 부근까지 진격하는 임무는 한국군이 담당하고 여타 유엔군은 압록강 이남 수십 마일 떨어진 지역에 머물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종합해보면, 에치슨은 38선 월경, 2차례에 걸친 유엔군의 압록강 진격을 맥아더가 대통령의 명령을 거역하며 한 행위로 본인의 회고록에 기록하고 있었던 반면, 브레들리 합참의장은 중공군 참전이 없을 것이란 맥아더의 약속에 입각하여 유엔군이 압록강으로 진격했음을 암시했다. 이처럼 에치슨과 브레들리는 압록강 진격의 책임을 맥아더에게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트루먼은 한편에서는 이들 비극과 관련하여 맥아더가 일부 책임이 있는 것처럼 사전 발언한 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유엔군의 압록강 진격이 본인의 명령에 입각한 것임을 암시했다.


당시 미국, 영국 등 여러 국가의 언론은 맥아더가 트루먼의 명령을 위배하며 행동한 결과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도처에서 맥아더 해임을 요구했다. 이 같은 상태에서 1951년 4월 맥아더는 장개석의 중국 본토 수복과 관련하여 미 공화당 중진 의원의 질의에 동조하는 발언을 했으며, 결과적으로 트루먼이 이 같은 맥아더를 해임시켰다.


그런데 비밀해제된 자료를 놓고 보니 맥아더는 트루먼의 명령을 거역한 경우가 전혀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그리고 왜 6.25전쟁 당시 맥아더가 트루먼의 명령을 거역하며 압록강 진격을 추진했다고 세계 언론이 생각하게 된 것일까? 이 같은 맥아더의 해임을 요구하게 된 것일까?

발단은 1950년 9월 27일 맥아더에게 내린 북진 명령과 10월 9일 맥아더에게 내린 중공군의 참전에 대비하여 트루먼이 맥아더에게 내린 명령, 그리고 1950년 10월 15일의 맥아더와 트루먼의 웨이크섬 회동과 관련이 있었다.


미국이 유엔군의 38선 이북 월경을 구상한 것은 1949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은 북한군 남침에 대비한 전쟁 계획인 SL-17을 만들었는데 이 계획에서는 낙동강까지 후퇴, 인천상륙작전 그리고 2회에 걸친 또 다른 상륙작전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들 2회의 상륙작전 지역 가운데 하나가 원산 또는 진남포와 같은 이북 지역이었던 것이다. 


트루먼이 구체적으로 38선 월경 구상을 지시한 것은 6.25전쟁이 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0년 7월 중순이었다. 38선 월경 문제는 미 국무성, 국방성 등에서 처음에 논의되었다. 그러나 영국, 프랑스와 같은 우방국과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참전국들은 38선 월경에 부정적이었다. 아무튼 미국과 나머지 국가들은 월경을 결심했다. 그러나 압록강 부근에서의 작전은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수행하며, 여타 유엔군은 압록강 이남 40마일 떨어진 지역까지 진격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처럼 합의된 내용을 트루먼은 9월 27일 맥아더에게 하달했다.


그러나 트루먼과 애치슨은 한반도 전쟁에서 미국이 추구했던 목표인 국방예산 3배 증액, 동맹체제 강화를 달성하고자 하는 경우 미군과 중공군이 격돌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중공군은 유엔군이 38선을 월경한 10월 7일 다음날인 10월 8일 한반도 전쟁 참전을 최종 결심하며 그 내용을 김일성에게 전달해주었다. 이 같은 내용을 미국이 감청했음에 분명할 것이다.


이 같은 마오쩌둥의 전문이 김일성에게 전달된 10월 8일의 다음날인 10월 9일 트루먼은 맥아더에게 새로운 명령을 하달한다. 그 내용은 지금까지 한국군을 제외한 여타 유엔군의 경우 압록강 이남 40마일까지만 진격하라는 이전의 명령을 취소하면서, 모든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해야 한다고 지시한다. 한반도 모든 지역에서 중공군을 만나는 경우 유엔군이 교전해야 할 것이라고 명령한다. 그런데 이는 미국이 영국 등 여타 유엔군 참전국과 약속했던 바와 배치되는 성격이었다. 이 명령은 비밀로 분류되어 장기간 동안 공개되지 않을 예정이었다.


10월 15일 맥아더와 트루먼은 웨이크섬에서 회동했다. 특히 트루먼과 맥아더가 45분 동안 단독회담을 했으며, 그 후 브레들리, 해리슨, 주한미국 대사 무초, 미 육군장관, 공군장관 등 미 국가안보 관련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맥아더에게 트루먼 등이 질문하고 맥아더가 답변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 후 밝혀진 바이지만 당시의 비밀회동에서 트루먼은 중공군이 1950년에는 참전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미 중앙정보국 판단서 등을 보여주며 맥아더에게 압록강 진격을 종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10월 8일 마오쩌둥은 김일성에게 한반도 전쟁 참전을 통보해주었으며, 10월 15일에 중공군이 참전할 것임을 여러 자리에서 언급한 바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을 맥아더는 잘 모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트루먼은 미 중앙정보국 등의 감청을 통해 잘 알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아더에게 중공군이 1950년 말경까지는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며 압록강 진격을 요구한 것이며, 이 같은 트루먼의 요구에 맥아더가 동의한 것이다. 웨이크섬 회동 이후의 트루먼과 맥아더의 반응은 매우 상반되었다고 한다. 트루먼은 본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1945년 4월 이후 가장 기분 좋은 회담이었다고 말한 반면, 맥아더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으면서 트루먼의 언론비서에게 질문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무튼 1950년 10월 24일 이후의 유엔군의 1차 압록강 진격은 트루먼이 영국 등 여타 유엔 참전국들과의 약속을 어기면서 추진한 것이었다. 한국군을 제외한 나머지 유엔군은 압록강 이남 40마일까지 진격할 것이란 약속을 어기며 추진한 것이었다.


맥아더는 트루먼의 지시에 따라 모든 유엔군을 압록강을 겨냥하여 진격시킨 것이며, 영국 등 나머지 유엔 참전국들이 맥아더의 유엔군 진격을 트루먼의 명령을 위배한 형태로 생각하게 된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다. 맥아더 해임을 여타 유엔군과 미국의 언론들이 요구했던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 였던 것이다.


그러면 왜 트루먼은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을 압록강 부근까지 진격시킨 것일까? 당시 중공군은 가능하면 미군과 접전하지 말라는 마오쩌둥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중공군이 압록강 이남 지역에 들어온 것은 10월 16일과 20일이었다. 당시 이들은 압록강 이남 일부 지역에 진지를 구축했는데 이는 유엔군과 싸우기 위함이 아니고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올라온 경우 만주지역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전진 방어 목적이었던 것이다.


마오쩌둥은 중공군이 구축한 진지 너머로 유엔군이 진격하지 않는 경우 중공군은 전혀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스탈린에게 말한 바 있었다. 이 같은 사실도 미국은 감청을 통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국방비 대거 증액 등 6.25전쟁을 통해 추구한 바를 달성하고자 하는 경우, 미군과 중공군의 격돌이 필요한데 영국 등 여타 국가의 반대로 한국군을 제외한 나머지 유엔군이 압록강 이남 40마일까지만 진격할 수 있게 되면서 이처럼 격돌할 가능성이 없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추구했던 목표로 인해 트루먼은 유엔군을 압록강을 겨냥하여 진격하도록 맥아더에게 비밀리에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이 같은 명령의 결과로 유엔군과 중공군이 격돌하면서 영국 등 여타 유엔군 참전국 내부에서 심각한 논란이 제기된 것이다. 본인들과의 약속을 어기며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는 사실, 결과적으로 중공군과의 격돌이 벌어졌으며, 이것이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 책임을 트루먼, 에치슨, 마샬 국방부장관, 브레들리 합참의장, 콜린스 육군 참모총장 등 미국의 수뇌부는 맥아더에게 뒤집어 씌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미국의 커다란 정치적 목표를 위해 맥아더를 희생시키기로 결심한 것이다. 


당시 압록강 진격과 관련한 진실을 알고 있던 사람은 트루먼, 에치슨, 마샬과 같은 미국의 수뇌부와 맥아더뿐이었다. 이들 문제와 관련하여 트루먼이 맥아더를 해임시킨 것이었다. 이들이 합심하여 맥아더가 해임된 이후의 청문회에서 맥아더를 공격한 것이었다. 그 내용이 특급 비밀 사항이었다는 점에서 공개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으며, 다수의 미국의 안보 수뇌부가 맥아더를 동시에 공격하자 맥아더는 그대로 책임을 뒤집어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왜 트루먼, 에치슨, 마샬 등 미국의 수뇌부는 맥아더를 이처럼 희생시킨 것일까? 이는 6.25전쟁을 통해 미국이 추구했던 바, 130억$ 규모의 국방비를 500억$ 수준으로 증액하고, 미일동맹, 나토 등 지구상 도처에 동맹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공산세력을 봉쇄하기 위한 틀을 만들어야 할 것이란 미국이 추구했던 목표가 미국 입장에서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문제와 관련하여 어느 누군가 책임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맥아더의 아버지는 남북전쟁 당시 영웅이었으며 중장으로 예편한 인물이다. 맥아더 또한 미국 내부에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미국이 추구한 목표가 이 같은 맥아더를 희생시킬 필요가 있을 정도로 중요했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6.25전쟁은 미국과 자유세계의 안전 보장을 위해 한국을 희생시킨 전쟁이었다. 맥아더를 희생시켰다는 점에서 보면 한국을 희생시키는 문제는 미국 입장에서 충분히 가능한 성격이었던 것이다.


정원을 가꾸다보면 매우 중요하고 아끼는 수목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덜 중요한 수목을 희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계적 차원에서 사고하는 미국 입장에서 보면 보다 큰 것을 얻기 위해 일부 것을 희생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서 맥아더와 한반도가 희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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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포 20-02-12 14:06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올라온 경우 만주지역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현포 20-02-12 14:07
 
세계적 차원에서 사고하는 미국 입장에서 보면 보다 큰 것을 얻기 위해 일부 것을 희생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서 맥아더와 한반도가 희생된 것이다.
현포 20-02-12 14:08
 
세상에 공짜는 없다.
겨울 20-02-13 11:20
 
맥아더만큼 한국인들에게 신화적인 인물도 드믈 것이다.
겨울 20-02-13 11:23
 
유엔군의 압록강 진격에 대한 중공군의 반격을 거론하며 브레들리 합참의장 또한 이 같은 상황과 관련하여 맥아더를 비난했다.
겨울 20-02-13 11:28
 
당시 압록강 진격과 관련한 진실을 알고 있던 사람은 트루먼, 에치슨, 마샬과 같은 미국의 수뇌부와 맥아더뿐이었다.
산백초 20-02-13 15:23
 
당시 나는 미 공군사관학교 생도 1학년 교재인 Fundamentals of Military란 제목의 책을 번역하고 있었다.
산백초 20-02-13 15:24
 
당시 미국, 영국 등 여러 국가의 언론은 맥아더가 트루먼의 명령을 위배하며 행동한 결과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산백초 20-02-13 15:25
 
그 책임을 트루먼, 에치슨, 마샬 국방부장관, 브레들리 합참의장,
콜린스 육군 참모총장 등 미국의 수뇌부는 맥아더에게 뒤집어 씌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늘배움 20-02-13 16:56
 
존 하켓은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이전 이미 유명한 역사학자였다.
늘배움 20-02-13 16:57
 
그런데 트루먼은 한편에서는 이들 비극과 관련하여 맥아더가 일부 책임이 있는 것처럼 사전 발언한 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유엔군의 압록강 진격이 본인의 명령에 입각한 것임을 암시했다.
늘배움 20-02-13 16:58
 
맥아더의 아버지는 남북전쟁 당시 영웅이었으며 중장으로 예편한 인물이다. 맥아더 또한 미국 내부에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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