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 담론방 > 자유게시판


 
작성일 : 20-02-04 21:17
정의를 정의하라
 글쓴이 : 곰소젓갈
 


19년 전 검사로 첫발을 디딜 때, 나는 다른 검사들과 마찬가지로 ‘정의(正義)로운 검사가 되리라’굳은 다짐을 하였다. 아직 내 정신은 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신선하게 팔딱팔딱 뛰고 있었고, 그래도 왕년에 어줍잖게 선배들 따라 데모 좀 하고 다녔던 ‘청년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기 위한 다짐이기도 했다. 게다가 어지간한 자리에서 초임검사가 ‘정의로운 검사’ 운운하면 다들 기특한 표정을 지어주었다. 그랬기에 그 무렵 어느 고소인으로부터, 바로 그 ‘정의’라는 단어로 따귀를 맞은 일은 지금도 분한 기억이다.

 

건물 2층을 월세 110만원에 임차하여 독서실을 운영하던 고소인은, 옆 건물의 같은 층 월세가 80만원임을 알고, 그간 건물주가 매월 30만원씩 사기를 친 것이라고 주장하며 고소를 했다. 말도 안되는 고소였지만, 당시는 검사가 모든 고소인을 직접 면담하라는 압박이 엄청났던 시절이었기에, 나는 고소인을 불러 건물주를 처벌할 수 없는 이유를 열심히 설명했다. 그는 피식 웃으며 “검사님,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피의자가 처벌 안 받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응, 고소는 이상하게 했어도 말은 통하는구나' 안도한 것도 잠시, 이어지는 말은 “주변 사람들이 건물주가 의사(醫師)라서 고소해봐야 소용없다고 하던데요. 그래도 저는 검찰이 정의를 지켜줄 거라고 믿었는데, 역시 검사님도 돈 앞에서는 어쩔 수 없네요. 대한민국에 정의가 없음을 다시 확인했어요”라는 것이었다. 어라, 이건 또 무슨 참신하고 신박한 논리전개란 말인가. 얼토당토않은 맥락과 타이밍에 ‘정의’라는 무기를 들고 공격을 감행하다니! 나는 황당해서 할 말을 잃었다.

 

그와 나의 ‘정의’는 분명 단어만 같을 뿐 의미는 달랐다. 이 에피소드는 정말 하찮은 사례에 지나지 않지만, 이후로도 100명이 ‘정의’를 말하면 그곳에는 100가지의 ‘정의’가 있었다. 진짜 비극은, 그 숭고한 단어를 상대방을 비난하는 데 사용하는 흉기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合意하지 않고 定意하지 않은 正義는, 그저 각자의 극히 주관적인 신념에 불과한 것 아닐까? 

 

그래서 난 요즘, '正義‘라는 단어를 웬만해선 내뱉지 않는다. 물론 앞으로도 나는 정의로움을 지향하겠지만, 그것이 객관적으로도 정의임을 확신하기 전까지는 그저 많은 성찰을 통해 정의로움에 수렴하려는 노력만 하려고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正義라는 단어를 돌멩이처럼 손에 들고, 반대편을 향해 던져 대며 공격하는 분들께도 진지하게 여쭙고 싶다. 

 

“당신들이 말하는 正義는 무엇인가요?”            정유미 부장검사 (대전지검)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 밀알가입은 hmwiwon@gmail.com (개인신상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 군자금계좌: 농협 356-0719-4623-83안정주
※ 통합경전계좌 : 국민은행 901-6767-9263노영균sjm5505@hanmail.net
※ 투자금 계좌: 하나은행 654-910335-99107 안정주

곰소젓갈 20-02-04 22:06
 
“당신들이 말하는 正義는 무엇인가요?”
겨울 20-02-06 07:27
 
그 무렵 어느 고소인으로부터, 바로 그 ‘정의’라는 단어로 따귀를 맞은 일은 지금도 분한 기억이다.
겨울 20-02-06 07:28
 
역시 검사님도 돈 앞에서는 어쩔 수 없네요.
겨울 20-02-06 07:29
 
100명이 ‘정의’를 말하면 그곳에는 100가지의 ‘정의’가 있었다.
산백초 20-02-06 13:47
 
게다가 어지간한 자리에서 초임검사가 ‘정의로운 검사’ 운운하면 다들 기특한 표정을 지어주었다.
산백초 20-02-06 13:48
 
그래도 저는 검찰이 정의를 지켜줄 거라고 믿었는데, 역시 검사님도 돈 앞에서는
어쩔 수 없네요. 대한민국에 정의가 없음을 다시 확인했어요
산백초 20-02-06 13:49
 
물론 앞으로도 나는 정의로움을 지향하겠지만, 그것이 객관적으로도 정의임을
확신하기 전까지는 그저 많은 성찰을 통해 정의로움에 수렴하려는 노력만 하려고 한다.
늘배움 20-02-06 16:39
 
19년 전 검사로 첫발을 디딜 때, 나는 다른 검사들과 마찬가지로 ‘정의(正義)로운 검사가 되리라’굳은 다짐을 하였다.
늘배움 20-02-06 16:39
 
대한민국에 정의가 없음을 다시 확인했어요”라는 것이었다.
늘배움 20-02-06 16:40
 
지금 이 시간에도 正義라는 단어를 돌멩이처럼 손에 들고, 반대편을 향해 던져 대며 공격하는 분들께도 진지하게 여쭙고 싶다.
 
 

Total 9,907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공지 1• 3 • 5 프로젝트 통장을 드디어 공개합니다. (70) 혁명위원회 09-12
공지 진법일기 70- 1.3.5 프로젝트가 의미하는것은 무엇인가? (61) 이순신 09-19
공지 혁명을 하면서~ <아테네의 지성! 아스파시아와 페리클레스> (12) 현포 07-31
공지 히틀러, 시진핑, 그리고 트럼프 (15) FirstStep 06-23
공지 <한 지경 넘어야 하리니> (21) 고미기 07-28
공지 트럼프, 폼페이오, 볼턴을 다루는 방법들 (32) 봉평메밀꽃 07-18
공지 판소리의 대표적 유파로 '동편제'와 '서편제'가 있습니다. (27) 흰두루미 06-20
공지 소가 나간다3 <결結> (24) 아사달 03-20
9742 Kristina Bach - Fliegst Du mit mir zu den Sternen (7) 슐러거매니아 04-18
9741 21대 총선에서 보수 정당이 패배한 근본 이유! (13) 현포 04-17
9740 코로나 19 위기 대응의 일등공신은 누구일까? (18) 현포 04-12
9739 Elin lanto - i won't cry (9) 슐러거매니아 04-06
9738 코로나19와 뉴노멀 2.0 시대 (16) 블루베리농장 04-01
9737 국가안보 관련 대전략가에 관한 소견! (17) 현포 03-31
9736 섭리 -펌- (11) 빨간벽돌 03-30
9735 김홍신 작가의 책 - 하루 사용 설명서 (11) 빨간벽돌 03-24
9734 中·日 압도할 최강 성능···한국형 전투기 'KFX' 제작 눈앞 (15) 현포 03-17
9733 미국 처녀도 반해서 뽀뽀한 춤, 하보경 명인 (17) 흰두루미 03-17
9732 감염추세를 누그러뜨리는 방법 : 응급 내과의사의 일반인들을 향한 조언 (17) FirstStep 03-17
9731 한반도는 왜 주변국 심리전의 무대가 되었을까? (18) 현포 03-09
9730 Kristina Bach - Du machst eine Frau erst zur Frau (11) 슐러거매니아 03-07
9729 中 해군 美 하와이 앞바다 무력시위?…"하와이 근처도 안 갔을 것" (17) 현포 03-07
9728 또다른 '신천지'…한국에 하느님 20명, 재림예수 50명 있다. (16) FirstStep 03-06
9727 6.25전쟁을 축복으로 여긴 일본! (11) 현포 03-02
9726 바이러스는 사피엔스를 멸종시킬 수 있는가? (12) 블루베리농장 02-28
9725 북한군의 남침 - 스티코프의 1950월 6월 26일 전문 (16) 현포 02-24
9724 옹골진 토박이의 꽹과리 신명, 김봉열 명인 (18) 흰두루미 02-22
9723 교통표지판으로 보는 인생입니다. (펌) (5) 빨간벽돌 02-19
9722 신묘년 정월 초아흐렛날 꿈 이야기 (14) 루나 02-18
9721 비운의 장군 맥아더와 6.25전쟁! (12) 현포 02-12
9720 안면인식 기술에 저항할 수 없는 3가지 이유 (23) 블루베리농장 02-09
9719 미국은 왜 6.25전쟁에서 정보실패를 주장할까? (21) 현포 02-07
9718 내가 '6.25전쟁 비사'을 최고의 서적으로 간주하는 이유! (11) 현포 02-04
9717 정의를 정의하라 (10) 곰소젓갈 02-04
9716 6.25전쟁 관련 최고의 서적: '6.25전쟁 비사' (11) 현포 02-01
9715 슐러거2017 Maite Kelly & Roland Kaiser | Warum hast du nicht nein gesagt (4) 슐러거매니아 02-01
9714 상온 초전도 성공에 임박하여 (17) 블루베리농장 01-31
9713 중국 우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15) FirstStep 01-27
9712 new york - alicia keys (9) 슐러거매니아 01-24
9711 소식하면 장수할 수 있을까 (11) 겨울 01-23
9710 세계 최초 부분자율주행차 안전기준 제정 (15) 곰소젓갈 01-18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