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준 /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우리는 생활의 모든 면에서 전기 에너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전기 에너지를 이용하여 철도, 냉방, 난방, 승강기, 통신시설, 가전제품, 의료시설 등 무수한 시설과 기구를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전기 에너지는 자연계에서 그냥 채취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발전기 또는 태양전지를 이용하여 만들어내야 하는 에너지다. 발전소에서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면 기업, 가정, 관공서 등 필요한 곳으로 보내야 하는데, 송전 과정에서도 꽤 큰 에너지가 송전선의 열로 사라진다. 만약 전선에 전기저항이 전혀 없다면 이러한 손실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전기 저항은 모든 물질에 항상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성질일까? 이에 대한 답은 네덜란드에서 1911년에 찾았다.
전기 저항이 완전히 없어지는 초전도 현상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과학자에 의해 사전 계획 없이 발견되었다. 1908년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 (Leiden University)의 오네스 (Heike Kamerlingh Onnes) 교수는 세계 최초로 헬륨을 액화하는데 성공하였고 액체 헬륨을 다시 기화시키면서 섭씨 영하 269도(절대온도 4도)에 가장 먼저 도달하였다. 극저온의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하였고 3년 후인 1911년에 수은(Hg)의 전기 저항이 섭씨 영하 269도 부근(절대온도 4도 부근)에서 완전히 없어짐을 발견하였다. 믿기 힘든 놀라운 발견이었다. 전기 저항이 모든 물질에 항상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네스 교수는 헬륨 액화와 초전도 발견 등의 공로로 2년 후인 191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이렇게 섭씨 영하 269도에서 초전도 현상이 발견된 이후, 보다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가 일어나는 물질을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 되었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70년이 지난 1980년대 초반까지도 초전도가 일어나는 최고 온도는 섭씨 영하 250도(절대온도 23도) 부근에 머물렀다. 낮은 초전도 온도가 절대적 사실로 굳어져 가던 1980년대 후반, 믿기 힘든 놀라운 돌파구(breakthrough)가 뚫렸다. 금속이 산소와 반응한 금속 산화물은 대부분 부도체인데 초전도 현상이 금속 산화물에서 오히려 강하게 나타난 것이었다. 주인공은 구리산화물계 물질이었다. 구리산화물계 물질에서 초전도가 강하게 발생하면서 초전도 발생 온도가 섭씨 영하 110도(절대온도 163도) 부근까지 수직 상승하였다. 이 발견으로 조만간 상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 물질이 발견될 듯 하였으나 초전도 발생 온도가 더 높은 새로운 물질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이후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초전도 발생 온도가 정체되자 상온 초전도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2014년부터 새로운 역사가 다시 펼쳐지고 있다.
2014년의 이야기는 잠시 미루고, 시간을 거슬러 1935년으로 가보자. 1935년에는 위그너(E. Wigner)와 헌팅턴(H. B. Huntington)이 수소 고체에 대해 연구하였고 수소 고체에 아주 높은 압력을 가하면 도체가 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시간이 흘러 1957년, 바딘(J. Bardeen), 쿠퍼(L. N. Cooper), 슈리퍼(J. R. Schrieffer)는 오네스가 발견한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마침내 찾았는데, 초전도 현상은 원자의 진동이 전자들 사이에 인력을 만들어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전자들은 모두 음전하를 띠고 있어서 전기적 반발력에 의해 서로 밀쳐내게 되는데, 원자가 진동하면서 전자들 사이에 서로 당기는 힘을 만든다는 큰 발상의 전환에 기반한 것이었다. 다시 10년의 세월이 흘러 1968년, 미국 코넬 대학의 애쉬크로프트 (N. W. Ashcroft) 교수는 바딘-쿠퍼-슈리퍼의 초전도 이론을 수소 고체에 적용하여, 높은 압력에서 수소 고체가 도체가 되면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성이 발현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문제는 수소 고체에 압력을 가하여 도체로 만들려면 압력이 너무 커서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3년 뒤 1971년, 길만(J. J. Gilman) 박사는 리튬, 수소, 불소의 화합물(LiH2F)을 만들면 십만 기압 수준의 압력에서 화합물 속의 수소가 도체가 되고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가 생길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이러한 제안을 애쉬크로프트 교수가 2004년에 되살려, 수소를 많이 함유한 화합물을 가지고 고압 실험을 하면 현대 기술로 도달할 수 있는 압력에서 화합물 속의 수소가 도체가 되면서 고온에서 초전도가 발현될 것으로 다시 제안하였다. 이 무렵 세계 여러 이론물리학자들은 수소가 포함된 수많은 화합물이 고압에서 어떠한 결정 구조가 되는지, 도체가 되는지, 고온에서 초전도체가 될 수 있는지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다. 이들의 연구 방법은 밀도범함수 이론(density functional theory)과 엘리아쉬버그 이론(Eliashberg theory)에 기반한 매우 정교한 것이었다.
어떤 물질이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체가 되려면 3가지 특징이 필요하다. 물질 안에 있는 원자들이 진동할 때 진동수가 높고, 전기 전도에 참여하는 전자들이 많고, 전기 전도에 참여하는 전자들이 원자 진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여야 한다. 수소 원자는 가벼워서 빠르게 진동하는데, 만약 수소 화합물에 높은 압력을 가했을 때 수소 원자가 가진 전자가 전기 전도에도 참여하게 되면, 이 전자들은 수소 원자의 진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가 일어날 수 있다. 이론 예측의 핵심은 수소 원자가 가진 전자가 전기 전도에도 참여하는 물질을 찾는 것이다.
마침내 2014년 중국 지린 대학(Jilin University)의 마(Yanming Ma) 교수 연구팀은 황화 수소를 유력한 후보로 지목하였다. 황화 수소에 높은 압력을 가하면 고온에서 초전도가 나타날 것으로 제안하였다. 이 제안을 확인하기 위해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같은 해에 황화 수소에 고압을 가하는 실험을 하였고 150만 기압을 가하면 H3S가 섭씨 영하 70도(절대온도 203도)에서 초전도체가 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초전도 발생 온도가 사상 최초로 절대온도 200도를 넘긴 역사적 성과이며, 103년전 오네스 교수의 발견과 달리, 정교한 이론으로 계획된 실험의 결과이다. 참고로 150만 기압은 지구 내부로 3천킬로미터 정도 들어갔을 때의 압력이다.
H3S 화합물은 150만 기압의 압력에서 매우 대칭적인 결정 구조를 가진다. H3S의 격자 단위는 정육면체이며, 정육면체의 중심과 꼭지점에 황(S) 원자가 있고 면의 중심과 모서리의 중심에 수소(H) 원자가 있는 구조이다. H3S 화합물에서 수소 원자는 전자를 1개보다 약간 더 가지고 있어서 조금 음전하를 띠며, 황 원자는 전자를 다소 잃어 양전하를 띤다. 수소가 가진 전자 중 일부가 전기 전도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H3S 이후, 다른 수소 화합물에 대한 이론적 예측과 실험적 확인이 계속 진행되었고, 드디어 2017년에 란타늄(La) 또는 이트륨(Y)의 수소 화합물이 유망한 후보 물질로 예측되었다. 곧이어 2018년에 진행된 고압 상태의 란타늄 수소 화합물(LaH10) 실험에서 초전도 발생 온도가 섭씨 영하 13도(절대온도 260도)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겨울 최저 온도보다도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가 발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18년말에는 250만 기압의 고압에서 초전도 전이 온도가 섭씨 200도(절대온도 473도)인 수소 화합물이 이론 계산으로 예측되었고, 이에 대한 실험이 조만간 이루어 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발전 속도를 볼 때 높은 압력에서의 초전도 발생 온도는 곧 상온을 넘고 기름의 끓는점보다 높은 온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초전도 연구는 장대한 역사 드라마와 같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매일 반복되다가도 새로운 기회가 불현듯 열린다. 최근 고압 수소 화합물에서 초전도 온도가 끝없이 오르면서 이제 초전도를 실생활에서 이용하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것은 초전도 온도를 상온으로 높이는 것이 아니라 압력을 낮추어도 초전도 온도가 유지되게 하는 것이다. 초전도 물질은 전기 저항이 없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자성 특성과 양자역학적 특성이 있어 자기공명영상장치(MRI)와 같은 정밀 의료 기기를 가능하게 하고 양자컴퓨터 개발의 중심 물질이기도 한다. 손쉽게 가할 수 있는 낮은 압력에서도 작동하는 상온 초전도 물질을 찾을 수 있으면 우리의 산업과 생활을 혁명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다. 큰 희망으로 초전도 산업혁명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