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
위의 분석을 통해서 『주역』의 교육사상 중의 약간의 이론과 내용은 현대의 소질교육 이론과 서로 부합하는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우리는 그 중에서 여러 가지 시사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전통의 응시(應試)교육은 일종의 진학시험에 대응하는 것을 주요목표로 하고, 주요과목과 부수적인 과목의 구별이 있으며, 시험에 필요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주입하는 것을 주요방법으로 한다. 시험 점수에 근거하여 실력을 정하고, 아울러 이것으로써 상을 주는 것을 논하여 정한다. 선생은 단지 소수 뛰어난 학생들의 교수 모델에만 특별히 주목한다는 것을 안다. 바로, 각국은 비록 모두 응시교육과 상대되는 소질교육을 힘껏 제창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 교육제도는 여전히 동아시아 지역에 유행한다.
예를 들어 일본의 고등학교에서는 바로 “사당오락(四當五落)”의 표현이 유행한다. 하루에 단지 4시간을 자면 대학에 합격할 수 있고, 만약에 5시간을 자면 바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영재주의를 강조하여 초등교육은 “초등학교 3학년에 분류(分流)시험”과 “초등학교 졸업시험”이 있다. 시험성적은 학생이 무슨 중학교에 입학하고 어떤 과정에 참가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그리고 영화 《어린아이는 어리석지 않다》、《여왕의 교실》、《시험의 신》등의 잇따른 보급은 의심할 것 없이 이러한 현실의 진실에 대하여 남김없이 드러내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개별 선생들은 자질이 우수한 학생들을 애지중지하지만, 성적이 비교적 떨어지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약이라거나 차등의 학생들에 대해서 과도한 체벌을 진행하는 현상은 자주 보아 드물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구나 차별 없이 대하고、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교육을 실시하는 사상은 완전히 실현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데, 이것은 학생의 전면 발전에 대해서 대단히 불리한 것이다.
그러나 『주역』 중에서 제창한 계발성의 원칙、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교육을 실시하는 원칙、상대에 따라서 설교하는 원칙、적당한 징벌의 원칙 등은 의심할 것 없이 우리들이 현재 응시교육의 폐단을 바꾸는데 적극적인 참고로 삼는 의의가 있다. 우리들은 마땅히 이것으로 본보기로 삼아서 능숙하게 계발하고 인도하며, 강제적으로 주입하지 않고, 학생의 실제로부터 출발하여 각 학생들의 특징、흥미、애로를 충분히 보살펴서 그 학습의 적극성을 이동시켜서 학생으로 하여금 피동을 주동으로 변화시킨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양호한 교육효과를 취득할 수 있고, 그리하여 각 학생들로 하여 모두 새로운 한세대의 표준에 들어맞는 시민으로써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본 소질을 갖추도록 한다.
『주역』은 또한 도덕 품행교육이 교육 중에서의 지위를 대단히 강조한다. 이것은 현재 학교 내지 사회상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지육(智育: 단순히 문화․과학 지식의 교육을 지칭함)을 중시하고 덕육(德育: 도덕교육)을 경시하는 실제에 대해서 대단히 중요한 현실의의를 갖는다. 이왕의 대학교육이나 또는 초등학교․중학교의 교육에서 왕왕 학생들의 인격배양을 등한시하고, 학생들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의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 부족하였다.
선생은 단지 진학률을 높이는데 집중하였고, 학생은 단지 자기의 학업 성적을 중시하였다. 최근에 사회적으로 출현한 배금주의、향락주의、개인주의 등의 진부한 사상과 각종 추악한 현상은 더욱 청소년의 성장에 허다한 소극적인 영향을 가져왔다.
그들로 하여금 타인과 사회에 대해서 마땅히 있어야 할 관심을 부족하게 하였고, 마땅히 있어야할 가장 기본적인 도덕소양을 부족하게 하였다. 이것들은 모두 소질교육의 궤도와는 서로 위배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질교육 또한 하나의 전체 국면에 관계되고、영향이 심원하고 사회 각 방면에 언급되는 체계적인 작업이다. 개인에 대해서 말하자면, 경쟁이 더욱더 격렬해지는 21세기에 똑바로 서려고 한다면 일정한 지식의 장치는 필수적인 것이나, 동시에 또한 반듯이 자강불식、백절불요(百折不撓)의 정신을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교육은 마땅히 인문지식의 교육과 인문정신의 배양을 중시해야 한다.
학생들로 하여금 전면적으로 견실한 과학지식과 기능을 갖추도록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욱 마땅히 그로 하여금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의 도리를 배워서 알도록 해야 하고, 그로 하여금 좌절과 타격을 용감하게 대면하도록 배워서 알도록 해야 한다.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스리고, 관대함으로 타인을 대하고, 성실하고 신의를 지키며, 겸허와 근신의 미덕을 배양하여 하나의 전반적인 발전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주역』중에 내포한 교육사상은 비교적 자각적이고 성숙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경』의 “만물이 생겨나면 반듯이 무지몽매하다”에서 『학기』의 “교학을 우선으로 한다”까지, 『관자』의 “1년의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과 같은 것이 없고, 10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과 같은 것이 없고, 평생의 계획은 사람을 기르는 것과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은 재차 당장의 “백년대계, 교육의 근본이 된다.”
의심할 필요 없이, 교육은 줄곧 인류 사회 발전과정 중에서 하나의 특히 신성한 사업이 되었다. 지금, 형형색색의 교육사상은 더욱 옛것 중에서 쓸모없는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은 찾아내어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켜져서(推陳出新), 사람으로 하여금 눈부시게 한다. 이러한 정황 하에서, 필자는 중화민족의 우수한 전통을 계승하고 널리 드날리며, 중국고대 교육사상의 신령스러운 빛을 추적하는 것은 새로운 여정으로 매진하는 견실한 기초라고 여긴다.
馬 小 能(北京师范大学 历史学院史学所,北京 100875)번역 안순형(창원대) 요약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