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易』과 중국 고대 교육1
『周易』은 중국 최고의 철학 저작의 하나이며, 중국 5천년 지혜와 문화의 결정이다. “여러 경전들 가운데 최고이며, 대도(大道)의 근원이다.”, “중화 문화보고의 첫 번째 기서이다.”라고 칭찬되어졌다. 역대로 확실한 소견이 있는 역학 연구자들은 『易經』 속에서 많은 시사를 얻었다. 최근에 국내외에서 더욱 다양한 역학의 저작들이 출판되었고, 하나의 『주역』 연구의 열기를 형성했다. 유감스러운 것은 학자들이 비교적 『주역』의 철학적 진수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내포한 교육사상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논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주역』은“통하지 않는 것이 없는” 기능이 있으며, 그 괘상과 효사 중에는 풍부한 현대교육의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 필자는 얕은 학식을 무릅쓰고, 『주역』의 계몽교육사상、인격교육사상 및 그것의 현대교육에 대한 시사 등의 문제에 대해서 체계적인 연구를 시도했으니, 여러분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一
『주역』은 유아들의 계몽교육을 대단히 중시한다. 『역경』 중에는 하나의 교육에 관한 전문적인 괘가 있는데,즉 ‘몽(蒙)’괘이다. 이 괘는 매우 구체적이고, 간결하고 세련되며, 또한 깊이 있고 예지적인 언어로써 교육의 참뜻을 드러내 보이고, 체계적으로 교육사상을 상세하게 해석하였다. 소위 “천지가 있게 된 다음에 만물이 생긴다. 천지간에 충만되어 있는 것은 오직 만물뿐이고, 그런 까닭에 ‘둔(屯)’괘로 그것을 받는다. ‘둔’이란 가득 차다는 의미로, 둔이란 만물이 처음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만물이 생겨나면 반듯이 무지몽매함으로 ‘몽(蒙)’괘로 그것을 받는다. ‘몽’이란 몽매란 의미로, 만물이 유소하다는 의미이다.” 주진보(周振甫)는 『주역 역주』 중에서 “몽: 몽매를 지칭하는 것으로 지식이 개통되지 않은 것이다. ‘만물이 처음 생겨나는 것을 어린이에 비교하였기 때문에 몽매라고 한다’.”라고 지적하였다. 손진성(孫振聲)은 『백화 역경』 중에서 “몽”을 “몽매、계몽、교육”이라고 해석하였다. 의미는 즉, 만물이 생성한 후에 연이어서 오는 것은 바로 유치하고 몽매한 시기임으로, 따라서 교육이 급선무가 된다. 그러나 『역경』 64괘의 배열순서의 위치에서 볼 때, 앞의 3괘는 각각 《건》、《곤》、《둔》이 된다. 그 중에 《건》은 천이 되고, 《곤》은 땅이 되며, 《둔》은 만물의 처음 생겨나는 것이 되며, 《몽》괘의 위치는 네 번째이다. 이 배열순서 역시 『역경』이 유아의 조기교육에 대해서 대단히 중시한 것을 충분히 설명한다.
“몽매한 자는 올바름을 길러주는 것(蒙以养正)”이 곧 『역경․몽』괘 교육사상의 핵심으로, 이것이 또한 유아 계몽교육의 근본 목적이다. 생각건대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양(養)”을 해석하여 “선으로 나아가다〔進善〕”라고 말했다. “정(正)”을 해석하여 “올바름〔正〕”이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하여 “몽이양정”의 함의는 이해가 어렵지 않게 되었다. 그 뜻은 오직 교화를 통해서만 비로소 순수하고 올바른 덕행을 배양하고, 몽매한 아동이 정확한 인식을 배양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의심할 것 없이 오랜 세월 중국교육의 모범이다. 손진성은 일찍이 “몽이양정”의 뜻이, 곧 “계몽(교육)은 정도(正道)를 배양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명확하게 지적하였다. 이 네 글자는 교육의 정수를 밝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후 『중용』의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고 말한다.”, 『학기(學記)』의 “교(敎)라는 것은 선을 기르고 그 잘못을 고치는 것이다.”, 『설문해자』의 “교는 위에서 베푼 것을 아래에서 본받는 것이다”, “육(育)은 자식을 기르는데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다.”라는 정신은 분명히 “몽이정양”의 사상과 모두 한 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주역․몽』괘 중에는 또한 비교적 다양한 교육방법과 원칙을 제출했는데, 이들 방법과 원칙은 우리들의 오늘날 교육체제에 대해서 여전히 대단히 중요한 참고 의의를 갖는다. 예를 들어 계발성(啓發性)의 원칙은 바로 『주역』이 비교적 중시한 교육원칙의 하나이다. 소위 “몽은 통한다. 내(스승을 지칭한다. 이하에서도 마찬가지이다.)가 동몽에게 (가르칠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몽이 나에게 (가르침을) 구한다”. 곧 이 원칙의 구체적인 구현이다. 주진보는 이 구절을 “내가 몽매한 어린 아이에게 공부할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몽매한 어린 아이가 나에게 가르침을 베풀기를 구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하였다. 또한 바로 공부는 철부지 아이가 자신의 필요에 근거하여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하나의 과정이지, 단순히 채우고 억압할 수는 없다. 이것은 “철부지 아이가 나에게 구하지 않는 것은 곧 학문을 좋아하고 원하는 마음이 없는 것으로, 어찌 능히 그를 오게 하여 그로 하여금 신의가 있도록 하겠는가? 내가 구하나 참으로 이르지 않는 것은 곧 전심으로 뜻을 다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으로, 어찌 능히 그의 게으름을 타일러서 그로 하여금 듣도록 하겠는가?”이기 때문이다. 선생은 물론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점하지만, 동시에 또한 학생들이 능동적인 작용을 충분히 발휘하고, 그들이 학습의 적극성을 충분히 계발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의 본질적인 목적의 소재이다. 그리고 《몽》괘 가운데 “초서(初筮)는 가르쳐 주지만, 두 번、세 번하는 것(再三)은 모독하는 것이다. 모독하면 즉 가르쳐 주지 않는다. 곧음으로써 해야 이롭다.”고 말하는 것 또한 이 도리이다. 철부지 아이가 처음으로 제출한 문제에 대해서는 선생은 인내심을 가지고 지도에 응하여 잘못된 것을 지도한다. 그러나 만약 두 번째、세번째 제출하는 것이 첫 번째와 마찬가지 문제라면 이것은 그가 심혈을 기울여 사색하지 않은 결과임으로,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그에게 알려줄 필요가 없다. 이 때문에 철부지 아이가 능동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효과에 도달한다. 『주역』의 이 사상 또한 후세의 학자들에게 잘 계승되고 아울러 더욱 확대 발전시켜졌다. 『논어』 중의 “분발하지 않으면 가르치지 말고, 말이 나오지 않으면 드러내지 않는다(不愤不启,不悱不发)”, 『순자․권학』편 중의 “본디 묻지 않으나 가르쳐 주는 것을 업신여기는 것(傲)이라 말하고, 한 가지를 물어나 두 가지를 가르쳐 주는 것을 비난하는 것(囋)이라 말한다. 업신여기는 것은 옳지 않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학기』 중의 “질문을 잘 받드는 사람은 종을 치는 것과 같다. 그것을 치는데 작게 치면 곧 작게 울리고, 그것을 치는데 크게 치면 곧 크게 울린다.”는 사상은 모두 『역경』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상대에 따라서 설교하는 것、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교육을 실시하는 것、적당하게 징벌하는 것 등의 원칙도 『주역』이 대단히 중시하는 교육과 교학의 방법이다. 『주역』에서 볼 때, “격몽(擊蒙: 몽을 친다)은 지나치게 포악하게 되는 것은 이롭지 않고, 지나치게 포악한 것을 막는데는 이롭다”. 오징(吳澄)이 “구이(九二: 두 번째 위치한 양괘)는 강(剛)으로 적당함을 얻어서 너그러움으로 그것을 다스리고, 상구(上九: 가장 위에 위치한 양괘)는 강으로 대단히 지나쳐서 엄격함으로 그것을 다스린다.”고 말한 것도 바로 가르침을 베푸는 사람은 마땅히 서로 다른 교육 대상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가르침을 베푸는 방식을 채택해야만 비로소 양호한 교육 효과를 취득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교육을 받는 개체가 대단히 많이 있고, 그들의 생활 배경이 다르고, 천성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취득하는 성적도 곧 좋고 나쁨의 구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럼으로 강압적으로 통일을 구하여 한칼로 자른 것 같은 형식을 취하여 교수(敎授)를 진행할 수는 없다. 소위 “포몽(包蒙: 몽을 포용)하니, 길하다”가 말하는 것이 바로 이 도리인 것으로, 단지 모든 몽매한 동자를 용납해야만 비로소 상서롭고 길할 수 있다. 학생의 재질은 각기 다름으로 일률적으로 논할 수 없는 것이다. 선생으로서는 마땅히 모든 개체 학생들을 포용하는 태도를 채택하여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몽을 깨우치는데 있어서는 사람들에게 벌주는 방법을 이용하고, (한편으로는) 수갑이나 족쇄를 벗겨주는 방법을 사용한다. 과거의 형벌만 사용한다면 궁색하게 된다. 《상(象)》에서 ‘이용형인(利用刑人: 사람들에게 벌을 주는 방법을 이용)’함으로써 법을 바르게 한다고 말하는 것”은 현대 교육 중에서 적당한 징벌 원칙의 구체적인 구현이다. 손진성 선생의 『백화 역경』은 “형(刑)”을 “징벌”로 해석하고, “질곡(桎梏)”을 “제약”으로 해석하고, “법(法)”을 “법칙” 혹은 “규범”으로 해석한다. 옛사람들이 말하길, 규칙이 없으면 사람(方趾圓顱)이 될 수 없다. 몽매한 시기에 처한 아동에 대해서 말하자면 적당한 징벌은 유리한 것이다. 적당한 징벌은 그들이 일정한 행위 규범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되고,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 이후의 성장과 발전에 대단히 유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상 여기서 말하는 “포몽(包蒙)”과 “격몽(擊蒙)”의 원칙은, 곧 우리들이 현재 말하는 너그러움과 엄격함이 서로 결합한 원칙이다. 마진표는 일찍이 『주역학설』중에서 “포몽하는 사람은 너그러움을 주로하고, 격몽하는 사람은 엄격함을 주로 한다. 너그러움과 엄격함은 서로 도와야만이 몽매함을 바로잡는 길이 갖추어진다.”고 명확하게 지적하였다.
二
앞면에서 우리들은 이미 “몽매한 자는 올바름을 길러주는 것(蒙以养正)”이 『역경』 교육사상의 핵심이고, 그 근본 목적은 교화의 형식으로 정도를 배양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역경』 중에서 “정(正)”은 곧 인격 수양의 최고 경지이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바로 한 개개의 개체를 배양하여 고도의 인격수양을 갖춘 정인군자가 되도록 한다. 사실상, 『주역』은 군자의 품격교육을 대단히 중시하는 것이다. 어떤 학자의 통계에 의하면“군자”라는 한 단어가 『주역』 중에서 모두 125번 나타난다. 『역경』 64괘 가운데 53괘의 상사(象辭)가 “군자”라는 단어를 언급한다. 그 중에 괘의 효사가 20번, 대상전(大象傳)이 53번, 소상전(小象傳)이 10번, 단전(彖傳)이 11번, 문언(文言)이 10번, 계사전(繫辭傳)이 20번, 잡괘전(雜卦傳)이 1번이다. 이것으로 『역경』의 군자의 인격배양에 대한 중시를 알 수 있다. 그럼, 『역경』 중에서 말하는 성인군자는 마땅히 어떤 기본적인 요소를 갖추어야 하는가?
첫 번째, 자강불식(自强不息)이다. 《건괘(乾卦)》“대상사(大象辭)” 중에 “천행(天行)은 건실하다. 군자는 본받아서 쉬지 않고 노력한다.”고 말한 것이 있다. 천도는 강건한 것이고, 군자는 하늘을 모범으로 삼는다. 따라서 마땅히 하늘과 마찬가지로 운행이 멈추지 않고、강건한 것이 쇠퇴하지 않고、자강불식한다. 이로 말미암아 수없이 껶여도 결코 굽히지 않고(百折不撓)、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勇往直前) 의지력을 빚어낸다. 철학의 단계와 측면에서 말하자면, “이것은 인생의 가치와 생명의 의의에 대한 최후의 관심과 긍정이며, 일종의 인격을 중시하는 ‘사람을 근본으로 하는’ 사상을 구현하였다.” 《가인(家人)․대상》중에 여전히 강력히 “군자는 말을 성실(物)하게 하며 행동을 항상(恒常)되게 한다.”고 지적한다. 즉 일을 맡는데 끈기를 가지고 지속하는 결심이 있어야 하고, 이것은 또한 군자의 자강불식 정신의 하나의 구체적인 구현이다. 『주역』은 전문적으로 《항(恒)》괘를 두어서 군자는 항상이 있다는 극단적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항은 형통한다. 화(禍)가 없다. 바르니 좋다. 가는 것이 있어서 좋다.” 군자가 만일 끈기를 가지고 지속한다면 형통할 수 있다. 그 도를 오래 동안 지켜서 곧 천하를 변하게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흉험(凶險)에 부닥치거나 혹은 치욕을 당할 수 있으며 어떤 좋은 것도 얻을 수 없다. 예를 들어 “깊게 하는 것을 항(恒)으로 한다. 고집하면 흉하다. 좋은 일이 없다.”, “그 덕이 일정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 그 사람에게 치욕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