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와 저서
법관은 판결로 말하고, 배우는 연기로 말하며, 학자는 저서로 말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매우 원칙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이 별로 시끄러울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자신들을 나타내고 진실하지 못한 전문성을 발휘하다가 문제가 야기되어 세상은 시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가하면 판결로만 말하도록 그냥 두지 않고, 연기나 저서만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이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없도록 강요하는 세태 때문에 그러하지 못하는 현실은 더욱 가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살펴보면 자신의 노력이 부족함 때문에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세상의 강요 때문에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전문가들이 많아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지식인이나 작가들의 표절 문제도 그렇고, 학자들이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정신을 쏟느라 본격적인 저서가 제대로 나오지 못함도 문제의 하나입니다.
18년의 귀양살이에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오롯하게 학자의 자세를 지키며 본격적인 저술활동에만 전념하여, 이른바 ‘실학의 집대성자’라는 호칭을 받는 다산은 정말로 저서로 말했던 학자였습니다. 『주역사전(周易四箋)』이라는 24권의 방대한 저서를 마쳐놓고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책은 바로 내가 하늘의 도움을 얻어 지어낸 책이다. 절대로 사람의 힘으로 통할 수 있고 인간의 지혜나 생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是吾得天助之文字 萬萬非人力可通 智慮所到 : 示二子家誡)라는 확신에 찬 이야기를 하면서, 이 책에 마음을 기울여 오묘한 뜻을 다 통달할 수 있는 사람은 천년에 한번쯤 있을까 말까 한다고 걱정하면서 아끼고 중요하게 여기기를 여타의 책보다 곱절을 더 생각하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얼마나 정력을 기울이고 지혜를 짜내서 저작한 책이길래 하늘의 도움으로 지어낸 책이라 하고, 인간의 힘이나 지혜로는 저작할 수 없는 책이라고 했을까요. 학자란 그런 노력을 기울이고, 그 결과에 그만한 확신과 믿음이 있어야 ‘저서로 말한다’라는 의미를 충족한다고 생각됩니다. 저서라는 염불보다 여타의 잿밥에 정신 팔고 있는 학자들, 한번쯤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섯 번, 여섯 번째로 개고(改稿)에 개고를 거듭하여 『주역』연구에 열정을 바친 다산은 『주역사전』이라는 책은 하늘의 도움으로 연구해낸 책이라고 하더니, 유배초기부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완성해낸 『상례사전(喪禮四箋)』50권에 대해도 아들에게 보낸 가계(家誡)에서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상례사전』 이 책이야말로 내가 성인(聖人)의 글을 독실하게 믿고서 지은 책으로, 내 입장에서는 엉터리 학문이 거센 물결처럼 흐르는 판국에 그걸 흐르지 못하도록 모든 냇물을 막아 수사(洙泗:孔子)의 참된 학문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뜻에서 저술한 책이다. 정밀하게 사고하고 꼼꼼히 살펴 그 오묘한 뜻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뼈에 살이 돋고 죽은 목숨이 살아나는 일이다. 천금(千金)의 대가를 주지 않더라도 받은 것으로 여기고 감지덕지 하겠다. 바로 이 두 종류(주역사전, 상례사전)의 책이 전해질 수만 있다면 나머지 책들이야 없애버린다 해도 괜찮겠다.”(喪禮四箋 是吾篤信聖人之文字自以爲回狂瀾而障百川 以反洙泗之眞源者 有能精思密察 得其奧妙者 此肉骨生死 千金不授 感之德之 如有受賜 卽此二部 得有傳襲之餘雖廢之可也… : 示二子家誡)
학자의 대단한 자긍심의 설파입니다. 상례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면서, 송(宋)나라 이후의 모든 주석서들을 다 제쳐놓고, 곧장 공자에게로 돌아가 철저히 공자만 믿으면서 상례의 참뜻을 찾아낸 연구서라는 확신에 찬 이야기입니다. 물길을 막아 미친 물결을 되돌려 수사(洙泗)로 돌아가자는 다산의 경학연구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불교적 이론이 스며든 송나라 이후의 경전해석에서 탈피하여 공자의 본래 뜻을 찾아 현실을 변화시키겠다는 개혁적인 경전해석 논리가 철철 흘러넘치는 표현입니다.
『주역』과 『예기』의 진면목을 알아내 우주와 자연의 변혁원리는 물론, 인간사의 변혁논리를 제대로 찾기 위한 주역연구, 유교의 핵심논리인 효(孝)의 개념과 상제(喪祭)의 원리를 밝혀 인간의 윤리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려던 경학연구의 목적이 드러나 있는 부분입니다.
심혈을 기울여 창의적인 책을 저술하고 결과에 확신을 갖는 그런 학자는 요즘에는 없을까요. 다산 같은 학자가 그리워지는 세상입니다.
억울한 다산
남들에게 억울함이 없기를 그렇게도 바랐던 다산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억울한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때 천주교에 관계해서 법을 위반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젊었을 때의 일이고, 진즉 몸과 마음에서 종교적 의미에서의 천주교는 단절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음모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천주교에 관계한 죄를 들어 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벌을 받아야 할 죄악을 저질렀다면 받아야 하겠지요. 그러나 18년이라는 긴긴 유배살이는 너무도 혹독했습니다. 너무도 지나친 남형이요 억울한 처벌이었습니다.
백성들 굶주려도 나를 원망 못할 거고 (民飢不我怨)
백성들 사나워도 나야 알 바 없다네. (民頑我不知)
후세에 나를 두고 말하는 이들 (後世論我曰)
뜻을 얻었더라면 무언가 해냈으리라 하겠지. (得志必有爲)
1804년 강진읍에서 유배살이 시절에 지은 견우(遣憂)라는 시입니다. 딱 200년 전의 시인데 오늘 읽어도 다산의 억울함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훌륭한 경세철학으로 나라와 백성을 도탄에서 구제할 능력과 지략을 갖추었던 다산, 그를 먼먼 바닷가에 유폐시켜 공민권을 박탈하고 세상에 나와 일할 자격을 빼앗아 버렸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기아와 질병으로부터 백성을 해방시키고, 곡식과 재화가 넉넉하면 사나운 백성들이 유순해지고 풍속이 순화될 수 있었건만 그러할 수가 없으니 아무런 방책이 없었습니다.
백성들이 굶주린들, 백성이 사나워 투쟁에 휩싸인들 다산이 어떻게 손을 썼겠습니까. 오늘에서야 그때 다산을 중용해서 실사구시의 정책을 폈다면 일찍 조선이 근대화도 되고 나라도 망하지 않았으리라 말하지만 이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정말 다산은 너무도 억울하게 살다가 아깝게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박석무
중국과 북한 관계
첫째, 북중관계를 중국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관계로 보는 오해이다. 객관적인 힘을 비교하면 이러한 오해가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북한은 힘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관계에서 상당한 자율성을 확보해왔다. 1956년 이른바 ‘8월종파사건’에서 소련파는 물론이고 중국의 연안파를 모두 쫓아낸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그 이후에도 중국의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차단해왔다.
둘째, 중국이 북한을 전략적으로 부담으로만 생각한다는 오해이다.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한 직후 중국의 반응을 보면 이런 오해가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환치우스바오(還求時報)는 6월 3일 “조선은 중국 인민에게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朝鲜不应得罪中国民间)”는 제목의 논설을 게재했다. 그러나 감정은 감정이고 현실적 이익은 이익이다. 중국과 미국은 다양한 영역에서 협력을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상대를 여전히 잠재적 경쟁자로 보고 있다. 특히 중국은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이 군사적으로 자신을 위협한다고 여긴다. 이러한 조건이 사라지지 않는 한 중국은 북한이 미국의 위협을 완화해주는 전략적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이 혼란에 빠지거나 붕괴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북중협력관계를 안정적으로 추진해 갈 것이다.
셋째, 중국은 대외적으로 현실적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오해이다. 하지만 이념이나 규범적 요소가 북중관계에 미치는 영향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북한과 특수관계를 유지한다고 보는 견해는 많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주의의 발전을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신의를 저버린다는 것도 쉬운 결단은 아닐 것이다.
중국이 버릴 수 없는 북한카드, 북한이 활용할 수 있는 중국카드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 대외정책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저우언라이(周恩來)가 1954년 제시한 영토 및 주권 존중, 상호불가침, 내정불간섭, 평등호혜, 평화공존 등의 내용을 담은 ‘평화공존 5원칙’이라는 점이다. 중국은 이 원칙을 티베트와 신장 등의 분리주의와 인권문제에 대한 외부의 간섭을 비판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북한에 대한 지나친 압력은 이러한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중국의 인터넷토론방에서는 미국과 소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개발한 중국의 역사적 경험 등을 들어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에 동의한 것을 비난하는 주장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북중관계가 과거의 동지적 관계로 돌아가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북중관계가 쉽게 단절되거나 중국이 북한에 대해 일방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국은 비핵화와 북중협력관계의 유지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두 목표가 충돌하며 중국의 고민을 깊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게 비핵화라는 목표는 북한의 핵개발 이후에도 달성될 수 있는 것이지만, 북한의 붕괴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변화과정에 진입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는 중국의 지정학적·전략적 이익을 위협할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 중국의 외교원칙을 스스로 버리고 있다는 이념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이제 제재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한반도 문제의 관련국들이 제재를 위한 제제에만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대화의 전환점을 만들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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