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구름샘 마을에 자그마한 집을 가지고 있다. 서울 생활에 지칠 때가 찾아 오면 이곳에서 살려고 나무와 흙으로 지은 스무 평짜리 토막에 책이며 잡동사니들을 잔뜩 쟁여 놓고 가끔씩 내려와 글도 쓰고 책도 읽다 간다.
이곳에 오면 시간이 천천히 흘러서 좋고, 무엇보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숲의 향기가 나를 취하게 한다.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황홀하게 하는 것은 이름 모를 산새들이다. 아침 저녁으로 주변의 나뭇가지 사이를 나르며 분주히 하루를 보내는 산새들의 지저귐 소리는 한바탕의 아름다운 피리 합주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사단이 생겼다. 집을 지탱하고 있는 나무 기둥 중, 뒤편 왼쪽 기둥에 조금씩 상채기가 생기더니 여기저기 구멍이 파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가 딱따구리가 기둥 속에 있는 애벌레를 파먹거나 집을 지으려고 구멍을 낸다는 동네 아저씨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저씨는 구멍이 커지면 기둥이 무너질수도 있으니 못 짓게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구멍 근처에다 에프킬라를 잔뜩 뿌려 놓고 갔다. 딱따구리는 예민한 새이니까 조금만 뿌려도 다시는 오지 않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몇 주 뒤에 와보니 구멍이 훨씬 더 커진 게 아닌가? 게다가 "딱딱딱~"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보니 부지런한 딱따구리가 새벽부터 부리로 열심히 기둥을 쪼고 있는 것이었다. 깃털이 화려하고 배 부분에 붉은 깃털이 있는 걸로 봐서 백과사전에서 본 오색딱따구리인 듯 싶었다.
딱따구리는 어떤 새?
탁목조(啄木鳥)라고도 한다. 산지 숲에서 단독 또는 암수 함께 생활한다. 나무줄기에서 생활하기에 알맞게 곧고 날카로운 부리와 날개축이 단단한 꼬리깃을 가지고 있다.
나무줄기에 수직으로 붙어서 나선형으로 올라가면서 먹이를 찾는다. 꼬리깃으로 몸을 지탱하고 앞뒤 2개씩 달린 발톱을 나무 줄기에 걸어 몸이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막은 다음 날카로운 부리로 구멍을 뚫고 가시가 달린 가늘고 긴 혀를 구멍 속에 넣어 혀끝으로 딱정벌레의 유충 따위를 끌어내서 먹는다. 그 밖에 땅 위에서 개미를 잡아먹기도 하고 가을과 겨울에는 나무열매를 먹는다.
번식기에는 수컷이 속이 빈 줄기나 가지를 쪼아 소리를 내서 짝을 찾는다. 둥지는 암수가 번갈아 가면서 나무의 윗둥치를 쪼아 만들고 구멍 바닥에 한배에 2~8개의 알을 낳는다. 어린새는 15~20일이면 둥지를 떠난다. 대형종 중에는 약 35일이 걸리는 것도 있다.
전 세계에 약 210종이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뉴기니·마다가스카르·남태평양제도 및 양극지를 제외한 전 세계에 분포한다. 한국에는 개미잡이속·청딱따구리속·까막딱따구리속·오색딱따구리속의 4속 9종이 분포한다. 그 가운데 개미잡이· 붉은배오색딱따구리는 철새이고 크낙새는 한국 특산종이며 청딱따구리는 한국과 일본 특산종이다.
나는 동네 아저씨에게 물어 나무가 썩지 않게 하고 벌레도 끼지 않게 한다는 우드스테인을 서울에서 사가지고 내려와 끙끙거리며 서까래와 기둥 곳곳에 발랐다. 그러고 올라간 게 한 달 쯤 전이었다. 그동안 바빠서 한동안 내려 오지 못하다가 마침 어린이날 휴일에다 안성 장날이 겹쳤으니 장에서 매화, 철쭉, 라일락 같은 나무들을 사서 심을 겸 혼자서 내려 왔다.
그런데 아뿔사! 그 기둥의 크기와 쪼아 놓은 갯수가 더욱 늘어나 있는 게 아닌가? 기둥 밑에는 나무부스러기까지 잔뜩 널려 있었다. 구멍 하나가 유난히 큰 걸로 보아 부부가 새끼들과 함께 이미 살림을 차려 놓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기둥의 상처 자국을 따라 개미떼가 부지런히 오르고 내리는 걸 보니 이러다 기둥이 썩고야 말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나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남아 있는 에프킬라를 구멍 속속까지 잔뜩 뿌려 놓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 독한 살충제를 뿌렸는데 저희들이 이사를 안가고 배겨?"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방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딱딱딱~" 하는 익숙한 소리에 가만히 일어나 밖을 내다 보았다.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오색딱다구리(?) 한 마리가 기둥에 앉아 콕콕 부리질을 하다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꺄웃뚱거리다가, 다시 콕콕 쪼아대고 있었다.
나는 급히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그러나 인기척에 놀란 딱따구리는 금새 날아가 버렸다. 나는 기척을 숨기고 방에 앉아서 밖을 열심히 내다 보았다. 과연 딱따구리 두 마리가 집 주위의 나뭇가지 사이를 날면서 뭔가 집안에 생긴 변고를 상의하는 것 같았다. 그런지 한참 뒤에 한 마리가 기둥의 구멍 속에 날아 들어가더니 한참 동안 쪼아대기 시작했다.
조용한 집안을 울리는 딱따구리의 부리질 소리를 들으며 나는 한동안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가서 쫒아내야 하나? 헝겁으로 구멍을 틀어 막아야 하나? 에프킬라보다 더 독한 살충제를 사와야 하나?" 여러 생각들이 오가던 내 뇌리 속에 문득 이런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
딱따구리는 저 기둥을 자기 집으로 알고 아기를 키울 공간을 만들려고 저러는 것일텐데 내가 왜 방해하는 거지? 나는 이 집을 가끔 쓰고 딱따구리는 매일 쓰는데 그럼 누가 저 기둥의 주인이지? 내가 뿌리는 에프킬라가 철거민에게 전투경찰이 쏘아대는 최루탄하고 다를 게 뭐지?
이러다 '구름샘 참사'라도 일어나 딱따구리가 죽으면 그 책임은 누가 지지?" 잠시 뒤에 딱따구리는 어디론가 날아가고 주위는 조용해졌다. 인기척 때문인지 딱따구리는 저녁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갑자기 딱따구리가 보고 싶어지고, 무얼 하고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딘가 둥지가 또 있겠지? 아기새들도 함께 있을까? 온 가족이 모여 뭘 하고 있을까? 저녁은 맛있게 먹었을까? 지금 잠을 자고 있을까? 아침엔 언제 일어날까? 딱따구리 둥지 좀 있다고 설마 기둥이 무너질까? 아니겠지? 그럼, 만약 딱따구리하고 동거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노을이 지고 저녁이 내려 앉는 산속에서 나는 점점 딱따구리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까이 방안에서 둥지 쪼는 딱따구리 소리를 들어 본 사람이 전 세계에서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저 아름답고 귀한 천연기념물이 우리집에 날아 와 저 소리를 들려주는 건 신의 섭리가 아닐까?"
그러다가 차가운 산속의 밤이 찾아왔다. 나는 불을 끄고 누워 딱따구리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지 얼마 뒤, 들어보라! 딱따구리 부리질 소리가 나는 것 아닌가? 나를 의식하는 듯 처음에는 아주 조심스럽고 간간이 쪼아대던 딱따구리는 이내 자신을 얻어 점점 크게 자주 부리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한참동안 별빛이 반짝이는 마당을 서성이던 나는 마침내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그래, 집이 무너져도 좋으니 딱따구리하고 동거를 해 보자!"
그런데---어떻게 동거를 하지?
출처: [김명곤의 세상이야기]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 밀알가입은 hmwiwon@gmail.com (개인신상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 군자금계좌: 농협 356-0719-4623-83안정주
※ 통합경전계좌 : 국민은행 901-6767-9263노영균sjm5505@hanmail.net
※ 투자금 계좌: 하나은행 654-910335-99107 안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