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4일부터 28일까지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는 ‘종교와 수사학’이라는 주제로 세계수사학사회(ISHR) 제16차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페르노 회장의 주도 아래 30여개 국가 학자 250여명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수사학의 축제, 말의 잔치였다. 5개의 서구 현대어(영어, 불어, 독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와 고전 라틴어가 공식 언어로 채택되어 진행된 학술대회는 바벨탑의 공사 현장을 떠오르게 했다.
특히 대회장이었던 ‘대학궁전(Palais Universitaire)’의 넉넉한 중앙 로비는 참가자들이 쉬는 시간마다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고, 발표에 관한 토론을 이어 나가던 소통의 공간이었다. 그곳은 참가자들의 각종 언어가 뒤섞이며 이해와 오해를 낳았다. 이 광경과 잘 어울리는 흥미로운 발표가 있었다. ‘바벨탑, 축복인가? 저주인가?’라는 제목으로 버클리는 언어학적인 다양성 속에서 수사학이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가라는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성서(창세기 11:1-9)에 따르면 인간은 흩어짐을 피하고 통합의 꿈을 이루고자 거대한 탑을 세우려고 했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무엇이 문제였을까? 하나의 도시를 건설하고 생활과 문명의 통합을 추구했던 인간의 소원은 하늘에 닿는 탑으로 표현되고 있었는데 신(들)은 인간의 욕망이 괘씸했고, 은근히 걱정도 되었던 모양이다.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흩어짐을 피하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은 언어의 흩어짐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의사소통이 깨지자 인간의 큰 모둠은 깨졌고 언어가 같은 사람들끼리의 작은 모둠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인부들이 떠난 바벨탑의 공사 현장은 먼지바람만이 일어나는 폐허로 버려졌다. 그런데 말과 인간의 흩어짐은 과연 신의 형벌이요 저주였을까?
# 새로운 바벨탑의 꿈?
ISHR의 학회가 열렸던 스트라스부르는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중심지이다. 현재 이곳은 라인 강을 사이에 두고 독일과 국경을 같이 하고 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독일의 영토였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위치한 이곳은 두 나라 사이에 탁구공이 왔다갔다 하듯 국적이 네 번이나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지리적 위치와 역사적 사정 때문에 벌어지는 흥미로운 일에 귀가 솔깃하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성자’라는 별명의 슈바이처 박사는 독일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생가는 알자스의 조그만 마을 카이저스베르크에 있다. 그가 태어날 당시엔 알자스가 독일 영토였기 때문에 그는 독일인이 된 것이다. 지금도 알자스의 시골에 가면 프랑스어는 전혀 못하지만 독일어는 할 줄 아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다. 어떤 할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는 독일군으로 참전해서 프랑스인들과 싸웠는데, 지금은 프랑스인이라며 웃는다.
독일과 프랑스 사이를 왔다갔다 시달린 탓에 이곳 사람들에게는 국적에 대한 의식보다는 지방의식이 강하다. “나는 프랑스인도, 독일인도 아니다. 나는 알자스인일 뿐이다.” 그들은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오히려 경계심을 갖고 배타적인 성향을 강하게 보인다.
같은 프랑스인들끼리 있으면서도 저희들끼리 할 말이 있을 때는 알자스 말을 하면서 키득대곤 한다. 알자스 사람들은 알자스어를 지키기 위해 교육에 힘쓴다. 지역 공중파를 통해 알자스어 방송을 일정 시간에 내보내며, 알자스어를 갈고 닦아 넓히려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토록 지방색이 강한 지역에 유럽 통합의 상징인 유럽의회장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알자스의 중심지인 스트라스부르는 그대로 ‘유럽의 수도’다. 이에 대해 골수 알자스 사람들은 포도주를 팔아 번 돈을 유럽의회에 쏟아 붓는다고 투덜대며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들을 향해 한 정치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알자스인이다. 고로 나는 유럽인이다.”
‘미합중국’에 맞서기 위해 이른바 ‘유럽합중국’의 정신을 기초한 로베르 슈만은 유럽을 만드는 일이 평화를 이루는 일이며, 시대적 요청이라 주장했다. “우리는 국가를 결합시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언어로 갈라졌던 인간들을 하나의 거대한 모둠 속에 다시 모아들이며 거대한 정치적 조직과 경제적 블록을 형성하려는 노력은 다만 유럽의 통합 운동에서만 나타나는 일은 아니다.
매스미디어와 인터넷 조직망의 세계적인 확산과 국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적인 개방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인간의 삶 전체에 걸쳐 세계 모두를 하나의 문명권으로 통합시켜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른바 세계화의 시대. 전설 속에 묻혀있던 바벨탑의 꿈이 다시 현실 속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더군다나 세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영어의 지배력은 갈라졌던 인간들의 언어를 하나로 묶어 바벨탑 이전의 상황으로 돌려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들은 드디어 신(들)의 저주를 극복하고, 중단되었던 바벨탑 공사를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서구 수사학의 욕망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말(logos)이다. 말을 통해 사유하고, 서로 소통하며 이해의 끈을 엮어나갈 수 있을 때 인간은 동물과 뚜렷하게 나뉜다. 말은 소통의 이해를 통해 인간을 하나로 묶어주며, 소통의 오해를 통해 갈라서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수사학은 전통적으로 말을 통해 사람들을 묶어주는 힘을 확보하는 기술을 뜻했다. 특히 서구의 수사학이 그렇다.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전하여 듣는 이를 내 편으로 만드는 힘. 수사학은 바로 그 힘을 찾아 나서며, 그 힘을 부릴 줄 아는 기술을 체계적으로 짜 맞추는 데서 이루어진다. 특히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식적으로 설득을 해야 할 때 수사학은 고유한 모습을 갖는다.
수사학으로 번역되는 그리스 말은 ‘레토리케(rhetorike)’다. 이 말은 ‘레토르(rhet9r)의 기술(-ike)’을 뜻한다. 기원전 5세기쯤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레토르’라는 낱말은 이렇게 분석된다. ‘레(rhe)’란 ‘일정한 형식의 틀을 갖춘 공식적인 언어 행위’를 가리키는데 특히 종교 행사나 연례 공식 제전 그리고 법정이나 정치회합 등과 관련된 공식석상에서 말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여기에 매개자음 ‘트(-t-)’가 붙고, 거기에 사람을 표시하는 접미사 ‘오르(-or)’가 붙어 ‘레토르(rhetor)’가 만들어진다. 말의 뿌리를 따져볼 때 이 말은 ‘공식석상에서 연설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여기에 ‘이케(-ike)’가 붙으면 연설하는 사람의 능력이나 기술을 뜻하게 된다. 이 낱말은 문헌상으로 기원전 4세기 초 알키다마스의 글과 플라톤의 대화편 ‘고르기아스’(448d-449a)에서 처음으로 확인된다.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국가의 운영에 참여했던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가 낳은 것이 바로 레토리케였다. 연설가는 인민들이 모인 의회에서 자신의 정치 신념과 외교적 계획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려 넣어야 했다. 그리고 말(說)을 통해서 듣는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얻어야(得) 했다. 그래서 연설가의 기술인 레토리케는 설득(說得; peito)의 기술인 셈이다.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말을 통해 자신의 뜻 안으로 모이게 하며 흩어지지 않게 만드는 통합의 힘. 레토리케는 노골적으로 그 힘을 겨냥하고 있다. 그것은 말의 논리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며 성품을 통한 감동을 일으키는 언어의 모든 힘을 노린다. 말을 통해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힘. 하나의 마력으로 통한다. 그리스의 소피스트 고르기아스는 ‘헬레네 찬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말은 약이 몸의 기능을 회복하고 개선하는 것과 같은 방식(auton logon)으로 인간의 영혼에 작용한다고.
피터 브뤼겔의 1563년작 ‘바벨탑’.
# 바벨탑의 바깥, 아니면 그 안에서
서구 수사학자들의 틈새에 중국과 한국에서 온 학자들이 있었다. 특히 한국수사학회의 초대 회장을 맡았던 전성기 교수(고려대)는 지난 몇년간 한국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요령 있게 정리하여 전체 회의에서 발표했다.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수사의 개념을 고전에 근거하여 새롭게 제시하고, 여러 역사적인 자료을 바탕으로 동·서양 사이의 비교수사학이 성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비추었다.
대회에 참가한 많은 서구 학자들은 이 참신한 노력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중국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한 서구 수사학의 틀에 맞추어 동양의 수사학 전통을 설명하려는 데 반해서, 한국의 학자들은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해 들어갔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자 문화권의 전통에서 ‘수사(修辭)’란 타인에 대한 언어적 지배력의 개념이 아니라, 인격을 수양(修養)하기 위한 ‘자기 닦음’의 개념이었음을 밝혔던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과연 “레토리케는 수사학인가?”라고. ‘레토리케’와 ‘수사학’ 사이에서 그 거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좁혀나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느냐에 따라 우리는 서구가 새롭게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쌓아올리려는 바벨탑의 꿈을 재앙이 아닌 축복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김헌|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