갗태어난 아기가 자신의 보호자인 부모를 인지하고 나면, 부모가 자신의 곁에서 사라지려 하면 무조건 울어댄다.
조금 더 인지가 발달하면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켜줄 다른 꺼리들이 등장하여 부모가 곁을 떠나도 울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여기서부모는 미묘한 감정에 젖는다.
처음엔 자신이 하고싶고 해야할 일들이 있어 아기 곁에서 멀어져야 할 일이 있는데, 아기가 자꾸 울어대면 참으로 답답해진다. 아기 돌보느라 밥 준비도 잘 못하고, 외출도 제대로 못하고 내내 아기 곁을 지켜야 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한데 이제 아기가 점점 커서 바깥 세계에 관심이 늘어나고 어린이집도 다니고 그 생활에 적응이 되면, 아기가 부모 곁에서 떨어져도 울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한다.
처음 어린이집을 보낼 때 부모와 떨어지는 불안 때문에 아기가 울면, 애처로우면서도 한편 아기가 자신을 부모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 기쁨를 느끼기도 한다.
한데 어린이집 다니는 것이 적응이 되면 웃는 얼굴로 빠이빠이 하며 어린이집을 간다.
그럴 땐 가끔 아기가 울지 않는 게 서운해지는 것이다. 이제 아기가 나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구나 하는 서운함.
엄마가 아기를 전담할 경우 엄마는 다반사로 그런 경우를 겪기에 금방 그 상황을 벗어나는데, 아빠의 경우는 그 강도가 더 세지 않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생활 속에서 가끔씩 그런 일을 겪으면 적응시간이 좀 길어진다.
아기와 떨어질 때 울면 애처로움과 아빠로 인정받는 기쁨을 느끼나, 반대로 울지 않고 씩씩하게 헤어지면 애가 우는 난처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편안함은 있으나, 한편 아이가 내 그늘에서 멀어지는 느낌, 아버지로서의 존재감이 상실되는, 아기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서운함 상실감에 빠진다.
참 이중적인 감정형태라 하겠다.
이를 종교판으로 갖고와 보자.
연맥제 하에서 도제가 자신를 사수로서 존중해주지 않으면, 서운함과 함께 도제의 행태를 비판하게 된다.
종교지도자의 입장에서도 마찮가지다.
신도들이 자신을 두목으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그 신도들을 불의하다고 꾸짖게 된다. 나아가 절대권자로서 신도들에게 인정받고자 교조의 가르침을 초월한 교리도 만들어내어 최고 높은 곳에 서고 지존으로 인정받으려 한다.
이런 인간의 행태는 누구나 갖게 되는 인지상정이라 하겠으나, 종교지도자가 되어 저런 행태를 초월하지 못하고 유지하게 되면 큰 죄악 된다.
아이도 자유의지를 가진 독립적 존재이고, 몸과 의식이 성장하면 부모를 초월한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이 부모로서도 큰 기쁨인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목적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종교지도자 또한 신도들이 지도자에 의존한 신앙을 벗어나 자신의 독립된 존재로서 우뚝 서면 그것으로서 만족을 느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지도자가 자신이 최고임을 내세우고, 그것을 인정받으려 과도한 행위를 하고, 신도들을 하찮게 여기고, 신도들을 끝까지 자신의 아래에서 자신을 떠받들며 의존적인 존재로 이끌고 있다면...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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