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 혁명 사이트가 삼변의 변화를 하면서 정립되어짐을 축하합니다.
혁명은 껍데기 까지도 밝고 새롭게 바뀌려는 하늘의 천명일것입니다. 지나온 증산도 백년의 역사를 통하여 온고지신 하는 자세로 육백만 신도의 보천교 연혁사를 되돌아 보면서 상제님이 쓰신 원대한 포부와 뱃심을 지니셧던 차경석 교주의 1919년 전신도에게 내린 훈화말씀을 살펴봅니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동년(道紀49, 1919) 4월에 송 대선(宋大善)으로 하여금 채 규일(蔡奎壹) 김 홍규(金洪圭)를 명해 부르사 말씀하시기를
바야흐로 지금 세상사가 위험하니 군(君) 등은 교도를 경계하야 망동치 못하게 하라 하시고 경고문을 지으사 부여하시며 가로대 이글을 교도에게 광포해 널리 알리라 하시니
그 글에 가로대
『무릇 천지의 대운은(夫天地之大運) 그 사람이 아니면 명하지 않고(非其人不命) 인간의 대업은(人間之大業) 그 명이 아니면 이루지 못하노니(非其命不成) 사람은 그 사람이 있고(人有其人) 운에도 그 운이 있어(運有其運) 그의 행하는 바(其之所謂) 또한 그 때가 있을 뿐이니(亦有其時) 이 같은 대창(大創)을 어찌 쉽사리 말하리오.
오호라~ 시대마다의 허다한 영웅이 모두 그 마음이 없음이 없고 그 강성함을 탐하지 않음이 없음이니 그 뜻을 얻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시종일관 끝까지 미치나니 유일무이한 그 하나가 마침내 어디로 돌아가는고 하니~ 가로대 덕(德)이라. 덕이란 만 생명의 근원이요 만사의 성질이라,
그런고로 자고로 덕에 순응하는 성웅은 흥하고 덕에 거스르는 자는 망하였노니, 흥망의 경계(구분)는 그 덕이 있는지 없는지 존부존 여하를 돌아볼 뿐이라.
그러나 덕은 도에 있고(德在於道) 조화는 덕에 있으니(化在於德) 도도 없고 덕도 없이 태어난 자는 어디로부터 나왔는가. 도가 있으면 덕이 있고 덕이 있으면 조화가 있으니 이는 천리의 확고한 인사(人事)의 원기(元氣)라.
대장부 일거에 나쁜 소행(所業)을 버리는 것은 무엇으로써 하는 것인가. 그러므로 불가불 도덕으로써 하는 것이니라. 오직 내가 가르치는 바는 본래 옛 성인이 서로 전한 도덕이라. 물이 스스로 솟아나오는 자정원(自井源)이 사해에 가득차니 그의 광대함을 무엇으로 감히 말하리오.
무릇 사람이 도(道) 안에 존재함은 마치 물고기가 물속에서 사는 것과 같으며(人之在道如魚之在水) 물을 얻으면 살고(得水而生) 물을 잃으면 죽나니(失水而死) 가련 창생 큰 연못 속의 물고기가 마치 큰 가뭄의 목마른 재앙을 만난 것 같아서 그 형세와 사정이 차마 눈뜨고 못 볼 지경이니 이는 주인인 우물(井主)이 이미 통제의 권력이 있음이 되노라.
제군이 만약 조그마한 세력도 이끌 힘이 없을진대 창생을 구제하는 기운을 무엇으로 달성하리오. 오직 나의 제군은 따로 전일(前日)의 힘을 더(加)하여 죽음에 직면한 대중을 구제하기를 산과 바다에 앙축(仰祝:우러러 빔)하노라.』
바야흐로 시세를 보건대 정자(靜者)는 누구이고 동자(動者)는 누구인가. 이르노니 대중의 계획하는 바는 다만 백성의 일을 낱낱이 들춰내는 것뿐이라. 일에는 선후가 있고 각기 그때가 있으며 때가 시동함에 시운이 아님이 없음을 어찌 감히 부정하리오.
그러나 뭇 별들의 광채가 비록 밝다 해도 달 하나의 밝음만 못한 것이며, 뭇 물고기들의 용기가 비록 높다 해도 일룡(一龍)의 기운만 못한 것이고, 뭇 새들의 울음소리가 비록 좋다 해도 일봉(一鳳)의 울음소리만 못한 것이니,
그러므로 도(道)를 품고 있는 깊은 곳은 마치 봄 연못(春沼)의 잠룡과 같아서, 기회를 얻고 때를 만나 움직인 즉, 바람으로 바다를 가르는 권세로 세속의 먼지구덩이를 청소하고 더불어 봉황이 울고 용이 움직이는 기운으로 일월의 밝음을 새롭게 드러내 그 끝(其極)을 반드시 달성할 것이다.
잠시 쉬어 객쩍은데 의지해 한두 마디 짧은 말과 글(片言隻字)로 간략히 기록해 몇몇 행간으로 제군들에게 경고하노니 조금도 망동치 말라. 심화기화(心和氣和)로 춘화(春和)를 기다리며 기미(道紀49, 1919) 기사(己巳) 기망(旣望) 서(書)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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