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미국 이민, 이혼, 세 딸의 싱글맘, 꿈, 재혼 그리고 퍼스트레이디가 된 유미 호건의 도전을 다룬 가슴 뭉클한 감동의 이야기이다. 현재 미국 메릴랜드주의 퍼스트레이디 유미 호건은 전남 나주 출신으로 스무 살 어린 나이에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 이민을 결정했다. 미국 이민 후 첫 남편과의 이혼으로 싱글맘이 되었지만,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그녀는 세 딸을 훌륭하게 키워냈을 뿐만 아니라 평생의 꿈이었던 미술 작가가 되었다.
그녀는 동료 작가들과의 그룹전에서 우연히 래리 호건을 만나 3년 교제 끝에 재혼했다. 그 후 남편 래리 호건은 메릴랜드 주지사에 당선되었고, 유미 호건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한인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그녀는 주지사인 남편을 도와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일에 앞장섰고, 특별히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모국인 한국으로부터 진단 키트 50만 개를 수입할 수 있도록 조처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에 미국 주 정부 가운데 메릴랜드가 가장 신속하게 방역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또한, 퍼스트레이디로서 모국 한국과 메릴랜드의 유대를 강화하고 바이오산업, 교육, 특산물 등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유미 호건은 미국 차기 대통령 후보로까지 부상하고 있는 래리 호건 주지사를 내조하면서 메릴랜드주는 물론 미국 사회 전역에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고 있다. 그녀는 미국 이민, 이혼 그리고 싱글맘으로 녹록하지 않았던 상황에서도 세 딸을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웠고,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이후 메릴랜드주 퍼스트레이디가 된 유미 호건의 인생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도전과 희망의 메시지로 회자되고 있다. 유미 호건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여 기어이 역전 드라마를 이루어낸 실화의 주인공이다. 이제 우리는 역전 드라마 같은 실화의 주인공 유미 호건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이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
미국에 ‘퍼스트레이디’는 백악관에만 있지 않다. 50개 주(州) 지사와 수도 워싱턴DC 시장의 배우자도 ‘퍼스트레이디’ 또는 ‘퍼스트 젠틀맨’으로 불린다. 워싱턴DC와 접한 메릴랜드주 래리 호건(65) 주지사 부인 유미 호건(62)은 미 역사상 첫 한국계 퍼스트레이디이다. 2015년 남편의 주지사 취임 후 7년째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최근 42년 이민 생활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 『우리가 서로에게 선물이 된다면』을 펴냈다. “영화를 몇 편도 만들 수 있는” 파란만장한 개인사를 덤덤하게 풀어냈다.
![유미 호건 미 메릴랜드 주지사 부인. [사진 이광조]](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10/27/61c5525e-4aa7-4ade-a92f-f0727a7ff540.jpg)
- 책 속으로 -
기적이 현실이 된 것이다. 블루 스테이트라고 불릴 만큼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 남편은 공화당원으로서 극적인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나는 한인 이민 역사 112년 만에 최초의 한인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 p.15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미국으로 왔다. 어릴 적부터 미술을 좋아했고 언젠가는 오상암 선생님처럼 되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내 꿈은 멀게만 느껴졌다. 더 나은 곳에서 미술 공부도 하고 대학교도 가고 싶어 미국 이민을 결정했다.
--- p.32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다른 나라로 잘못 온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미국 텍사스 깡시골이 나의 첫 미국 정착지가 되었다.
--- p.36
환경이 바뀐 만큼 남편도 변하리라 생각했지만, 그는 여전히 술과 도박에 빠져 있었다. 아이 둘을 키우는 것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 p.39
늘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고단하기 그지없는 미국 생활이었지만 딸들이 있어 하루하루 버텨 나갈 수 있었다.
--- p.48
래리는 교제하면서 나의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미술 공부를 계속해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공부를 다시 해서 학업을 마쳤으면 좋겠다며 자신이 돕겠다고 했다. 결혼하기전에 이런약속을 하고 믿음직스럽게 내 곁을 지키는 그에게 더욱 신뢰가갔다.
--- p.62
“어려워도 포기하지 마라.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반드시 꿈을 이룰수 있다.”
--- p.78
남편이 주지사에 당선되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나만의 남편이 아닌 메릴랜드의 남편이었다.
--- p.105
그러나 실의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했다. 남편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아이들을 안심시킬 사람은 나뿐이었다.
--- p.113
남편에게는 희망을 주는 말로 한껏 위로했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는 옷장에 들어가 혼자 숨죽여 울었다. 경호원들이나 일하는 사람들이 들을까 우는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 p.116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를 관저에 꼭 심고 싶었다. 동백꽃은 전남 여수에서 늦겨울 추위를 뚫고 봄에 피는 아름다운 꽃이다. 이 의미를 한인 교포들이 마음으로 느낄수 있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꽃들을 심고 싶었다.
--- p.129
다른 것은 몰라도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손길을 내밀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만은 자부하고 있다.
--- p.133
우리는 이민자로서 저마다의 배경, 출신, 전통, 문화를 지니고 각자의 아메리칸드림을 찾으러 이 땅에 왔지만 다 같이 공유하는 하나의 꿈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아이들, 그리고 손자 손녀들이 평화롭고 안전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 p.159
미주 한인 이민 역사상 최초의 한인 퍼스트레이디로서 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딸임을 한 번도 잊어 본적이 없다.
--- p.163
돌이켜 보면 무엇하나 녹록한 게 없는 인생길이었다. 굽이굽이 산을 오르내리는것 같은 숨 가쁜 인생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코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했고, 긍정적으로 살았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물러서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라, 희망은 언제나 그대 편이다.” --- p.205
저자소개
유미 호건
유미 호건은 화가이며, 미국 메릴랜드주의 퍼스트레이디이다. 2008년 메릴랜드 예술대학교에서 예술 학사, 2010년 아메리칸 대학교 대학원에서 예술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주로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추상 풍경화를 그리며, 전시회 등과 더불어 모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2000년 메릴랜드 하워드 카운티, 미국 작가들과의 그룹전이 열린 한 갤러리에서 래리 호건을 만나서 2004년 5월에 아나폴리스에 있는 페카 하우스에서 결혼하였다. 2015년 1월 21일 래리 호건이 메릴랜드 주지사로 취임식을 거행하면서 유미 호건은 메릴랜드주의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메릴랜드주 역사상 첫 아시아계 미국인 퍼스트레이디이자 대한민국 출신의 첫 미국 주 퍼스트레이디이기도 하다.
남편 래리 호건이 주지사로서의 뜻을 채 펼치기도 전에 암 진단을 받자 믿음과 의지로 간호하여 끝내 완치시켰으며,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으로부터 진단 키트 50만 개를 메릴랜드주로 들여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 내에서 한인은 물론 아시아인의 권익 신장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미술 작가로서 소아 환자, 암 환자를 위한 미술 치료 프로그램 ‘유미 케어스’를 운영하여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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