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ene Fischer---
'헬렌피셔' 독일의 디바라고 불리웁니다...
이 여성은 러시아 시베리아 출신인데요. 4세에 독일로 이민을 와서 가수로 성장하며
2014년에 독일이 브라질월드컵 우승을 하며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대표팀 환영식에 메인으로 나올정도로 독일의 국민가수로 성장하였습니다...처음 헬렌피셔를 알고 프로필을 알아보다가 출생지가 러시아인 것이 흥미로워 찾아 봤습니다. 헬렌피셔가 볼가 게르만의 후손이라는 점 때문이죠. 유럽 이민사에서 볼가 게르만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고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 관련된 이야기를 좀 써보려고 합니다.
헬렌피셔는 2005년에 데뷔했지만 이후 독일 음악계에서 수많은 상을 받아가며 이제는 중견 가수를 넘어 인근 오스트리아,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까지 위세를 떨치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84년생 이라 이제 30줄에 접어든... 전성기가 아직도 활짝~~ㅎㅎ
헬렌피셔는 출생지가 러시아입니다. 그것도 시베리아 한복판의 소도시 출신이죠.
4살때 온 가족이 독일로 이주한 러시아계 이주민입니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왔지만 슬라브족 러시안은 아닙니다.
1762년 그러니까 18C 중후반에 러시아의 에카테리나 여제는 유럽으로 부터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입니다. 넓고 넓은 자국의 인구밀도도 높히고 가장 중요하게는 중/서유럽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농업 생산력을 제고하기 위해서 독일계 이민자들을 대규모로 모집합니다.
독일계 이민자들의 선진 농경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죠. 두나라는 비슷한 대륙성 기후이고...
당시 서유럽의 영국이나 프랑스쪽 신교도들은 당연히 북아메리카로 많이들 갔지만...
독일계 이주민들은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고, 덜 낮선 러시아로의 이민을 택했습니다.
그들에게 달콤한 매력을 주기위해서 예카테리나 여제는 칙령을 통해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합니다.
자신들의 언어, 문화, 자치공동체를 보장해주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2가지...종교의 자유와 병역 면제 (이민 1세대는 물론 그 후손들까지) 라는 조건을 보장합니다.
이 매력적인 조건에 많은 독일계 이주민들이 러시아로 이주하고 그들은 주로 볼가강 유역에 정착합니다. 지금의 볼고그라드 주변...그들을 볼가 게르만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겁니다. 이주민들의 고향과 종교는 다양했습니다. 바이에른에서 이주한 사람들은 카톨릭을 믿고, 그외 다른 지방에서 온 이주민들은 루터파 개신교를 믿거나, 메노이트라고 불리우는 재세례파의 한 일파도 많았습니다.
이 메노이트들은 미국의 아미쉬 교도들과 뿌리가 비슷한 교파인데 비폭력 평화주의가 중요한 교리중 하나이기 때문에, 후일 문제가 불거집니다.
러시아로의 대이주 이후 자신들의 공동체를 이루고 한동안 잘 살던 이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러시아의 정책이 점점 자신들에 대한 특권을 줄여나가는 것에 직면합니다. 그 중 가장 문제가 된 것이 바로 징집 면제 특권의 페지입니다. 약속이 파기된 것도 못마땅한 마당에 위에 언급한 메노이트 독일이주민들은 (마치 지금 한국에서 여호아의 증인들이 양심적 병역거부건으로 감옥살이를 하는 것과 같은) 종교적으로 큰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이에 많은 독일인들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다시 러시아를 떠나게 됩니다.
그들이 다시 떠나기로 한 곳은 다름아닌 신대륙으로의 여정입니다. 이주민들은 러시아에서 떠나게 된 주된 이유중의 하나가 종교문제였기 때문에... 새로운 이주 대상국을 택하는 것도 주로 종교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남부독일 바이에른 출신의 카톨릭 이민자들은 주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대표적인 독일계 브라질리안은 세계적인 모델 지젤번천)로 갔고... 루터파나 메노이트 등 신교 계통 이민자들은 북미로 떠났습니다. 북미로 간 이민자들은 자신들이 할수 있는 한지/건조형 농업에 맞는 대륙성 기후 미국 대평원 북부쪽에 정착하게 됩니다. 제일 많이 간 곳이 노스/사우스 다코타 이고, 그 다음이 네브라스카와 캔사스 등입니다. 또한 주변에 미네소타와 미시건,일리노이주,콜로라도,펜실베니아 등에도 많이 정착했구요. 캐나다로 간 사람들은 알버타주, 매니토바주, 사스캐채완 등에 정착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독일계이주민이 만들어낸것이 함브르크 출신 이민자가 개발한 음식인 함브르크 도시명을 딴 햄버거... 프랑크푸루트 이민자가 빵에 프랑크 소시지를 넣은 핫도그. 하트모양의 슈니첼(엔티엔스프레즐)등. 위스콘신주에 본사를 둔 맥주회사 밀러,버드와이저 제약회사 화이저 등. 그리고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개발한 리바이스 진 입니다.
그외에 다수의 제품들이 있습니다. 그 후 영국계 이민자와 독일계 이민자들 비율이 50:50으로 미국의 언어를 무엇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투표를 했는데 결과는 영어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게 됩니다.
한편 겨우 정착한 러시아에서 다시 떠나기가 뭐한 사람들은 볼가강 유역에 남았는데...
곧이어 러시아에 소비에트 혁명이 일어납니다. 소비에트 정부는 독일계 이민자들이 사는 곳에 독일인들의 자치공화국을 세워주고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부여합니다. 다만 종교를 탄압하는 소비에트의 정책상 성직자들은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지는 등의 고난을 겪습니다. 그러다가 1941년 독일의 히틀러가 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공하는 순간, 볼가 게르만들에게는 크나 큰 시련이 닥치게 됩니다. 마치 연해주에 있던 까레이스키 고려인들이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했듯이, 이들도 똑같이 스탈린의 지시에 의해서 대대로 살던 고향에서 쫓겨나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의 노동 수용소로 이주당합니다.
후방에 있는 볼가게르만들이 간첩행위를 비롯해서 적대국 독일에 이로운 일을 할 우려가 있는, 즉 잠재적인 부역자로 몰렸던것이지요.
스탈린의 탄압은 전쟁종료까지 이어졌고, 이들을 몰아내고 이들의 고향 볼가강 원주거지에
서는 이들의 조상 묘비도 다 부셔서 도로포장용 돌로 쓰는 등의 만행을 저지릅니다.
전후 세월이 지나 스탈린이 물러나고 65년에 볼가 게르만에 대한 강제이주 정책을 공식적으로 철회했지만, 이들은 대부분 원래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또한 1941년 까지 존재했던 그들의 자치 공화국의 부활도 불허되었구요. 승전국 러시아에서 적성국 독일인으로 눈칫밥을 먹으며 서러움을 당하던 이들중 상당수는 80년대 독일 정부에게 귀국권을 요구해서 많은 수가 독일로 이주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주한지 너무 오랜 기간이 지나서인지...독일어를 못하는 경우가 많고 문화도 달라서 독일내에서 사회문제가 됩니다. 한국의 조선족처럼...그래서 독일정부는 90년대부터는 이들의 귀국을 까다롭게 받아주게 되는 일이...
아무튼 헬렌피셔의 조부모와 부모가 바로 이 볼가 게르만입니다. 헬렌 피셔의 조부모는
볼가 공동체에서 잘 살다가 어느날 청천벽력처럼 시베리아로 이주당한 당사자이고...
헬렌의 부모도 아마 어린 시절을 그런 고난을 겪은 세대일 가능성이 높은...강제이주 정책이 파기된 것이 65년이니까요. 헬렌의 가족도 65년에 볼가강 유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시베리아에 정착해서 살다가 88년에 독일로 귀국합니다. 헬렌이 4살 때....
지금도 중앙 아시아에는 당시에 볼가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독일로 귀국하지 못한 후손들이
많이 삽니다. 카자흐스탄 같은 경우에는 무려 20만여명이 살고, 그외 키르키즈스탄 등에도
살며, 러시아에 약 60만 여명의 볼가 게르만들이 살고있다고 합니다.
헬렌피셔가 데뷔 10년만에 독일의 최고인기 가수 반열에 오른 것에 비추어보면,
(헬렌피셔의 최신 앨범은 독일 음반사에서 최다 다운로드를 기록하는 등 슈퍼스타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벡으로 이주당했던 고려인의 후손이 모국으로 귀국해서 이루어낸 드라마틱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출처] 나는 독일의 디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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